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피크^{oil peak}, 즉 석유 생산 정점은 이제 낯설지 않다. 석유 생산량이 특정 시기에 이르면 절정에 달하고, 그 이후 생산량이 감소한다는 ‘단순한’ 이론이다.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석유 생산량은 2012년을 전후해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것이 정설로 알려져 있다. 이론은 단순하지만, 그 결과는 가공할만하다. 석유 생산량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석유 가격이 급등하고, 그 타격은 교통 분야뿐만 아니라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상황이 크게 위축된다. 현재와 같은 삶의 방식이 불가능해진다.
산업 문명은 석유로 대표되는 값싼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문명이다. 석유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문명이다. 산업문명은 ‘프리 에너지’에 가까운 석유를 캐내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석유 문명이 산업 문명의 본명이다. 『자연의 종말』의 저자 빌 맥키벤은 “현대의 인간은 화석연료를 태우는 기계”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석유 인간이란 엄연한 사실을 종종 잊는다. 우리는 석유를 먹고(농축수산물의 생산, 유통, 소비는 석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입고, 타고 다닌다. 석유가 없으면 우리의 일상적 삶은 순식간에 붕괴된다.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1/3을 자동차가 소비한다. 최근 우리나라 자동차 보유 대수가 1천만 대를 넘어섰다. 한 가구당 한 대 꼴이다. 우리는 석유 인간이자 자동차 인간이다. 자동차가 없으면 살지 못한다. 도시는 물론이고 비도시 지역에서도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오com히려 비도시에서 자동차가 더 필요하다. 대중교통 시스템이 덜 갖춰졌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방방곡곡을 누비던 버스 노선이 이른바 ‘마이카’ 시대가 개막되면서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다. 농촌이 무너지고 농민이 떠나자 대중교통이 소멸된 것이다.

운전면허를 새로 따는 청년층도 크게 줄고 있다. 박 소장이 인용한 한 연구에 따르면, 1983년 미국의 만 16세 연령 인구의 약 46%가 운전면허를 갖고 있었지만, 2010년에는 같은 연령 인구에서 약 28%를 기록,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19세의 경우에는 87%에서 70%로 줄어들어 나이가 어릴수록 자동차 운전을 외면하는 추세가 분명하다. 미국의 젊은이들이 미국 문화의 꽃으로 불리는 자동차를 외면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미국 드렉셀대 사회학 교수 미미 쉘러는 인터넷이 자동차를 멀리 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굳이 자동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연락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도심이 재개발되면서 교외 주거지가 점차 축소되고 있는 데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교통 정책이 달라져 자동차 이용이 줄어들었다. 통행세, 주차료 인상 등으로 자동차의 도심지 진입을 억제하는 정책도 자동차를 멀리하게 했다. 미국의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젊은이들이 자동차 운전을 멀리하는 보다 큰 이유가 있다. “버스나 전철을 타고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데 왜 운전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느냐”는 것이다. IT세대에게는 자동차 운전보다 디지털 단말기와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뉴욕의 ‘자동차 없는 도시’ 프로젝트

