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허식이 너무 만타. 백분으로 추한 얼골을 감츄라고 하는 큰 병폐에 빠진 일이 도 만타. 그 현실을 폭로하 것이 연극이다(현당^玄堂, 「연극과 오인」, 『매일신보』, 1920.7.2).

1902년 협률사^協律社를 시작으로 조선에 서구식 근대 극장들이 세워졌고, 조선인들은 이 낯선 공간에 호응했다. 근대 유비쿼터스^ubiquitous가 구축되어 가는 상황에서 사방을 벽으로 둘러싼, 시선을 한 곳으로 수렴해야 하는 서구식 극장은 조선인들에게 근대적 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였다. 일제말 전까지 극장은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차이를 가르는 종족^ethnicity 공간이었기에, 조선인들의 집단적 공명과 감흥을 경험케 하는 장소로 기능하였다.
문제는 레퍼토리였다. 조선의 연희물은 근대 극장과 충돌하였다. 당시 신문들은 <심청가>, <춘향가> 등을 근대적 가치를 배반하는 “탕자 음부의 이목을 현혹케”하는 공연물이라 비판하였다. 이후 신파극이 등장하였으나 근대의 대중문화 완제품인 영화의 등장으로 인해 휘청거렸다. 이에 신파극은 점점 일본 가정극과 같은 자극적인 내용의 레퍼토리만을 내놓았으며 그 결과, 1910년대 후반에 와서 비판과 함께 몰락을 맞이했다. 조선적인 공연, 대중적 작품들이 비난 혹은 소멸을 당한 시점에서 당시 연극은 어떤 모습을 취하고 무엇을 말해야만 했던 것일까? 이즈음, 신극이 등장하였고 연극에 대한 지식인들의 인식이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서두에 인용된 현당의 글은 연극에 대한 지식인들의 인식 변화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대표적인 글이다. 연극은 그 시작점부터 사회적 문제를 발설해야 하는 책무를 짊어져야 했다. 연극은 1920년대 사회주의를 시작으로, 해방 후 이념대립,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을 통과하면서 동시대의 문제를 발설하는 사회적정치적 미디어로서 나름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1990년대 이후, 연극은 사회문제로부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였고, 2000년대가 도래했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다시금 연극은 사회의 그릇된 병폐를 폭로하기 시작한다.
최근 연극계에 사회적정치적 발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연극들이 심심치 않게 무대에 오르고 있다. 혜화동 1번지의 움직임이 단연 돋보이는데, 재능교육 사태를 무대 전면에 올린 ‘아름다운 동행’, 국가보안법 문제를 극화한 ‘국가보안법’ 등 동시대의 문제를 무대에 올려 관객의 사유와 동참을 촉구하였다. 이들은 앞서 사회참여 연극들이 해온 동시대의 사회적 병폐를 무대화하였다. 그런데 사회적 병폐가 동시대의 문제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은폐와 왜곡으로 점철된 역사의 기술이 반복되는 것 또한 사회의 병폐라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상흔으로서의 역사를 다시 쓰려는 연극적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위안부 문제 다룬 연극이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로 최근 대학로 무대에 빈번히 오르고 있다. 오랜 세월 축척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인식과 정보는 <빨간시>, , <꽃할머니> 등과 같은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연극적 작업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연극이 발언해야 할 일그러진 역사적 사실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많이 남아 있다. 그 중 위안부 문제와 같이 여성의 수난사이자 대문자 역사 기술에 갇힌 기지촌 여성의 모습 또한 다시 쓰기를 기다리는 역사적 문제 중 하나이다.
올해 서울연극제 공식참가작이자 우수상을 받은 <일곱집매>(이양구 작, 문삼화 연출)는 기지촌 여성 문제를 무대에 전경화한 작품으로서, 동맹 속의 섹스가 창출한 그녀들의 삶을 극으로 ‘기록’하였다.

