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시 일 년 전 <문학관에서 큐레이터가 되어보자!>와 같은 토요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전시에 대해 공부하고 현대미술에 대한 강의도 들으며 겨울방학을 이용해 청소년 도슨트 자원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내 손으로 일일이 스크립트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전시 구도와 동선까지 빼곡히 외우며 한 봉사활동이어서 그런지 체험프로그램이 끝난 후에 ‘아 진짜 내가 무언가 정말 해냈구나’ 하는 보람과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성취감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게 된 후라 그런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광성고등학교, 인일여고 학생들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만든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문학관에서 큐레이터가 되어보자!>라는 전시를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광성고등학교 학생 10명과 인일여고 학생 10명, 총 20명이 김유정, 현진건, 황순원 세 작가를 주제로 세 팀으로 나뉘어 전시를 기획했다고 한다. 판을 이용해 전시를 만든 조,벽과 계단을 이용해 표현한 조, 한 폭의 그림처럼 작품을 소개한 조 등 어느 한 조도 표현방법이 같거나 비슷한 부분이 없었다.

맨 처음 전시실을 들어가서 만난 작가는 「운수 좋은 날」의 현진건 작가였다. 현진건 파트는 총 3부로 나누어 기획했는데 1부 「‘ 운수 좋은 날」의 재현’, 2부 「‘ 운수 좋은 날」? 아…시’, 3부 「‘ 운수 좋은 날」, 엉뚱한 상상’으로 꾸며졌다. 1부 「‘ 운수 좋은 날」의 재현’은 원작인 소설을 다른 장르로 전환시키거나 패러디한 작품들을 전시 하였다. 소설책으로만 만났던 「운수 좋은 날」을 ‘영화로 만들어진 「운수 좋은 날」’, ‘동화로 쓰인 「운수 좋은 날」’ 과 같은 작품들을 한데 전시한 것을 보며 문학이 소설이라는 장르 하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장르로도 새롭게 표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운수 좋은 날」을 리라이팅^re-writing하는 작업을 보여주었다.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인 김 군이 주인공으로 매일 피곤함과 학업스트레스에 답답함을 느끼는 모습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매일 잔소리와 꾸중을 들으며 보내는 김 군은 어느 날 지각도 걸리지 않고 선생님에게 잔소리도 듣지 않는 운수 좋은 날을 보낸다. 하지만 하루가 저물고 책상에 앉으며 다가오는 수능에 대한 불안감에 ‘아 아…시’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장면이 끝난다. 원고지에 적은 「‘ 운수 좋은 날」? 아…시’의 완성본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머릿속에서만 상상하던 작품의 장면을 영화의 장면 장면을 캡처하듯이 전시한 방식이 무척이나 인상깊었다. 사진 속 김 군의 표정도 익살스러웠지만, 실제 고3의 애환을 담은 듯해 답답함도 느껴졌다. 3부에서는 「‘ 운수 좋은 날」, 엉뚱한 상상’ 이라는 파트로 조원 각자가 풀어내고 싶은 스토리텔링을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만들어냈다. 각기 다른 이야기와 결말을 보며 이렇게도 상상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부까지 마친 후에는 「운수 좋은 날」의 장면을 담은 포토존과 카톡 채팅창 메모지로 만든 전시 후기를 적는 난이 있었다. 작은 부분 하나하나 세심하게 신경 쓴 것이 느껴져 참 재미있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작가는「 소나기」의 황순원 작가다. 황순원 작가의 사진과 설명을 통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기회를 만들어준 전시였기 때문에 좋았다. 작품 속 장면 하나하나를 직접 채색한 그림이 전시장의 분위기를 한껏 더 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소나기가 내려 소년과 소녀가 비를 피하는 장면에는 기다란 수수대가 쓰였는데 황순원 문학관에 견학 갔다가 받아온 것이라고 한다. 수수대의 출처를 알려주었다면 좀 더 재밌게 전시를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림의 완전한 보존을 위해 노란 테이프 선을 붙여 놓은 것도 세심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테이프로 표시한 관람선 라인이 너무 멀찍이 있어 그림 옆에 적힌 설명을 읽을 수가 없고 위치가 너무 높아서 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만난 작가는 「동백꽃」의 김유정이었다. 김유정 조는 판을 이용한 전시가 아닌 벽에 직접 붙이는 전시 방법을 이용했는데, 검은색 종이를 사람 모양으로 오려 계단에 앉아 있는 모습처럼 표현한 것이 그림자놀이를 보는 것 같았다. 작품을 파헤치는 내용 위주의 전시가 아니라 김유정 작가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들을 위주로 전시했다. 그리고 작가와 나의 공통점을 나열한 사람 모양의 종이에 나와 김유정 작가에 관한 내용들로 꽉 채우는 방식을 보며 모두가 이해할 만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유정이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전시를 한 것처럼 개성을 발휘하여 더 특별한 전시로 보였다. 계단 난간에 동백꽃을 하나하나 만들어 붙인 모양새는 마음까지 화사하게 만들어주었다.
학교에서 근대문학을 아직 배우지 않은 1학년 학생들이 공부하며 큐레이팅을 하여서 그런지 문학적인 접근은 조금 아쉬웠지만, 소설 세 편으로 이렇게 멋진 전시와 다채로운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인 당진에는 없는 문화공간이라 부러운 마음도 컸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어 멋진 전시를 볼 수 있게 준 한국근대문학관에 무척이나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