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의 <너무 놀라지 마라>(2009). 손톱 발톱 깨끗이 깎고 반듯하게 다림질한 와이셔츠에 정장 갖춰 입고 장례비 담아 서랍에 챙겨놓고, 아버지는 화장실에서 목을 맨다. 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는 둘째 아들, 영화감독인 남편 대신 노래방 도우미로 가족을 건사하는 큰며느리, 영화 찍는다고 집 나가 들어오지 않는 큰아들. 이 심상찮은 자식들은 끝내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다. 연극이 전개되는 내내 화장실 문이 열리면 시신이 되어 매달려 있는 아버지는 힘들다고 이제 그만 내려달라고 아이처럼 칭얼댄다.

 그런데 왜 이들은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지 못하는가. 자식들은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통곡한다. 그렇다. 멀쩡하다면 멀쩡하다. 그런데 화장실 문을 닫고 벌이는 언쟁은 당신 자신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이다. 화장실 환풍기를 고친다거나 제작비를 마련해야 한다거나. 자식들은 아버지의 시신에 에프킬라를 뿌리며 아버지의 죽음을 일단 밀쳐둔다. 아버지는 죽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여전히 자식들의 주변을 배회하고, 자식들은 무기력하다.

 박근형의 연극은 이렇다. 그의 출세작 <청춘예찬>(1999)부터 근작인 <70년 전>까지, 그의 연극은 문지방을 넘지 않는 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무대는 종종 남루한 방으로 제한되고(그런데 그의 연극에 등장하는 가족들은 먹고 자는 최소한의 공간이 전부다), 그들에게 허락된 이 작은 공간에서의 삶이란 연극의 시작부터가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절망과 나락 같다. 그러나 박근형 연극의 긴장감은 그러한 극한의 상황이 아니다. 그의 연극의 긴장감은 극한의 상황과 그것을 그려내는 당황스러울 만큼 무심한 표정에서 비롯된다.

 그 간극은 종종 웃음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연극적 비약이 되기도 하고 섬뜩한 현실주의가 되기도 한다. 그 무심한 표정에서는 아무도 맨얼굴로 꺼내놓지 않은 가족 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여 그의 연극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묵직한 여운이 남는 인자한 웃음을 날리는 최불암의 ‘아버지’나 가족을 위해 뼈 빠지게 일했지만 초라하게 남겨진 IMF 시절의 김정현의 <아버지>와 다르다. 더불어 ‘살부’와 같은 신화적 문화적 모티브에서도 저만치 떨어져 있다. 그야 말로 한 번도 우리가 제대로 마주해 보지 못한 말 그대로 가족관계에서의 아버지이다. 무능력하고 무책임하고 무기력한, 그럼에도 억압의 기제를 떠맡아야 하는 아버지들 말이다.

 아버지들은 골방에 갇혀 술로 소일하고 있는 거나(<청춘예찬>), 유구한 가문의 내력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고쳐 써야 하거나(<대대손손>, 2000), 그도 아니면 세상에 아무런 자취도 남기지 못한 채 바람처럼 떠돌고 있다(<경숙이 경숙아버지>, 2006).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을 듯한데, 박근형 연극의 아버지들에게는 식민지와 전쟁과 전쟁 후의 폐허를 통과해 온 서사가 드리워져 있다. 오직 살아남는 것만이 절대적인 삶의 목적이었던 시절, 비틀린 세상에 대해 무능력하고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책임질 능력도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살아 온 아버지들. 그 아버지들의 역사가 지금 우리의 현대사를 만들었다.

 이제 아버지는 죽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집안 한복판에 시신이 되어 매달려 있지만, 아버지는 죽었다. <너무 놀라지마라> 이후 박근형 연극에서 흥미로운 점은 이제 그의 연극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작가 자신의 모습 같다는 것이다. <아침드라마>(2010), <70년 전>의 아버지들은 비틀리고 파괴된 세상에서 한 조각 제 자리도 갖지 못한 그런 아버지들이 아니다. 이제 아버지들은 하루하루 녹초가 되도록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아버지들은 여전히 제 자리를 갖지 못한다. 지금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도 분간하지 못하고(<아침드라마>) 끝내는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신세다(<70년 전>).

 그런데, 박근형 연극의 아버지만 죽은 것이 아니다. 최근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현대사를 다시 되돌아보는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는데, 이들의 작품에서는 아예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원이자 분신이기도 한 아버지가 사라졌다. 내내 아버지를 그려왔고 아버지가 죽고 나서는 이제 아버지가 된 자신을 그리고 있는 박근형과는 사뭇 다르다.

