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나고 객석의 분위기를 보니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순간 아쉬움이 느껴졌다. 궂은 날씨에 비해 적지 않은 관객이었고,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느낌의 관객이었으므로 작품의 완성도가 조금만 더 높았더라면 인천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레퍼토리가 탄생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나쁜 느낌은 아니었지만 여러 가지로 미진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가능성은 남아있다.

인천연극의 변별력?
인천은 좋게 말하면 묘한 매력이 있는 도시이고, 조금 나쁘게 말하면 어정쩡한 도시이다. 개항이 최초로 이루어지고, 외국의 문물이 처음 들어온 곳이라 그런지 새로운 문화를 대함에 유연한 도시이기도 하며, 산업화의 중심에 있었던 산업도시인 만큼 이주민의 비율이 높다.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인만큼 보수적인 인식도 공존하며, 서해 5도까지 끌어안아 면적으로만 보면 광역시 중 최대를 자랑한다. 그래서 인천이란 도시는 늘 대도시의 특성과 지역적 특성,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이다.
그래서인지 흥미로운 현상이 있다. 유독 인천의 이야기를 발굴하려는 욕구가 강하다는 것이다. 물론 서울도 가끔 서울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고, 관광이 도시 재생의 한 방향으로 설정되면서 여러 관광도시도 자도시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보통 대도시의 경우 지역적 소재에 집착하는 경향은 매우 적다. 그런데 인천은 상대적으로 타 도시에 비해 인천의 이야기를 발굴하려는 욕구가 매우 강한 편이다. 그건 서울이 가까운 지역적 특성과 서울로 몰리는 관객의 발길을 붙잡기 위해서는 변별력이 있어야한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소재의 변별력이 관객의 발길을 붙잡을 만큼 매력이 있는 걸까? 공연예술이 애향심에만 호소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걸까? 물론, 그것이 소재의 빈곤을 타파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라고 한다면 이견이 없다. 아울러 인천의 연극이 서울과 변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인천의 이야기를 발굴함으로써 변별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모든 예술작품은 각자의 고유성을 획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도적인 변별력에의 갈망은 가끔 독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더욱이 이미 거대도시가 된 인천에서 향토적 소재는 때로 이질감을 불러올 가능성마저 가지고 있다.
물론 이 논의는 그저 원론적인 이야기이고 <능허대 사랑비>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능허대’가 등장했음에도 인천의 이야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오랜 과거의 사랑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뒤에 부연하겠지만 이 작품의 소재가 보편성은 획득했을지 모르지만 지역을 강조하려 했다면 그리 큰 인상은 남기지 못했다. 극의 구조에서 특별한 장치가 없는 한 ‘장소’보다는 ‘인물’이 강조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가능성과 한계를 함께 보여준 <능허대 사랑비>
<능허대 사랑비>는 앞서 말한 지역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떠나지 않던 생각이 있었다. 대체 왜 이 작품을 뮤지컬로 구성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 작품은 구상 단계에서부터 지역과의 협력관계를 염두에 두고 기획되어졌고, 그래서 소재 또한 연수구의 능허대와 관련된 소재로 작품을 구성하였다. 그럼에도 비교적 탄탄한 구성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인 ‘권력’, ‘가문의 복수’와 ‘사랑’을 적절히 배치하여 보편성을 획득하였다. 결국 앞서 말한 소재에서는 배경만 빌려왔을 뿐, 구성은 보편적 가치를 기반으로 설정하여 관객의 관심을 자연스레 유도하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문제는 뮤지컬로의 각색과정에 있다. 이미 극으로 구성이 완결되어진 작품을 뮤지컬로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뮤지컬의 구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뮤지컬에서의 음악(노래)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기호이다. 즉 뮤지컬 넘버가 때로 등장인물의 심정을 노래한다 하더라도 그 노래는 하나의 극적기호와 구조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뮤지컬의 음악은 대사나 장면과 마찬가지로 극적 구성요소 중 하나이다. 그런데 <능허대 사랑비>에서의 노래들은 대부분이 등장인물의 감정의 반복이거나 이미 완결된 장면의 반복이었다. 만일 이 작품에서 뮤지컬넘버들을 모두 뺀다 하더라도 극의 진행에는 전혀 무리가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 말은 이 작품이 무리하게 뮤지컬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노래가사만 새로 추가되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참여한 연기자 중 노래가 소화되는 인물은 거의 없었다. 액션 신이나 안무 과정은 매끄럽게 소화된 편이었으나 음악에 있어서는 전문 뮤지컬배우가 아님이 여실히 드러났다. 극도 정극이고 연기자들도 일반 정극 배우들인데 왜 극단 한무대는 이번 작품을 뮤지컬로 공연한 것일까?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제언
앞서도 말했듯 지역 소재를 발굴하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럼에도 이번 작품이 극단 한무대의 저력과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뮤지컬 공연은 과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요즈음 정극에 비해 뮤지컬이 인기가 많은 것이 사실이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편안히 접근할 수 있는 형식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뮤지컬 공연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희곡도 뮤지컬 대본의 형식을 갖추지 못했고, 연기자의 음악적 훈련 또한 부족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극으로 공연하는 것이 희곡의 묘미를 더욱 잘 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능허대 사랑비>는 처음 정극으로 공연되어 호평을 받았고, 이제 두 번째 공연이니 아직 진화하는 과정이지만, 극장을 찾아오는 관객은 완성된 작품을 기대하고 오기 때문에 공연의 막이 오르는 순간 책임이 따르게 된다. 이번 작품을 본 사람은 이 작품의 완성도에 따라 한무대를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정극, 뮤지컬 상관없이 공간의 배치에 대한 혼란은 좀 더 고민해야 할 숙제이다. 극에서의 공간 설정은 통일된 기호 설정이 매우 중요한데, 장면에 따라 그 설정기호가 변이되는 장면이 있어 혼란이 따랐다.
이 모든 논의를 차치하더라도 극작가 진윤영의 등장은 매우 기뻐할 일이다. 지역 극작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 신인이라 할 수 있음에도 고른 필력을 보여주고 있어 장래가 매우 기대되고 있다. 앞으로 한무대의 작품이 과욕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가능성을 더욱 발전시켜가는 모습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