특수 엔터테이너의 탄생, 중층의 억압
여성의 몸은 전쟁을 기록한다. 식민지 시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몸이 그러했다. 해방과 함께 여성의 육체는 전쟁으로부터 해방되는 듯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발발로 다시금 여성의 육체는 전쟁의 상흔을 각인시켜야 했다. 이때 한국 여성의 육체를 훼손시킨 주체는 제국 일본에 이은 미국이란 또 다른 제국이었다. 국가의 헤게모니는 일본 제국에서 한국이 아닌, 미 제국으로 이동한 상황이었다. 한국은 탈식민화되었지만, 여기서의 탈^post은 ‘초극탈피^beyond’가 아닌 ‘이후^after’의 개념이었다(이경원 24 참조).
미군의 성적 착취는 기지촌 여성들의 일상이었다. 그녀들의 차별적 삶은 1969년 닉슨 독트린의 선포로 인해 전환점을 맞이하였는데, 미군을 붙잡기 위해 기지촌 정화 운동이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이때의 정화는 국가가 그녀들을 관리하고 감시함을 의미했다. “한국 여성들에 대한 ‘양키 외국인’의 성적 지배는, 사회적으로는 불명예이지만 국가 안보라는 목적 아래 미군을 한국에 계속 주둔시키기 위해서 참아야 만다고 믿는 ‘필요악’”이었다(캐서린 H.S. 문 29). 국가는 그녀들에게 일종의 민간 외교관이자 특수 엔터테이너로서의 역할을 부여하였다. <일곱집매>는 기지촌 정화 운동이 펼쳐진 전후, 즉 1960, 70년대에 안정리 기지촌으로 흘러온 김순영(김지원 분)과 심화자(김시영 분)의 현재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기지촌은 그녀들에게 불가피한 선택지였다. 가난과 가정 폭력은 그녀들을 기지촌으로 내몰았다. 도망치듯, 동시에 살기 위해 그녀들은 자국의 세계로부터 탈출하듯 빠져나온다. 그녀들의 행보에 반대하거나 저지하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자신의 딸들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미군들 앞에 자국의 남성들은 무력하다. 그러기에 그녀들은 자신의 선택에 죄책감과 수치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그 누구도 그녀들을 비난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기차 칸에서 순영은 자신의 처지와 똑 닮은 화자를 마주한다. 순영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화자가 아닌 화자의 상처와 아픔이다. 자신의 첫정을 미군이 건네준 고마움의 50불과 맞바꾼 그 세계로 순영은 화자를 ‘인도’한다. 화자에 대한 순영의 행동에 죄의식이 옅어 보이는 이유는 화자를 살려야겠다는 의지가 앞서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녀들이 연대하는 방식이다. 당시 하루의 버팀, 생존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그녀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감사하고 소중한 가치였다. 기지촌 클럽에서의 노동은 착취에 다름 아니나, 기지촌 밖 세계에서 경험한 공통의 상처는 그녀들을 일곱집의 자매로 연대해준다. 기지촌 내의 삶만큼 기지촌 밖 세계에서 겪었던 그녀들의 경험은 처절함과 공포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기지촌이 그녀들에게 긍정적 삶의 가치를 제공해주는 공간은 아니다. 미군의 성적 착취와 포주의 금전 갈취, 인종적 차별이 빚어낸 미군의 폭력과 살인 사건, 그리고 그녀들의 육체를 훼손한 얼룩인 성병과 죽음의 위험으로부터 무방비한 성병 검사 등은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공격한다. 하지만 앞서의 것들보다 그녀들을 더 위협하는 것은 기지촌 너머의 공간이 그녀들에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기지촌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려 하지만, 기지촌 내부와 외부의 경계에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은 미군도 포주도 아닌, 딸의 돈을 기다리는 순영의 아버지와 같은 자국의 남성들이다. 이런 점에서 폭력과 무력의 자국 남성들은 다시 한 번 그녀들을 억압하고 착취한다. 양갈보의 딸은 집안의 수치이지만 반드시 필요한 자식이다.
