허구와 현실을 둘러싼 물고 물리는 게임은 미술의 기원이자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적인 미술의 존재 기반은 실제를 다시 제시하는 재현^{representation}이었고, 이를 특정 시공간의 가치관에 따라 어떻게 달리 표현하느냐가 근대 이전의 미술사였기 때문이다. 현실의 표상은 회화가 추상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근대 이후에도 실상 면면히 이어졌는데, 카메라가 회화 대신 재현의 책무를 떠맡은 까닭이다. 하지만 실제를 있는 그대로 옮긴다는 사진 사실주의 신화 뒤에는 앵글과 프레이밍을 통해 화면을 구성하는 사진가의 연출이 언제나 존재했고, 편집을 추가한 영화의 등장 이후 ‘만들어진 현실’이라는 구성의 묘는 더욱 정교함을 더하게 된다.

 《미장센》전은 장면 연출이라는 영화적 도구를 활용한 작가들을 통해 현실의 구성이라는 오랜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장르가 교차하는 현대미술의 한 흐름을 담아내려 한 전시다. 이때 선택된 키워드는 화면 속에 담기는 시각적 구성 요소들을 만들어낸다는 의미의 ‘미장센’이다. 이는 조명, 세트, 소품 같은 배경에서부터 인물의 의상과 분장, 자세 및 동선까지 프레임 내부의 모든 조형적 요소들을 배치하는 작업을 뜻한다. 그런 까닭에 이 전시의 초점은 내용보다는 형식이다. 본 것이 본 바가 아니게 만드는 실제와 허구의 뒤섞임을 연출과 장치가 어떻게 구현해내는지, 그 기교와 트릭의 정교함 및 정합성이 핵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시의 초입에 배치된 아다드 하나^{Adad Hannah}의 <//////1초의 절반//////>(2013)은 상징적으로나 시각 효과 면에서나 전시 전체를 대변하는 적절한 선택이다. 제목은 보통 1초에 24개 프레임이 이어지는 영화의 기본 구조를 가리키는데, 작품은 의미대로 24개의 절반인 12개의 모니터로 구성된다. 관객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12개의 영상들이 서서히 드러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마치 영화라는 장치의 근본 단위가 동결되어 펼쳐진 듯한 장면은 연속적인 것으로 경험하는 영화가 사실 분절된 이미지의 집합임을 문자 그대로 시각화한다. 각각의 숏들은 가장 기본적인 조작인 카메라의 프레이밍이 어떻게 장면의 느낌이나 의미를 좌우하는지 실감나게 보여준다. 생각에 잠겨 미묘하게 흔들리는 여인의 표정은 카메라가 뒤로 빠지자 피아노를 치는 다소 무덤덤한 일상적 장면으로 바뀐다. 여기서 더 물러난 카메라는 부부만의 다정한 한때를 제3의 여인이 개입된 어색한 상황으로 변화시키고, 종국에는 촬영 팀의 등장으로 이 모두가 조잡한 세트에서 각색된 것임을 일깨워준다. 마지막에 놓여있는 실제 세트는 이 성공적인 사기극의 출발이자 완성이다.

 실제라는 환영을 만들어내는 세트의 위력은 정연두와 진기종의 작업에서도 발휘된다. 진기종은 불필요한 세부를 배제함으로써 허구를 진실로 만드는 카메라의 능력을 단순하지만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멀리 산길을 지나 시골집으로 다가가는 자동차와 누군가를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은 흔한 멜로드라마 속 남녀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뒤돌아서면 그럴듯해 보이던 영화 속 장면들의 적나라한 실체가 드러난다. 모든 것은 직접 손으로 만든 조악한 미니어처 모형인 것이다. 일부러 조잡하게 만든 모형은 가짜를 진짜로 만드는 카메라의 조작 능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한편, 정연두는 기존 영화의 장면을 재전유해 컷아웃 레이어 액자로 만들고, 이에 대한 재연 시나리오를 짠 후 실연 장면을 다시 사진으로 남기는 좀 더 복잡한 과정을 택한다. 영화가 중첩 사진이 되고, 이것이 다시 재해석된 영화가 되며, 그 장면이 실사 사진으로 남는 순환 구조는 실제와 허구가 구분되지 않고 무한 반복되며 얽혀 들어가는 바로 그 진실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때 층층이 구성된 액자는 우연찮게 영화 이전의 디오라마 전통을 떠오르게 한다. 핍진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입체적 배치와 움직임을 가미했던 원시적 스펙터클 장치가 한 세기가 지나 잠시 얼굴을 내민듯한 아이러니랄까.

 한편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와 AES+F,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은 사진의 장르 문법에 보다 충실한 편이다. 멀리서 보았을 때 영락없는 실사로 보이는 데만트의 사진은 거리를 좁히면 실제와의 균열을 드러낸다. 보고 있는 것이 엄청난 노동력을 들인 종이 모형임을 알려주는 힌트는 사진 내부에 있다. 사진에 다가간 관객은 파이프 오르간의 모서리와 연결매가 무게감이 없고 조야하며, 동굴의 바위가 건축 모형처럼 얇은 종이 지층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발견한다. 믿음과 기대의 배반이라는 트릭은 사진의 크기와 해상도, 관객의 위치라는 세 가지 변수를 정교하게 조율한 결과다. 데만트의 사진이 자체로는 명시적인 조작이 없다면, AES+F는 정 반대의 지점에 위치한다. 별도로 촬영한 모델들을 컴퓨터 그래픽 배경 위에 배치한 거대한 합성사진은 휴양지를 선전하는 광고처럼 보인다. 조작과 보정이 광고 사진에서 용인되던 관례임을 떠올리면 자연스러운 조합일지도 모른다. AES+F의 경우도 사진이 구성되었음을 알려주는 단초는 내부에 있다. 인물들의 행동이 필연성 없이 따로 겉돌고, 확보되어야 할 음영이나 거리감이 없는 탓에 종이를 오려붙인 듯 입체감이 부재한다. 반면 크루드슨은 지나치게 결점이 없는 점이 도리어 완벽한 환영에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 데만트나 AES+F와 달리 크루드슨의 사진은 겉보기에 구성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는 영화 제작하듯 장면을 설정하고, 이렇게 촬영한 수십 장의 사진 중 완벽히 초점과 노출이 맞는 장면만을 선별해 조합한다. 단일하게 촬영된 사진은 렌즈 색수차나 반사, 초점 이탈 등으로 언제나 흠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에, 모든 부분이 지나치게 명료하고 조명의 반영이 일관되지 않은 그의 사진은 기묘하게 비현실적이고 인위적이다.

 먼 옛날 새가 쪼아 먹을 만큼 실감나는 포도를 그렸던 제욱시스의 신화는 얼마나 진짜처럼 ‘눈을 속일 수 있는가^{trompe l'oeil}’가 관건이었다. 이는 실제를 허상보다 우위에 놓고 있음을 전제했다. 반면 오늘날의 트롱프뢰유에서 허구는 현실보다 열등하지 않으며, 진실과 거짓, 실제와 이미지의 구분은 의미 없다. 오히려 이 현대판 눈속임 장치들에게 중요한 것은 만들어졌음을 의도적으로 노출해서 사실과 허구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분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일 테다. 존재하는 것은 재현인 그림뿐, 실체는 사라진 17세기 스페인 왕궁의 한 순간이 21세기 우리 눈앞에 소환될 때, 파생의 파생이라는 플라톤 식 위계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상상으로 구축된 영상이 우리 감각에 던지는 생생함과 경이만이 진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