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 이야기를 ‘누가’ 했던가?

 소설에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가족’이나 (자녀의)‘성장’과 관련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랜 가부장적 전통 속에서 아버지는 가족 구성원을 통솔하는 가장의 역할을 떠맡아 왔으니 ‘가족’ 이야기와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겠지요. 또 한편으로, 자녀에게 아버지는 사회의 규범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기에 ‘성장’ 이야기와도 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읽은 아버지 이야기는 누구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나요. 그것은 누구의 시선, 육성을 통해 전달되었나요. 아내인가요? 딸인가요? 아들인가요?

 확신컨대 아마도 많은 경우 ‘아들’들과 아버지의 관계, ‘아들’의 시선이나 육성을 통한 이야기였을 것입니다(2004년 소설인 김애란 「달려라 아비」가 먼저 떠오른 분들은 저의 이 확신이 2000년대 이전 정도 소설에까지 해당한다는 것을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만, 여기에서는 잠시 고전적 아버지 이야기에 국한해 볼까 합니다). 이때의 아버지들은 ‘상이군인’(하근찬)이거나 ‘난쟁이’(조세희)이거나 ‘남로당’(이문열)이거나 ‘개흘레꾼’(김소진)이었지요. 물론, 딸의 입을 통해 나오는 아버지 이야기가 없지 않습니다. 주류가 아니었을 뿐이지요. 그럼, 아버지는 아들과만 관계를 맺고 있는 게 아니라, 딸과도, 아내와도, 형제와도, 누이와도 관계를 맺고 있는데, 왜 유독 ‘아들’과 ‘아버지’의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어 온 것일까요. 이 질문은 곧 ‘아버지’ 이야기의 어떤 전형성, 패턴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아버지’ 이야기를 ‘가족로망스’, ‘오이디푸스 서사’ 등으로 이야기해 오곤 했고요.

* 아버지 표상의 변화

 한국에서 아버지의 이미지는 종종 식민지와 전쟁 체험과 불가분인 근현대사의 부침과 상동적으로 이야기됩니다. 말하자면, 아버지는 언제나 부재하거나 이미 훼손된 존재입니다. 이때 ‘부재’, ‘훼손’이라는 말은 그저 비유가 아닙니다. 소설을 통해 보건대 정말로 아버지들은 징집되어 ‘부재’하거나, (가부장적) 아버지스러운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부족한’ 존재이거나, 대의를 품고 집을 나가 오히려 남은 가족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이거나, 심지어 권위와 폭력을 구분 못하는 등의 경제적, 정치적 금치산자였지요. 이 아버지 이야기들은 ‘부재’, ‘훼손’의 이미지를 반복하면서 변주되어 왔습니다.

 이런 ‘부재’, ‘훼손’의 이미지가 소설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것은, ‘아버지’가 늘 어떤 권위, 초자아적인 존재를 상징해 왔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가장을 넘어서 아버지는 이념이기도 했고, 국가이기도 법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리고 이야기(소설) 속의 아버지들은 늘 그것에 미달하여 연민의 대상이 되거나, 혹은 설사 그 권위에 합당한 자리에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저항과 부정의 대상이 되곤 했지요. 이런 의미에서 진짜 문제적인 인물은 그의 ‘아들’들입니다. ‘아들’은 이 ‘아버지’를 부정하고 저항하면서 욕망하고, 종종 연민을 느끼는 등의 ‘양가적’ 심정 속에서, 결국에는 스스로가 또 다른 ‘아버지’가 되는 셈이나 마찬가지이므로 말이지요. 즉, 많은 소설 속 ‘아버지’들은 그에 반항하고 연민하는 ‘양가적’ 심정을 지닌 ‘아들’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불가능한’ 권위, 역할을 재생산해 온 셈이랄까요.

