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도시가 타 없어지고, 수만 명이 죽었어. 그런데 미군 보병 하나가 찻주전자를 챙겼다고 그 폐허 속에서 체포되었네. 그리고는 정식 재판을 받고 총살당했지.”
ㅡ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죽음과 추는 의무적인 춤』

두어 달 전 사석에서 대화를 나누던 중 ‘전쟁’이라는 단어가 귀에 감겼다. 우리는 ‘전쟁’이란 말을 들으면 ‘사랑’이나 ‘자존심’ 같은 말에 대해서 그렇듯 일단은 그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설명하려 들면 의외로 뚜렷하게 가닥이 잡히는 내용이 많지 않고 막연하게 개념의 언저리만을 더듬거나 몇 조각 부분적 의미만을 붙들고 제자리를 맴돌게 된다. 다만 전쟁이란 개념상 두려움 섞인 호기심과 흥분, 긴장이 따라오긴 한다. 특히 우리는 분단국 특유의 전쟁 관련 담론이 일상적으로 난무하므로 더 심각하게 생각할 것 같지만, 그런 특수성으로 인해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즉 안보와 정치적 차원의 반응이라는 표피를 들추고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대부분 전쟁을 현실적인 ‘가능성’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하다. 여전히 ‘그것’은 우리와는 먼 일이고, 그것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거나 어떤 스펙타클한 이미저리imagery 정도로 느끼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엔 전쟁이 언급된 맥락이나 발언에 남다른 구석이 있어서도 아니고, 책임 있는 분석도 아니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툭 내려앉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극도로 불안정한 국내외의 여러 조건들과 정세로 도처에 ‘파국破局’이라는 흉흉한 깃발이 나부끼고, 결국 그에 따른 대구對句로서 ‘전쟁’의 가능성이 새삼 진지하게 부각되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경계 바깥의 내부 고발자
그런 연유로 이번 ‘신간의 별자리’에서는 W. G. 제발트W. G. Sebald, 1944~2001의 『공중전과 문학』을 통해 전쟁과 역사적 기억에 대한 문학적 표현과 실천을 고민해보면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멜랑콜리한 문화 고고학적 여행기인 『토성의 고리』의 저자가 전쟁과 문학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공중전과 문학』은 문학동네에서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시리즈 중 W. G. 제발트 선집 첫 번째로 내놓은 것이다.
수잔 손택으로부터 ‘위대한 거장’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노벨문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되며 베를린 문학상, 하인리히 뵐 문학상 등 일일이 거론하기에도 숨 찰 만큼 많은 상을 수상한 W. G. 제발트는 ‘문학과 인문학의 경계에서’ 기존 장르 체계로는 가를 수 없는 매우 실험적이고 지성적인 표현 방식으로 ‘인간과 역사를 진단하고 비판하는’ 작가이다.
제발트는 1944년 5월 18일 독일 바이에른 주 베르타흐에서 태어났지만 독일을 떠난 ‘자발적 망명자’로서 독일의 역사와 독문학의 윤리에 집요한 관심과 비판적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이민자들』(1992), 『토성의 고리』(1995), 『아우스터리츠』(2001)가 먼저 소개되었는데, 이러한 문학 작품들을 보면 허구적인 이야기와 실제 기록, 가상 인물과 실제 인물, 문학사를 비롯하여 예술사, 건축사, 생활사적인 지식과 사실fact들을 작가적 상상력으로 버무려 방대한 지식의 경계와 다기한 사유의 층위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시적 산문의 구조 안에서 마치 자신의  이야기가 곧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려는 듯 간간히 사진을 곁들인다. 따라서 제발트의 이러한 작품 형식은 전형적인 소설이 아니라 ‘산문 픽션’으로 분류되며 새로운 독서경험을 선사한다.  
제발트가 작가적 전성기를 누리던 1997년 취리히 대학에서 한 네 차례의 강연과 후기를 정리한 「공중전과 문학」, 그리고 ‘문학적 실천의 불행한 결과를 보여주는’ 작가의 대표적 예로서 신랄하게 비판한 일종의 작가론인 「알프레트 안더쉬」가 함께 묶인 『공중전과 문학』은 특히 W. G. 제발트의 준열한 역사의식과 문학론을 살필 수 있는 비평서로서 ‘산문 픽션’과 학술논문 사이에 놓인다.

