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은밀하고, 위험하게 스크린을 독점하는 영화
한미FTA 여파로 한동안 주춤했던 한국영화 산업이 다시 호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2월에 한국영화 시장 점유율은 무려 82.9%를 기록했다. 작년에 한국영화를 본 누적 관객이 1억을 넘어섰고, 올 2개월 동안 2천만 명이 한국영화를 관람했으니, 올해 한국영화 2억 관객 돌파도 헛된 꿈만은 아닐 듯싶다.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 영화시장 점유율 50%를 거뜬히 넘겼던 한국영화는 한미FTA 여파로 2008년 이후에 40%대로 하락했다가 2011년을 기점으로 다시 50%를 회복했다. 그리고 작년 <도둑들>, <광해>의 대박으로 시장 점유율은 58%로 수직 상승하여, 한국영화는 다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7번방의 선물>의 천만 관객 돌파와 700만을 훌쩍 넘긴 <베를린>의 선전, 그리고 예상 밖의 흥행몰이를 했던 <은밀하게, 위대하게>,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 흥행 돌파구를 마련하여 관객 천만을 향해 달리는 <설국열차>의 선전으로 한국영화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흥행의 이면에는 특정한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 심화라는 문제가 숨어 있다. 개봉 20여일 만에 600백만 명을 훌쩍 넘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스크린 독점을 놓고 영화계 안팎에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 것도 바로 이 문제 때문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개봉될 당시, 관객들은 극장에 가면 이 영화밖에 볼 게 없다는 말을 했다. 영화가 압도적으로 좋아서라기보다는 압도적으로 스크린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홈페이지 통계자료에 의하면 개봉 첫 주말에 이 영화는 1,341개의 스크린 수를 확보했다. 전국 영화관에 걸린 영화 2개 중 1개 이상이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상영한 셈이다. 스크린 수 2위인 <스타트랙 다크니스>가 607개인 것을 감안하면 이 영화의 독점은 가히 압도적이라 할만하다. 아니, 이 2개의 영화가 차지하는 스크린 수는 2,000여개에 육박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매주 스크린에 걸리는 1~2개의 영화 흥행을 위해 멀티플렉스가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스크린 수 독점은 영화의 제목대로 은밀하면서 위대하다. 한 영화의 과도한 스크린 독점은 대게 투자-배급의 은밀한 파워에 기인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배급한 쇼박스 미디어플랙스는 국내에서 가장 점유율이 높은 투자 배급회사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관객 1,000만 명을 넘길 경우 쇼박스 미디어플랙스는 40억 원을 투자해 약 110억 원을 벌어들일 수 있다. 배급사가 제작투자까지 하니 해당 영화의 배급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총 제작비가 70억 원이 들었다고 한다. 만일 1000만 관객이 들 경우 이 영화가 상영관에서만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은 대략 800억 원이 된다. 말하자면 10배 이상의 위대한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100억 이상의 위대한 제작비가 든 영화의 경우 그만큼 위대한 수익을 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조건 위대한 스크린 수를 확보해야 한다.

[표 1]  CJㆍ롯데 기업집단의 한국영화 시장지배 현황
구분 CJ 롯데 기타 합계
배급시장 CJ E&M 롯데엔터테인먼트  67.5%
 41.2% 26.3%  
상영시장 CJ CGV
프리머스 시네마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86.6%
 42.2% 25.3% 19.1% 
케이블 TV CJ E&M   100.0%
 100.0%   

영화계 일부에서는 한국 영화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해서는 수직계열화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수직계열화로 인한 영화자본의 강력한 파워만이 할리우드 영화산업에 맞설 수 있고, 한국 영화 산업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은 다음의 통계수치 분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2011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3대 메이저 배급사의 관객점유율이 60.1%인 것에 비해, 스크린 수 점유율은 86.6%나 된다. 단순 점유율 비율만 보면, 26.5%나 차이가 난다. 스크린 수를 많이 확보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객들이 많이 찾는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관객점유율과 스크린점유율 사이의 상당한 비율 차이는 메이저 배급사가 지나치게 스크린 수를 너무 많이 잡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는 데 충분한 근거가 된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스크린 수의 과다 확보가 관객들의 임의적인 영화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으며, 이는 거꾸로 생각하면 관객들에게 사랑을 더 받을 수 있는 영화들이 이른바 ‘스크린 수 확보 전쟁’에서 밀려나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판단도 일리 있게 만든다.
메이저 배급사의 관객점유율과 스크린 점유율 사이의 상당한 비율 차이가 결국 배급사의 사업상 전략적 판단 실수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며, 결국 배급-상영의 구조적 계열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는 만일 이 배급-상영 계열화 강화가 영화 관객의 총량 증가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역으로 배급-상영의 계열화가 해소될 때, 영화관객이 더 늘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26.5%의 차이는 어떤 점에서 한국영화산업의 구조적 손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몇몇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과 그것을 보장하는 극장 상영업계의 수직계열화가 반드시 한국영화 산업의 성장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2. 대중음악 산업 내의 독점 논리 : 아이돌과 모바일
케이팝의 글로벌 열풍을 몰고 온 메이저 연예제작사의 시장 독점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음악산업 분야의 연예기획사인 SM, YG, JYP는 대부분 아이돌 그룹들을 제작해서 성공한 회사들이다. 이 세 메이저 기획사들은 탄탄한 기획력과 자금력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 대중음악산업을 아이돌 음악산업으로 대체시켰다. 이 세 회사의 연예산업 자본은 나아가 주식자본으로 확대된다. SM, YG, JYP의 연간 매출액과 상장된 주식 가치들의 합은 다른 수백 개의 연예기획사의 그것보다 많다. 