 지난 세기말, 이념 대립이 끝나고 소위 ‘큰이야기’들이 더 이상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시절을 맞으면서 한국소설의 아버지 이야기들도 이런 ‘정-반-합’적인 비장함을 떨쳐가게 됩니다. 확실히 ‘아버지’로 표상되어 온 ‘큰이야기(민족, 국가, 이념 등등)’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아서였을까요. ‘갈등-지양-화해’에 이르는 ‘아들-아버지’ 이야기는 비주류 중에서도 비주류를 이루게 됩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가족’ 이야기라고 해도 수직적인 관계도 속의 혈연 가족이 아니라 비혈연적이고 수평적인 유대관계(배수아, 윤성희)가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그렇다고 작가들이 혈연으로서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이 ‘혈연’으로서의 ‘아버지’ 역시 종종 ‘부재’하고 ‘훼손’되어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현실감을 잃고 ‘기린’(박민규), ‘모자’(황정은)와 같이 아예 ‘캐릭터’를 부여받지 못한 동물, 사물이 되어 버렸습니다.

 가족부양을 위해 늘 회사에 가 있는 아버지가 이제는 그 회사일마저도 잃고 무능력한 가장이 된 탓에 집으로도 돌아오지 못하고(훼손) ‘기린’이 되어(동물로 전락) 나타납니다(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2004). 자식들에게 미안해질 때마다 아버지는 그들 앞에서 ‘모자’가 되어 버리곤 합니다(황정은, 「모자」, 2007).

 그러나 이들의 ‘부재’, ‘훼손’, ‘사물, 동물로의 전락’을 이전 시대와 같은 전형성, 패턴 속에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금 ‘기린’이 되거나 ‘모자’가 된 아버지들은 처음부터 아예 강력한 ‘권위’ 자체를 부여 받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니 그런 것 자체가 의식된 적도 없습니다. 또한 이들은 ‘아들’과만 관계 맺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소설 속 아버지에 대한 연민의 시선은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아버지’의 상징성은 처음부터 지워져 있으므로, 이들의 ‘전락’은 권위의 추락이라기보다 ‘본래부터 가련했던 존재가 더 가련해진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작아진 아버지, 착한 아들·딸들

 아버지를 둘러싼 상징과 기대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해 온 문명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 실제 모습은 이처럼 계속 달라지고 있습니다. ‘부재’, ‘훼손’의 이미지를 반복하지만 그 속의 ‘아버지’들은 계속 각 시대를 환기시키면서 변하고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던진 질문 -여러분이 읽은 아버지 이야기는 누구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나요. 그것이 누구의 시선, 육성을 통해 전달되었나요?- 은 이제 시기를 구분해서 물어야 할 질문임을 알게 되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질문을 다시 2000년대 이후 소설들을 향해 던져 봅니다. 이때 김애란의 「달려라 아비」(2004)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한 소설들이 그러하듯, 2000년대의 아버지는 반드시 ‘아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려지지도 않고, 투쟁이나 극복의 대상도 아닙니다. 상징성이 지워진, 그저 연민의 대상으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한편 이런 이유로 90년대 김소진 소설 속 ‘개흘레꾼’ 아버지(「개흘레꾼」)가 떠오르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그 아버지 역시, 상징성을 뚜렷하게 부여받은 다른 아버지들과의 비교 속에서 상대화되고 연민의 대상이 된 아버지입니다. 쉽게 말해, 이때의 아버지는 언제나 권위와 무능력 두 자리를 오가는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아들은 그 사이에서 양가적인 심정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요. 양가적 심정의 조절-타협은 그 결과인 것이고요.

 「달려라 아비」는 이제까지의 아버지 이야기와 달리 ‘딸’과의 관계 속에서(상상적이지만) ‘딸’의 시선을 통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소설도 ‘기린’(박민규), ‘모자’(황정은) 아버지에 대한 시선과 같은 ‘연민’을 공유합니다. 그런데 박민규나 황정은 소설 등에서의 아버지들과 다른 점은, 이 아버지는 구체적으로 자식에게 상처를 준 진원지라는 점입니다. ‘기린’ 아버지나 ‘모자’ 아버지는 비유컨대 이전 시대의 희생하는 어머니들과 같은 이미지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달려라 아비」 속에서 아버지는 ‘딸’을 사생아로 만들고, 생사여부도 알 수 없는 무책임한 아버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소설에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아버지를 원망하지도 않는, 나아가 상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상황을 바꾸려는 주인공에 주목해 왔습니다.