“삭제 기법은 모든 전문가의 방어본능이다.” 스타니스와프 렘, 『상상의 크기』
“우리 자신이 전쟁의 공범자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훗날 우리 중 누구도, 국가의 집단적 기억을 보존할 임무를 지닌 작가조차도 치욕적인 기억 속 장면, 예컨대 1945년 2월 드레스덴 구광장에서 6,865구의 시신이 트레블링카 강제수용소에서 경험을 쌓은 나치 친위대에 의해 장작더미 위에서 소각되는 장면을 상기시켜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134쪽)

영화 용어로 알고 있는 ‘블록버스터Blockbuster’는 ‘도시의 한 구역block을 날리다bust’는 의미로 드레스덴 공습 당시 영·미 연합군 공군들이 투하한 4~5톤짜리 폭탄의 이름이었다. 또 ‘융단폭격Carpet bombing’이라는 말도 이때 나온 용어이다. 1942년 처칠의 명령으로 시작된 독일에 대한 지역폭격Area Bombing은 쾰른, 뤼벡, 렌겐스부르크, 함부르크, 뉘른베르크, 할버슈타트, 다름슈타트, 베를린, 그리고 드레스덴 등 유서 깊은 수많은 도시들을 남김없이 파괴하고 60만 명 이상의 독일인들이 죽었다고 한다.

20세기 가장 치욕스럽고 잔혹한 전쟁을 일으키고, 유대인에 대한 인종청소인 홀로코스트를 자행하여 인류사에 도저히 씻을 수 없는 비인간적 피를 묻힌 독일인들은 전쟁 말기 이처럼 처참한 파괴의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파괴를 통한 파괴를 믿었던 사람’인 일명 ‘폭탄’ 해리스 Arthur Harris(영국, 1892~1984)에 의해 실행된 독일 도시들에 대한 ‘무제한 공중폭격 계획이 어떻게 전략적으로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는가’ 하는 문제가 독일 내에서는 한 번도 공론화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해 제발트는 의문을 제기한다.

“물질적이며 도덕적인 파멸의 실상은, 어느 누구를 가릴 것도 없이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상태에서 서술이 금기시됐고, 극에 달한 파괴의 참상은 일종의 터부에 묶여 스스로 고백조차 할 수 없는 치욕스러운 가정사의 비밀이 되었다.”(22쪽)

그러면서 제발트는 왜 수백만 명이 경험한 끔찍한 파괴를 독일 문학이 서술하려고도 않고 그토록 무능했는지, 새 공화국의 바닥에 깔린 숱한 시신에 대해 어째서 기억하거나 애도할 줄 모르는지 강하게 질타한다. 또한 전후 독일의 ‘지속적인 회피와 서술의 저지’라는 경향이 집단적인 망각의 결과인지, 아니면 구조적인 억압의 결과였는지를 따진다. 사실 이런 의제는 무척 민감한 사안이라 자칫 오해할 수 있다. 마치 제발트가 유대인 학살과 전쟁의 주범인 독일을 피해자로서의 입장만 부각시키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그가 『공중전과 문학』에서 강조하는 논지는 우선 전쟁 자체의 무모함과 무상함이다. 또한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전쟁 자체를 제대로 기억하고 통찰해야만 미래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서술되지 않는 역사란 결국 과거의 죄도, 업도 일거에 덮어버리거나 철저한 반성도 없이 털어버리겠다는 의도이며, 그럴 때 야만적인 전쟁도 비극적인 과거도 되풀이될 수 있고 그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의 매체인 문학이 만약 기록자로서, 발화자이자 역사의 서술자로서 제 역할을 해나가지 못하는 과오 역시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발화되지 않는 역사, 반성하지 않는 과오, 기억하지 않는 문학; “애도할 줄 모르는 무능함”
“파괴의 밤들에 대한 기억이 존재했고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그 기억들이 일반적으로 또 문학적으로 표현되는 형식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렇게 형상화된 기억들이 독일연방공화국을 형성하는 공적인 의식 속에서 국가 재건 이외에는 그 어디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지 못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112쪽)

