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함께 일하는 장 PD에게서 반나절이면 충분한 여행지가 아주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의 방랑벽이 또 다시 발동했다. 맛집·멋집이 많은 신사동 가로수길로 갈까? 은행잎 노란색으로 물든 덕수궁길을 걸을까? 아니면 인천 차이나타운의 자장면 먹방을? 마음으로는 벌써 유명 블로그 속의 화려한 사진 속의 장소를 빛의 속도로 열 바퀴 정도는 돌고도 남았다. 맞아, 꼭 멀리 떠나야만 여행이 아니지, 정신건강을 위해서 수도권 어디라도 떠나볼까 하는 생각으로 한참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을 때, 마침 인천문화재단의 임원시 선생의 전화를 받았다. 인천수봉공원에서 김매물 만신의 굿을하니 혹시 관심이 없냐는 것이었다. 월미도, 송도는 알겠는데 수봉공원은 또 어디냐…. 이렇게 해서 찾게 된 수봉공원은 전철 도화역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주택가를 이용해 청룡사 입구로 지나면 산책코스와 등산로가 연결되어 인천시민들에게 좋은 휴식공간으로서의 활용도가 높은 곳으로 일반적인 공원보다는 약간 산행의 느낌이 들었다.
반나절 여행지로 의미와 기분전환을 함께 해결해줄 수봉공원에서 현대인들에게 조금은 생소한 굿도 보고, 떡도 먹고, 민속연희 공부도 할 수 있었던, 10월 19일은 일석삼조의 토요일이었다. 수봉공원은 한국전쟁과 관련이 깊은 호국공원이다. 현충탑과 인천지구 전적기념비, 재일학도의용군 참전기념비 등 호국의 정신을 기리는 기념비가 공원 곳곳에 세워져 있을 뿐 아니라, 실향민들의 제사 및 참배를 드리는 망배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인천 지역의 대표 나라 만신 김매물金梅勿의 ‘죽은 어부의 넋을 위로하기도 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굿’을 바로 이곳 수봉호국공원에서 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장소의 의미 있는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불행을 막고 풍어를 기원하는 <거첨 뱅인 영감굿>

10월 가을을 맞아 단풍이 들기 시작한 수봉공원에서는 만신 김매물의 <2013 거첨뱅인영감굿>이 연행되었다. 어민들이 많이 거주하는 인천에는 봄과 가을 풍어를 기원하는 거첨뱅인영감굿을 벌려 한 판 마을잔치를 베풀었던 풍습이 있다. 실제로 한 연구자의 참여·관찰에 의하면 어로 작업을 위해 바다에 나간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불안해진 마을 사람들이 점쟁이에게 점을 쳐 보았는데, 굿을 거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이 서운해 하여 사고가 일어났고, 신의 벌을 면하려면 다시 굿을 거행해야 한다고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김매물 만신의 이번 굿은 일종의 ‘풍어제’이지만,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점에서도, 혹은 만신이 황해도에서 태어나 인천에 오랜 시간 거주한 실향민이라는 점에서도, 수봉공원의 배경과 묘한 매치가 있었다. 김매물 만신은 1939년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19살에 결혼한 후, 25살 되던 해 신이 내려 시댁의 작은어머니 이순선 어화도 만신에게서 신내림굿을 받았다. 그 후, 신어머니로부터 굿 문서를 익힌 김매물 만신은 인천을 근거지 삼아 전국적으로 무업을 해 오고 있는 큰 만신이다. 김매물 만신을 중심으로 한 <거첨뱅인영감굿>은 2005년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출전하여, 은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았고, 그 후 예술적·학술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굿은 왜 할까?

