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가 젊음과 문화를 상징하는 메카로 떠오른 것은 1980년대. 1960년대 4.19와 5.16 등의 정치적 격변 이후에 동숭동과 이화동에 자리 잡고 있던 서울대학교가 1975년 이전하게 되면서 남겨진 부지를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움직임과 함께 시작되었다. ‘대학’이라는 것은 서울대학교 이전 이미 명륜동에 위치한 성균관이라는 문화적 자산이 있었고, 일제시대 경성제국대학(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가의 집,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및 병원 일대), 공업전습소(현 방송통신대학교 부속건물)가 자리 잡으며 ‘대학’이라는 명칭이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실제로 대학로에 위치한 동숭동은 ‘성균관이 있던 숭교방崇敎坊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대학로는 행정동의 명칭은 아니고,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5가 79-1번지 이화동 사거리에서 혜화동 132번지 혜화동 로터리에 이르는 가로로 길이 1.55㎞, 너비 25∼40m의 거리를 말한다.

1975년 동숭동, 연건동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이전(의과대학 등은 존치)과 함께 부지사용 논의가 활발했던 시기에는 문화 분야에서 1972년 8월 법률 제2337호인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되고, 1973년 10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 개원하였으며, 1979년 5월 미술회관(현 아르코미술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운영)이 개원하고, 충무로 정음사 빌딩과 정동 세실극장에 있었던 연극인회관이 대학로로 이전하여 1981년 4월 문예회관(현 아르코예술극장, 한국공연예술센터 운영)의 건립과 함께 이전하면서 활성화가 시작되었다. 이때, 당시 한국문화예술진흥원도 현 예술가의 집에 본부를 두고 대학로로 근거지를 옮겨왔다. 이렇게 근거지를 옮긴 것은 단순히 서울대의 이전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사상계』 출신, 원로 문화예술경영인 이종인과 최창봉 1976년 당시 진흥원 사무총장의 역할이 있었다.  

“아마 76년 초일 거다. 당시에는 진흥원 본관이 출판회관 건물 안에 있었고 충무로에 연극인회관(문예극장 전신)이 있었고, 안국동에 미술인회관이라는 미술관이 있었다. 나는 출판회관에서 근무하고 있을 땐데, 최창봉 씨가 사무총장으로 부임하면서 감원이 있었다.(중략) 어느 날 저녁에 최창봉 씨로부터 만나서 얘기하자는 연락이 왔다. 이 양반이 자기가 잘못 알아서 이렇게 된 거니까, 잊어버리고 서로 없던 일로 하고 같이 일하자고 하는 거다. (중략) 그렇게 며칠을 밤술을 마시면서 얘기하다가 나온 게, 진흥원을 제대로 키워보자, 청사부터 잡아보자, 그러면서 얘기가 서로 맞아서 의기투합됐다. 그렇다면 같이 하자, 그렇게 되었다. 당시 동숭동 서울대 본관이 막 헐리고 있을 땐데, 중간에 중지시키고 그곳으로 진흥원이 이사를 했다(이미 건물의 한 쪽 벽이 헐려버린 상태여서 개?보수했다. 현재 ‘예술가의 집’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건물의 한 쪽 벽은 건물의 다른 몸체와 다르다). 그때가 1976년 가을이었다. 그리고 그 일대에 문예회관과 미술회관을 짓겠다고 하니까, 서울시에서 지금의 낙산가든 자리까지 전부를 묶어서 우리한테 다 사라고 했다. (중략) 서울대학교 터 전체를 예술촌, 문화마을을 만들기로 계획을 짜서 우선 문예회관과 미술회관 건립계획을 짰다. 공간의 김수근 씨가 설계하고, 돈이 생기면 야금야금 넓혀가자 해서 나중에는 예총회관 터까지는 샀다. 그런데 서울시에서는 기다리다 못해서 나머지 묶어놓았던 땅을 풀고 말았다. 그때 진흥원에 돈이 있었나. 당시에는 기금이 들어오는 대로 매년 다 썼다. 그렇지 않고 그걸 조금만 쌓아놨더라면 훨씬 넓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그리고 문예회관, 미술회관이 자리 잡음과 동시에 민간극장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1979년 샘터사옥으로 지어진 건물 지하에, 1984년 샘터 파랑새극장이 첫 번째 민간극장으로 들어섰고, 바탕골소극장, 마로니에극장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 후, 신촌에 있었던 연우무대 등이 높은 임대료를 피해 대학로로 이전하면서 동숭동 지역은 문예회관(현 아르코예술극장)을 중심으로 소극장 밀집지역으로 구성된다. 1985년 5월에는 토요일과 공휴일에는 ‘차 없는 거리’가 시작되고, 1985년 10월에는 혜화역이 조성되었으며, 많은 유입인구가 증가되는 ‘젊음과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하게 된다.

 대학로라는 무대, 시대의 풍경에 깊숙이 관여되었다가 이제는 퇴락한

1980년대 중반 이와 같은 문화적 성황의 배경에는 앞서 기술했던 바와 같이 동숭동 일대를 예술촌, 문화마을로 만들고자 하는 선구적 움직임도 있었지만, 1970년대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동숭동 문리대 캠퍼스였던 대학로 거리는 젊은이들에게는 ‘민주화의 성소’였다.

