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당 서울대 병원. 로비에 아주 큰 추상작품이 걸려 있는데 색이며 모양이 꽤 흉측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림을 외면하고 고개를 다른 데로 돌리며 걷는다. 레이블에 써있는 작가이름을 확인해 보니 생판 못 들어본 사람이다. 병원은 아프고 지친 사람들, 그리고 지치고 신경이 곤두선 그들의 가족이 오는 곳이다. 병원에 걸리는 그림은 작가가 마음껏 자신의 예술의지를 표출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 오는 아픈 분들을 어루만져 주는 것이어야 한다. 병원이야말로 작가가 죽어야 하는 곳이다. 병원에 걸리는 그림은 어루만져 주고 편하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백화점에서 파는 오골거리는 느끼한 색채의 싸구려 풍경화를 걸어도 안 된다. 그런데 병원은 그림을 고르거나 배치할 능력이 없다. 병원에 있는 여러 직종 중에 큐레이터가 있다는 말은 못 들어봤으니 말이다. 만일 병원이 환자와 가족들에게 미치는 그림의 중요성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큐레이터를 불러야 한다. 그래서 우리 병원은 어떤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곳인데 어떤 그림을 어디에 걸면 어울릴 것인지 면밀하게 상의해야 한다. 병원 구내식당에 전문 영양사를 두지 않고 환자들에게 아무 음식이나 해 먹이면 안 되듯이, 아무 그림이나 걸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병원이 올바른 큐레이터를 고를 능력이나 감각이 있느냐가 문제다. 지하철역, 식당, 카페, 백화점, 도박장, 대학교 등 여러 공공장소들을 다녀보면 병원이 그림을 걸거나 실내를 꾸미는 감각의 수준이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다. 즉 설사 좋은 그림을 걸고 싶어서 큐레이터를 초빙하고 싶어도 어떤 큐레이터를 모셔다가 어떤 말로 필요성을 서술하여 적절한 그림을 걸 수 있는지 판별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즉 클라이언트로서 자질이 좀 떨어진다는 것이다. 가로등이나 가드레일 같은 공공시설물들을 보면 촌스러운 것들이 참 많은데 그나마 강남구나 판교 같이 좀 세련된 곳은 괜찮은 편이다. 의왕시나 울진군 같은 변두리 동네의 공공시설물은 참혹한 지경이다. 클라이언트로서 지자체의 수준이 낮기 때문이다. 병원도 결코 수준 높은 미술 클라이언트는 아니다. 이럴 때 문제는 저 벽에 당장 어떤 그림을 걸 것이냐가 아니라 그림이 왜 필요하고, 어디에 필요하고, 어떤 큐레이터에게 문의하고, 그에게 필요성은 뭐라고 설명할 것이며 사례비는 얼마를 줄 것이냐 하는 것이다. 요약하자면, 큐레이터를 알아볼 누군가가 병원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요원한 얘기다.

2.
서울아산병원. 서관 로비에 설악산에 사시며 꽃만 그리시는 원로 화가 김종학 선생의 전시가 열렸다. 아무래도 병원 순위가 분당 서울대 병원보다 높으니까 미술 수준도 높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대개 병원에서는 좋은 작가의 전시를 안 하는데 김종학 선생의 전시가 반가워서 가까이 가서 제목을 확인하려는데 작가 이름은 안 써 있고 라는 얍쌉한 제목만 붙어 있었다. 김종학 선생이 그런 제목을 붙이실 분은 아니라고 의아해 했다. 작가를 확인한 나는 기절할 지경이었다. 작가는 미술대학을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사람이었는데 김종학의 그림을 그대로 베껴서 그린 것이었다. 작가 안내판에는 이메일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버젓이 적혀 있었다. 아마 그림 좀 많이 팔아달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작가의 사진은 음악회 사진처럼 예쁘고 우아하고 섹시한 드레스 입고 찍은 것이, 아마 음악연주회 포스터사진 많이 찍는 업자가 찍은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가짜 예술의 속물 냄새가 진하게 코를 폭격했다. 이럴 때 큐레이터가 있어야 한다. 위의 사례처럼, 어떤 작가의 어떤 그림을 걸어야 소위 빅5에 든다는 서울아산병원의 위상에 걸맞는 모양새가 될지 큐레이터가 잡아줘야 한다. 그런데 분당 서울대 병원과 똑같은 문제가 있을 것 같다. 도대체 병원의 누가 미술에 대해 알아서, 그것도 자기 게인 취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각종 중증 질환자들이 많은 그 병원에 필요한 미술이 어떤 것인지 알아서 큐레이터에게 부탁할 것이냐 말이다. 우리 사회에는 그림을 사고 싶으면 일반인이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이 있다. 상업화랑, 아트페어 등 기회가 많다. 그러나 공공장소에 올바른 그림을 걸어야 할 때 큐레이터에게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은 없다. 큐레이터도 분야와 성향이 천차만별인데 병원의 맥락에 맞는 큐레이터는 과연 누구인지 판별할 능력이 병원에게 없다는 것도 큰 문제다. 

