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조^1943~가 작곡하고, 김의경^1936~이 대본을 쓴 <처용>은 1987년에 초연된 작품이다. 1991년 재연 이후 두 번의 갈라 무대를 거쳐 26년 만에 전막 공연으로 다시 올랐다. 무엇보다 ^{레지테아터연출가가 작품의 배경과 분위기 등  많은 요소를 바꿔놓는 방식}의 시대를 적극적으로 열고 있는 국립오페라단이 창작오페라에도 이 방식을 적용시켰다는 것이 놀랍게 다가왔다.

 역시나 양정웅 연출의 힘은 컸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120여 분을 관통하는 무대를 통해 얻은 수확은 ‘보는 재미’였다. 양정웅 연출과 함께 오페라 <보체크>, <천생연분>, <연서> 등을 함께 해온 임일진(무대미술)의 역할도 컸으리라. 무대는 기존의 창작오페라 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구성과 무대의상(김영지), 조명(여국군), 영상(김장연), 분장(구유진)으로 각 장면을 재치 있게 헤쳐 나갔다. 막이 열려 새로운 등장인물과 오브제가 나왔고, 막이 드리워지면 새로운 뭔가가 또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 주었던 120여 분이었다.

 극작가 김의경이 대본을 맡은 <처용>의 타이틀롤 처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설화 속의 인물과 다르다. 역신과 아내의 부정 앞에서 춤을 춘 처용은 오페라 속에서 향락과 부패로 망해 가는 신라를 구하러 온 몽상가이자 이상주의자로 그려졌다. 그래서 공연을 보는 동안 자라투스트라가, 혹은 예수가, 아니면 부처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역신의 유혹 속에서 타락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가실 하나 구원하지 못하는 나약한 구원자였다.

 향락과 부패의 뉘앙스로 무대를 채우기 위해 양정웅 연출은 배경인 신라를 지우고 오늘날의 강남을 내세웠다. 2막 1장에서 타락으로 치닫는 신라의 왕(오승용 분)과 세인들(극단여행자, 그란데오페라합창단)이 펼친 광란의 파티, 2막 2장 ‘거리의 여자들’에서 야한 의상으로 등장한 여인들의 모습은 ‘관능의 관능’이었다. 금색 연등을 들고 제례의식을 펼친 ‘팔관회’에서는 관객의 동공이 열렸다. 보조를 맞춘 영상기법은 다른 공간에 있는 출연진의 모습을 무대 위로 옮기거나, 9·11테러 등 현대문명 속에 일어나는 재난의 장면을 비추며 타락한 신라의 모습을 대변했고, 역신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공포를 자아내기도 했다.

* 호불호를 말하기에는 담론이 빈약하다

 막이 내린 후, 호불호가 갈렸다. 오페라마다 레지테아터를 따르고 있다는 점, ‘스타연출가’ 양정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에서 이영조의 음악은 논의에서 일부분일 뿐이었다. “너무 실험으로 나아갔다”는 평가는 무대의 풍경만을 통해 내린 결론들이었다. 그래서 음악에 대한 변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2년 국립오페라단의 갈라콘서트를 통해 일부분을 마주했던 <처용>. 이번 전막 공연을 통해 다시 만난 <처용>은 역시나 ‘실험적’이었다. 일단 한국창작오페라를 접할 때, 반복적으로, 혹은 보편적으로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조금도 가미되지 않았다. 그것은 세마치장단을 응용한 ‘6/8박자 계열의 리듬’과 서양의 7음 음계가 아닌 ‘전통음악 고유의 5음 음계’이다. 한국근대음악사 속에서 탄생된 한국가곡은 이른바 이 두 요소를 차용하여 일군 노래들이다. 창작오페라도 알고 보면, 이러한 노래조^調들을 엮은 ‘묶음’이었다. 한국창작오페라사에 큰 족적을 남긴 현제명의 <춘향전>(1949), <왕자호동>(1954), 장일남의 <왕자호동>(1962), <원효>(1984), 김달성의 <자명고>(1969)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작품들이 창작오페라사의 X축이라면, 이영조의 <처용>은 이와 다른 Y축에 좌표를 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공연 내내 들었다. ‘탈(脫) 아리아’에, 박수를 보낼 순간 없이 음악이 지속되는 송-스루^Song-through 방식, 그리고 배역들은 노래를 ‘부르기’보다는 복잡하고 두터운 화성으로 일군 오케스트레이션 위에 가사를 읊고 ‘낭송’하는 듯했다. 기존 오페라의 레치타티보, 혹은 쇤베르크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말하듯이 노래하는 ‘슈프레히 슈팀메^Sprechstimme’ 창법의 중간쯤으로 ‘처용 창법’이라고 할까. 즉 음악이 말과 진동하되 부유하지 않는 120여 분이었다.

