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의 <소년이 그랬다>(스테포 난쑤 작, 한현주 각색, 남인우 연출)를 시작으로 2012년의 <레슬링 시즌>(로리 브룩스 작, 한현주 각색, 서충식 연출)과 <빨간 버스>(박근형 작, 연출)에 이르기까지, 어린이청소년연극연구소(2011년 개소)는 최근에 청소년 연극 레퍼토리의 안정적인 운영을 보여준다. 2013년 11월에 백성희장민호 극장에서 공연된 <노란 달>(데이비드 그레이그 작/토니 그래함 연출) 역시 마찬가지다. 작품은 공연되자마자 현장에서의 뜨거운 호응뿐 아니라 대중과 평단의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노란 달>은 상당히 파격적인 청소년 연극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소년범죄인 커플’이다. 남자주인공 리는 우발적으로 어머니의 애인을 살해한다. 평소에 일탈을 꿈꿔온 여자주인공 레일라는 리를 도와 함께 도주한다. 리와 레일라는 리의 아버지 프랭크가 사는 ‘하이랜드’를 찾아서 도시를 벗어나 먼 외곽의 북쪽 마을 산속으로 떠나게 된다.
일견 엽기적일 수 있는 서사가 힘을 얻는 것은 작품이 ‘상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노란 달>은 주인공 리와 레일라를 비롯한 작품의 모든 등장인물이 어리석고 연약한 상처 받은 존재들이다. 비단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 역시 청소년들과 똑같이 고통 받고 불안해하는 모습들인 것이 다른 청소년 연극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리는 우울증에 걸린 엄마와 낡은 임대아파트에 살며 포주가 되기를 희망하는 불량스러운 십대이다. 레일라는 중산층 가정의 자녀이지만, 무슬림으로 사회에 소속감을 갖지 못한 채 실어증 증세에 자해하는 습관이 있다. 리의 엄마는 우울증이 심각한 수준이며, 그녀의 애인인 빌리는 분노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한다. 레일라와 친구가 되는 연예인 홀리는 자기 환멸에 빠져 있다. 리의 아버지 프랭크 역시 알콜중독에 과거에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의 과실에 괴로워한다. 이처럼 작품은 극복되지 않는 슬픔과 지워지지 않는 과거, 반복되고 마는 결함 등에서 비롯한 갖은 상처들을 깊숙하게 들여다본다. 그럼으로써 이들의 실수투성이의 인생에 작은 위로를 건네는 듯이 말이다.

작품의 서사는 서사성을 활용한 연극적 형식을 취해 한결 감동을 더하고 있다. 현장의 반응 및 다수의 리뷰 등에서 인상적으로 언급되며 다뤄지고 있듯이, <노란 달>은 화자가 이야기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배우들은 화자로 존재하며 작품의 서사를 전개시켜가는 동시에 인물이 되어 상황을 재연한다.
이는 최근의 소설낭독공연과 어린이청소년 연극에서 자주 등장하는, 비교적 친근한 형식이다. 특히 서사 전개의 굵직한 역동성과 에너지를 잘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며, 배우의 존재감 및 유연성을 돋보이게 한다. <노란 달>은 무엇보다 리의 아버지 프랭크가 사는 ‘하이랜드’의 환상성 및 신비감을 잘 표현한다. 리와 레일라는 ‘하이랜드’로 도망쳐 사슴을 사냥하고, 가죽을 무두질하며,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리의 아버지가 하는 산지기 일을 돕는다.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에서의 단순한 삶은 인물들을 말없이 보듬어 주는 듯하다.
