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양극화’는 사회 전 분야를 아우르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 출판도 예외는 아니어서 출판사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보고서 「2013 1분기 출판산업 통계 및 경기 동향」에 따르면 2013년 1/4분기에 1종 이상 책을 출간한 출판사는 3,129개로 전년 동기 대비 12.5% 감소했다. 얼핏 보기에 3,000이라는 숫자는 제법 많아 보이지만, 등록된 출판사가 무려 4만여 곳에 이른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오히려 적은 수치다. 이름은 살아 있으되 실은 ‘죽은’ 것과 진배없는 출판사들이 90% 이상이라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출판계도 이제 강자가 살아남는 시대를 지나 살아남는 자가 강자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광고가 베스트셀러를 낳는다
흔히 IMF 경제위기를 기점으로 출판계의 양극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인문학 서적과 사회과학 서적이 서점가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격랑의 물결에 던져졌듯, 출판계도 거센 폭풍을 만났다. 인문학 서적들은 서서히 뒷전으로 물러났고, ‘자기계발서’와 ‘재테크’ 관련 서적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무한생존 경쟁에 내몰린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계발에 올인할 수밖에 없었고, 중산층이 서서히 몰락하면서 모든 사람이 ‘재테크’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자기계발서 시장을 블루오션으로 생각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1990년대까지 나름의 영역과 장르를 지키던 출판사들마저 대거 자기계발서 시장에 뛰어들었고, 이제 국내 출판사들 중에서 자기계발서 한 권 내지 않은 출판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 무렵 출판계의 양극화 현상은 사실상 완성(?)되었다. 완성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출판의 양극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 그만큼 오랜 연원을 가지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1986년은 출판 역사상 기억할 만한 한 해다. 출판의 양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이기 때문이다. 이 해 12월 1일 단행본 역사상 최초로 TV 광고가 전차를 타며 출판계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신문과 라디오 광고는 그 전에도 있었지만 TV 광고는 처음이었다.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고려원’이 정비석 작가의 역사소설 『소설 손자병법』, 『소설 초한지』, 『소설 삼국지』를 선물용 세트로 묶어 출시하면서 “기막힌 재미와 감동, 삼대가 함께 읽는 책, 연말연시에 부담 없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 지식정보화시대에 알맞은 품위 있는 선물”을 콘셉트로 TV 광고를 내보냈다. 말 그대로 연말연시 부담 없는 선물로 각광을 받았고 『소설 손자병법』은 1986년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1980년대 중반부터 “광고가 베스트셀러를 낳는다”, “베스트셀러가 베스트셀러를 낳는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는데 『소설 손자병법』의 TV 광고는 단적인 사례인 셈이다.

앞서 IMF 경제위기 이후 자기계발서 시장의 성장에 대해 언급했지만, 자기계발서 역시 갑작스럽게 태어난 출판 장르가 아니다. 이미 1990년대 중반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컴퓨터 길라잡이』 등을 보면 대중독자들은 이미 자기계발서에 대한 일종의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1994년 출간되어 1995년 최고 베스트셀러가 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성공’을 우리 사회가 추구할 화두로 여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사람들은 성공을 공공연히 이야기했고, ‘부자되세요’, ‘대박’ 등의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컴퓨터와 영어를 해야만 성공한다는 심리가 팽배해지면서 『컴퓨터 길라잡이』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출판의 다양성 저해하는 베스트셀러
장황한 말로 자기계발서를 비롯한 출판의 역사를 짚어본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계발서에서 심리학, 다시 힐링으로 이어지는 출판 장르의 단순화 현상이 출판의 양극화를 고착시키고 결국에는 출판의 궁극적인 목적인 ‘다양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이다. 출판의 양극화와 잇닿아 있는 말은 결국 ‘베스트셀러’다. 사실 요즘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리는 책’일뿐 어떤 사회적 함의를 지닌 책은 아니다. 베스트셀러는 마땅히 지녀야 할 덕목이 있는데, 사회와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반영해 읽는 이로 하여금 시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게 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베스트셀러는 사전적 정의마냥 ‘가장 많이 팔리는 책’으로만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지는 구조다. 사재기를 언급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전 단계, 즉 외국 서적의 경우 높은 선인세를 주고 들어오는 과정, 그리고 그 책을 팔기 위해 엄청난 광고와 이벤트를 동원하는 일련의 상황을 독자들을 잘 알지 못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알려진 선인세만 16억 원이다. 『해리 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의 『캐주얼 베이컨시』도 선인세가 10억 원을 훌쩍 넘겼다.
선인세 10억 원을 넘긴 책들은 이제 열 손가락으로도 모자랄 정도다. 어쩌면 선인세 10억 원은 한국 출판의 양극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과도한 선인세가 대형 출판사의 과도한 욕심을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돈 되는 일에 투자하는 자본의 생리는 출판도 예외는 아니지만, 이 같은 욕심은 결국 출판의 다양성을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국내 작가와 저자의 작품도 상황은 엇비슷하다. 힐링 열풍을 주도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합하면 모두 500만 부 이상 판매되었지만, 상황은 거기까지였다. 단지 힐링 열풍을 만들어냈을 뿐, 두 권의 책은 아픈 젊은 세대들에게 일종의 패배주의를 안겨주었을 뿐이다. 무너진 사회를 일으킬 책임 있는 화두를 제시하거나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한 권의 책에서 무얼 더 바라느냐고 타박할 수 있지만, 모름지기 200만 부(『멈추면…』), 300만 부(『아프니까…』)가 팔린 베스트셀러라면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과 자세는 당연히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닐까. 이처럼 선인세, 베트스셀러, 양극화의 문제는 하나하나 분리된 일이 아니라 결국 출판의 궁극적인 목적인 다양성, 즉 출판정신과 직결된 중차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기심에서 읽은 책이 이타심을 만든다
출판의 양극화 문제는 출판산업 자체의 문제만은 아니다. 출판을 사명이자 천직으로 알고 일하는 다양한 구성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판사 옆 대나무숲’이라는 트위터 계정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내부 고발적 성격이 강했던 ‘출판사 옆 대나무숲’의 내용들을 보고 있노라면 출판동네는 사람이 일할 만한 곳이 아니었다. 수많은 착취와 협잡이 난무하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출판사 사장들이 하나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출판도 ‘산업’이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정도’라는 것이 있다. 오래 전부터 출판인들은 그것을 ‘출판정신’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물론 ‘출판정신’은 정의하는 주체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더불어 함께’ 가는, 그래서 책과 책이 어깨를 맞대고 성장하며 그 결과로 독자들의 지식과 지혜를 넓혀가는 것이다. 궁극에는 인류의 정신과 영혼이 책을 통해 고양되는 것이다. 책을 일러 ‘오래된 미래’라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왜 책을 읽는가』에서 샤를 단치는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이기심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독자가 얻게 되는 것은 이타심”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애당초 이타심을 추구하지 않았지만, 제대로 책을 읽는 사람은 나를 뛰어넘어 ‘이웃’과 ‘공동체’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결국 책은 집단지성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창조물인 셈이다.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왜 책을 읽는가』, 91쪽) 누군가 책을 만들고, 누군가 읽는다면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70평생을 수도원 작은 골방에서 책읽기에 전명했던 교부敎父 토마스 아 켐피스의 말로 각지고 모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내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