한국과 미국, 그리고 가정과 국가로부터의 억압과 폭력으로 인해 순영과 화자는 기지촌에서 40년 가까이 살아오고 갇혀왔다. 하지만 앞서의 억압과 폭력보다 더욱 막강한 것이 모정^母情이다. 아들 마이클(유명상 분)을 위해 자신의 삶을 죽음으로 위장한 순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어미인 자신을 찾아주기를 바라는 순영. 모정이란 변형된 억압으로 인해 순영은 기지촌을 영원히 떠나지 못한다. 순영(=기지촌 여성)의 삶은 미군과 자국, 국가와 가정이 빚어낸 중층의 억압, 그리고 모정의 아픔으로 인해 여전히 안정리 기지촌에서 지속되고 있다. 극 초반 방 안에서 아무 말 없이 죽어간 순이 할머니처럼, 조용히 잊혀져갈 위기에 놓여 있는 그녀들의 삶을 <일곱집매>는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기록/진술의 딜레마
<일곱집매>는 기지촌 여성의 삶을 미국에서 공부하는 고하나(최설화 분)란 인물을 통해 기록한다. 고하나의 박사 논문 주제는 한국의 기지촌 여성 문제이다. 그녀는 박사 논문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안정리 기지촌에 위치한 순영과 화자의 집에 방문한다. 그녀의 방문 목적은 순영의 기억, 지난 과거의 기지촌 여성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순영의 기억은 외부로 나오길 거부한다. 기억은 현재와 지난 과거를 잇는 정신적 행위이며 과정이지만, 한편으로는 억압되고 잊혀진 진실이다(정진성 15-44 참조). 기억을 진술하는 자에게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용기는 기록자에 대한 믿음과 유대로부터 생겨난다. 기억에 내제된 억압과 함께 순영은 왜 지금/여기에 자신의 기억의 진술이 필요한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그녀는 지금껏 자신의 기억을 발설하지 않고 나름의 삶을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사회적 발언을 하는 연극은 관객에게 무대에서 보이는 상황 혹은 현상에 대한 동감과 참여를 요구한다. 나아가 지금껏 관극한 것들이 극장 밖에서 개선되기를 관객에게 촉구한다. 그런데 <일곱집매>에서는 관객들이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동감하는 것 이상의 참여 방법을 찾기 힘들다. 관객은 이 작품에서 순영이 기억을 진술하기 전까지 기지촌 여성들의 일상을 관망할 뿐이다. 이 작품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일곱집매>는 무대에서 그려지는 현상을 강요하지도, 그렇다고 관객에게 힘주어 현상 개선을 촉구하지도 않는다. 앞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작품들은 다양한 연출 방식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아픔을 무대화하였다. 하지만 기지촌 여성의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상황이 다르다. 다양한 연출로 그녀들의 삶을 그려내기에는 기지촌 여성에 대한 인식과 관객이 갖고 있는 정보량이 위안부 문제와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 그동안 대부분의 미디어들이 그린 기지촌 여성의 모습은 동정^同情의 성적 육체라는 스테레오 타입^stereotype의 여성들이었다. 그녀들의 삶은 사연으로 전락하고, 이 사연마저도 그 실체를 파악하기 힘들다. 이런 시점에 필요한 것은 기지촌 여성의 기억과 일상의 기록이다. 그런데 이 기록의 행위에서 한 가지 위험한 점이 노정된다. 그녀들의 기록이 고하나란 지식인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스피박은 그녀의 저서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에서 서발턴^subaltern 즉, 하위 주체 여성들이 공시적 기록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이들을 재현하려는 지식인들의 “자비로운 충동이 실제로는 서발턴의 목소리를 전유하고, 그럼으로써 그들을 침묵시킨다”라며 하위 주체를 재현하려는 지식인들의 태도를 경계한다(스티븐 모튼 109). <일곱집매> 또한 이러한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작품은 이런 우려의 순간을 차단하기 위해 고하나의 가족사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기지촌 문제를 연결시켜 지식인 담론이 갖는 위험으로부터 비껴가기를 시도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식인의 ‘자비로운 충동’을 차단하기에 앞서 작품의 흐름을 흩트려 놓는다. 담담하게 기지촌 여성의 일상과 문제를 풀어가는 기록의 과정에서 극단과 굴곡의 가족사가 과잉된 감정이 삽입되다 보니, 오히려 이러한 고하나의 모습이 지식인 담론을 감추려고 한 포즈 내지 장치로 읽힌다. 이 작품에서 빛을 발하는 부분은 그동안 고정화된 이미지로 그려진 기지촌의 여성의 일상을 객관적 모습에 가깝게 ‘기록’의 관점으로 풀어냈다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또 하나의 빛나는 부분은 기지촌 여성들의 현재적 모습을 형상화한 무대와 장치이다.

