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여행지는 먼 곳에 있지 않다. 내가 꼽는 최고의 여행지는 우리들의 도시 서울이다. 서울에는 서울사람도 잘 모르는 여행코스가 참 많다. 그곳에서 우리는 소외되지 않은 여행을 체험할 수 있다. 소외된 여행이란 무엇인가. 소외된 여행이란 말을 떠올리게 된 것은 며칠 전 홍대 앞에서 본 일단의 동남아 관광객들 때문이었다. 홍대 앞의 가게들을 기웃거리는 그들은 완전히 국외자였다. 홍대 앞이란 에펠탑이나 개선문 같은 스펙타큘러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 아니다. 홍대 앞은 자잘한 카페나 음식점 같은, 철저하게 로컬한 것을 즐기는 곳이다. 홍대 앞에 가는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어디를 가는지 알고 간다.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사람은 놀이터 옆의 그리스식당 그릭조이를 가거나 인도식당 샨티를 간다. 뭔가 이벤트가 있는 카페를 찾는 사람이라면 이리카페나 무대륙에 간다. 그리고 춤을 추고 싶으면 엠투를 간다. 마치 바다 속 동물들이 바위 구멍 속에 각자 몸을 숨기듯 누구나 홍대 앞에 들어가 앉을 구멍들이 있다. 이런 구멍을 생태학 용어로 니쉬^niche라고 한다. 즉 자기만의 틈바구니 말이다. 홍대 앞의 본질은 취향에 따라 기어들어갈 수 있는 자잘한 니쉬들이다. 홍대 앞의 본질은 수많은 니쉬들이다. 그리고 니쉬들은 그 장소들의 특성에 대한 자잘한 지식들과 결부돼 있다.

그런데 불행한 동남아 관광객들은 전혀 이런 지식으로 무장돼 있지 않다. 그들은 홍대 앞이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르는 채 그냥 끌려온다. 그래서 가게들을 여기저기 사진 찍는데 표정은 도무지 이게 뭐가 좋다고 끌고 왔을까 하는 얼굴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홍대 앞은 단체 관광객들을 위해 설계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체관광객들이 홍대 앞의 작고 맛있는 카레집이나 무대륙을 갈 일은 절대로 없다. 그들의 여행의 방식을 나는 소외된 여행이라고 부른다. 여행이란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서 즐겨야 하는데 여행사가 짜놓은 프로그램에 따라 장소의 특성도 모르는 채 수동적으로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쇼핑을 하니 도무지 자신을 위한 즐김이란 없다. 물론 우리가 패키지여행으로 파리를 가도 똑같이 이런 한심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그런 동남아 관광객의 모습을 보는 것은 결코 편하지 않다. 마치 우리 집이 음식점을 하는데 주인인 엄마가 손님들에게 가짜 재료로 만든 저질불량식품을 팔아서 이문을 남기는 것을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런 여행자들은 현지의 살아 있는 문화를 전혀 접하지 못하고 겉만 훑고 지나가기 때문에 소외된 여행을 하게 된다. 게다가, 여행을 통해 휴식과 충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은 돈대로 쓰고 껍질뿐인 가상의 만족만 느끼고 오므로 여행의 본래 목적으로부터도 소외돼 있다. 우리가 한국 안에서 다른 곳을 여행할 때도 어느 정도는 이런 소외를 경험한다. 소외되지 않은 여행의 첫째 조건은 스스로 길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다 엉뚱한 발견을 하면 더 좋다. 소외되지 않은 여행의 두 번째 조건은 지역적 조건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즉 길을 가다 칼국수도 사먹고 칼국수집 주인과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하고 말이다. 세 번째 조건은 쓸 데 없는 데 돈 쓰지 않는 것이다. 단체 관광에 의례 따라다니는 쇼핑 말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은 단체 관광객에게는 다 불가능하다.

서울에서 소외되지 않은 여행을 할 수 있는 곳 중의 백미는 서울성곽 걷기 코스이다. 이 코스는 남대문, 동대문, 숙정문(이것이 북대문, 서대문은 없으므로 생략)을 거쳐 한 바퀴 도는 길이다. 어차피 한 바퀴 돌아 같은 곳으로 돌아오는 여행이기 때문에 시작은 아무데서나 해도 좋다. 동대문에 4호선 역이 있기 때문에 여기가 걷기를 시작하기 편하다. 이 여행의 좋은 점은 서울 시내 어디서나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하철역 근처에서 시작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까이 있는 서울이 우리가 평소에 알던 서울이 아니다. 서울에서 태어나서 40년을 살아온 나도 모르던 서울을 보게 된다. 그 이유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서울을 다니는 그 코스들과 방향과 경로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개 동대문을 땅 속으로 다니거나, 땅 위로 다니는 경우는 그 둘레를 돌아 재빨리 종로에서 청량리 쪽으로 달아나버린다. 동대문에서 시작하는 성곽을 따라 걸어서 한성대 뒤를 거쳐 낙산공원을 지나 혜화동 고개로 가는 식의 경로를 택하지 않는다.

서울성곽 걷기는 일상적으로 거치지 않는 경로를 걷기 때문에 서울을 완전히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준다. 나는 1961년부터 2004년까지 평생을 성북구에서 살아서 시내에 나오려면 혜화동 고개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아마 평생에 혜화동 고개를 만 번은 넘었겠지만 그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넘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해서 본 혜화동 고개는 완전히 다른 장소였다. 즉 만 번쯤 체험해본, 삼선교에서 창경궁으로 넘어가는 혜화동고개는 그것과 직교하는, 낙산에서 성북동을 잇는 혜화동고개와는 완전히 다른 장소였다. 서울성곽을 따라 걷다 보면 이런 체험을 계속 하게 된다. 서울성곽 걷기는 익숙하게 알던 서울을 완전히 재편해서 알려준다. 단순히 걷기만 했을 뿐인데 거대도시 서울이 다른 장소로 태어나는 것이다.
북악산을 넘으며 왜 서울에 북대문이 없는지 알게 되는 것도 즐겁고 (숙정문이 북대문 노릇을 하고 있는데 이 문은 산 속에 방어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실제로 통행하는 문은 아니라고 한다), 인왕산으로 넘어가는 자하문고개를 평소에 넘던 방향과 완전히 다르게 넘는 것도 새로운 시선을 제공해준다. 인왕산을 내려오면 사직터널 위를 지나 홍난파기념관을 거쳐 경희궁 뒤쪽으로 내려오게 되는데 여기서 놀라운 것을 보게 된다. 서울의 한복판, 정중앙에 달동네가 남아 있는 것이다. 물론 이곳도 곧 재개발 예정이어서 사람들은 다 떠나고 없지만 광화문 한복판에서 달동네를 발견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것은 흡사 존재 자체가 잊힌 어떤 유적을 땅속에서 발굴해낸 느낌이다. 이 골목에는 대개 단층집들이 많은데 그것은 여기가 서민들의 동네였음을 말해준다. 그 곁에 한 달에 관리비만 100만 원이 나온다는 풍림스페이스본 같은 럭셔리한 거대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 자연스레 자본, 계급, 도시개발, 빈부격차, 역사의 망각 같은 키워드들이 떠오른다. 서울성곽을 걷다보면 이런 식의 발견을 계속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