“70년대 초반 동숭동 캠퍼스에서 함께 생활했던 72학번 동지들이 최근 펴낸 에세이집 『새벽을 엿본 마로니에』의 서문에는 당시 우리의 모습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었다. “우리가 스무 살이었던 시절, 시대의 긴 밤을 지새우고 쓰린 눈으로 새벽을 갈망하고 있었을 때, 우리 청춘의 성소를 지키고 있던 마로니에 나무는 우리보다 먼저 새벽을 엿보고 있었다”

1972년 10월 유신선포와 함께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마로니에의 학생들은 1975년 관악으로 옮겨가게 된다. 1979년 유신의 종말과 함께, 1980년 봄, 광주를 짓밟고 신군부와 함께 들어선 전두환 정권은 ‘문화의 거리’ 대학로를 개방함으로서 정치적으로 억압된 에너지를 달래주는 듯 했다. 그렇게 대학로는 1980년대 중?후반 문화부흥을 맞게 된다. 문화적 해방구로서 대학로에 ‘차 없는 거리’가 시행된 것은 1985년 5월 5일이다. 당시 경향신문, 매일경제, 동아일보 등이 ‘대학로 신나는 거리예술’, ‘신명가득, 대학로 풍류마당’ 등의 이름으로 환영의 기사를 발신한다.

이러한 시대적 환영은 1987년 6?29 선언과 함께 급격히 경색된다. 문화와 예술이 넘치던 젊음의 거리에, 시대적 소명을 띤 젊은이들의 모임이 잦아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소성이 정치적 국면으로 전환하자, 정치권 사회권에서는 대학로의 문화적 토양이 ‘퇴폐’, ‘쾌락’, ‘젊음의 방종’ 등으로 언급되고, 예술인들은 마로니에 공원에서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가로막는 종로구청의 공연신고업무에 반기를 들며, 한국예술인총연합회로 이양할 것을 요구하게 된다. 1987년과 1991년 사이 기사를 살펴보면, 대학로에 민족적 성격의 풍물 문화들은 사라지고, 서구식의 예술 위주로만 편성된 마로니에 공원에서의 예술, 고급문화는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는데, 그 논거에는 서울시의 공연신고업무와 작품의 선택 문제가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외부적으로 정치적인 발언대로서 장소성의 성격이 강해지고, 외부적으로는 사치소비성 향락지구화되었다는 비판을 받으며, 급기야 1989년에는 <차 없는 거리>의 폐쇄 결정이 내려진다. 그러나 이미 형성된 문화적 자산들 때문인지, 폐쇄 결정은 폐기되었지만, 서울시는 바로 ‘도로폭 확장’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차 없는 거리’는 사라지게 된다.

1985년에 시작되어, 1989년에 폐쇄된 ‘차 없는 거리’ 대학로는 1990년 문화의 거리로 다시 지정이 되고, 1990년대 자연스럽게 ‘연극’ 중심의 장소로 재편된다. 여전히 민중음악을 중심으로 한 ‘대중음악’의 콘서트 역시, 대학로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된다. 서울대 연극반을 중심으로 한 연우무대의 ‘한씨승천기’, ‘칠수와 만수’, 그리고 극단 아리랑 등의 민족계열 연극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는데, 음악씬 역시 1980년대, 노찾사의 음악회가 있었고, 미리내소극장에서의 김광석의 전설적인 ‘녹두꽃’ 공연이 있었다. 그렇게 1980년대 중반과 1990년대 대학로는 양적, 질적 측면에서 다양한 얼굴로 시대와 만났다.
1990년대가 지나고, 2000년이 돼서는 대학로에 많은 소극장이 밀집하고, 클러스트가 형성되며, 이미 높은 임대료와 지가 상승, 그리고 연극의 양적, 질적 팽창, 그리고 영화, TV등의 엔터테인먼트가 삶에 뿌리 깊게 자리하면서, ‘연극’과 대학로는 새로운 전개를 맞이한다. 한 축으로는 탈 대학로 현상으로 이미 인디 문화 등은 ‘홍대’로 그 근거지를 이동하였고, 중심 문화는 자본에 흡수되어가려는 양상을 보였다. 김민기의 학전소극장, 연우무대, 아리랑소극장, 샘터파랑새극장, 동숭아트센터, 아룽구지 소극장 등은 제 역할을 했지만 대학로는 이미 변화하고 있었다. 2000년에는 역사 문화 탐방로가 조성되고, 2001년에는 도시설계구역-대학로 지구단위 계획 구역으로 변경되고, ‘2004년 5월 8일 대학로 문화지구가 지정’된다.