 이렇듯 2013년에 다시 오른 <처용>의 역사적 의미와 의의는 작곡가의 ‘실험’에 있다. 하지만 의미와 의의를 가늠할 수 있는 부대 맥락이 그 어디에도 설치되지 않은 데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이영조를 만났다. 평문에 쓰지 못한 말들을 필자의 질문에 녹여 넣었다.

* <처용>에 대해 더 말해 달라

 송현민 _ 새로운 기법의 오페라와 만나는 기쁨 반, 녹록치 않았던 감상 반이었습니다. <처용>은 바그너의 라이트모티브^{유도동기. 즉 곡 중의 주요인물이나 사물, 특정한 감정 등을 상징하게 하는 음악기법}가 사용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올해 ‘이런 작품을 통해 그의 탄생을 이렇게도 기념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영조 _ 사실 그는 철저히 조성 안에서 음들을 움직였습니다. 예를 들어 1,000개의 마디를 기준으로 모차르트가 2~3개의 조성으로 통일감을 두었다면, 바그너는 1,000개의 조성을 두었습니다. 그의 음악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00개의 마디에 무조無調를 둔 것입니다. 조를 없애서 모든 음들이 가질 수 있는 자유를 입혔습니다. 바그너의 영향을 받되, 저만의 공법으로 작품을 일군 것이죠.

 송현민 _ 1987년 초연과 달리 이번에 음악이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영조 _ ‘바뀌었다’는 것보다는 ‘보완되었다’라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 오케스트라의 성부를 줄였습니다. <처용>은 3대의 현악기가 3개의 선율로 구성된 화음 외에 더블 스톱^{두 개의 줄을 동시에 긋는 것}까지 써서 6화음을 내야만 합니다. 보통의 오페라에 쓰인 화성이 축구장에 그어진 금 같다면 <처용>의 화성은 촘촘한 모기장과 같다고 할까요? 초연 당시 성악가들이 이 두터운 화성을 그들의 발성으로 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악기 편성을 줄여 성부를 줄였는데, 그 사이 한국 성악계의 놀라운 발전 때문인지 오히려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좀 위축되어 보였습니다.

 송현민 _ 한 편의 창작오페라가 한국 성악계의 발전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었군요. 성악가의 원작에 가사가 개작되고, 새로운 연출가와 만나면서 음악적으로 더 ‘보완’된 부분은 없습니까?

 이영조 _ <처용>은 원래 ‘남성오페라’였습니다. 여성은 가실 한 명 뿐이었죠. 초연 당시 남성 위주의 노래와 합창이 많아 무겁고, 한편으로는 어두웠는데 음악을 새롭게 넣어 분위기와 무게를 바꾸었습니다. 가실은 순수하지 못한 여인으로 그려집니다. 그것을 더 부각시키기 위해 ‘거리의 여자들’을 넣어 요염한 여성합창을 만들었고, 남성중창인 ‘도깨비 춤’을 여성중창으로 가져갔습니다.

 송현민 _ 재연되는 오페라에 있어 시대적 감각에 따른 ‘보완’과 수정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까?

 이영조 _ 초연되던 때, 한국은 조성^調性음악의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그 때 못 듣던 소리들이 많지요. 음악부터 소음 모두가 오늘날 작곡가들에게 소재가 됩니다.

 송현민 _ 작곡가에게는 새로운 소재이지만 오페라 관객에게는 힘겨운 감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영조 _ 음악과 소리는 시대에 따라 변하고 감상의 기준도 바뀝니다. 불협화음이 나오면서 협화음이라는 개념이 생겼습니다. 예를 들어, 운율이 있는 시^詩가 있어서 이상의 시들이 난해하고 읊어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노래할 수 없는 시’도 ‘노래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예쁜 가곡’과 같은 노래가 아닌 다른 노래가 되는 것이죠. 이러한 변화에 따라 감상의 기준을 새 작품들이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정리해 본다. 창작오페라의 갈증을 달래는 것은 물론 창작에 배당되는 예산이지만 작품 주위로 구축된 담론이 갖는 상징적 예산도 중요함을 되새겨 본다. 그리고 끝으로 초연과 재연이라는 ‘기록’을 통해 창작오페라사를 꾸준히 일구는 국립오페라단에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