 최근 가장 활발하게 작품을 발표하고 있는 김은성이 지난 해 발표한 <목란언니>와 <뻘>이 그렇다. 체홉의 <갈매기>를 번안한 <뻘>은 등장인물의 관계를 빌려올 뿐 정작 드라마는 <갈매기>에서 성큼 떨어져 나와 있다. 1981년 벌교를 배경으로 광주항쟁 이후 참혹한 학살의 시간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린다. 한편으로는 원작의 구도가,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작가의 시선에서 이 작품에는 ‘아버지’가 없다. 광주항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새로운 음악을 하겠다는 운창에게는 <갈매기>의 뜨레플레프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기원이자 분신인, 아버지가 없다. 그의 분노는 뜨겁지만 정작 이 거대한 폭력을 겨누기에는 누추하다. 도리어 이 폭력의 현실에 가장 단단하게 맞서고 있는 인물은 나조금이다. 나조금은 광주항쟁 중에 먼 친척인 도일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말문을 닫았다. 긴 시간이 흐른 후 나조금은 도일을 찾아가 “폴세 나줘버렸지만” 그래도 용서하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그건 미워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용서를 안 하겠다는 것은 용서를 안 하겠다는 것”이다.

 <목란언니>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탈북자 조목란의 서사를 쫓아 전개된다. 그러나 정작 연극의 극적 공간은 조대자 일가의 거실이다. 남북의 현대사를 경쾌하게 대비하는 프롤로그에서 시작하여 조목란이 만나게 되는 조대자 집안의 내력을 담고 있는 이 집안의 가보인 ‘쇠망치’에는 우리 현대사의 장면들이 새겨 있다. 이 쇠망치는 ‘이역만리 사우디아라비아 노가다판’에서 죽은 남편의 유품이고, ‘왜정 때 일본 놈들 대갈통을 박살내고 김구 선생의 비밀아지트를 만들던’ 시아버지의 유품이다. 남편 잃고 홀몸으로 몸 팔아 자식들을 키워낸 조대자는 이 쇠망치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목란언니>에는 현대사를 관통하는 아버지의 서사가 지배한다. 어머니 조대자는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에서 대신 아버지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박근형의 연극에서는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그래서 비틀린 역사의 피해자이자 당사자인 아버지가 눈앞에 존재하는 반면 <목란언니>에서는 딱딱한 쇠망치와 빅마마 조대자로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대손손>에서 끊임없이 고쳐 쓰던 역사는 생명도 없는 텅 빈 기표이거나 혹은 흉기로만 남아 있다. 그렇게 고쳐 쓰던 역사를 벗어 버린 실제 내 삶의 역사는 빅마마 조대자에게는 자랑스러움이고, 그 부모에게서 자라난 자식들에게는 치욕인 ‘몸 팔아’ 살아낸 세월이다. 조대자는 박근형의 아버지들처럼 무기력하지도 않고 무책임하지도 않다. 그녀는 기꺼이 자식들의 울타리가 되고 지지대가 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녀는 동물적 감각으로 비틀린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를 재빠르게 체득하고 그 원리에 대해 의심하지 않는다. 왜? 홀몸으로 자식들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쇠망치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은 살뜰한 모정과 폭력적인 현실의 간극을 아버지들의 유품인 쇠망치가 지워주기 때문일 것이다. 쇠망치는 그 모습만큼이나 폭력적인 현실을 지탱하는 지지대인 것이다.

 한편 최근 연극들에는 아버지의 사라짐과 더불어 아들들도 사라지고 있다. 예를 들어 광주항쟁을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와 뮤지컬 <화려한 휴가>의 마지막 장면에서 학살의 상처를 기억하는 것은 ‘딸’이다. 지난 해 올랐던 <전명출 평전>은 80년대부터 지금까지 전명출의 삶을 통해 비틀린 우리 현대사를 전개하는 작품인데, 전명출의 삶을 지켜보고 있는 서사자가 공연에서는 ‘딸’로 바뀌었다. 때로는 화해와 용서라는 감상적 결말을 위해 때로는 관습적 극적 장치에 머물고 있어 작가의 시선을 읽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왜 이 같은 선택이 반복되는지 의문이 든다. 답을 얻기 위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