<노란 달>의 빈 무대는 화자가 서사를 전개해가며 상상으로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무대는 백성희장민호 극장을 넓게 활용한다. 뒷벽을 세우고 옆면은 개방한 채, 언뜻 ‘하이랜드’의 산을 떠올리게도 하는 완만한 구릉의 형태로 바닥이 넓게 깔려 있다. 소재는 나무이다. 노란 계열의 나뭇결의 느낌이 강조되어 편안하게 다가오고 오래 된 듯한 시간성을 전달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단순함이 강조되어 있으며, 배우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한편 배우의 연기만으로 상상의 시공간이 비교적 용이하게 창조될 수 있는 기능적인 무대이다. 빈 공간에는 의자 세 개가 놓여 있는데, 의자는 배우의 연기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며 보다 장면을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높낮이의 변화에 도움을 줘 밋밋한 장면의 호흡을 피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연출은 인물의 감정 표현에 특히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 이는 특히 감정적으로 풍부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청소년 연극의 특성이기도 하다. 서사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툭툭 튀어 나오는 인물의 내면은 <노란 달>의 개성적 측면이자, 이 연극 특유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작품은 ‘십대의 로맨스’의 정열과 순수함, 애틋함, 짜릿함 등이 밀도 높은 감정적 몰입을 유도하며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도록 이끌었다. 서로로 인해 살아갈 동력을 얻는 리와 레일라 커플의 애정은 무척 순결하며 깨끗한 정서를 전달한다. 리와 레일라의 블루스는 A-ha의 음악을 배경으로 달콤하게 펼쳐진다. 연출은 ‘소년범죄인 커플’에게서 놀랍게도 그야말로 십대다운 특유의 정서를 끌어내 표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큰 호소력을 갖는다.
배우들은 자신들의 역할들을 큰 무리 없이 수행하는 듯 보인다. 박지아, 송영근, 오정택, 공예지 네 명의 배우는 모두 화자와 인물의 사이를 비교적 유연하게 넘나들며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다만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들도 있었다. 오로지 배우들 간의 호흡으로 만들어지는 작품의 특성상 뛰어난 앙상블을 보여주며, 작품의 볼륨감 넘치는 입체적 전개를 대개 무리 없이 수행했지만, 배우 넷 모두 화자와 인물의 사이를 오갈 때 다소 불안하게 존재하며 배우로서가 아닌 일상적 모습이 간혹 내비쳐질 때가 있었다. 이는 배우의 무대에서의 존재감을 불안하게 만들며, 특히 작품의 특성상 도드라지게 드러났다. <노란 달>에서 배우들은 철저히 인물로서 내면을 토로하거나, 서사를 전개하는 역할에서는 높은 집중력을 발휘한 반면에, 집중력이 다소 떨어지는 애매모호한 순간들을 보여주곤 했다.

작품은 쓰디쓴 진실에 도달하며 끝난다. 리는 우발적으로 어머니의 애인 빌리를 살해한 후 아버지에게 도움을 얻고 싶어 그를 찾아갔지만, 아버지 역시 과거에 친구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것을 알게 된다. 폭력적 유전 형질이 도돌이표처럼 되풀이 되는 운명으로 드러나 잔인하기만 하다. 그러나 리와 레일라, 프랭크는 진실 앞에서 절망하지 않는다. 프랭크는 경찰에 편지를 보낸 후에 자살하고, 리는 아버지의 주검 앞에서 그의 희생과 사랑 안에서 재생해 자수하자는 레일라의 손
을 잡게 된다. <노란 달>은 한편으로 리와 레일라의 사랑 역시 리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불운하게 끝날 것을 암시하는 한편, 진실 앞에서 한 걸음 내딛는 둘을 보여주며 또 다른 선택지와 결말을 상상하게 한다. 인간애를 비롯해 작품 속의 모든 상처투성이의 존재들을 위한 희망이 느껴진다.
<노란 달>은 외국의 연출가임에도 근래에 보기 힘들게 뛰어난 짜임새와 앙상블을 보여준 점이 특히 놀랍다. 무대미술, 연기 스타일, 음악 등 작품의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어울리며 굵직한 서사의 역동적인 매력, 십대 특유의 호소력 짙은 순수한 정서, 상처에 대한 담백한 시선과 인간애 등을 감동적으로 표현한다. <노란 달>은 가슴을 건드리는 파격적인 청소년 연극이다. 작품은 여느 청소년 연극에서 찾아보기 힘든 ‘소년범죄인 커플’ 주인공을 비롯해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순과 상처투성이의 성인들을 통해, 여태까지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존재들을 유심히 되돌아보게 한다. 이는 다양한 존재들(혹은 주체들)의 등장을 지향하는 청소년 연극의 중요한 특성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