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태 :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작품활동은 어떤가?
노기훈 : 역사가 있는 곳이면서 작업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어서 좋다. 원래 작업실은 서울 연희동에 있었는데 정리했다. 이곳에서 작업한 지 반 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무척 편안함을 느낀다.

박석태 : 고향 구미를 떠난 지는 얼마나 되었나?
노기훈 : 대학생활을 이쪽에서 하면서부터이다(그는 중앙대 출신이다).

박석태 : ‘구미시리즈’ 사진작품을 보며 상당히 색다르다고 여겼다. 작품에서 드러나는 정서는 북적임, 화려함 등과는 거리가 먼 쓸쓸함을 동반한 주변, 변방의 느낌이 강하게 보인다.
노기훈 : ‘구미시리즈’는 아주 오래 할 작업이기 때문에 3~4년별로 제목을 다르게 붙이고 있다. 그 중 하나인 ‘세컨드 스트리트(Second Street)’ 시리즈의 ‘세컨드 스트리트’는 구미에서 가장 번화한 ‘2번 도로’를 뜻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지역이다 보니 그런 (쓸쓸한) 느낌을 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알다시피 한국의 지방도시는 다 그런 정서가 있는 것 같다.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구미에 도착할 때는 마치 유령도시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이내 적응이 되어 익숙해지지만 말이다. 마치 「무진기행」 같다고 해야 할까. 거기에 등장하는 하인숙이 주인공에게 서울로 데려달라는 말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박석태 : 그렇다면 ‘구미시리즈’에서 중점으로 두고 있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노기훈 : 이 작업에서 최대한 중점을 두는 것은 미리 짜인 상황에 인물을 맞추는 방식을 배제한다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순간만을 포착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 전체라는 맥락과는 동떨어진 것이고, 그러므로 그 인물에 대한 일종의 실례일 것 같아서다. 내 고향이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다. 두세 달 머무르며 인물들과 정서적으로 친밀감을 느낀다고 될 작업은 아닌 것 같다. 사진 속의 인물들에게는 특별한 포즈나 장소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런 테크닉도 없는 것처럼 찍을 뿐이다.

박석태 : 고향인 구미에 대해, 그리고 찍힌 사람들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작가이지만, 반대로 그러한 개인적 지식 내지 친밀함을 매우 건조한 방식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노기훈 : 광고사진을 찍듯이 미화시키거나 특별한 테크닉을 쓰지 않았다. 최대한 힘을 빼고 찍는 것이 목표였고, 그래서 스튜디오 안에서나 쓰는 큰 카메라를 썼다. 재미난 것은 저 큰 카메라를 마주하는 인물들의 태도가 매우 진지해지고 스스로 소중하게 다뤄진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디지털카메라를 쓴다 해도 그러한 태도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없었다. 기기 자체가 주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은 분명 다른 것 같다.

박석태 : 인물 사진이 아니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건물들, 흐르는 강, 물탱크에 세워진 물걸레 등의 사진에서도 무언가를 읽어내려 하는 진지함이 보인다.
노기훈 : 구미는 계획적으로 도시가 개발된 것이 아니라 일단 공장을 지어놓고 이후에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이고 그들을 위한 주거공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10년 전만 해도 전국에서 젊은 여자들의 주거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었다. 내 친구들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 바로 구미에서 취업을 하고 지금까지 생활하는 데에는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구미를 이루고 있는 환경적 요인이라고 한다면, 내가 찍는 사소한 풍경 내지 오브제는 그런 환경적 요인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보통의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늘 곁에 있을 불변의 것을 찍는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박석태 : 사진 말고 다른 매체를 이용하기도 하는가?
노기훈 : 영상, 회화 작업도 한다. 어릴 때 아버지가 거실에 책을 한 권 놔두었는데 그것이 광주항쟁 관련 사진집이었다. 그 책을 보고 며칠 동안 잠도 못 잘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사람의 몸이 한 순간에 저리 될 수 있다는 사실로 인해 내 몸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광주항쟁에 대해 알게 되고나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작업(<Aesthetic Surgery>)을 시작하게 됐다. 이 작업은 사회적 불의에 대한 저항의 의미보다는 몸이 짓이겨지는 부당한 상황 자체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림 속의 여자 이미지는 강남의 성형외과 광고에서 비롯됐다. 같은 나이의 80년대 여인과 오늘날의 여인의 모습을 엇갈려 표현해보고자 했다. 무언가를 부수고 새로 짓고, 보기 싫으면 고치면 된다는 한국사회의 세태를 풍자한 작품으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박석태 : 구미시리즈 이외의 작업을 소개한다면?
노기훈 : 지하철 1호선을 따라서 가면서 촬영을 하는 작업이 있다. 춘천, 청주보다 인천이 훨씬 더 크고 발전된 도시지만 인천이 상징하는 변방, 마이너리티의 느낌이 더욱 강하다고 봤다. 실제로 1호선 끝으로 올수록 기껏해야 자유공원으로 가는 노인들이나 월미도에 놀러가는 소수의 사람들뿐이다. 또한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은 서울로 향하는 의지가 처음으로 현실화된 곳인 것 같았다. 마치 구미의 친구들이 서울이라는 주류문화에 다가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고민되는 것은 구미의 경우는 내가 잘 아는 공간이고 사람들이지만, 인천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이한 것도, 너무 무미건조한 것도 망설여진다. 그 사이에서 떠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