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민사박물관, 왜 인천, 그리고 월미도인가?
한국이민사박물관은 1902년 12월 하와이 첫 공식 이민단(121명)이 인천의 제물포항에서 출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시민과 해외동포들이 사업비 114억을 마련하여 건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사박물관이다. 개항 이후 조선 최대의 무역항이던 인천 제물포항에서 현해환(겐카이마루)을 타고 일본 나가사키항으로 떠났던 이민자들이 배의 갑판 위에서 마지막으로 본 고국의 땅이 월미도 남단이었기에 현재의 위치에 박물관이 건립되었고, 이민의 역사, 즉 시간을 봉인하고 있는 듯한 자물통과 그 시간을 풀어내는 쇳대, 또는 하와이의 ‘ㅎ’자를 단순화한 듯한 형태로 박물관이 건축되었다. 첫 이민단이 모집될 당시 사회는 경제적 탄압과 수탈로 혼란스러웠다. 여기에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식량난이 겹쳤고 1902년에는 전염병(콜레라, 장티푸스)까지 돌았다. 이 무렵 노동집약적 사탕수수농업을 시작한 하와이에서 외국의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고 당시 주한 미국공사였던 호레이스 알렌이 고종의 윤허를 얻어 이민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울, 인천, 부산, 원산, 진남포 등 전국 항구도시와 내륙 주요 도시에 지부를 세우고 대대적 모집광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응모자가 없자 인천 용동교회, 현 내리감리교회 담임목사였던 선교사 존스가 교인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여 교인 50명, 제물포항 내 노동자 20명, 인천 및 서울에서 모집된 51명이 이민단으로 구성되었다. 나가사키에서 하와이행 갤릭호에 승선한 102명 중 인천사람이 86명, 전체 이민자의 84%(제물포 출신 67명, 부평 10명, 강화(교동 포함) 9명, 서울 7명, 경기도 3명, 나머지 6명)를 차지하며 공식적인 첫 이민의 역사가 인천에서 시작되었다.  
1907년까지 7차례에 걸쳐 약 7,000여명의 이민자가 하와이로 떠났고 정착에 성공한 이민자들은 1954년, 조국에 대한 교육적 열망과 이민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이승만 박사와 함께 인천과 하와이의 첫 자를 딴 인하대학교(인하공과대학)를 인천에 설립하였다. 그리고 2003년, 미주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인천시와 함께 하와이이민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자문단회의에서 한국이민사박물관으로 이름이 정해지면서 박물관은 이름만 큰 그릇이 되었다.

Immigration / Diaspora
우리의 초기 이민의 형식은 immigration(emigration)이지만 내용은 diaspora이다. 19세기 말 서구열강의 제국주의 야욕에 의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혼란 속에서 오직 생계를 위해 고국의 땅을 떠나야만 했던 초기 이민자들은 분명 이스라엘민족의 이산離散, 고난의 디아스포라와 닮아 있다. 중국, 러시아, 하와이, 멕시코 등으로 농업이주 및 노동이민을 떠나야 했던 동포들 중에는 열악한 삶을 극복하고 성공한 이민자들도 있지만, 아직도 타국에서 힘든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민자들도 부지기수이다. 단지 보이지 않을 뿐이다. 특히 일본 식민지 치하 일본으로의 생계형 유·이민 및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해 강제징용·징병되어 정착한 사람들은 아직도 일본사회 안에서 정책적 차별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이민사박물관은 개관 5주년을 맞아 그들의 삶을 조명하였다. 특히 포기할 수 없는 고국의 말과 문화를 지키고자 했던,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그들의 열망을 <자이니치在日학교들-재일 한인 민족 교육> 특별전으로 그려내고 있다.

포기할 수 없는 민족교육-자이니치 학교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귀국을 준비하던 재일 한인들은 일본의 황민화교육으로 우리말을 모르는 자녀들에게 조국의 말과 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국어강습소’를 열어 민족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여러 사정상 일본에 정착하기로 한 재일동포들은 일시적으로 운영하던 ‘국어강습소’를 “지혜가 있는 사람은 지혜를, 힘이 있는 사람은 힘을,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합친다”는 슬로건으로 재일본조선인연맹(조련) 주도 하에 체계적인 민족학교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냉전체제에 따른 남북분단으로 인해 재일한인사회도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로 양분되고 민족학교도 따로 운영되었다. 식민통치의 본산인 일본정부는 한인들의 자주적 민족교육을 중단시키기 위해 조선인 학교 폐쇄령을 내렸고 이에 분노한 한인 1만 명이 1948년 4월 24일 오사카와 고베지역에 모여 한신교육투쟁을 벌였다. 1948년 당시 566개였던 학교는 331개로 급감하였으며 일본정부는 절충안으로 일본공립학교에 방과후학급으로 ‘민족학급’을 설치 운영하였다. 현재는 과거 조련이 이끌던 민족학교 대부분을 총련이 규합하여 조선학교로 운영하고 있으며(유치원, 초·중·고, 대학 포함 102개),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인정하고 있는 민단계의 민족학교는 총 5개로 한국학교로 불린다. 한국학교는 일본교과서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정식학교로 분류되어 일본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만, 조선학교는 일본어 수업보다 한국어 및 역사, 문화과목의 비중이 높아 제대로 된 민족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반면, 각종학교로 분류되어 재정지원 차별 및 학력 인정에 제한을 받고 있다. 한국학교의 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재일한인들은 자녀들을 일본학교에 보내거나 국적과 상관없이 조선학교에 보내고 있으며 조선학교는 미약한 재정지원으로 존속이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그들도 한국인이다
일본에는 현재 약 54만 5천 명의 우리 동포들이 거주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학교 재학생 수는 2012년 기준 8,500명으로 매해 축소되고 있다. 왜곡된 역사의식에 따른 일본의 우경화정책이 계속 진행된다면 재일 한인들의 민족교육은 조만간 말살될 우려가 높다. 이에 한국이민사박물관은 청암대학교 재일코리아연구소와 공동으로 <자이니치在日 학교들-재일 한인 민족교육> 특별전을 개최하여 직접 선정한 민족교육자료 50여점을 공개하였다. 일본으로 건너갈 때 발급받았던 도항증명서에서부터 한인들의 정착과정을 기록한 사진자료, 교과서, 교복, 성적표 등의 민족교육자료, 한신교육투쟁 당시의 사진자료 및 기록물들, 그리고 민족교육을 지키려는 한인사회의 각고의 노력의 결과물 등이 귀중한 자료로 전시되고 있다. 현재의 냉랭한 남북관계로 인해 초기의 기획대로 총련의 자료들까지 아우를 수 없게 되어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전시된 50여점의 자료를 통해 ‘한국인’의 뿌리를 이어나가기를 염원하는 재일동포들의 열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절실함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무관심도 확인할 수 있다. 이념적 대립 및 정치적 이해관계로 민족교육을 위한 정부차원의 보다 더 적극적인 지원을 당장 바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들의 따뜻한 시선과 관심만큼은 시급한 실정이다. 한국이민사박물관 또한 민족교육을 통해 정체성을 지켜나가기를 열망하는 재일 한인들의 역사처럼 보다 광범위한 이민자들(immigration / emigration)의 삶을 조명하여, 이민사의 범주를 제대로 확장시켜, 이름에 걸 맞는 박물관으로 하루빨리 재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몸에 맞는 옷으로, 이름으로 변경을 고려하는 것도 옳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