[표 2] 3대 연예기획사 매출액과 주식가치 현황
연예기획사  매출액(2012년, 억원) 주식가치(2013년 2월 초)
SM 엔터테인먼트 1,702억 7,762억
(이수만 지분 21.50%)
YG 엔터테인먼트 1,054억 6,471억
(양현석 외 2인 지분 42%)
JYP 엔터테인먼트 400억(추정) 1,211억
(박진영외 3인 지분 15,94%)

정확한 통계가 나와 있진 않지만 공중파와 케이블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서 아이돌 그룹들이 출연하는 비율은 압도적으로 많다. 그 중에서 전통의 4대 대형 연예기획사와 4대 신형 연예기획사가 방송의 음악프로그램과 연예오락 프로그램을 독점하는 비율도 상당히 높다. 일례로 2012년 9월 30일에서 10월 21일 간 4주 동안 ‘SBS 인기가요’에 출연한 총 74팀 중에서 아이돌 그룹이나 가수는 총 64팀이었다. 음악 프로그램뿐 아니라 아이돌 출신 멤버들이 각종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횟수와 점유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대형 버라이어티 쇼에는 항상 약방의 감초 격으로 인기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끼어 있고, 케이블 방송은 아이돌 그룹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는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을 상시 제작하고 있다.

[표 3]   4주간 아이돌 그룹(가수) 출연 현황 (2012년 9월 30일~10월 21일)회차 총 출연수 아이돌 출연수  아이돌 출연진
2012년
9월 30일 16 14 미쓰에이, FT아일랜드, 시크릿, 에픽하이, G-DRAGON, 동방신기, EXID, 백퍼센트, 원더보이즈, 미스터미스터, 비투비, 쥬얼리, 에일리, 서인영
2012년
10월 7일 19 16 동방신기, G-DRAGON, 시크릿, 티아라, 오렌지캬라멜, 쥬얼리, 피프틴앤드, 유키스, 백퍼센트, 피에스타, 빅스타, 에이오에이, 백아연, 라니아, EXID, 미스터미스터
2012년
10월 14일 18 15 동방신기, G-DRAGON, 티아라, 시크릿, FT아일랜드, 오렌지캬라멜, 피프틴앤드, 비투비, 백퍼센트, 빅스타, 백아연, 라니아, 스피카, 미스터미스터, 크레이지노
2012년
10월 21일 21 19 G-DRAGON, 카라, 시크릿, 티아라, FT아일랜드, 오렌지캬라멜, ZE:A, B.A.P, 비투비, 백퍼센트, 유키스, 라니아,  스피카, 피에스타, 백아연, 빅스, 에잇폴리, 투엑스, 오프로드

음악산업의 독점화 현상의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는 이동통신사의 디지털 음원 시장에 대한 흡수이다. 디지털 음원 저작권을 강화하는 저작권법이 개정된 2005년 이래 음악 산업의 환경에 있어 가장 큰 변화는 이동통신사를 중심으로 디지털 매체가 음악콘텐츠에 대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SK텔레콤은 음원 서비스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국내 대표적인 음반사인 ‘서울음반’을 인수하기에 이르렀고, 지금은 음반제작, 연예매니지먼트까지 겸한 로엔엔터테인먼트라는 자회사로 발전했다.

