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복지’만큼 한국적인 조어가 또 있을까? ‘문화복지’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시행되어 문화향유권 확대를 중심으로 하는 정책을 가리키는 용어로 문화향유, 문화나눔 등의 용어와 교체, 대체, 혹은 혼재되어 사용되어 왔다. 이 영역의 가장 대표적인 사업으로 분류되는 2005년 ‘신나는 예술여행’으로 시작한 문화이용권 사업이 4억 원에서 493억 원의 예산 규모로 확대된 8년여가 지났지만, 아직 한국에서 ‘문화복지’의 개념과 범위는 현재진행형이다. 이 글에서는 문화복지의 대표적 사업인 문화바우처(이용권) 사업을 중심으로 문화복지의 현재와 한계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문화이용권 사업은 크게 카드 사업과 기획 사업으로 진행된다. 카드 사업은 기초생활수급자 및 법정 차상위계층을 수혜대상으로 공연, 전시, 영화, 도서 등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는 문화카드를 가구당 1장씩(연간 5만원 한도) 발급하는 내용이며, 기획 사업은 수혜자를 모셔오는 서비스(공연 및 전시 관람지원, 패키지프로그램), 직접 찾아가는 재가방문서비스, 지역적 특성을 살려 진행되는 프로그램(섬영화상영회, 힐링축제, 문화나들이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의 기획사업은 1인당 5만원이라는 예산 상한선이 정해져 있고, 연간 1회만 이용 가능하다. 그래서 선호도가 높은 공연(한국 뮤지컬 공연의 VIP좌석은 평균 12만 원가량이다)은 등급이 낮거나 시야에 장애가 생기는 좌석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공연을 보고도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다. 수혜자의 대상화 문제도 여전하다. 카드의 발급율과 이용률을 놓고 전국과 지역별로 순위를 매기다보니 프로그램의 질이나 수혜자의 만족도와는 상관없이 예산 대비 실적을 채우거나 수혜자를 늘리는 데에만 급급한 경우도 발생한다. 중복 수혜 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기초수급자나 이미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는 복지시설이나 기관을 중심으로 지원이 몰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복지시설인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1회성 프로그램 지원은 선택이 가능할 정도이지만, 지속적인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하기 위한 자원 확보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문화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됐던 지난 정부의 국립박물관·미술관의 무료관람 정책을 보자. 이 정책은 시설이 근처에 있거나, 가보고 싶은 문화적 욕구를 가졌거나 비용 부담 때문에 망설이는 사람에게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지거나 한 번도 방문해본 적 없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에는 거의 효과가 없다. 문제는 현재의 문화복지영역 사업이 문화적 취향이 형성되지 않은 계층을 대상으로 1회성 문화예술행사를 경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문화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 문화예술을 권하고, 경험하도록 끌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수혜자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며 카드제 방식이 도입됐지만 대체 어떻게, 어디에 써야 할지 몰라 발급받고도 고이 모셔두는 이용자들도 많고, 실제 카드 이용 실적은 도서(참고서 포함) 구입과 영화 관람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누군가에게 공연장은 ‘가봐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 없는 문턱 높은 곳이며, 그렇다보니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설픈 문화예술경험이 추가적인 문화예술의 경험 기회 자체를 가로막을 가능성마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경험재인 문화예술의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정책 의도는 현장에서 왜곡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문화감수성의 형성 여부는 경제적 취약계층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족 모두가 모여 저녁밥을 먹는 일이 사치인, 세계 1위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현실에서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대다수의 국민은 문화소외계층일 수밖에 없다. 구조적 한계를 개선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복지는 물론이고 기본권으로서의 문화권 역시 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소득을 기준으로 문화복지 수혜대상을 선별해 예산과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수동적 접근보다 국민 모두가 문화적 삶을 기획하고 누릴 수 있는 사회 환경을 조성해나가는 근본적인 접근이 문화복지정책 영역에서 고민되어야 할 이유다.

물론 현재의 문화복지사업이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화이용권 이용자의 경우 예술행사 관람률, 관람의향, 문화공간 연간 이용률 및 행사 참여율에서 비이용자에 비해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는 조사 결과가 이미 나와 있으며, 문화예술행사 관람 횟수 증가를 통해 문화예술 관심도, 문화예술에 대한 감수성, 행복, 건강, 신뢰, 창의성을 실질적으로 증가시키는 효과도 나타났다고 한다. 특히 문화예술교육 경험이 참여자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과 문화예술에 대한 감수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앞으로의 문화복지정책에서 염두에 두어야 할 지점이다.

현재 문화복지영역의 사업의 가장 큰 한계는 문화기반시설의 설립과 확장을 통한 물리적 접근성을 제고하거나 취약계층

의 문화향유권 증대를 위한 문화예술프로그램 제공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산의 한계 등의 현실적 제약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정책의 범위 자체를 좁혀버려서는 안 된다. ‘문화이용권 사업이 사회복지 전달체계와 연계하여 경제적 취약계층의 복지 영역에 문화를 도입함으로써, 그동안 구호에만 그치던 문화복지를 실질적인 정책으로 구현한 최초의 사례’라는 해석은 그래서 ‘이제 시작’이라는 말과 동의어다. 카드 한 장을 발급하고 사용하게 유도하는 한 개의 사업에 너무 많은 의미와 역할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작은 카드 하나를 통해서 마치 가뭄의 단비 같이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고, 더 활기찬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수기는 맞는 얘기지만, 문화이용권 사업으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복지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문화이용권은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문화권의 첫걸음이지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2014년부터는 문화, 여행, 스포츠관람 등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3개 바우처가 한 개의 카드로 통합 운영될 예정이다. 또한 2006년부터 제도 도입이 논의되었으나, 아직 법제화되지 않은 문화복지사로 대표되는 매개인력문제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통합 운영과 매개인력 확보 등의 과제는 물론이고 지금까지의 문화복지정책이 경제적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문화접근성을 높이는 데에 주력했다면, 국민 모두의 문화수요 발굴과 욕구 증대에 대응하려는 정책의 영역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 기본권으로서의 문화권과 결합하는 새로운 문화복지의 개념으로 문화적 취약계층의 범위를 넓히고, 문화복지 정책이 전체 복지 정책과의 연관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문화복지의 개념이 사회복지의 하위 차원이 아니라, 사회복지를 포괄하며 문화권culture right과 결합하는 또 다른 의미의 복지로 확대되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