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의 땅, 미군기지
한국에서 가장 들어가 보기 힘든 곳이 어디일까? 하나는 내곡동의 국정원일 것이고, 또 하나는 군부대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용산 미군기지는 더 가보기 힘든 곳이다. 필자는 10여 년 전 그곳 안에 있는 미국대학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필자가 받은 출입증으로는 강의실만 갈 수 있었고 부대 안의 다른 곳은 갈 수가 없었다. 어떤 곳이 금단의 구역으로 지정되면 그 사실만으로도 장소는 독특한 성격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용산 미군기지는 전투부대가 아니기 때문에 군사기지로서 독특한 면은 없다. 그 안은 의외로 특별할 것이 없는, 사무실과 거주시설들의 집합일 뿐이다. 그저 군인이 많은 소도시일 뿐이다. 그러나 들어가 볼 수 없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이 장소는 괜히 더 들어가 보고 싶은 곳으로 여겨진다.
이곳에 근무하는 군무원 빼고는 한국 사람은 이 안을 제대로 본 사람이 없으니, 그 이유는 이곳이 한 번도 대한민국 영토였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미군기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일본군 사령부가 있었으며, 그 전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습지였다. 용산미군기지 자리는 언제나 경계에 걸쳐 있는 땅(liminal space)이었다. 즉 서울과 미국 사이에 걸쳐 있으며 민간도시와 군사시설 사이에 걸쳐 있다. 그리고 전쟁과 평화 사이에도 걸쳐 있다. 경계의 땅에 발을 들여놓는 것은 쉽지 않았으나 한 미국 분(군인은 아님)의 호의로 기지를 둘러볼 기회가 생겼다. 용산미군기지는 의외로 접근이 쉽다. 지하철 4호선 이촌역 2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미군기지 입구다. 그 출구는 국립박물관 방향으로 표시돼 있지만 정작 국립박물관은 꽤 멀고, 미군기지 입구가 훨씬 가깝다. 마치 미군기지를 위해 지하철 출입구를 만들어 놓은 것처럼 보인다. 용산미군기지가 접근이 쉽다고 하는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미군기지, 한국과 미국 사이
길거리에서 미군기지 사이에는 일종의 완충지역이 있다. 그것은 카투사 군인 두 명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출입증을 나눠주는 작은 사무실이 있는 구역이다. 이곳에는 15분간 차를 세워 둘 수 있는 주차장이 있으며 여기서부터 건물의 색깔이나 재질 등에서 미군부대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미군기지는 의외로 가까운 데 있었다. 다만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서울 사람들이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여기서 출입증을 받고 미군기지로 들어가면 여기서부터는 미국이다. 이곳이 법적으로 미국 영토로 돼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교통규칙은 철저히 미국식이다. 그것은, 아무리 급하게 달려오던 차들도 보행자가 차도에 한 발짝만 발을 들여놓으면 다 서버리는 것이다. 네거리를 건너려고 하는데 모든 모퉁이에서 차들이 가다가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진기한 장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미국의 어느 길거리에서나 벌어지는 것이다. 차가 사람을 무시하고 마구 달리는 한국의 모든 길거리에 비하면 훨씬 인간적인 곳이다. 우리가 좋아하는 ‘인정 넘치는’이라는 문구가 진정으로 맞는 곳이다.
용산미군기지에는 1,600동 정도의 건물이 있는데, 그것들은 일제 때 지은 것, 한국전쟁 때 지은 것, 그 후에 지은 것들 등 다양하며, 기지 전체를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설계한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지었기 때문에 건물들에 아무 통일성은 없다. 일제 때 지어진 건물들이 의외로 보존상태가 좋아서 지은 지 불과 10년도 안 되어 보인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벽돌들의 상태도 좋다. 건물들은 수명에 따라 T, S, P 등의 기호가 붙어 있는데 T=temporary, S=semi temporary, P=permanent로 분류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temporary의 경우 불과 4~5년 정도의 수명을 예상하고 자재나 구조 등이 임시목적에 맞게 지어진 것들인데 그 예상수명을 훨씬 초과하여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는 한국전쟁 때 지어진 퀀셋 막사도 있는데, 과연 그 안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것들도 많다. 물론 한국전쟁 때 지은 그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고 여름에 태양열 때문에 내부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두텁게 코팅을 한 것들이 많다. 아마 내부도 적당히 개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용산기지의 인프라는 생각보다 열악한 편이다. 도로는 여기저기 갈라져 있으며 수선한 자국이 많지만 그것들도 체계적이라기보다는 갈라진 자국을 따라 임시로 때운 곳이 많다. 때운 방향도 제멋대로다.