<거첨뱅인영감굿>은 옛날 황해도 옹진군 봉구면 무도리 거첨 바닷가 마을이 흉어로 고생을 하고 있었을 때, 뱅인 영감을 모시며 큰 굿을 한 후부터 풍어가 되었다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김매물 만신의 굿은 이러한 맥락과 같이한다. 즉, 뱃사람들이 풍어로 만선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며, 온 마을 사람들이 한바탕 즐기던 축제가 바로 그
것이다.
일반적으로 굿의 요청자는 마을사람이고 주제자는 무당 집단이다. 굿을 거행하는 이유는 첫째, 신앙적인 측면이다. 해안 지역의 마을에서는 뱅인 영감신을 잘 모셔야 마을이 편안하다고 믿기 때문에 굿을 거행하는 것이다. 둘째, 지리적·경제적 조건이다. 해안 마을은 농지가 좁기 때문에 바다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이 생활의 주요 기반이다. 그러므로 바다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정복해야 하는 고단한 삶의 현장이다. 자신에게 닥친 한계의 상황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문제와 물음의 해결의 장으로 굿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셋째, 사회적·문화적 조건이다. 어촌마을은 다양한 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원이 단결하여야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마을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마을 잔치로서의 굿판이다.
축제로서 굿은 전통사회는 물론 현대사회에서도 주술적 목적과 함께 다양한 사회적·예술적·오락적 목적을 위해 연행되고 있다. 노래와 춤에 능한 무당과 함께 벌어지는 분위기는 축제의 분위기를 충분히 고양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신성하고도 조심스러운 신청에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아낙네 3~4인이 막간을 이용해 올라와서 ‘염불가’ ‘자진염불가’ 등의 서도민요를 부르며 춤을 추는 모습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강신무들과 주민들이 어우러지는 굿판은 마을 잔치로서의 분위기를 잘 드러내고 있다.

굿은 어떻게 진행되나

무당은 실제로 접신을 할까?

황해도 굿의 하이라이트는 타살한 짐승을 삼지창에 꽂아 세우는 ‘타살굿’과 날이 시퍼렇게 선 작두 위를 맨발로 타는 ‘작두굿’이다. 이번엔 ‘작두굿’은 없었지만, ‘타살굿’에서 는 무당의 격렬한 춤과 함께 박명애 만신의 몸에, 얼마 전에 돌아가신 김황룡 구만신이 내려 김매물 만신을 부여잡고 울며불며 길게 공수를 진행하였다. 돼지를 삼지창에 꽂아 세우는 것을 ‘사슬 받친다’ 또는 ‘사슬 세운다’라고 하는데, 이때 삼지창이 빨리 서면 신령이 기쁘게 받았다고 믿는다. 네 명의 장정이 함께 들어야 간신히 옮길 수 있는 90kg의 돼지가 삼지창 위에 ‘딱’하니 거꾸로 꽃이는 것을 보았으니 분명 접신이 맞는가 보다. 아마도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분들은 아주 좋은 일만 일을 것 같다.
‘뱅인 영감굿’의 끝자락은 김매물 만신이 직접 주도하였다. 마당에 넓게 자리를 깔고 온몸으로 크게 구르며 간절하게 진행하였다. 많은 고기를 잡게 해달라고 기원하고 뱃사람들의 해상 안전과 무사고를 축원하는 상징적인 행위로서 만신은 그물 줄을 상징하는 여러 다발의 돼지순대와 삶은 간 그리고 내장을 마당 한가운데에 내려놓고 진행하였다. 순대를 어깨에 메고서 금닺줄, 은닺줄이라고 하고 삶은 간은 금덩어리, 은덩어리라고 하면서 기뻐했으며, 춤을 추며 연행했다. 함축된 의미는 좋은 것들이지만, 구경꾼의 입장에서는 불편한 굿이었다.

문화자산을 지키는 일, 이제 무당만의 일이 아니다

처음으로 거첨뱅인영감굿을 주의 깊게 관람한 후 든 생각은 굿의 구조나 연행하는 목적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김매물의 굿이 중요한 인천의 문화 자산인 것은 분명한데, 무당들은 연행을 하는 것에 급급했지 더 이상의 여력은 없는 것으로 보였으며, 인천시민과 필자는 나와는 상관없는 거리감으로 구경꾼에 불과했다. 제대로 잘 보존하고 축제로서의 역할을 회복하려면, 먼저 굿놀이의 위상에 대한 이론적인 접근이 축제, 종교, 민속학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굿놀이의 내용적 측면이 제의적으로 어떠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느냐에 대한 구체적인 정리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이 굿이 가·무·악·희의 연희의 전통에 입각해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에 대한 가치적인 차원에서도 재정립이 필요하다. 인천의 문화 자산을 지키는 일은 황해도굿보존회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