 반복이 될지라도, 저는 이 소설을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이전 시대의 아버지 이야기와 다르다고 요약하고 싶습니다. 우선, 이 소설은 그 흔한 ‘아버지-아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버지-딸’의 이야기입니다. 둘째, 이 소설의 ‘화해’는 복잡한 갈등과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이미 ‘전제’로 놓여 있습니다. 말하자면, 2000년대 아버지 이야기는 ‘왜소화된 아버지를 연민하고 이해하려는 착한 아들·딸의 이야기’ 정도로 요약해도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여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소설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저는 이것을,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버지 이야기들이 어떻게 반복하고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암시의 하나로 읽고 싶습니다.

 「달려라 아비」에는 ‘아버지와 딸’의 (상상적) 관계를 훈훈하게 ‘마무리’ 시켜주는 도구가 하나 등장합니다. 기억하시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것은 ‘선글라스’입니다. 주인공은 상상 속에서 달리고 있는 아버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충족시켜 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 중 썬글라스를 씌워드릴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주인공의 상상 속 아버지는 ‘선글라스’로 완성됩니다. “달리는 동안 늘 눈이 아프고 부셨을 것”이므로 ‘선글라스’를 떠올렸다는 주인공의 의뭉스러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매우 의미심장한 구석이 있다는 말이지요.

* 선글라스와 아버지

 ‘아버지’와 ‘선글라스’의 조합은 김애란의 소설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오정희의 「저 언덕」(1989)이라는 소설을 떠올려 봅니다. ‘아버지-딸’ 이야기로 치자면 이 소설의 선구성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내 아버지를 부정하고 그와 갈등합니다. 아버지는 지금으로 치자면 ‘어버이연합’ 회원쯤 되시는 분으로, 그 전형성을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단,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잠시 봅니다.

 “안경이 그냥 있구먼. 무던히도 선글라스를 좋아하시더니 어쩌자고 두고 가셨을까.”

 승재가 책상 한 귀퉁이에 놓인 선글라스를 집어 들고 마루로 나왔다.

 마루 끝에 앉아 있던 원단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늘 알을 닦아 두었던 듯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한 선글라스를 눈에 대고 남편과 아이를, 저무는 빛 속에 집과 더 멀리 헐벗은 산언덕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눈이 되어 세상과 세월들을 바라보았다. 검은 유리알을 통해 적나라하게 살을 드러낸 언덕은 더욱 멀고 그 어느 골목쯤에인가 절룩거리며 허위허위 올라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저 언덕」의 주인공 딸은 아버지가 벗어두고 간 ‘선글라스’를 통해서 그제야 비로소 아버지가 세상을 보던 시선을 조금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아버지’는 식민지, 전쟁, 이데올로기 대립을 몸소 겪은, 어떤 특정 세대의 ‘아버지’입니다. 여기에서 ‘아버지와 딸’의 화해의 도구로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은 ‘선글라스’입니다. 잠시, 이 소설 속 ‘어버이연합’ 회원 같은 아버지가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장면을 한 번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그 상상력을 소설 바깥으로 조금 비약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어떠신가요. 또 다른 ‘선글라스 낀 아버지’가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여러분도 혹시 저와 같은 분이 떠오르지는 않으셨을까요. 강하고 권위 있는(있어 보이려는) 아버지가 자신의 약함, 콤플렉스를 위장하기 위해 필요로 한 장신구(도구)로서의 선글라스. ‘선글라스’와 ‘아버지’의 조합은 제게 이런 상징으로 와 닿습니다.

