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면 일단 음악회가 많아진다. 더불어 현대음악과 관련된 공연도 제법 늘어난다. 가을과 어울리는 음악이어서가 아니다. 전체적으로 공연의 수와 무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현대음악··· 넓은 의미에서는 재즈나 유행가 등의 대중음악이 이에 해당된다. 좁은 의미로는 클래식 중에서 20세기 음악과 거의 동의어로 생각된다(본 비평에서는 좁은 의미의 현대음악을 지칭한다). 20세기를 기반으로 탄생했지만, 오늘날 공연장에 오르고 소비되는 것은 대부분 ‘고전’이라 일컫는 음악들이다. 쉬운 예로 바흐(1685~1750), 모차르트(1756~1791), 베토벤(1770~1827), 슈베르트(1797~1828) 등이고, 20세기로 시선을 옮겨 본다 하여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있는 작곡가들의 레퍼토리들뿐이다.
장르마다 ‘현대’라는 낱말이 붙은 예술을 대접하는 방식도 다르다. 가까운 예로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현대미술’이 있고, 영화와 사진은 그 자체가 현대문명의 산물이고, 무용 또한 발레·한국무용과 더불어 ‘현대무용’이 무용계의 삼발이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음악은 어떠한가? 국내에도 수많은 작곡가와 연주자가 있지만 무대에서 대면하기는 힘들다. 유럽과 미주에서 최신 기법들을 학습한 작곡가들은 대부분 음악대학 내에서 교편을 잡고 있기에 생산도 활발하지 않다. 생산의 문제라 볼 수 있겠지만, 들여다보면 사실 연주의 비활성화 자체가 창작까지 얼어붙게 만든 현실이 깔려 있다. 아무튼 가을날 세 편의 현대음악 공연을 만났다. 논의 전에 먼저 세 개의 무대를 간략히 살펴본다.

3개의 무대 속, 현대음악
#1) 9월 25~26일, LG아트센터. 변혁이 연출하고 정의숙이 안무한 《윤이상을 만나다》이다. 작곡가 윤이상에 대해 말하는 주체가 음악가가 아닌 아지드현대무용단이어서 눈길이 갔다. 그것이 무용이든, 음악이든 사실 윤이상의 음악을 이렇게 한 자리에 모아 연주되는 무대도 흔치 않은 일이다. 첼로협주곡을 비롯하여 <공간>, 가곡 <밤이여 나뉘어라!> 등이 스피커를 통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무대는 총 10개의 순서로 나눠져 진행되었다. 여섯 번째의 제목은 <invention>. 이는 두 대의 오보에를 위해 작곡한 <invention>과 제목이 같다. 윤이상을 위한, 그리고 그를 소재로 한 작품이어서인지 이 순서에서는 무용수들이 아닌 오보이스트 잉고 고릿츠키와 곽연희가 실제로 출연하여 실연을 들려주었다.

#2) 10월 9일, 세종 체임버홀. 서울시교향악단의 《아르스 노바(Art Nova) Ⅲ》이다. 아르스 노바는 ‘공부시켜주는 음악회’이다. 공연 시작 전, 서울시향 상임작곡가인 진은숙(1961~)의 강의와 프로그램북의 튼실한 준비가 돋보인다. 지휘봉을 잡은 이는 현재 유타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있는 티에리 피셔티이다. 첫째 곡과 두 번째 곡으로 죄르지 리게티(1923~2006)의 <선율들>(1971), 파람 비르(1952~)의 <하야그리바>(2005)를 연주했다. 현대음악에 관한 수준 높은 아티클이 매끄럽게 번역되어 있는 프로그램북에는 작곡가의 생몰연대와 작품의 탄생일, 세계·아시아·한국 초연 여부가 정확히 기재되어 있다. 세 번째로 연주된 <마법사의 제자>(2013)는 한국작곡가 조현화(1977~)의 곡이다. 서울시향이 조현화에게 위촉한 곡으로 이번 무대를 통해 ‘세계 초연’된 곡이다. 누군가는 길고, 깊은 호흡으로 쓰여진 프로그램북을 연주 내내 음악을 들으며 읽는다. 네 번째로는 트리스탕 뮈라이(1947~)의 <모래언덕의 정령>(1994)이 연주됐다. 트리스탕 뮈라이는 공연이 끝나자 무대에 올라와 연주자들과 함께 박수를 받는다. 다섯 번째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프랑수아-프레드릭 기가 협연한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의 <천상의 도시의 색채>이다. 이 날의 연주회의 하이라이트는 내한 전부터, 나름대로 화제가 되었던 트리스탕 뮈라이와 프랑수아-프레드릭 기인 것 같았다.
#3) 10월 10일, 금호아트홀. 피아니스트 김다솔의 독주무대로 《20세기 에센셜》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김다솔은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어떻게 보면 금호아트홀이 내세우는 간판스타인데, 객석은 놀랍게도 많은 좌석이 비어 있다. 레퍼토리는 독주 피아노를 위한 곡들로만 구성되었다. 프랑크 마르탱(1890~1974)의 전주곡, 죄르지 리게티의 에튀드 4·5·11·6번, 윤이상의 <5개의 소품>, 전민재(1987~)의 <4월의 바가텔>이 연주됐다. <4월의 바가텔>은 금호문화재단이 전민재에게 위촉한 곡으로 이번 무대에서 초연된 곡이다. 그리고 새뮤얼 바버(1910~1981)의 소나타 op26으로 막을 내렸다. 김다솔이 대부분의 곡을 암기로 연주한 것이 사뭇 놀라웠다. 리게티나 윤이상의 곡은 사전에 대비를 위해, 악보를 살짝(?) 들여다보면서 했지만 그의 시선은 자신의 내면과 피아노 건반에 사뭇 놓여 있었다. <4월의 바가텔>이 끝나자, 1989년생의 피아니스트가 1987년의 작곡가를 객석에서 일으켜 박수를 유도한 풍경은 정겹고, 한국의 피아니즘과 작곡계의 전망이 환하게 보였던 진풍경이었다.