박용남 소장은 미국 뉴욕의 도전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모험을 소개하면서 ‘자동차 없는 도시’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박 소장의 보고서를 따라 뉴욕의 ‘자동차 없는 도시’ 프로젝트를 살펴보자. 뉴욕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주인공은 뉴욕시 교통국장 자넷 사딕-칸이다. 2007년 교통국장으로 임명된 사딕-칸은 뉴욕을 자동차 중심 도시에서 인간 중심 도시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 『녹색평론』에 인용된 뉴욕시 교통국장의 인터뷰 한 대목을 함께 읽어보자.
“자동차가 아메리칸 드림을 대표하던 시절로부터 100년이 더 지난 지금, 자동차에 대한 애착은 더 이상 미국인의 DNA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 점점 더 많은 가정이 자동차를 공유하고 있으며, 젊은이들도 자동차 구입을 뒤로 미루고 대중교통수단이나 자전거를 이용하며 자동차 공유서비스 집카^Zipcar 제도를 이용하기도 한다. 기름 값이 올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자동차가 교통정체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 자신과 경제의 큰 낭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딕-칸은 세계 최고의 공연장이 몰려 있는 브로드웨이 대로부터 손을 댔다. 대로의 일부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시민들이 서로 만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스포츠와 문화 이벤트가 가능한 공공공간으로 만들었다. 2008년에는 메디슨스퀘어에 새로운 공공공간을 조성한 데 이어, 도심 곳곳에 자전거 전용도로, 안전한 보도, 광장, 쉼터, 녹지 등을 늘려나갔다. 뉴욕시의 자동차 ‘추방’ 프로젝트는 공공 자전거 시스템 시티 바이크 도입에 이어, 브루클린브리지에서 센트럴파크에 이르는 11km도로를 일시적으로 폐쇄해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섬머스트리트 등으로 확대됐다.
사딕-칸의 야심작 가운데 하나가 하이라인 공원이다. 시민의 휴식 공간이자 도시농업의 산실로 거듭난 하이라인은 1934년에 건설된 화물철도용 고가철도를 리모델링한 것이다. 이 고가철도는 1980년 사용이 중지되면서 20년간 처치 곤란한 흉물로 남아 있었다. 1999년 지역 시민들이 보존 운동을 전개하자 이에 자극 받은 뉴욕시가 2004년 국제 공모를 거쳐 2011년 하이라인 공원 1~2구간을 완성했다. 지상 약 10m 높이, 길이 2, 3km의 고가철도가 공원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뉴욕시의 당초 계획대로 철거됐더라면, 고가철도가 있던 자리는 자동차 도로로 사용됐을 것이다.
뉴욕시는 보다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자동차나 건물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녹색 도시를 만들기 위해 30년 미래 비전PlaNYC을 수립했다. 이를테면 앞으로 30년 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0% 줄이고, 나무를 100만 그루 심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300km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나아가 모든 시민들이 공공 영역까지 걸어서 10분 안에 닿을 수 있도록 하고, 자전거 통근자 비율을 현재의 2배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도시 재생을 위한 새로운 길, ‘생태 교통’
세계 곳곳에서 도시가 재발견되고 있다. 국가의 시대는 가고 도시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말까지 들리고 있다. 국가가 국민의 더 나은 미래를 염려하지 않고 초국적 기업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이때, 도시의 미래는 시민이 창조해야 한다. 시민이 도시를 ‘인간을 위한 작품’으로 만들어나가는 상상력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도시를 장악한 도로-자동차를 추방하고 그 자리에 시민-인간이 서게 해야 한다. 인간이 주인이 되는 도시로 가는 길 가운데 하나가 ‘생태교통’^{Eco Mobility}이다.
카 피크처럼 생태교통 또한 생소한 개념이다. 다시 박용남 소장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박 소장은 『녹색평론』(2013년 11-12월호)에서 뉴욕시의 자동차 없는 거리에 이어 경기도 수원시의 획기적 실험을 예로 들며 ‘생태교통을 이용한 마을 만들기’를 소개했다. 생태교통이란 석유 생산 정점과 기후 변화라는 복합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친환경적 이동 형태를 통합한 개념이다. 생태교통은 무동력 이동 수단, 전기 이동 수단, 대중교통 수단, 카 셰어링 등을 연계하는 지속가능한 교통체계로, 결과적으로는 도시 재생의 핵심 축을 담당한다.

널리 알려졌듯이, 2013년 경기도 수원시에서 ‘놀라운 사건’이 벌어졌다. 석유 고갈 시대를 대비해 세계 최초로 자동차 없는 도시를 실험한 것이다. 이름하여 ‘생태교통 수원 2013’. 지난해 9월 한 달 동안 수원의 낙후 지역인 팔달구 행궁동에서 자동차가 사라지고, 대신 미래 도시가 눈앞에 나타났다. 생태특화거리가 만들어졌고, 골목에는 문화예술의 향기가 넘쳤다. 이색 이동수단 체험을 비롯해 쌈지공원이 들어섰는가 하면, 도심텃밭도 조성됐다.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승용차를 완전 배제한’ 국제적 프로젝트. 이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엇갈릴 수 있다. 하지만 수원은 전 세계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오일 피크와 카 피크가 겹치는 이 시기, 에너지 고갈과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총제적인 도전을 한 것이다. 그 도전의 한가운데 도로와 자동차가 있다. 아니, 도시와 시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