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문화와 예술에 내재한 계급적 불평등의 거스를 수 없는 힘에 대한 가장 극적인 묘사는 토마스 하디Thomas Hardy의 소설 『이름 없는 주드』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주드는 시골의 석공이지만 독학으로 고전을 읽고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습득한다. 그의 꿈은 크라이스트민스터라는 도시의 명문 대학에 입학하여 학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주드는 내심 알고 있다. 석공에게 독학이란 얼마나 험난한 공부법인가? 그의 주변에는 가르침을 주는 스승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친구도, 공부를 독려하는 가족과 동료도 없다. 주드는 괴로운 마음으로 결론을 내린다. “(주드는) 이러한 일을 수행할 수 있는 두뇌가 자신의 머릿속에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책을 보지 말았어야 하고, 앞으로도 책을 보아서는 안 되며, 아예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드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용기를 내서 대학에 입학원서를 제출한다. 그러나 대학에서 다음과 같은 편지가 온다. “귀하의 서신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귀하가 자신을 노동자로 기술하는 점으로 판단하건대, 귀하가 사회에서 성공하는 보다 나은 기회는 다른 길을 찾는 방법보다 귀하의 영역에 그대로 남아 현재의 직업에 매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주드는 편지를 보고 분노를 참을 수 없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주드는 그 편지의 내용이 옳다는 것을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위의 에피소드는 몇 가지 사회학적 진실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사회적 제도는 공부를 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문화인의 자격이 있는 사람의 ‘영역’을 아무나에게 개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러한 사회적 제도의 영역 나누기, 자리 할당하기를 사람들은 마지못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럼에도 주드와 같은 이들은 어떤 수수께끼 같은 욕망에 이끌려 그러한 제도적 관행에 거스르는 선택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하지만 그러한 반항적 행동, 지위 상승에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누구는 이 에피소드를 듣고 말할 것이다. 그런 일은 과거에는 일어날 법하지만 민주주의와 교육수준이 높아진 현대에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고, 학자가 되고, 예술가가 될 수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어떤 학자들은 겉으로 보는 것과 달리 여전히 같은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문화자본’이라는 개념으로 문화와 예술 속에 작동하는 미묘한 계급적 불평등의 메커니즘을 설명한다. 거칠게 말하면 부르디외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감상과 창작의 능력은 무엇보다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느냐, 어떤 환경에서 자랐느냐, 어떤 교육을 ‘장시간에 걸쳐’ 받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취향은 몸과 마음에 내재화된 무의식적 습성과 같은 것이어서 누구나 원한다고 ‘탁월한 취향’을 가질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중산층은 자신들이 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예술작품들을 구매하여 집안 거실 벽에 건다. 그런데 작품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한 이들은 그저 주변 이야기에 얇은 귀를 쫑긋거리며 이런저런 작품들을 사들이고 과시하다 결국은 자신들의 취향이 얼마나 촌스러운지 사람들에게 들통나버리고 만다. 이들은 쉼 없이, 열에 들떠 취향을 갖추기 위해 남들의 취향을 모방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대부분 실패로 귀결한다. 어떤 이들은 이러한 모방을 아예 포기하고 자신만의 취향을 추구한다. 이들은 고급예술은 배운 자들의 가식과 허세 따위에 지나지 않는다며 대중문화와 하위문화에 빠져든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있다. 미국의 전국적 설문조사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다. “당신은 현대미술이 초등학생도 그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해 교육수준별로 다른 대답이 나왔다. 고졸 이하는 “그렇다”고 대답하는 비율이 높았다. 대졸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는 비율이 높았다. 즉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은 현대미술을 난센스라고 폄하하는 반면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은 현대미술을 진지하게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 수준이 더 높은 사람은 현대미술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대학원 이상의 교육 수준을 갖춘 이들은 놀랍게도 고졸 이하와 마찬가지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비율이 높았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들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현대미술을 폄하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나는 이런 해석을 내렸다. 교육 수준이 매우 높은 사람이 보이는 현대미술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오히려 현대미술을 잘 알고 있기에 보여주는 일종의 비평적 태도에 가깝다. 그들의 태도는 ‘쿨’한 자기비판, 혹은 그럴듯한 겸손떨기에 다름 아닌 것이다. 그들은 예술을 지나치게 숭배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사적 맥락에서는 이미 한물 간 엄숙주의의 증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에 현대 미술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그것을 때로는 과감하게 비판하고 냉소하는 것이다.

