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대한 은유로서의 문학관
오늘날 전국에 산재한 문학관의 개수는 60여 개를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문학관은 서정주, 박경리, 이효석, 신동엽, 정지용 등 이름 난 개별 문인들의 생애와 작품에 초점을 맞춘 문학관이나 마산문학관, 대전문학관과 같이 개별 지역의 문인들과 문학 세계의 소개에 초점을 맞춘 문학관일 것이다. 부산의 추리문학관이나 숙명여대의 세계여성문학관과 같이 규모는 작아도 특별한 테마를 가진 것들도 있으니, 단순해 보이는 문학관들의 세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성이 넘쳐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학관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지역 홍보나 관광 수입 증대에 복무하기 위한 전시 행정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간혹 있다. 문학관을 건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문학과 관람객 사이의 활발한 교감을 이끌어내는 전시 방식,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 주변 환경에 조화될 수 있는 존재 방법 등 많은 문제를 고민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렇게 고안한 내용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만만치 않은 규모의 예산을 확보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난관에 부딪치기 일쑤다. 이러한 현실적 장해 요인들이 무수한 탓에, 혹은 애초에 고민 없이 안일한 태도로 시작한 탓에 어딘가 어정쩡한 문학관들이 생겨나는 것도 사실이다.

문학관은 그저 문학이라는 예술 형식을 기념하고 알리기 위해 자료들을 유리장 안에 진열해 놓는 곳이 아니다. 만일 일반 공중에게 문학의 치적治績을 홍보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곳에 <문학실>이라 이름 붙인 웅대한 전시관을 설치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어째서 문학관이 다양한 주제와 규모와 형태들을, 또 관람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이색적이고 흥미로운 전시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아마 문학관이 문학과 현실의 상호작용 방식 자체에 대한 은유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들을 산출하고, 살아있는 사람들과 자극을 주고받음으로써 스스로 변화해나가는 것이 문학의 존재 방식이라면 그것은 또한 문학관의 존재방식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근대문학이 가장 사랑했던 인천의 얼굴
바다 너머로 지는 석양에 물들어 피를 뿌린 듯 빛나는 물결, 폐까지 단번에 스며드는 비릿한 바다냄새, 압도적인 크기의 화물선들이 뿜어내는 연기와 항구에서 북적이는 맨살의 인부들, 그 위로 퍼져나가는 길다란 기적汽笛 소리……. 근대의 문인들이 가장 즐겨 그렸던 인천은 노동자들의 항구였다. 가진 것은 제 몸뚱이 하나뿐인 자들의 땀과 피와 눈물과 기름이 흘러 넘치고, 바다는 그처럼 역사의 격랑에 휩싸여 있는 도시를 바라보며 무심하게 넘실대었다. 한국 근대문학에서 인천은 오욕과 영광이 번갈아 드나드는 역사의 축도縮圖, 식민지가 내보이는 복잡다단한 얼굴들 각각의 어떤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 한 장의 초상 사진과도 같은 도시로서 사랑 받았던 것이다.