대학로 문화지구 지정 이후 대학로는 뭐라고 정의할 수 없을 만큼 그 자체로 ‘정체’이자, ‘상업화’의 길로 돌아섰다. 대학로의 극장사, 혹은 소극장의 역사는 아직 채 정리도 되지 않았지만, 어쩌면 이러한 역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라이브 극장’이 아닐까 한다. 이제 대학로는 ‘연극’이라는 단일 장르로 재편되었고, 이제 2000년대 이후 ‘뮤지컬’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0년대 ‘음악’이라는 장르를 가꾸었던 것이 ‘라이브 극장’이다. 1994년 개관하여, 들국화, 고 김광석 등의 민중음악가들을 세상에 내어 보냈던 라이브극장(서울시 종로구 동숭동 1-94)은 라이브 1관, 라이브 2관으로 지형을 확장하는 듯하였지만, 라이브 2관은 IMF로 쓰러졌고, 그마저도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학로에서 홍대로 이동한 독립 문화씬들은 대학로의 다양성을 ‘연극’이라는 단일 종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리고 라이브 극장은 소리 없이 사라졌고, 동숭동 1-94이라는 지번의 검색 결과, 2013년 현재 롯데 일가의 소유로 뮤지컬 극장으로 새롭게 지어서 개관을 앞두고 있다.

대학로, 정치와 탈정치의 사이, 예술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

대학로의 지형은 소극장이 밀집된 독특한 공간성에서 기인하지만, 대학로의 시간이 보여주는 스펙트럼은 밀집된 공간성보다 훨씬 넓다. 아마도 독특한 공간은 이미 자본과 뗄 수 없는, 혹은 임대료나 조성된 시설과 규모 등으로 형태를 갖추어버린 시점이기에, 자본의 유동이 아니면 혹은 사람의 유동이 아니면 그 독특한 색을 구현하는 것은 1970년대로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연극’이라는 장르로 수렴된 ‘대학로’에서 정치와 탈정치사이를 논한다는 것은 이제 그 ‘무대’를 직접 가리키는 말일지도 모른다. 혹은 ‘연극’이라는 장르가 가진 ‘정치성’과 ‘효과성 혹은 파급력’에 대한 논의로 전환되는 것이기도 하다. ‘연극’이 하나의 ‘화합’으로, ‘아고라’로 자리 잡던 그리스 시절의 민주주의로부터 한국의 ‘마당극’에 이르기까지 ‘연극’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이제 ‘예술’ 그 본연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하수상한 시절에 2013년 대학로는 ‘정치극’ 혹은 ‘사회적 이슈와 목소리를 무대에 담는’ 혹은 ‘무대가 삶이 되는’ 다양한 시도들이 전개되고 있다. 2013년 봄 혜화동1번지에서는 재능교육문제를 다루는 연극인들의 동행이었던 <아름다운 동행> 시리즈가 전개되어, <이건 노래가 아니래요> 등의 공연이 발표되었고, ‘국가보안법’이라는 주제로 <빨갱이, 갱생을 위한 연구>, <모의법정> 등이 공연되었다. 연우무대에서는 기지촌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극화한 <일곱집매>가 공연에 올랐고, 2013년 여름에는 서울변방연극제에서 기지촌 할머니들이 직접 무대에 오른 <숙자이야기>가,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루면서 그곳의 생존자 한종선씨가 직접 출연한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유리바다를 떠돌았다>가 공연되었다. 그리고 2013년 가을에는 콜트콜택 노동자들이 연극인들과 함께 만든 <구일만 햄릿>이 공연되고 있으며, 광주 5.18을 다룬 <짬뽕>을 연출했던 윤정환 연출의 <고공정원>이 공연된다. 그리고 노숙자분들이 주축이 되어 만드는 극단 연필통의 <사노라면>이 공연되었다. 한편 장애인극단인 ‘극단 애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밀양연극제에서 대상을 받고, 게릴라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이것은 다만 대학로의 일부다. 어쩌면 중심일 수도 있고, 아니라면 이러한 시도들은 여전히 변방에 있는, 그러나 이러한 공연들 뒤로 대학로에는 수많은 공연들이 발표되고, 대학로 흥행호객꾼(일명 삐끼)을 동원하여, 하루 4~5회씩 공연하는 로맨틱코미디류의 뒷골목 공연이 대학로를 압도하고 있다. 대학로, 이 현장에서 ‘예술’ 그 본연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지금 대답할 수 있는 것은 ‘환경적 요인’에 대한 분석보다는 결론적으로 ‘무대 혹은 연극 그 자체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답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이 갖는 ‘시대성’과 ‘매체로서의 파급력’은 오로지 그것의 치열한 사유와 연습, 그리고 실험과 새로운 형식과 태도 그리고 열린 자세를 통해서 가능하다.
탈 대학로 물결 속에서도 대학로가 건재한 것은 여전히 그곳에서 꿈을 꾸는 누군가 때문이다. 이것은 성공 지향의 꿈이 아닌 ‘연극’이라는 ‘가난함’ 그리고 ‘빈 공간’에서 오는 ‘삶’ 그리고 ‘인간’에 대한 꿈이다. 대학로는 ‘예인촌’ 어쩌면 ‘놀이패’들이 거쳐 가는 곳. 대학로는 어디인가 혹은 대학로가 무엇으로 수렴할 것인가에 대한 그림은 어쩌면 지금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쩌면 예술의 목소리는 무엇일까에 대한 자본과 하수상한 시절에 수렴되거나 타협하지 않는 시대적 응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