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장필순의 7집 《Soony Seven》과 윤형배의 세 번째 솔로 음반 《위험한 세계》는 의미심장하다. 이들은 상호 영향 관계에 있는 지음知音 사이이기도 하지만 음악적으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길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이 두 사람의 삶의 터전이 제주에 있다는 점을 언급해야 한다. 제주로 이주하는 문화예술가들의 작은 움직임은 흔히 ‘문화이주’나 ‘문화귀촌’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소비와 경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올바른 생태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적인 선택을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을 포함해 이러한 선택이 모종의 낭만적인 트렌드가 되었다는 등의 의문을 이 글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다. 다만 이들이 발표한 노래의 근간은 분명 이들의 터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할 것이다. 자본주의를 통해 소유와 속도에 대한 욕망이 배태된다고 한다면, 메트로폴리탄 서울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을 선택했다는 것은, 그러한 욕망으로부터도 거리를 형성하게 됨을 의미할 것이다. 이는 장필순의 말을 빌면 “거칠지만 윤택하고 불편하지만 풍성한” 삶이다.
장필순은 애월 소길리에 있는 자신의 집을 ‘외딴집’으로 표기하고, 윤영배는 ‘고산 방앗간’으로 호명한다. 이들의 집은 삶의 터전이자 음악적 아지트이다. 둘 다 많은 부분을 집에서 녹음했다. 물론 이는 많은 뮤지션들이 행하는 방식이고, 또 이들이 멀리서라도 손쉽게 음악을 만들고 배포하게 된 것이 컴퓨터와 인터넷 기술의 발전 때문이라는 사실을 여기서 상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들의 작품을 거론하려면 이들이 속한 집단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이는 음악공동체로 표방한 푸른곰팡이이고,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이들에게는 전설로 남아 있는 하나뮤직이다. 조동진과 조동익 등을 위시하여 장필순, 김창기, 한동준, 윤영배, 이규호, 고찬용, 박용준, 오소영 등은 서로 다른 음악을 하면서도 오랜 세월 동안을 함께 해왔다. 워낙 과작寡作인 경우도 많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중단 또는 고립의 행보를 이어왔지만 최근 몇 년간 각자 새 음반들을 발표하며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조동진의 기존 곡 <눈부신 세상>을 장필순의 7집 첫 곡으로 배치한 것도 상징적이다. 장필순 7집의 경우 이전 작처럼 조동익, 이규호, 고찬용, 박용준의 곡이 골고루 포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장필순 본인의 작곡을 통해 5집(1997) 무렵부터 시작된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입지를 이어오고 있다.

여기서 장필순과 윤영배의 음악적 공통점이라면 이들의 음악이 포크와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단순하게 하나의 장르로 귀착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노래는 단순히 자연에 대한 찬미로 귀결되지 않고 서정적이고 목가적인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반적으로 포크 음악이 자연을 사유하는 방식과 다르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들의 삶의 양태가 직설적으로 음악에 구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흥미롭다.
장필순의 7집을 보자. 이 음반은 모던 록의 질감을 빌려오며 점진적 확장을 보여준 지난 6집(2002)과 중첩되는 지점이 있다. 다시 말해 일렉트릭한 사운드와 어쿠스틱 사운드가 조화를 이룬다. 보다 다양한 음악적 실험에 입각해 있던 6집보다 이 음반은 안정적이고 고전적으로 들린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고즈넉한 편성으로 실내악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규호 작곡의 <맴맴>, 풍성한 현악 사운드가 조응하는 조동익 작곡의 <1동 303호> 등처럼. 이들은 모두 기계음이나 전자음과 만나지만, 적절히 교차하고 결합되며 장필순만의 맥락을 이끌어낸다.