밑동 잘린 나무, 부조리의 연쇄
<일곱집매>의 무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객석에서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방 안과 배우들의 연기가 진행되는 방문 앞과 평상 그리고 마당, 마지막으로 무대에서 전혀 보이지는 않는 골목이 이 작품의 공간적 배경을 이룬다. 이 중 흥미로우면서 문제적인 공간은 비가시적인 방 안과 골목이다.
방 안은 등장인물들이 거주하는 곳이면서, 기지촌 할머니들의 죽음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극 초반, 순이 할머니는 방 안에서 쓸쓸히 죽는다. 심지어 그녀는 죽은 후로부터 며칠이 지난 시점에 발견되었다. 관객들은 그 죽음의 현장을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만 전달받는다. 그 죽음의 실체를 관객들은 볼 수 없다. 이후 밝혀지는 기지촌 할머니들의 죽음은 객석에서 언뜻 보이다 금세 닫히는 침묵의 방 안과도 같다. 죽음의 실체는 있으되, 그 실체를 파악하기에는 방 안은 너무도 깜깜하다. 그녀들은 외로운 삶을 살아갔고 우리들은 그녀들의 죽음에 무지했다. 외로이 죽어가는 기지촌 여성들의 죽음과 조문객 없는 장례식장 풍경을 언급하면서 교회라도 다녀볼까 하는 순영의 대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외로움과 싸워야만 하는 그녀들의 아픔이 전달된다. 기지촌에서의 죽음은 이렇게 조용히, 외롭게 찾아온다.
반면 비가시적 공간인 골목은 기지촌 여성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상징한다. 그곳에는 한 발짝 한 발짝 집을 향해 걸어오는 김훈남 할머니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에는 기록해야 할 말들, 남겨야 할 진실들이 그녀에게는 너무도 많다. 하지만 작품은 그녀를 결코 무대에 등장시키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들은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김훈남 할머니의 모습처럼, 존재는 인식하되 보이지는 않는 실체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닐까. 이보다 더 문제적인 것은 그녀들의 삶을 함부로 동정하는 태도이다.
순영은 동네를 돌아다니는 굶주린 개들을 위해 골목에 날고기를 던져준다. 개들은 바닥에 떨어진 상한 고기를 먹고 죽는다. 순영은 배고파하는 개들이 불쌍해서 고기를 주었을 뿐이지만 그 결과는 참혹하다. 불필요한 동정은 동정 받는 자들에게 상처를 남긴다. 오히려 외면보다 더 한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 무지에서 오는 동정은 기지촌 여성들을 곤경에 빠트린다. 이러한 동정의 시선이 만들어낸 기지촌을 향한 기웃거림은 오히려 왜곡되고 부정적인 기지촌의 이미지를 유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그 접근 방식이 무지하고 일차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선들이 조작한 이미지에는 성sex이 눌어붙어 있을 공산이 크다. 개들이 죽었을 때, 가장 합당한 처사는 그 개들을 그들이 가야할 자리로 옮겨놓는 것이고, 이보다 더 현명한 태도는 개들이 썩은 고기를 먹지 않도록 끊임없는 관심을 보이는 것이다.
한편 <일곱집매>의 무대 중앙에 위치한 나무는 단연 주목되는, 주목할 수밖에 없는 무대 장치이다. 이 나무는 밑동이 잘린 채 공중에 떠 있다. 땅에 뿌리 내리지 못한, 그러나 우리의 눈에 버젓이 존재하는 이 나무는 기지촌 여성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이 작품이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 주제인 객관적인 시각으로 그녀들의 삶을 바라봐주길 바라는 소망은 이 밑동 잘린 나무에 투사되어 있다.