자본의 규모가 영세한 음악 산업계가 음원저작권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동통신사의 IT자본은 제휴 및 합병하기 가장 좋은 파트너가 되었다. 과거 음악기획자들은 새로운 음반을 기획할 때 대체로 음반을 제작하는 회사에 투자를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음반매니지먼트사와 음반제작사 간의 자본의 연계 사슬은 대중음악 산업의 선순환 구조의 발전에 있어 일부 장애 요소가 있긴 했지만, 음악 산업 발전을 위한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러나 음반사의 장기불황으로 음악 매니지먼트사는 더 이상 자본을 안정적으로 투자받을 수 없게 되었고, 자연 자금 수급의 새로운 대안으로 현금 가동력이 가장 강력한 이동통신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음악산업계는 이동통신사의 각종 음악서비스 사업에 끌려 다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모바일 벨소리나 스트리밍 서비스의 수익 배분에 있어서 이동통신사의 배분율이 지나치게 과다하게  책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동통신사의 음원 수익률은 평균 30% 미만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모바일로 음원을 서비스할 때, 발생되는 비용을 이미 제외한 순수익으로서 결코 작은 수치가 아니다. 한국산업경제기술연구원(KIET)의 오정일 연구원이 한국음원제작자협회(이하 음제협) 자료를 인용해 발표한 「국내 온라인 음악 산업의 향후 과제」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음원 유통 수익의 9%가, 중국은 17% 정도가 이동통신사의 수익률이 된다. 음원 사용료 비율이 40%에 육박하지만, 이는 오프라인 음반의 수익비율과 비교하면 적은 수치이고, 수익의 배분 빙식에 있어서도 음원제작자와 저작권자, 실연자들 모두에게 배분되는 비율이다. 말하자면 모바일 음원시장의 규모가 5,000억 원 정도 형성이 된다 해도 음악업계의 실제 매출액은 1,000억 원을 넘지 않는다.  

모바일 음원 수익률 배분의 문제는 모바일의 문화콘텐츠 서비스 경쟁체제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핵심적인 사안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모바일 문화콘텐츠 서비스의 공급과 수요의 독점화이다. 주지하듯이 현재 이동통신 3사는 기업의 운명을 걸고 가입자들을 유지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콘텐츠 서비스를 펼치고 수익다변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통화 서비스가 아닌 음악, 게임, 동영상, 각종 생활정보 서비스 품질 경쟁이 향후 모바일 시장의 대세를 판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음원제작자들이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불합리한 음원 분배구조들을 개선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가에 있다. 이러한 공동의 노력들이 개진되지 않을 경우 음원시장을 포함해 음악산업 전체가 이동통신 산업에 흡수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게 될 것이다.

3. 문화 독점의 다른 사례들-게임, 포털, 출판
한국의 문화콘텐츠 산업 중에서 가장 높은 자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게임산업 역시 최근 넥슨의 엔시소프트 인수로 1인 지배체제로 바뀌었다. 4~5개의 메이저 기업들이 차별화된 게임 장르를 특화시켜 경쟁하던 상황에서 넥슨이 엔씨 소프트를 인수하고, 국내·외 주요 모바일 게임 유통시장을 인수·합병하면서 제작-퍼블리싱을 통합하는 독점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 2012년 기준으로 넥슨의 연매출액은 1조 5,275억 원으로 2위권에 해당되는 엔씨소프트의 7,535억 원과 네오위즈의 6,751억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다. 넥슨은 탄탄한 자본력으로 지속적으로 게임 퍼블리싱 영역을 확대할 것으로 예상되어 매출 독점력은 갈수록 확대될 것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역시 과거 다음-네이버 양대 체제에서 네이버 1강 체제로 변했다. 네이버의 201년도 매출액은 총 2조 3,898억 원으로 2위 다음의 매출액 4,534억 원과 비교하면 5배가 넘는다. 네이버의 검색 독점비율은 74%나 된다. 네이버의 공격적인 콘텐츠 마케팅의 가장 핵심적인 전략은 대중문화콘텐츠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이다. 영화, 대중음악, 웹툰, 여행, 스포츠 등 문화콘텐츠에 대한 전략적인 서비스 공세로 네티즌들을 효과적으로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 사정이 그러다보니 수익구조가 불안정한 웹툰 작가들의 경우에는 네이버와 같은 독점 포털 사이트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인디뮤지션의 경우에도 음악활동의 홍보를 위해 네이버의 음악 서비스 사이트에 목을 매게 된다. 물론 네이버가 비주류문화에 대한 나름의 배려와 지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는 그 역시 네이버의 콘텐츠 경쟁력의 한 구성요소로 기능한다.

가장 전통적인 출판 시장 역시 자본을 가진 소수가 매출액을 독점하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2012년 주요 출판사의 매출현황을 보면 상위 10위 회사 모두가 교육용 학습지 회사들이다. 1위의 대교, 2위 웅진싱크빅, 3위 교원구몬, 4위 교원, 5위 재능교육에 이르기까지 한국 출판산업 자본은 학습지 자본이 거의 독점하고 있다. 이 상위 5개 기업의 매출 총액은 3조원에 이른다. 대표적인 인문 교양 분야의 대표적인 단행본 기획 출판사인 김영사가 2012년 매출액이 349억 원, 문학동네가 269억원, 창비가 244억 원인 것을 감안하면 한국 출판시장의 독점화는 입시시장과 연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판시장의 경쟁적인 독점 체제는 학습지 출판사의 경우에는 방문학습지 교사들의 과도한 노동시간과 저임금 체제를 낳았고, 단행본 출판사의 경우에는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한 출판사의 불법적 사재기 현상을 낳았다. 베스트셀러는 독자들의 힘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힘으로 만드는 꼴이 된 셈이다. 출판시장의 불황은 사실 교양인문서를 만드는 출판사에만 해당되는 것이고, 돈이 없는 영세 출판사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학습지 중심의 출판시장과 베스트셀러 사재기 현상은 모두 한국 출판문화의 가장 좋지 않은 폐해이다.

