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매체를 기반으로 하는 웹툰은 종이책이라는 물리적 실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 대신 편의성과 상업적 필요성에 따라 대형 서버의 웹툰 플랫폼에 탑재되기 마련이다. 당연히 제작과 향유, 공급과 소비의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웹툰 속의 정치성, 혹은 정치적 의미라는 주제를 꺼낼 때 조심스러운 부분이 그것이다. 만화가 아니라 굳이 ‘웹툰’이라고 한다면 그 매체가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특히 사각의 정형화된 컷과 컷 사이의 거리와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컷의 완결성과 연결성을 유동화시킴으로써 ‘웹툰’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창조해낸 한국의 웹툰에 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그것을 향유하는 이들은 이미 독자라기보다는 ‘유저user’에 가깝지 않던가. MMORPG의 사냥터를 돌듯이, 웹툰 플랫폼의 이곳저곳을 누비는 이용자들은 종이책이 주는 시간의 서사를 거부하고 평면적으로 늘어선 퀘스트를 수행하는 게이머처럼 공간의 서사로 이행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개별 연재들은 퀘스트에 불과한 것이며 그 과정 속에서 서사를 만들어가며 웹툰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 놀이의 총체성 속에서 단일 텍스트의 분석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난처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 화두를 던지듯이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무한의 지갑> 별점테러 사건
평범한 고등학생이 지갑을 줍는다. 볼품없고 초라한 지갑이다. 그 안에는 쪽지가 하나 들어 있다. 소년이 주운 지갑이 ‘무한의 지갑’이며 일정한 동작을 할 때마다 지갑 안에 돈이 채워진다고 적혀 있다. 지갑은 돈을 넣어 다니는 주머니이지만, 동시에 지갑의 두께는 인간이 지니는 욕망의 부피이기도 하다. 결국 ‘무한’이란 지갑이 생산해낼 수 있는 돈의 양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지닌 욕망의 무한성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네이버 웹툰’의 ‘베스트 도전’(이하 베도)에 연재된 신인작가 ‘무가블리’의 작품 <무한의 지갑>은 이렇게 시작된다. 돈과 인간의 탐욕이라는 주제는 특이할 것이 없다. 다소 미흡한 스토리 구성과 작화, 평범한 연출 역시 이 작품에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기 어렵게 한다. 오바 츠구미의 <데스노트>에서 주인공 라이토가 데스노트를 입수하고 고민하는 과정과 유사한 진행을 보여 게시판에서 잠시 표절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기물奇物 획득 이야기에서 흔히 보이는 서사적 클리셰Cliche 혹은 오마주일 뿐 표절로 단정하는 것은 과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갑작스럽게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물론 표절 논란이나 작품성 때문은 아니다. 일명 ‘<무한의 지갑> 별점테러’라 불리는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다.

네이버 웹툰이 조용했던 적은 없다. 2012년 이후 경쟁 플랫폼이었던 ‘다음 만화 속 세상’의 영향력이 급감하면서 압도적 우위를 점한 네이버 웹툰은 시스템이나 작가 본인, 독자들의 과민반응 등으로 인해 언제나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연재 중단과 트레이싱tracing: 원본 위에 새 종이를 덮고서 선을 따는 것 논란부터 과도한 노출이나 성애 묘사, 심지어 작가에 대한 근거 없는(혹은 있는) 루머까지 각양각색의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출몰했으며 몇몇 작가들은 회생 불가능의 타격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 작가 또는 독자 개인의 도덕성에 관계된 문제였고, 이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 역시 그 열기와는 상관없이 개별적인 수준이었다. 더구나 ‘베도’에서 별점테러가 일어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올해 10월 초에 시작된 <무한의 지갑> 사건은 양상이 좀 다르다. ‘일일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라는 사이트의 회원들이 조직적으로 별점테러를 감행한 것이다. 일베에서 이처럼 분노한 이유는 연재 내용 중에 ‘찌질한 일베충’이라는 식으로 일베를 비하했으며, 입구에 새누리당의 로고가 서 있는 공원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이를 개누리 공원이라 명명해 특정 정당을 모욕했다는 것. 별점 급강과 함께 지속적으로 신고가 들어오자 네이버는 <무한의 지갑> 상당 부분을 블라인드 처리해버렸다. 그리고 사건 사흘 만에 작가 무가블리는 스스로 네이버 베도에서 자신의 연재를 내렸다. 이 사건 이후 일베 회원들은 한동안 더 베도를 검열했고, 4대강 사업을 다룬 jmopark 작가의 <개솔툰>과 민청학련 사건을 다룬 해츨링 작가의 <동네변호사 조들호>가 이들의 또 다른 표적이 되었다.