 그 ‘선글라스’가 2004년 「달려라 아비」에 다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역시 아버지와 딸의 화해의 도구, 그런 상징성을 띤 ‘선글라스’네요. 저는 이 ‘선글라스’를 소설 속 장치로 사용한 김애란 작가의 재치에 새삼 감탄합니다. 조금 전, 여러분께 이 상상력을 소설 바깥으로 조금 확장시켜 보자고 말씀드렸지만, 이 ‘선글라스 낀 아버지’는 일찍이 1961년에 등장한 그 ‘아버지’의 모습과 대단히 일치합니다. 그가 그 후 1989년 오정희의 소설 속에서, 그리고 2004년 김애란의 소설 속에서 다시 등장한 셈입니다. 저는 지금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고 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구절이 세속적으로 떠오릅니다. 그리고 근현대사 속 ‘아버지’들은 계속 반복되지만 동시에 계속 양상도, 함의도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김애란 소설 속 아버지에게 ‘선글라스’를 씌워드려 봤자 처음 ‘선글라스’를 끼고 우리 앞에 등장한 그 ‘아버지’가 부활할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점을 이 작가는 명민하게 작은 이야기(小說)를 통해 우리에게 환기시킵니다. 역시 소설 바깥의 이야기이지만, 2012년 겨울에, 딸을 매개로 하여 ‘선글라스 낀 아버지’의 유령이 돌아왔다고 해도 그는 그저 유령일 뿐입니다. 김애란 소설 속 선글라스 낀 아버지는, 이같이 반복되면서 결코 반복되지 않는 아버지의 이미지, 나아가 아버지 표상을 둘러싼 역사를 환기시킵니다. 역사가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반복한다고 했듯, 지금 ‘아버지’ 표상 역시 ‘선글라스 낀 아버지’의 변천과 같이 계속 엎치락뒤치락 반복하며 변화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 한편, 착하지 않은 아들·딸들도 더 많아지기를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아니라, 그것을 ‘이야기하는’ 착한 아들·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글을 마치고 싶습니다. 이것은 어쩌면 ‘착한 소설’들의 서사적 구조에 대한 사소한 불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관련한 복잡한 내적, 외적 갈등이 사라졌다는 것은, 이제까지 다루었듯 ‘아버지’ 표상의 변천과 관련될 터이지만, 좀 달리 보자면 갈등이나 분쟁에 좀처럼 휘말리고 싶지 않아 하는 이 시대의 ‘아들·딸’들의 특징과도 관련될 것 같습니다.

 시대를 불문하고 아프고 슬프고 화나는 일이 없는 시대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의 자식으로 태어나고 누군가의 부모가 되는 인간의 숙명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상 ‘가족’은 여전히 자주 상처의 진원지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더 이상 ‘큰이야기’로서의 상징성을 띠지 않는 시대라 할지라도, 나와 타자 사이의 갈등과 분쟁 자체가 함께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김애란의 소설이나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아버지’, ‘가족’이 긍정적인 이미지로 강박되는 듯한 인상은 이런 의미에서 다시 생각해 보고 싶기도 하네요. 대체, 갈등과 분쟁 자체를 피하고 싶은(피하려고 하는) 방어적인 태도와 ‘긍정’에 대한 강박은 어떤 관계일까요.

 2000년대의 많은 아버지 이야기들이 위로, 위안의 정서와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 유행어로 ‘힐링’이라고 이야기되는 그 역할이 문학에서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요. 그러나 그럴수록, 그것이 그저 ‘당의정’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갈등, 분쟁, 반항의 소지에 대해서도 눈감지 않아야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세상살이가 팍팍해질수록 가족 이데올로기나 복고담론이 돌아온다고들 하지요. 즉, 위로와 위안을 얻으며 적당히 안주하고 싶어질 때, 그것이 최종적으로 누구에게 이득이 될지 생각하는 것은 늘 중요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불안정함이 우리의 보편적 생존 조건이 되어 있다, 어떤 근대적 계약 공동체(국가, 사회, 직장)도 나의 생존을 책임져 주지 못하는 시대다’라고들 합니다. 이때, 마지막 보루로 상상하기 쉬운 것이 ‘혈연’ 공동체 ‘가족’입니다. 그러나 이곳에 상상력이 귀착하지 않도록, 굳어 버리지 않도록 너머의 무엇을 상상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면역력을 키우는 일은 실제 우리의 삶에서나 소설에 있어서나 중요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000년대의 착한 아들·딸의 이야기가 흔한 ‘그래도 가족뿐이지’라는 식으로 변주되지 않기를 기대해 봅니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착하지 않은 아들·딸의 이야기도 ‘소설 안팎’에서 많아졌으면 합니다. 아버지의 ‘선글라스’는 계속 다른 식의 희·비극으로 변주될 필요가 있다는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