현대음악의 오늘, 그리고 우리나라에서의 현대음악의 지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세 개의 무대였다. #1은 현대음악의 청취와 소비가 ‘음악’(혹은 음악회의 형태)으로만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다른 장르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현대음악이 어떻게 활용되고, 그 외연을 넓히는지 알 수 있는 무대였다. #2의 중심은 ‘음악’ 그 자체인데, 이는 즐기기보다는 깊이 있는 호흡으로 학습해야 하는 대상으로 설정한 경우이다. 그래서 전문가의 강의와 전문적인 내용이 들어간 프로그램북이 연주회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계 각국의 현대음악의 흐름과 음악사의 대열에 우리나라 또한 참여하고 있다는 ‘동시성’의 감각을 제공해준 무대였다. 조현화의 <마법사의 제자>가 이에 준하는 경우이다. #3의 무대는 비중을 #2처럼 ‘음악’에 두고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연주자’에 두고 있다. 이 같은 경우는 연주자가 확보한 레퍼토리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려 할 때, 현대음악 레퍼토리가 연주자에게 ‘활용’되고, 연주자 또한 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2의 일부를 이루었던 피아니스트 프랑수아-프레드릭 기의 무대 또한 이러한 효과를 활용한 예라 볼 수 있다.

현대음악 생태의 활성화를 위해
답은 나온 것 같다. 현대음악 생태의 활성화를 위해, #3처럼 연주자를 내세우고, 여기에 #2의 아카데믹함과 동시성 감각의 연출력이 더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1의 경우는 음악이 ‘춤’과 ‘움직임’보다는 ‘연주’를 통해 전달되었을 때 그 의미가 있기에 본 논의에서는 제외시킨다). 솔직히, 오늘날 관객을 모으는 것은 연주자의 유명세이다. 아니, 그보다 음악사는 연주자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9세기까지는 모차르트부터 말러와 같은 작곡가의 세기였다면, 20세기부터는 연주주체 즉, 지휘자·연주자·오케스트라의 시대이다. 어떻게 본다면 오늘날 현대음악의 소외는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소외가 아니라 이런 연주자 중심의 음악사가 빚어내고 있는 작곡(가)에 대한 소외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연주자의 선곡과 기획에 따른 현대음악 레퍼토리 배치는 현대음악의 유통에 생명을 불어넣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늘 아쉬운 것은 #2와 같은 아카데믹함이다. 익숙하지 않은 음악은 늘 익숙하지 않은 상태로 막을 내린다. 그런 점에서 연주와 강의(혹은 연주자의 해석과 느낌이 담긴 짧은 멘트라도 좋다), 그리고 음악의 청취와 함께 읽을 수 있는 튼실한 프로그램북을 통한 설명의 제공이 더욱 더 필요하다. 늘 그렇듯 초·중·고등학교에서 반복적으로 배웠던 슈베르트와 이름조차 생소한 슈토크하우젠(1928~2007)에게 같은 양의 해설과 지면을 내주는 것은 이미 게임이 안 되는 승부이다. 그리고 #2와 #3에 다 해당되는 것인데, 우리나라 또한 현대음악을 생산하는 작곡가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매번 연주회를 통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2에서의 조현화와 #3에서의 전민재와 같이.
이야기가 뒤로 밀렸지만, 이 글을 보고 누군가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현대음악은 음악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기에 연주자와 관객에게 외면 받는 것이 아닌가? 지금 우리가 고전이라 취급하는 음악들은 그 당시 치열한 비평행위와 다양한 연주행위를 통해 오늘날로 전해져온 음악들이다. 현대음악 생태계의 절뚝거림은 그만큼 음악계가 비평이나 의미 있는 기획에 입각한 연주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