문화와 예술에 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뭐라 말해야 할지 참으로 곤란할 때가 많다. 지나치게 말이 많은 것은 촌스럽고, 아예 입을 다무는 것은 무식해 보인다. 과유불급, 이것이야말로 문화와 예술에 대해 취해야 할 올바른 태도인데, 문제는 무엇이 적당한지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정답을 이미 몸으로,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이들이야말로 문화적 귀족이다. 이들은 갤러리와 뮤지엄을 드나드는 데 일말의 불편함도 어색함도 없다.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는 입장료 인하가 예술기관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는 데 별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또한 기관의 운영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대다수 중산층 관람객들은 작품을 감상하기보다는 식당이나 뮤지엄샾 같은 부대시설을 이용하며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관람보다는 일회적인 관람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요컨대 문화와 예술을 향유하는 능력은 소득뿐만 아니라 교육에 의해, 그것도 형식적인 커리큘럼이 아니라, 장기적인 생활양식에 영향을 받는다. 취향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체화되고 내면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은 지극히 비관주의적인 전망을 도출한다. 왜냐하면 이때 문화적, 예술적 취향을 결정하는 계급적 불평등은 경제적인 차원을 넘어서 거의 실존적 운명의 차원에 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은 사회구조를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구조의 거스를 수 없는 힘을 인정하고 만다. 하지만 나는 일종의 사회학적 숙명주의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이론과 설명들이 놓치고 있는 삶과 행동들이 있다고 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례는 존 버거John Berger가 소개한 한 인물이다. 존 버거의 『랑데부』라는 책에는 페르디낭 슈발이라는 시골의 우편배달부에 관한 일화가 있다. 농부로 태어난 그는 1879년부터 33년 동안 우편배달을 하면서 주운 자갈과 조개껍질로 성을 지었다고 한다.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 앞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농부로 살아온 나는, 나와 같은 계층의 사람들 중에도 천재성을 가진 사람, 힘찬 정열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살고 또 죽겠노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여전히 농부로서, 우편배달부로서 성을 지었다는 점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직업을 노동자에서 건축가로 바꾸지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할당된 계급의 위치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동시에 그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과 능력의 범위는 부정하였다. 그는 여기서 단순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위치로 자신의 실존을 옮긴다. 그는 노동자이자 예술가로 자신을 바라보고 그리 산 것이다. 그는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는 “우편배달부”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런데 우편배달부가 왜 성을 쌓는가? 성을 쌓는 우편배달부를 그저 우편배달부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앞서 언급한 토마스 하디의 소설 <이름 없는 주드>에서 주드는 학자의 꿈을 접고 다른 꿈을 추구한다. 그것은 주교가 되고 싶다는 꿈이다. 그런데 하디는 주드의 꿈에 대해 이렇게 논평한다.

주교로 등극하는 전날의 꿈은 윤리적이거나 신학적 열광이 아니라 교회의 중백의를 입는 세속적 야심에 불과했다. 그의 계획 전체가 비록 사회적 불안에서 시발된 것이 아닐지라도, 어쩔 수 없이 그런 불안으로 변질되었다는 근심이 솟았다. 그 사회적 불안은 보다 고상한 충동과는 무관한 것이지만… 문명의 인위적 산물임에는 틀림없었다. 지금도 그와 똑같이 자기 본위의 길을 찾아 나선 청년이 몇 천은 넘었다. 

즉 주드의 꿈은, 소위 자아를 실현하려는 소망은 겉으로는 고상해 보이지만 일종의 세속적 야심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적 불안의 발노이며, 문명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문화와 예술을 통해 자기를 계발하고 자아를 실현하려는 이 시대의 개인적 노력들의 이면에는 자본주의 사회와 문명이 심어놓은 불안이 존재할지 모른다. 문화와 예술에서는 ‘내가 타인들보다 우월한 존재’임을 입증할 수 있다는 강박이 작동할지 모른다. 하지만 석공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주드와 달리 슈발은 우편배달부로서 평생을 살았고 우편배달부 일을 할 때 수집한 돌과 조개껍질로 성을 쌓았다. 그는 자신을 긍정한 채, 자신을 규정하는 사회적 시선을 넘어섰다.
나는 최근에 한 이주민 남성과 대화를 할 기회를 가졌다. 그는 목수였다. 한국에 이주해온 이래 가구 공장에서 노동자로서 오랜 세월을 살았다. 그의 어렸을 적 꿈은 배우였다. 하지만 그의 꿈은 좌절됐다. 그 꿈은 그의 기억 속에 묻혔다. 그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후에도 노동자로서 살았다. 그는 열심히 기술을 익혔고 공장에서 인정을 받아 공장장의 직위에까지 오르게 됐다. 그는 생각했다. 언젠가는 독립해서 가구 공장 사장이 되리라.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모든 계획을 접고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자신을 예술가라고 불렀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제 노동자가 아닙니까? 그가 답했다. “아니요. 나는 여전히 노동자입니다. 영화를 찍으면 자연스럽게 이주 노동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나는 내가 노동자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나의 동료들, 나의 기억을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또 물었다.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차라리 가지고 있는 기술로 사장이 되는 것이 쉬웠을 텐데요.” 그가 말했다. “맞아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장이 되려는 계획은 지극히 막연하고 마음에 와 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영화감독으로 사는 꿈은 아주 분명하고 구체적이에요. 지금이 훨씬 행복합니다.”
그의 꿈에 대한 냉정한 논평은 아마도 이런 것이리라. 영화 생산이 점점 상업 시장의 논리에 종속되어가는데, 이주 노동자를 다룬 영화는 성공 확률이 낮다. 더구나 그는 이주민이다. 그는 영화 산업 내부의 사회적인 네트워크로부터 너무 떨어져 있다. 놀랍게도 이러한 논평은 크라이스트민스터의 대학 관계자가 주드에게 보낸 편지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귀하가 자신을 노동자로 기술하는 점으로 판단하건대, 귀하가 사회에서 성공하는 보다 나은 기회는 다른 길을 찾는 방법보다 귀하의 영역에 그대로 남아 현재의 직업에 매진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그는 주드와 다르다. 그는 나에게 슈발을 연상시킨다. 물론 그는 주드가 될 수도 있다. 그의 꿈은 세속적 욕망으로, 자기부정으로, 세상에 대한 짜릿한 복수로 변질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길을 스스로 선택할 것이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그가 지금 역사적으로 항상 존재해왔던 어떤 모험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급의 벽을 예술의 꿈으로 부수고 넘어가는 모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