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의 소년 승혁이는 자기가 뛰어놀던 뒷동산의 일부가 포크레인에 헐리자 뿌리를 드러낸 나무에게 흙을 덮어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에는 주인이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소년의 독백을 바라본 스크린 밖 관객과 동일한 입장에서 바로 그 장면을 다 같이 모여 모니터로 시청하는 스크린 안의 어른들도 보인다. 근대화된 한국의 일반적 시스템과는 차별적인 공동체의 가능성을 타진 중인 서울 마포구 성미산 주민들의 ‘꿈-좌절-다시 꿈’의 풍경을 담고 있는 다큐멘터리 <춤추는 숲>에서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바라본 대목은 바로 여기였다.

 자본주의와 근대화가 결과적으로 공동체의 기반을 해체시켰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서울 외곽도 아닌 서울의 중심에서 그것과는 차별적인 삶의 방식을 실천 중인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삶을 강력한 저항의 몸부림으로 부르기엔 뭔가 어색하다. 사라진 공동체의 복원이나 폭력적 국가시스템의 전복이라는 ‘대의’가 아니라 그저 성미산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교육과 문화의 공동체를 소소하게 꾸려 나가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운동’이 아니라 그저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어느 사학재단이 법과 돈을 믿고 성미산 일부에 대한 재산권을 주장하고 나선다. 산을 헐어 학교를 짓겠다는 것. 공동체의 터전인 뒷동산과 그곳을 가득 채운 수많은 생명들이 훼손될 위기에 처한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성미산 사람들은 별명으로 결속되어 있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 친근하지 않으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서로의 별명을 거리낌 없이 부르면서 뭉친 하나의 집단. 이웃과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것마저도 꺼리는 서울 도심의 ‘일반적’ 삶과 비교할 때, 가족이나 친구 혹은 연인이 아닌 옆집 사람을 별명으로 부르는 행위는 놀랍기까지 하다. 아이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문화를 ‘함께’ 개발하는 사이, 그러니까 성미산의 나무와 새와 신선한 공기를 ‘함께’ 만끽하는 사이, 자신들도 모르게 근대화된 자본주의적 삶을 정확히 물구나무 세우는 방식으로 뻗어 갔으리라. 그들은 말 그대로 지금은 사라진 ‘이웃사람들’인 것이다.

 영화 <춤추는 숲>이 지향하는 가치는 뚜렷하다. 자연친화적 공동체의 삶에 ‘찬성’하고 무작위의 개발에 ‘반대’하는 것. 그건 영화가, 그리고 영화 속 이웃들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다. 그런데 영화의 세계관에 동의하는 것과 영화 자체에 동의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차원이다. 그 어떤 당위적 ‘대의’라 할지라도 그것은 내부의 치열한 토론과 세련된 논리 그리고 절차적 실천이라는 ‘형식’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입장을 일방적으로 악마화해 저주의 언어를 쏟는 방식은, 그러나 자기 입장의 몇 안 되는 훌륭한 지점마저 퇴색시키는 것과 동시에 반대 입장의 결속과 확장에 봉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간 우리는 이런 식의 아이러니를 숱하게 목격해 왔다.

 <춤추는 숲>의 미덕은 단지 그들이 표방하는 가치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들은 ‘뭔가 다른’ 공동체의 가능성을 타진 중인 자신들의 실천을 대단한 그 무엇으로 과시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에 들이닥친 불행을 필요 이상의 비장한 그 무엇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내가 이 영화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단순히 친환경적 공동체라는 가치관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을 접하는 스크린 밖 관객들에게 자신들의 가치관을 억지스럽게 강요하지 않는 투명하고도 열려 있는 대화방식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이 영화에 적대적 존재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거나 거대 자본에 맞서는 공동체 구성원의 처절한 발버둥이 완전히 빠져 있다는 뜻은 아니다. 스스로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것은 과도하게 선택하고 적대적 입장은 깡그리 배제하는 작위적 분할에 대한 비판적 거리두기, 다시 말해 현실의 복잡다단함을 단순 이분법의 대결구도로 극단화시키는 선정적 맹목성에 대한 위화감이, <춤추는 숲>이라는 서사의 핵심 작동원리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은 선험적 대의에 종속된 격앙된 감정대결의 서사가 아니라 ‘우리는 왜 싸울 수밖에 없는가?’를 둘러싼 개방적이고 투명한 고민의 서사이다. 토론으로 도출된 결론을 일방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위기를 치열하게 사유하는 과정 자체에 관한 기록, 그러니까 정해진 답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곧 끊임없는 질문인 것이다. 영화 혹은 영화 속 이웃들이 세상과 대결하는 방식은 그 대결로 달성코자 하는 새로운 세상의 원리와 기가 막히게 맞물린다.

 때문에 불행과 행복을 순차적으로 배치하는 편집 방식은 당연한 귀결이다. 한편에서는 성미산의 생명들을 지키기 위한 밤낮 가리지 않는 처절한 투쟁이 계속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성미산에 올라 얼음물을 나눠 마시며 꽃잎 하나하나에 깃든 단독적 숨결을 순수하게 만끽한다. 역시나 한편에서는 때마침 선거철을 맞이해 주민의 입장을 대변한 구의원 후보를 직접 추천하는 것과 동시에 현실 정치에 과감하게 뛰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합창대회 준비로 시종일관 명랑하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러나 활짝 웃는다. 투쟁의 언어를 외치던 입은 ‘렛잇비^{Let it be}’를 한국어로 개사한 ‘냅둬유’를 유쾌하게 합창하는 입이기도 하다. 어렵게 낙담하지만 그러나 쉽게 낙관한다. 영화는 단 한 번도 강변하지 않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20년간 성미산을 중심으로 쌓아올린 자연의 힘이자 공동체의 힘이라는 사실을.

 반복하건대 뿌리가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에 흙을 덮어주며 13살의 소년 승혁이는 말한다. 자연에는 주인이 없는 거라고.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소년의 입에서 나온 메시지만이 아니다. 영화는 그 장면 직후, 메시지 전달 차원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함에도 ‘굳이’, 그걸 바라보는 성미산 주민들의 모습까지도 이어 붙인다. 상황이 이러할 때 이제 소년의 입에서 나온 메시지는 단지 관객들을 향하는 것만은 아니게 된다. 동시에 그것은 그것을 찍고 있는 감독까지도 포함해 울고 웃으면서 투쟁 중인 스크린 속 주민들에게까지도 음미해야 할 가치로 승화된다. 외부와 내부를 함께 아우르는 성찰의 풍경! 스크린 안팎을 가로지르며 영화 <춤추는 숲>은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인간이 그토록 추앙하는 법과 자본은 왜 자연의 편이 아닌가? 마치 인간은 자연이 아닌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