용산기지에서 가장 비군사적이면서 동시에 군사적인 장소는 카페테리아일 것이다. 카페테리아 안에는 버거킹, 파파이스, 스타벅스, 타코벨 등 우리에게 익숙한 프랜차이즈 식당들이 있다. 값은 미국 달러로 표시돼 있으며 한국 돈을 받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신용카드는 쓸 수 있다. 약 500석 규모의 카페테리아에서는 미군과 연관된 온갖 사람들이 식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대다수는 용산기지에서 일하는 주한미군사령부 소속 병사와 장교들이지만 해군도 보이고 해병대도 보인다. 그리고 카투사 장병들도 보인다. 그리고 민간인 군무원들도 보인다. 특이한 점은 우리 일행은 누구도 한국음식을 먹고 있지 않았는데 몇몇 미군 장교들은 한국음식을 먹고 있다는 점이다. 하긴 우리는 기지 밖에서 더 맛있고 싼 한국음식을 쉽게 먹을 수 있지만 미군들은 이 안에서 식사해야 하니 이 정도의 한국음식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그것은 밥과 국, 반찬이 나오는 식이 아니라 식판에 밥과 튀긴 고기, 채소가 얹혀 있는, 미국식 세팅의 한국음식이다. 그래도 미군들은 열심히 젓가락질을 하고 있다. 이곳은 흡사 축소판 미국이다. 버거킹이나 파파이스는 다 한국에도 있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한국 파파이스에는 없는 매쉬드 포테이토가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세트메뉴의 이름도 다르다. 그래서 여기가 미국이다. 그 차이는 영화 속 미국과 실제 미국의 차이만큼이나 미세하지만 큰 것이다.

사막색? 카키색?
사실 미군기지라면 군사시설이건만 정작 군사적인 것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여기가 전투부대가 아니라 사령부이기 때문이다. 군복을 입은 군인들만 아니라면 군대라기보다는 미국 어느 동네, 그것도 1970년대의 동네를 뚝 떼어다 놓은 형상이다. 여기서 본 가장 군사적인 것은 의정부나 동두천 등의 다른 부대에서 파견 온 군인들이 묵을 천막들이다. 한 동에 1개 소대가 묵을 수 있는 대형텐트가 수십 동 쭉 쳐져 있는 모습은 좀 이채로웠다. 자세히 보면 그냥 텐트가 아니라 환기를 위한 창문도 있고 2중 천장으로 돼 있어서 공기는 빠져 나가고 빗물은 막을 수 있게 돼 있다. 이 텐트에서 가장 이채로운 모습은 각 동마다 에어컨이 달려 있다는 점이다. 하긴 여름에 이 텐트 속은 찌는 듯이 더울 테니 에어컨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군대와 에어컨은 어쩐지 잘 어울리는 이미지는 아니다. 역시 미군은 미군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용산기지에서 군용 텐트 다음으로 군사적인 것은 건물의 색이다. 건물들은 일제 때 지어진 역사적 가치가 있는 벽돌건물을 제외하면 다 사막색으로 칠해져 있다. 사실 사막색도 적절한 말은 아닌데, 더 정확히 말하면 예전 크레파스에 들어 있던 살색에 가까운 색이다. 그렇다고 카키색도 아니다(많은 사람들이 국방색을 카키색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카키색은 베이지색에 가까운 색이다). 미군 차량들은 국방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반해 건물들이 이 색으로 칠해진 이유는 모르겠다. 이 색은 사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이고, 더군다나 건물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가 보통 장소가 아니라 미군부대라고 확실히 차별화해주는 효과가 있다.