그녀의 목소리는 극과 극을 오가기도 하는데, 첫 곡 <눈부신 세상>이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에서 버스verse와 코러스chorus 각각은 동일인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대조적인 음색을 들려준다. <1동 303호>의 후반부에서도 역시 굵은 목소리로 급전된다. <무중력>에서 리듬 메이킹과 보코더를 통한 변형도, <휘어진 길>에서 조동익의 아들에 의한 랩도 다소 이질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도 <맴맴>은 좋은 싱글로 꼽기에 손색이 없다. 이 노래에서 맴맴은 의성어이지만 또한 의태어가 된다. 노래는 매미의 합창 소리로부터 출발하지만, 실제로는 화자가 ‘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맴돌기만 하는 모습의 중의태로 발전하기 때문이다. 바스락 부서질 것 같은 장필순의 목소리는 이 곡을 한없이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만드는 백미가 된다. 한때 장필순이 도회적 감성을 대표하는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 그녀는 <도시의 하루>(4집, 1995) 같은 노래들과는 다소 상이한 어법을 취하며 전과 다른 묘미를 전달한다.
더불어 앞서 지적한 것처럼 장필순이나 윤영배의 노래가 전원에서의 삶을 미화하는 수준에 그치는 평범한 서정적 포크로 안착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는 윤영배에게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특히 이전 작들과 달리 돌직구를 날린다는 점에서 이번 음반은 말하자면 윤영배 식 민중가요라 칭할 만하다. 그는 대놓고 지금 이곳을 ‘위험한 세계’라 칭한다. 제목도 직설적이고, 메시지도 명징한 편이다. 자본주의와 신자본주의 용어를 글자 그대로 소환하고, 구럼비마을과 철탑 위를 호명한다. 이는 양평 두물머리, 해방촌 빈집, 홍대 칼국수집 두리반, 제주 강정과 관련된 여러 집회의 무대에 서왔던 그의 행보와 일치되는 것이다. 《좀 웃긴》(2012)을 발매한 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가사가 너무 나약하다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언급을 빌어 <키 큰 나무>나 <소나무>를 노래하고 있을 수 있겠느냐고 했던 그의 자설은 괜한 빈말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의 음악 자체는 고전화된 민중가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분절된 리듬이나 딱딱하고 직진적인 사운드도 없고, 그의 창법도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것 같다. 이상순이 기타 사운드를 연주하고 매만졌으며 이덕산, 김정렬, 박용준 등이 조력한 사운드는 그의 이전 작과 비슷한 맥락을 이어간다. 사이키델릭한 포크 같은 청량하면서도 몽환적인 기타 사운드도 등장하고, <점거>에서는 재즈풍 스캣이 명멸한다. 장필순의 음악에 비해 그의 음악은 간결하고 소박한 편에 속하지만, 그의 선명한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작동시키는 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명징한 가사를 드러내는 가창 방식이 주목할 만하다. 단도직입적인 가사가 있는 <자본주의> 같은 노래도 그냥 4자구호의 외침이 아니라, 춤추며 떠들며 투쟁, 그것도 “추추추 춤추며 떠떠떠 떠들며 투쟁”이다. 더듬는 것 같기도 하고 단절적으로 말하는 것 같기도 한 발성은 이 곡을 묘하게 다른 분위기로 인도한다. 도발적인 노래 제목을 가진 <선언>이나 <점거> 등의 노래 분위기는 그의 속살거리는 목소리와 더불어 서정적이고 느리게 흘러간다. 본인의 강단 있는 태도를 강박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은 윤영배 음악의 가장 중요한 미덕이다. 이것이 윤영배만이 가지는 서정적인 힘이다.
마지막으로 이 두 사람의 노래에서 풍기는, 약간은 다른 방식으로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간 장필순의 많은 노래들이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를 회고하고 추억하는 내용이 많았는데(1989년 20대이던 장필순이 첫 솔로작 <어느새>에서 이미 나이가 사라져버렸다고 할 정도였다), 이번에도 그런 노래들이 없지 않다. 그렇지만 이 음반의 많은 노래들은 단순히 향수에만 젖어 있지 않다. 위로와 긍정의 목소리는 이전에도 면면히 복류했지만 이번 음반은 이러한 감성이 전면에 부각된다. “외롭지 않니/…/슬프지 않니” 묻고 “우리 가슴 속에 씨가 퍼져 날리길 꽃이 피기를 새들이 날아들기를”(<그리고 그 가슴 텅 비울 수 있기를>) 소망하며 “나는 네가 가만히 기대 울 수 있는 어깨야 의지할 곳 없을 때마다 다시 찾았던 친구잖아”(<너에게 하고 싶은 얘기>)라고 토닥인다.

날카롭게 현실을 이야기하는 윤영배의 가사에도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한 감성이 탑재되어 있다. 그는 “새벽을 품은 농부의 꿈”(<백 년의 꿈>)을 꾼다. “네 손을 마주잡고 달려 알 수 없는 세계 어딘가에 닿아 아득한 눈이 부신 그곳”(<선언>)을 차분하면서도 경건하게 호명한다.
사족이겠지만, 이들의 음반 아트워크에도 지극히 고전적이면서도 자신만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장이 된다. 장필순은 전 곡의 악보를 음반에 실었고, 윤영배는 음반 구매자에게 자신의 애독지 『녹색평론』을 사은품으로 준다.
이들의 음악은 분명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장필순의 음악은 요즘 트렌드와는 거리가 있어서 어린 세대에게 낡게 들릴 수 있는 반면, 최근의 스타일로 접근한 노래들은 나이든 세대에게 이질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기존에 윤영배의 다소 은유적인 메시지에 매혹된 이들이었다면 이번의 비수 같은 가사들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던지는 의미는 한 번 곱씹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