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트플랫폼에 입주해 있는 이주리 작가를 만났다. 얼마 전에 있었던 개인전 《Lucid Dream》에 대한 관람평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터뷰 진행 : 신재훈(본지편집위원)

신재훈 : 그림들이 무섭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어요. 한 사람이 그린 그림들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주리 : (웃음) 제가 표현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인 거 같아요. 대상을 봤을 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기보다는 제가 느낀 그 감정을, 그 상태를 그림으로 담아내는 거죠. 저는 (그림이) 보는 사람에게 재미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 저는 편이에요. 그리고 이미지를 생산하는 사람이면, 그것에 대해서 고민도 많이 하고 좀 다양한 표현법으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게 가장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 것들을 시도하다가 제일 먼저 장착이 된 게 드로잉이었어요. 그런데 (드로잉과는 달리) 회화는 정말 변수가 커요. 색깔 하나, 선 하나로 그림의 구성이나 전체 느낌이 달라지기도 하고. 그래서 드로잉보다 훨씬 더 복잡한 퍼즐을 맞추는 거 같아요. 드로잉은 처음부터 계획을 갖고 회화보다는 더 정제된 이미지로 확신 있게 작업에 들어간다면, 회화는 작업을 하면서 그 모양들이 끊임없이 바뀌는 거지요. 회화에서는 제가 해소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드로잉에서는 제 감정을 온전히 드러낼 수가 없어요. 회화는 하얀 종이에 계속 다듬으면서 형상을 뽑아내는 제 성향과 맞아, 회화를 할 때 해방감을 느껴요. 

신재훈 : 두 번의 개인전 제목이 각각 《다크 환타지》, 《Lucid Dream》이었는데, 전시의 제목을 환상적인 느낌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이주리 : 제 작업의 80%가 공상에서 나온 것들이에요. 제가 공상을 즐겨 하다보니까 꿈에 나왔던 것들을 스케치 해놓고 소재로 쓰거나 그래요. 그리고 살면서 이해할 수 없는 가치들이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구조들, 소화할 수 없는 것들을 소재로 써요. 가끔 자고 일어나면 그런 것들이 형상으로 남기도 하고. 제 안에서 필터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것들을 알아서 걸러내고 그것을 이용해서 작업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 소재들이 대상을 이해하려는 저에게 도움이 되고, 또 그런 구조가 재밌어요. 그래서 한 번 나왔던 형상이 반복되어 나오는 것이 있으면 저는 그때서야 생각하죠. 이게 뭘까? 왜 이게 나왔을까? 질러놓고 그 다음에 생각하는 거예요. 작업을 하는 것은 저도 설명하기 힘든 그런 미완의 감정들이 작업으로 구체화되고 눈앞에 시각적으로 드러나면서, 그때서야 제가 그것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신재훈 : 작업을 할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어요?
이주리 : 저는 굉장히 안 어울리는 두 가지가 부딪쳤을 때 영감이 떠오르는 편이에요. 전혀 엉뚱한 것들이요. 한 치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 그리고 예측이 불가능한 것에 굉장히 흥미를 느끼고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저를 많이 자극해요.

신재훈 : 작가님이 느끼는 세상은 어때요?
이주리 : 저는 제가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웃음) 세상이 정말 좋고 아름다운 것은 알겠지만,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뭔가를 보고 만족을 느낀 적이 별로 없고 오히려 좀 삭막함이나 메마른 정서를 느낄 때가 많았어요. 제가 성장하면서 느낀 것들도 늘 긍정적이지 않고, (웃음) 그래서 너무 힘들어서 늘 몽상을…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몽상을 했고 내면의 세계에 몰입하게 됐어요. 이런 식으로 해소를 안 하면 못살아요. 전 제 삶의 모든 것들이 정의하기 힘들기 때문에 그림을 안 그리면 힘들 거 같아요. 왜냐하면 그게 위안이 되니까.

신재훈 : 만약 그림을 안 그렸다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 거 같아요?
이주리 : 그냥 억지로 웃으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요? (웃음) 진지하게 생각해봤어요. 그림을 안 그렸으면 단순 노동 같은 거, 아무 말 없이 하는 거 했을 거 같아요. 그중에 제일 재밌어 보이는 게 머리 심는 거예요. 한 올 한 올 심는데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만약 그림을 안 그렸으면 머리 심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웃음)

신재훈 : 작가님에게 미술이란, 작업이란 무엇이에요?
이주리 : 제 개인적으로 느끼는 미술은 뭔가 머리로 하는 거는 아니에요. 제가 여태까지 선망해왔던 예술가들은 표현법은 다르지만 자기 내면의 세계를 굉장히 넓게 확장한 분들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현실에 있는 것들을 그림에 담은 건 아니고, 꿈과 같은 내면의 공간들을 그림의 공간으로 확장하는 거죠. 그림을 여러 개 보고 있으면 마치 그 사람의 세계에 들어와 있는 듯한 그런 느낌.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제 그림이 아직까지 밀도 있고 편안함을 주지는 않지만, 자꾸 보면 이 사람의 세계는 이런 감수성으로 채워진, 이런 공간이구나, 이런 것들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그림이었으면 좋겠어요). 미술은 예술가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아요. 결국에는 관객이 어떻게 제 그림을 봐 주느냐와 예술가가 지향해야 할 부분이 미술이라는 형태로 합쳐지는 것 같아요. 관객이 제 그림을 재밌게 봐줘서 그 지점에서 좋은 미술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진짜 아름다울 미美가 될 거에요.

- 작품 이미지 제공과 인터뷰에 성실하게 임해주신 이주리 작가께 감사드립니다.

이주리(LEE Ju-ri)
1986년 출생, 2013 인천아트플랫폼 시각예술 부문 입주작가
이주리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사와 전문사를 졸업한 회화작가로 최근 《다크 판타지》(사루비아다방, 2012) 개인전을 가졌다. 작가는 주로 다듬어지지 않는 날것의 선, 무의식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형상들로 현실의 부조리한 세계관과 충돌의 무의미함, 삭막한 인간성에 대한 은유적 의견들을 작품에 투영한다. 그녀의 작품에 공사장과 항구 등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이러한 장소가 무의식의 요소들이 자리하기 쉬운 상상적인 터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파괴와 생성이 동시에 일어나는 판타지적 공간에서 산업화된 풍경을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는데, 이것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기 위해 의도한 작업은 아니며, 산업화의 패러다임과 정신과 물질이 하나로 합일되는 일원론적인 신화적 패러다임의 충돌에서 오는 대립된 지점의 갈등을 만화적인 코믹함으로 풀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