그렇다면 삭제하고 침묵하고 애도할 줄 모르는 독일인들의 무능함은 무엇 때문일까. 파렴치한 가해자인 동시에 가공할만한 파괴의 피해자로서 감히 그 상처를 입에 올리기가 고통스러웠을 것이며, 한편으론 민족 단위의 ‘정당한 징벌이자 거역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또한 저자도 지적했듯이 연합군의 심기를 자극하고 싶지 않은 심리도 작용했으리라.
하지만 독일인들이 ‘자기 연민과 비굴한 자기 정당화, 상처 입은 결백감과 반항심이 괴상하게 어우러’져 강한 조국을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18쪽), “무시무시한 폐허 사이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걷는 그 무감각이 바로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고 지체 없이 재건 및 소개疏開 작업에 뛰어들 수 있었던 확고한 (독일)영웅주의의 다른 얼굴”(16쪽)로서 ‘의식의 상실 상태가 그들의 성공 조건’(엔첸스베르거)이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아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집단적 무감각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스 에리히 노사크의 증언처럼 공습을 면한 지역에서 이웃의 비극엔 아랑곳없이 다과를 마시며 일상의 형식을 지켜나가는 말도 안 되는 장면이 존재했고 공습과 파괴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음악 연주를 향유했다. 이것은 결국 인간적 공감 능력의 극단적인 결핍이자 도덕적 민감성의 심각한 결핍으로서 ‘부조리하고 추잡한’ 비인간성의 발현이자 ‘도착적인 자긍심’의 정체라 하겠다.
이런 세태에서 제발트가 보기에 독일의 구세대 작가들은 ‘자유사상과 서구 인문주의적 유산이 끝없이 뒤얽힌 추상적 세계로 불러내는 일에 골몰’하고, 신세대 작가들은 ‘감상과 비애로 빈번히 빠져버리는 전쟁 경험 보고에 몰두하느라’, ‘시대의 참상에 눈을 돌릴 여력이 없었’단다. 한편 폐허문학Trummerliteratur 역시 ‘어떤 개념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세계를 은폐하기 위해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망각증에 지레 찬동하여, 전 의식적으로 일어나는 자기 검열 과정을 따랐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끔찍한 현상이 바로 언어 표현의 상투성이다.
일반적으로 가공할만한 파괴의 충격적인 참상 아래 인간의 정신적 삶과 기억 능력은 물리적 폐허의 공간처럼 구멍이 뚫리고 ‘부분적으로 중단되거나 자의적인 보상의 틀로 작동’하면서 정상적이고 구체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새로운 독일 사회에서는 집단적으로 과거의 경험과 기억을 억압 메커니즘에 넘겨버리고 개인의 감정체계에서는 그 사실을 모두 지워버리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당연하게 참상의 목격담이나 보고는 통속적이고 상투적인 어법으로 인해 진실성을 의심받게 되고, 극한 상황을 표현하는 언어적 관습의 틀에 박힌 설명은 결국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을 가리고 희석시키며 실제 기억의 방어기제로 작동하게 되었다. 이런 분석을 보자니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언급했듯 사유하지 않는 ‘악의 진부함’과 상투적 언어 사용이 어떻게 쌍을 이루는지 새삼 이해하게 된다.

“초토화된 세계의 폐허로부터 미학적이거나 유사 미학적인 효과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문학이 자기 정당성을 스스로 박탈하는 처사이다.”(77쪽)

그렇다면 문학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전쟁과 파괴의 역사를 서술해야 하는가. 사실 위의 주장은 문자 그대로는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그러나 문학적 형상화나 역사 기록의 문학적 실천이라는 측면이 아닌 미학적 필요나 문학적 미화는 전후문학의 소명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판단한 듯하다. 제발트는 제한된 가치만 담보할 수 있는 개별 증언이나, 객관적 역사 기술이 가진 틈과 한계를 ‘총괄적이고도 정교한 시선 아래 보완할 필요’가 있는데 문학이 그 역할을 해야만 한다고 설파한다. 따라서 전후문학이란 역사 기술과는 다른 서술방식으로 생생하게 역사를 드러내고 진정으로 인간 개개인의 비극을 애도하는 데에 존재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현실과 역사에 대한 어떤 신화화도 부정하고, 이데올로기적 경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직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하며, 그 바람직한 예로 알렉산더 클루게Alexander Kluge(1932~)의 다큐멘터리 기법을 든다. 실제로 제발트는 비평적 주장만이 아니라 실제 문학 작품에서도 “역사 기술의 한 측면으로서의 문학, 사라진 흔적을 추적하는 기록으로서의 문학, 실천적 글쓰기로서의 문학”을 일관되게 추구한 작가라고 평가할 수 있다.   

“문학작품은 내면생활을 감싼 외투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저급한 안감은 어디에서나 드러나는 법이다.”(194쪽)

그리고 그 반대의 사례로 전후 독일문단 재건기의 원로인 알프레트 안더쉬를 해부한 것이 책 뒤편에 실린 작가론이다. 제3제국 시절 안더쉬의 작품 안팎의 발언과 행적을 집요하게 파헤쳐 그가 얼마나 탐욕스럽게 명성을 추구했으며, 기회주의적으로 시대 상황에 타협하면서 어떻게 자기 이미지를 조작, 과장, 왜곡, 미화했는지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런 제발트의 독일 전후(문학)에 대한 추상과 같은 고발은 씁쓸하지만 우리 사회(예술계)의 폐부가 되비쳐 보이는 거울로 느껴졌다. 우리의 근현대사에도 일신의 안락과 명성을 위해 작가적 양심은 물론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고 변신을 거듭하며 권력에 타협했던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게다가 올바른 역사 청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아 우리의 현대사가 어떤 질곡에 빠져있는지는 주지의 사실이다. 하여 책에 담긴 제발트의 엄정한 판단과 준엄한 비판이 뼈아프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