집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소도시
여기서 차라리 가장 군사적으로 보인 것은 큰 체육관만한 세탁소였다. 그 세탁소 안을 흘끔 들여다보니 수많은 군복들이 다려져서 쭉 걸려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나는 제복, 규율, 통일성, 집단, 단체 등의 키워드들을 떠올렸다. 군복은 군인의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그 몸에 집단성을 부여하고 규율을 적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군의 경우 군복은 각종 얼차려의 장소이다. 뭔가 삐뚤어져 있거나 실밥이라도 나와 있으면 얼차려를 받을 수 있다. 즉 군복은 병사의 몸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병사의 몸을 고달프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미군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다. 일단, 미군은 전투복에 주름을 잡는 풍습이 없다. 그들의 군복은 펑퍼짐한 것이 전혀 간지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미군복의 발달사와, 위장무늬의 변천을 보면 군복이 총이나 미사일 못지않은 군사무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군복들을 대량으로 처리하는 세탁소야말로 진짜 군사적인 전투의 장소다. 
용산미군기지의 특징은 수많은 미국사람들의 생활을 위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는 것이다. 즉 그들이 집에 있다는 느낌(feel at home, home away home)을 주기 위한 모든 것들이 갖춰져 있는 소도시이다. 그것은 남한이라는 다른 은하계에 파견돼 있는 미국의 위성이다. 거기에는 초등학교가 있고 대형마트가 있으며 미제 자동차를 파는 딜러도 있다. 반짝이는 파란색의 포드 머스탱이 혈기 넘치는 GI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물론 검은색의 포드 F150트럭도 있다. 용산미군기지의 특징은 군인과 민간인들, 심지어는 어린이들과 군인들이 마구 뒤섞여 있다는 점이다. 물론 군인가족들이 사는 아파트가 기지 안에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여기가 특별히 군사작전을 하는 곳이 아니라서 그렇기도 하다. 그리고 아주 예외적인 곳을 제외하면 민간인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구역은 없었다. 기지 안의 버스정류장에서 초등학생과 군인들이 같이 버스를 기다리는 장면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한국의 어느 군부대와 마찬가지로 용산기지에도 각종 체육시설은 당연히 있으며 골프연습장도 있는데 몇 년 전 태풍으로 쓰러진 것을 두 배로 새로 지었다고 한다. 이곳의 고객은 주로 한국 남자들이라고 하는데 꽤 많은 돈을 버는 곳이라고 한다. 미군기지 안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드래곤 힐 라지라는 호텔인데 다른 곳에서 온 미군들이 묵는 곳이다. 그리고 미군기지 안에는 두 개의 미국대학들이 있어서 공부하고 싶은 미군들의 향학열을 달래주고 있다. 중앙 텍사스대학과 매릴랜드대학의 분교가 이곳에 있다. 

시간과 공간이 혼재된 곳
용산미군기지에서 의외인 요소는 언덕이 많다는 점이다. 사실 남산이 근처에 있고 맞은편 청파동에도 언덕이 있음을 생각하면 별로 이상할 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는 가파른 언덕들이 많아서 놀라게 된다. 미국은 평원이 많은 나라고, 거기 있는 군부대도 당연히 평평한 땅에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언덕이 많은 서울이라는 공간과 평평한 미국이라는 공간은 용산기지 안에서 충돌하고 중첩된다. 그 충돌과 중첩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매다가 정신이 되돌아온 듯 ‘아차 여기는 서울이지’라고 생각하게 된다. 미국에서 서울로 되돌아오는데 1초도 안 걸렸다.
그만큼 용산미군기지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묘하게 뒤섞어 놓는 곳이다. 이 기지 안에는 시간이 멈춰 있는 곳들이 몇몇 있는데 그 하나가 일제 때 지은 건물을 비롯해서 옛날 건물이고, 또 하나는 구정물이 흐르는 개울이다. 서울 시내의 개울과 하천들은 지속적인 환경정화의 노력으로 상당히 깨끗해졌다. 그러나 미군기지 안의 개울은 서울시의 행정력이 미치는 곳이 아니다. 그 결과로 미군기지 안에는 1960년대 지방도시에서나 보던 구정물이 가득한 개울이 흐르고 있었다.
용산 미군기지를 둘러보고 총체적으로 느낀 것은 “이 장소와 공간은 보존돼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이면 이 기지는 모두 평택으로 옮기며, 기지 안으로 미국대사관과 직원들 숙소가 옮겨 오는 것을 빼면 대부분의 땅은 공원으로 바뀔 전망이다. 그때는 제발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새로 싹 짓는 식의 공원을 만들지 말고 많은 건물들과 흔적들을 보존하여 과거를 기억하면서 동시에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문화적 맥락이 풍부한 공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용산공원, 기대도 되고 우려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