인천이 1883년 개항한 이래 조선에 ‘개화’와 ‘문명’의 거대한 조류를 들여보내는 관문 역할을 해왔던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 인천에는 영국영사관, 청국영사관 등 세계 각국의 영사관들이 설치되었고 외국인 거주 지역인 조계租界가 속속 설정되었다. 푸른 눈을 가진 외국인들의 입국과 함께 조선 사람들이 이제껏 듣도 보도 못했던, 혹은 풍문으로만 들었던 새로운 지식과 물건들이 정신 차릴 틈도 주지 않고 마치 해일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천은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기만 하는 문이 아니라 조선이 밖으로 나가는 문이기도 했다. 신소설 『혈의 누』에서 주인공 옥련이 일본과 미국으로 나가 배우기 위해 배를 탔던 곳도 바로 인천이다. 일찍이 군항軍港으로서 이름을 얻었던 인천은 근대에 이르러 물자를 교역하는 상인의 얼굴에 더하여 세계를 향해 뚫린 창窓이라는 문화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박팔양의 시 「인천항」에서처럼 항구의 카페에서 프랑스 수병의 노래가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곳이었던 만큼, 인천은 유행의 첨단을 걷는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모여들어 세련된 양복을 입고 이국적인 문화를 즐기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근대 문인들이 가장 즐겨 그렸던 것은 인천에 모인 노동자들의 얼굴이었다. 강경애가 『인간문제』에서 그렸던 것도 인천의 방적공장 직공들이었고, 엄흥섭이 『새벽바다』에서 그렸던 것도 부두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근대 문인들의 눈에 노동자들은 대개 가진 것이 제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탓에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존재들로 비치곤 했다. 여기에 자본가, 지주, 관료, 사회주의 운동가 등 노동자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이 한데 어우러져 근대 리얼리즘 소설의 영역이 확장되어 나간 것이다. 땀과 피와 연기와 돈의 냄새가 물씬한 생존의 맨얼굴이 가진 매력, 그것이 근대 문인들의 감수성을 통렬히 자극하고 독자들의 혼을 쏙 빼놓았던 인천의 문학적 얼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떠올리면 한국근대문학관이 그 노동판의 심장부라 할 만한 중구 해안동에 개관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죽은 화물貨物에서 살아있는 문학으로
온통 붉은 색과 금색으로 치장한 차이나타운의 골목들을 통과하여 언덕을 넘으면 붉은 벽돌로 지은 낮은 높이의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국근대문학관과 그 건너편에 자리한 인천아트플랫폼이 사용하는 건물은 일제강점기에 사용되었던 화물 창고들을 손질하여 개축한 것이다. 낮은 높이와 아담한 규모를 가진 이 건물들 덕택에 해안선이 지척까지 바싹 다가서 있어서 화물선들과 짐꾼들로 북적였을 그 옛날의 정경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120여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화교 문화를 간직해 온 차이나타운, 거리 곳곳에 남아 있는 일본식 집들과 근대에 지어진 서양식 건물들이 이국적 분위기로 충만했을 인천의 옛 모습을 또한 떠올리게 한다. 다양한 뿌리를 가진 문화들이 역사의 풍파 속에서 조우한 흔적들이 이 지역 전체에 남아 있는 것이다. 한국근대문학관과 그 주변의 거리들은 유구한 시간과 그 속에서 다양한 인간이 겪어 왔을 수많은 드라마들을, 그리고 그 드라마들에 무한히 이끌려 나아가는 문학의 존재 방식을 선연히 상기시킨다.

한때 상인의 야망을 담았을 이 창고들은 이제 소설과 시, 희곡 등 한국 근대문학 작품들은 물론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자료들을 소장한 문학관으로 탈바꿈하여 지난 9월 27일 개관했다. 국내의 문학관들이 일반적으로 개별 문인 혹은 개별 지역에 초점을 맞춘 것에 비하여, 한국근대문학관은 1894년 갑오개혁부터 1948년 정부 수립기에 이르는 시기 전체를 포괄함으로써 한국 근대문학 전체의 상像을 드러낸 최초의 공공문학관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문학관을 한번 둘러보기만 해도 한국 근대문학 전체의 흐름을 알 수 있게끔 한 전시 방식이 한국근대문학관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문학사적 통합의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 상설 전시실에 나온 자료들을 포함하여 국내 최대 규모인 2만 9천여 점의 방대한 자료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을 특기할 만하다. 무엇보다도 이인직의 「혈의 누」 재판본이나 주요한의 「불놀이」 3판본처럼 희귀한 귀중 자료들과 염상섭, 김소월, 박목월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단행본이 출판 당시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화려하게 장식한 단행본 장정, 고풍스러운 활자체 등은 책을 마치 회화 작품처럼 아름다운 볼거리로 감상할 수 있게도 해준다.
문학관이 단순히 희귀 자료들을 모아 둔 창고와 같은 곳이라면 그 속에 소장된 자료들은 죽은 화물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일 문학 작품이 사람들에게 공통 화제를 던져주고, 지루한 일상을 잊게 하는 즐거움을 제공하고, 그전까지는 보지 못했던 세계의 이면裏面을 생각하게끔 해주는 것이라면 문학관 역시 문학의 그러한 존재 방식을 닮을 필요가 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위압적인 방식으로 문학을 진열해 보여주는 대신, 관람자가 문학과 교감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고안함으로써 ‘문학을 닮은 문학관’이라는 철학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