이 나무의 불안한 모습은 현재 기지촌에서 자행되고 있는 부조리한 모습과도 닮아 있다. 이 불안은 써니(나하연 분)란 인물을 통해 구체화된다. 한국은 더 이상 미군을 상대해 살아갈 만큼 가난한 국가가 아니다. 하지만 미군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기지촌에서의 성적 착취는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이 순간 한국은 지난 과오를 망각한다. 한국은 가난한 나라의 여성들을 기지촌으로 유입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난 과거에 기지촌의 한국 여성에게 행했던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작태를 그대로 반복 재현한다. 밑동 잘린 나무가 땅에 뿌리 내리기엔 아직 시기상조인가. 기지촌의 여성에 대한 억압과 폭력은 변종의 형태로 지속된다.
∴
<일곱집매>가 보여준 사회적 병폐를 드러내는 방식은 어찌 보면 지난한 작업일 수 있다. 표현하고자 하는 문제에 대해 힘주어 주장하지도, 그렇다고 드러내 놓고 감정에 호소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기지촌 여성의 지난 삶과 현재의 부조리한 모습을 ‘기록’할 뿐이다. 여기서 이 작품의 보여준 연극으로서의 미덕과 기록의 윤리를 찾을 수 있다.
“매체 없이는 인간의 어떤 행위도, 따라서 기억도 불가능하다”고 한다(전진성 60). <일곱집매>의 경우는 연극이란 매체를 통해 기지촌 여성의 아픈 지난 과오를 기억하고 기록한다. 이와 같은 작업의 목표는 과거극복이다. 역사적 상흔을 치유하고 어두운 지난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대에 오른 문제에 대해 지속적이면서 반복적인 관심과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중의 관심을 희구하는, 아직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오르지 못한 사회적역사적 문제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연극이 이와 같은 문제와 작업에 집중할 때, 연극의 사회적 발언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며 <일곱집매>에서 밑동 잘린 나무 또한 온전히 땅에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이경원, 「탈식민주의의 계보와 정체성」, 고부응 엮음, 『탈식민주의』, 문학과지성사, 2003.
전징성,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휴머니스트, 2005.
스티븐 모튼, 이운경 역, 『스피박 넘기』, 앨피, 2005.
카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외, 태혜숙 역,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그린비, 2013.
캐서린 H.S. 문, 이정주 역, 『동맹 속의 섹스』, 삼인, 2002.

수/상/소/감

이주영

평론가으로서의 올바른 시각과 임무로 연극 평론만이 가질 수 있는 장르적 특성이 살아 있는 글쓰기를 지향할 것

총 5편의 응모작이 있었다. 지나치게 이론적인 글쓰기도 있었고, 너무 안이한 글쓰기도 보였다. 「왜곡된 역사, 기록의 윤리」는 이론적 배경이 탄탄하고 문장력도 좋았다. 단, 평론의 특성상 논문과는 달리 가독력이 높아야 하는데 이 부분이 좀 아쉬웠다. 「뮤지컬의 작품성은 노래인가 방법론인가」는 꼼꼼하게 대상작들을 거론한 것은 좋았으나, 좀 더 분석적이고 독창적인 해석이 아쉬웠다. 「우리의 공연문화를 구조주의적 관점에서…주체로의 모색…」은 소략한 내용의 공연 안내문 같다. 보다 분석적이고 독창적인 해석, 그리고 평론적 글쓰기 등이 필요해 보였다.
「몰락사(史), 비극이 아닌 희곡으로-공연 <벛나무 그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한 가문의 몰락사(史)를 보고」는 체홉의 작품을 중점적으로 분석한 것이 좋았다. 다만 작품 자체에 대한 보다 독창적이고 유의미한 해석이 부족해 보였다. 「혐오와 두려움 사이, <메데이아> 다시 읽기」는 여러 버전의 <메데이아> 공연에 대한 글이다. 문장력도 좋고 분석 태도가 성실해 보였으니, 너무 작품평들을 나열하는 것 같은 산만한 글쓰기가 아쉬웠다.
박명진(중앙대 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