3.
식당. 이것은 그림의 문제는 아니다. 소리의 문제다. 대개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때 누군가와 같이 먹는 경우가 많은데, 상당히 많은 식당이 아주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울부짖는 가요를. 음악을 크게 틀어놓으면 사람들의 말소리도 커지고, 응대하는 내 목소리도 커지고, 그러면 종업원들의 목소리도 커진다. 내 목청은 터질 것 같고 상대방의 말소리가 잘 안 들리니 거기에 신경을 기울이느라 뭐를 먹는지 알 수도 없다. 도대체 내가 왜 젊음의 거리 홍대 앞에서 맛있는 일본카레를 울부짖는 고성방가를 들으며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중구 충무로에 있는 평래옥에는 초계탕을 드시러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이분들이 소주가 들어가면 목소리가 아주 커진다. 그분들 옆에서 음식을 먹는 것은 지옥의 경험이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당은 음식이 맛있는 곳이 아니라 아무 음악도 안 틀어놓는 곳이다. 음악을 안 틀어놓으면 그나마 음식에 집중할 수 있고 얘기하기도 편하다. 우선 문제는 대부분의 음식점이나 술집이 신경 써서 음악을 골라서 틀지 않기 때문에 그 음악의 수준이라는 것이 한심한 것들이라는 점이다. 꼭 클래식을 틀라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에 제일 촌스러운 것이 맥락에 맞지 않게 클래식 음악 틀어놓는 것이니 말이다. 사진전시 오프닝에 클래식 연주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 촌스러움의 스펙터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거기가 짜장면집이든 설렁탕집이든 굳이 음식을 틀고 싶으면 분위기에 맞게 들릴락 말락 하게 틀면 좋을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적당한 볼륨의 레벨이다. 클럽이라면 당연히 볼륨이 커야 한다. 음식점은 당연히 볼륨을 최소한도로 줄여야 한다. 볼륨을 높여도 되는 경우는 음식점의 주인이나 매니저가 반드시 이 음식에는 이 음악이 어울리고, 이 음악은 볼륨을 9시 방향으로 놓고 들어야 한다는 어떤 납득할 만한 개념적인 사유가 있는 때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면 공공장소에 맞는 음악을 고르고 배치해줄, 아니면 음악이 필요 없으니 꺼줄 것을 요청할 큐레이터가 있어야 한다. 사실 잘못 배치된 시각물도 괴롭지만, 잘못 배치된 소리는 더 괴롭다. 소리는 에너지이므로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일차적인 문제는 이 세상에 음악 큐레이터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 큐레이터를 부르려고 해도 누구에게 어떻게 부탁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앞서 그림 큐레이터의 경우처럼, 설사 음식점 주인이 음악 큐레이터를 초빙하고 싶어도 클라이언트로서 그의 수준도 문제다. 설렁탕집에 고상하게 한답시고 모차르트를, 파스타집에 퓨전국악을 요청할지도 모를 일이다.

4.
공공조각. 성스러운 1퍼센트 법에 의거해서 모든 빌딩 앞에 의무적으로 설치된 공공조각은 더 이상 공공조각의 됨됨이를 하고 있지 않다. 도대체 그 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의 심정이나 필요성은 헤아리지 않은 채 작가의 에고만 폭력적으로 분출하고 있는 이 조각물들은 흉물 그 자체이다. 게다가 촌스럽게 번쩍거리는 스테인리스 스틸 등 공공장소에서는 사용을 자제해야 하는 재료마저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어 시각공해 노릇을 하고 있다(사당동 네거리 파스텔 시티 앞 조각물이 그런 사례). 빌딩용 공공조각의 가장 큰 문제는 큐레이터를 거치지 않고 지역의 업자 수준의 미술가와 관료들이 짜고 아무 작품이나 마구 갖다 놓는다는 점이다. 그것은 마치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공공식당에 영양사가 없이 식당주인 마음대로 아무 거나 조리해서 내놓는 것  만큼 위험한 일이다. 주인이 짠 것을 좋아하니까 소금을 듬뿍, 엠에스지도 좋아하니까 듬뿍, 돼지는 껍데기가 맛있으니까 오로지 껍데기만 듬뿍, 이게 공공조각이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영등포구에 있는 쇼핑몰 타임스퀘어는 가장 어처구니없는 예이다. 영등포구의 공공조각 심의위원들은 서도호의 작품에 대해 ‘예술성 부족‘을 이유로 0점을 줬다고 한다. 그들은 서도호가 누구인지 몰랐음이 틀림없다. 아니면 자기들이 내정해 놓은 동네 작가 것을 밀기 위해 서도호 것을 떨어트리려 했던지. 지금 타임스퀘어 앞에는 결국 서도호의 작품이 설치되기는 했는데 타임스퀘어의 대표가 서울시장까지 만나서 호소해서 가까스로 됐다고 한다. 공공조각은 많은 사람들이 보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우리는 길거리를 걸으면서 공공조각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공공조각은 전문적으로 세심하게 기획되고 설치돼야 한다. 지역 토호들이 말아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기에 큐레이터가 있어야 한다. 이 건물은 섬유산업회관이니 섬유산업의 특성을 잘 다룬 작가의 작품을 놔야겠군, 빌딩바람이 센 곳이니 바람을 막아줄 작품이 필요하겠군, 아니면 매미소리가 시끄러우니 그것을 상쇄시킬 소리효과를 내는 작품이 필요하겠군 등의 판단을 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서도호에게 0점을 줄 정도로 무식한 지역 토호들을 물리치며 적절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기획해서 설치하려면 사이비 종교단체의 비리를 파헤치다가 1994년에 살해당한 종교문제연구소장 탁명환 씨 같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큐레이터에게 예술적 감수성과 기획력 외에 폭력에 맞설 용기라니,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 같다. 제대로 큐레이터 노릇 하기가 힘든 시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