정치성 드립의 거부
그러나 여기서 주목하는 부분은 일베가 아니다. 일베가 언제 조용했던 적이 있던가. 그러니 새삼스러울 것이 없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건을 대하는 유저들의 태도이다. 그들은 일베의 난폭함에 혐오감을 드러내면서도 하나같이 ‘그러나 정치성 드립은 작가의 잘못’이라고 결론짓는다. 드립이란 애드립에서 유래한 인터넷 은어로 즉흥적 발언을 일컫는데, 부정적 의미가 강해 ‘지랄’이라는 말로 바꿔도 대개 뜻이 통할 정도다. 즉 ‘정치성 드립’이란 표현이나 내용에 있어서 불필요하게 작가 자신이 정치색을 드러내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웹툰에서 이러한 정치성 드립은 거의 금기처럼 여겨져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게시판들은 뜨거워지며 ‘정치성 드립 사건’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대표적인 정치성 드립 사건이 지강민 작가의 <와라! 편의점> 천안함 드립 사건이다.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코믹하게 터치해 인기를 얻고 있던 지강민 작가는 2010년 지방선거 당일 ‘최첨단 과학수사’를 제목으로 한 211화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여성이 도둑을 발견하고 실랑이를 하다가 외투를 벗기자 파란색으로 쓰인 1번이 표기된 티셔츠가 드러난 것을 그렸다. 천안함 사태와 관련 북한산 어뢰파편에 쓰여 있던 ‘1번’이 매직으로 표기된 것을 풍자한 것으로, 스토리는 도둑이 아니라 간첩을 잡았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클로징 컷에 등장하는 남학생의 티셔츠에 초록색으로 2번이 적힌 것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비쳐져 문제가 됐다. 해당 에피소드는 결국 급히 다른 에피소드로 교체되었고, 작가인 지강민도 사과 입장을 밝혔다.
이와 같은 정치성 드립에 대한 반감은 비정치성을 지향하는 듯이 보이지만 홀Stuart Hall이 지적하듯이 문화란 지극히 정치적인 것이며 웹툰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문화를 지적·정신적·심미적으로 보는 아놀드Matthew Arnold의 정의는 예술을 고급하고 순수한 것, 그래서 탈정치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현대의 문화콘텐츠라는 개념은 그 안에 포섭되는 예술장르-만화, 게임과 같은-를 오로지 즐거움에만 봉사하는 단순 오락물로 전락시킨다. 아놀드의 엘리트주의적 순수와 웹툰의 오락적 순수는 이질적인 양 극단에 서 있으면서도 궤를 같이 하는 듯하다. 그러나 문화는 지배집단과 이에 종속된 하위집단이 서로의 문화적 공간을 학보하고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장소인 것이다. 순수란 하나의 환상이며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일베의 폭력적 주장을 혐오하는 한편 작가들의 적극적인 설득과 노골적 풍자에 반감을 나타내는 유저들은 강력한 의지에 대한 거부의사를 표시하는 당당함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라는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순수의 호명에 의해 주체화된 존재이다. 혐오와 거부는  방어적 제스처일 뿐이다. 유저들은 디지털이라는 던전dungeon에서 수많은 퀘스트를 뚫고서 웹툰이라는 서사를 창조해낸 한 주역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장에서 순수를 외치며 탈정치화를 시도하는 그들의 모순된 입장은, 양비론의 프레임 속에서 판단을 유보하는 우유부단함과 현실에 대한 외면을 노정한다.

2004년 <리니지2>의 바츠 서버에서는 ‘바츠해방전쟁’이라는 기묘한 전쟁이 벌어졌다. 서버 내 고高 레벨 유저들의 폭정에 항거해 저 레벨 유저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반란군은 다른 서버에 도움을 호소했고, 각 서버의 유저들은 자신들이 입을 피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란군에 합류했다. 그리고 수많은 희생 끝에 아덴성 함락이라는 초유의 기적을 거두었다. 물론 이후 논공행상의 과정에서 사분오열하여 결국 지리멸렬한 지구전 끝에 패하기는 했지만, 이 사건은 윤리적 주체성의 내면화가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웹툰의 유저는 서사에 대한 수동적 수용을 거부하고 적극적으로 서사의 창조에 참여하는 창조적 주체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무한의 지갑>과 <와라! 편의점>의 정치성 드립 사건을 통해 본 웹툰 유저는 순수라는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윤리적 주체됨을 거부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어쩌면 이들은 만화책의 ‘독자’와 게임의 ‘유저’ 사이에서 여전히 자기 정체성을 찾아 부유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