4. 문화독점과 문화자본의 논리에 대처하는 자세-문화 생산자-소비자 연합운동
그렇다면 이렇게 대중문화 모든 분야에서 독점화된 현실을 극복하는 대안은 불가능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최근 문화산업 분야의 독과점을 방지하려는 국회의 입법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실에서는 영화산업의 수직계열화의 폐해를 막기 위해 영화산업의 배급과 상영을 겸하는 업무를 규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에서도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독과점을 방지하는 법률안 마련을 고민하고 있다.

문화자본의 독점을 법과 제도로 규제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대안문화를 꿈꾸는 문화생산자와 문화소비자들의 자발적인 대안마련을 위한 노력들이 요구된다. 그 대표적인 대안 중의 하나가 문화소비자들이 스스로 문화의 주체가 되는 문화생산자-소비자 문화자립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생산자-소비자 연합 문화운동은 기존의 지역 화폐운동처럼 호혜적인 태도에 기초한 문화적 능력들의 자발적 상호 교환과 잉여가치를 남기지 않는 부조 행동과는 다르게 대안적이고 독립적인 시장을 창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대안적인 문화시장은 생산자들의 막대한 수익창출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교환행위에 기초한 것으로 소비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비주류 문화예술의 창작콘텐츠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어떤 점에서 대안적인 문화시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목표이지만, 좋은 창작콘텐츠들을 대중들에게 유통시키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목표이다.

물론 생산자 연합이 자신들의 창작콘텐츠를 소비자에게 유통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홍대 인디 음악 제작자들은 인디음악의 대중화를 위해 매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라이브데이’를 개최했고, 다양한 형태의 음악페스티벌을 개최하기도 했다. ‘비트볼 뮤직’, ‘파스텔 뮤직’과 같은 인디음반을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레이블 역시 인디뮤지션들의 대중소통을 위해 드라마와 영화 OST 프로모션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독립영화의 경우도 매년 개최되는 독립예술제뿐 아니라, 시네마테크, 영상미디어센터, 예술영화 전용 스크린을 통해서 관객과 만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비주류 영역에서 활동하는 생산자들의 연합은 아직 충분하게 소비자들에게 소개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생산자 연합의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창작콘텐츠가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비주류 영역의 창작콘텐츠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아 대중적 취향과 어울리지 않고, 방송 미디어의 문화자본의 독점 논리 때문인 탓이 크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대안적인 문화소비를 원하는 다수의 대중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어떤 문화적 경향이나 흐름이 생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서로 영역별로 분리된 생산자 연합의 연합이 필요할 뿐 아니라 그 생산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는 소비자 연합의 형성이 필요하다. 인디음악, 독립영화, 대안미술공간, 대안공연예술, 인디게임과 같은 대안적인 창작콘텐츠들을 소비자들에게 적절하게 제공해줄 수 있도록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재-연합하는 계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비자 연합은 생산자 연합에 비해 불안정하고 일관된 요구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특별한 문화적 취향을 보유한 소비자들의 연합이 생산자 연합의 연합과 만날 수 있는 문화적 계기와 호혜적 교환의 플랫폼이 마련된다면 적극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문화자본의 독점으로 소비자들의 문화적 선택의 기회가 줄어들고 그만큼 문화적 취향이 획일화된 면이 분명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문화적 소비활동, 다른 문화적 취향을 갖고 싶은 개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이러한 다양한 개성을 가진 문화소비자들을 견인하려는 생산자 연합이 노력이 부족했다. 

그런 점에서 생산자-소비자 연합의 문화운동의 기본 방향은 먼저 생산자 연합의 연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 단계로는 비주류 문화취향을 가진 소비자들의 연합을 생성할 수 있는 문화적 계기를 만들고, 마지막으로 생산자 연합의 연합과 소비자 연합을 연결할 수 있는 대안시장의 플랫폼을 구상하는 식으로 나가야 한다. 대안시장의 플랫폼은 과거처럼 일시적인 페스티벌이나 이벤트가 아닌 실제로 교환행위가 일상적으로 벌어질 수 있는 새로운 장의 형성을 통해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