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탄생, 풍경의 발견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울창한 숲을 처음 밭으로 개간한 사람의 어깨가 얼마나 우쭐되었을지는 상상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사실 이른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아마존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된 여유는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주 오래도록 인간에게 자연은 경외를 넘어서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중세 유럽만 하더라도 자연은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신의 영역이었다. 독일의 종교 개혁자이자 신학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산은 인간의 타락에 대해 신이 내린 징벌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그 두려움의 정도를 미뤄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그로부터 머지않아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르네상스 시대의 급변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현격히 바꿔 놓았다. 넓은 들에는 공장이 들어서고, 공장 주변에는 높은 빌딩들이 들어섰다. 나무와 풀이 우거진 시원한 들은 사라졌고 공장에서 내뿜는 연기는 새들을 멀러 쫓아 버렸다. 자연과 분리된 인간의 공간, 도시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이러한 도시화를 기점으로 인간은 자연과 멀어지게 된다. 언제든지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자연에서 독립하게 되면서, 인간은 처음으로 자연을 감상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자연이 가진 절대적 위상을 추락시켜 인간은 바야흐로 풍경을 탄생시킨다.
보통 풍경이라고 번역되는 랜드스케이프^Landscape는 ‘경작된 땅’을 의미한다. 문화^Culture의 의미가 라틴어 ‘Cultura-경작, 재배’에서 왔듯이 랜드스케이프도 자연 상태에 있는 땅과 구분되는, 인간에 의해 가꾸어진 자연을 가리킨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넓은 들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평온했다. 치열한 생활 터전으로서가 아닌 아름다운 배경으로 존재하게 된 풍경이 그림의 소재가 된 것도 이때부터이다.
최초의 풍경 화가라 할 수 있는 요하임 파티니르^{Joachim Patinir, 1485년경~1524}의 그림 <바위 풍경 속의 성 제롬>을 보면 좌측 하단에 성 제롬이 있는 동굴 뒤로 마을과 들판, 산길이 묘사되어 있다. 사람이 사는 평온한 시골 풍경이다. 파티니르의 풍경화는 산업화가 시작된 초창기에 그려졌기 때문에 완벽하게 종교화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의 작품에 황야에서 고독한 삶을 사는 성 제롬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러한 까닭이다. 하지만 당시 도시인들은 파티니르의 작품에 등장하는, 자연에서 은둔자로 살아가는 성 제롬의 모습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꼈다고 한다. 파티니르는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을 주로 그렸다. 그는 사물과 전경을 따로 묘사했고 인물은 한쪽 귀퉁이에 작게 그려 넣었다. 사물은 정면으로 묘사해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 맞추었고, 대신 전경은 위에서 내려다보게 그려 넓게 감상하도록 했다.
풍경의 발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가가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이다. 폴 세잔이 그린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 지역 동쪽에 위치한 생트 빅투아르 산^{La Sainte-Victoire}은 유명하다. 폴 세잔은 생트 빅투아르 산을 60번 이상 그렸다. 세잔은 자연 속에서 원기둥이나 구와 같은 단순한 기하학 형태를 발견했다. 산이 가진 상징성과 수려한 자연 경관을 관찰하며 현장에서 그림을 그렸다. 생트 빅투아르 산을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하고, 색채의 면을 이용해 지형을 보다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평평한 깊이라는 공간적 효과에 도달했다. 그는 개별 디테일보다 그림의 전체적인 효과에 관심이 있었다. 디테일은 색채와 형태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산에 대한 자신의 시각을 그림으로 옮겼다는 데 있다. 세잔이 그린 풍경은 외부의 자연이 아니라 자신의 미적 관점을 통해 표현해 낸 것이다. 풍경이 풍경미^風景美가 되는 순간을 폴 세잔은 우리에게 보여 주었다.
당시 풍경이 회화사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것은 풍경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풍경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그리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해 풍경은 모두에게 공통되게 동시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인간은 풍경을 욕망하게 된다. 어떤 정경과 모든 상황에서 인간은 풍경으로 기록할 만한 한 순간을 포착하고자 노력한다. 그리하여 풍경은 배경으로, 인간을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그리고 자연을 재현하거나,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거의 우연히 발견되는 풍경은 점차 인간의 기획과 의도 하에 조성되고 만들어지게 된다. 도시 안에서 바로 내 곁에서 말이다.

풍경의 미술, 공공미술
풍경이 풍경화로 남겨지듯, 자연을 대상으로 한 인간의 욕망은 차츰 예술을 대상으로 변모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관한 염원은 도시를 사는 사람들에게 미술로 채워진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인간을 둘러싼 풍경으로 존재케 하는 수단으로서 미술은 예술의 그 어떤 장르보다 비교 우위에 놓이는 까닭이다. 눈에 보이는 실체를 가졌고 시공의 한계를 제법 초월하며 결코 멋대로 사라지지 않음으로 충분하다.
이 시점에서 도시의 풍경을 만드는 중요한 매개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공공미술이다. 서양의 경우, 1960년대 후반부터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영국의 미술 행정가 존 윌렛^{John Willet}이 1967년 『도시 속의 미술^{Art in a City}』이란 책에서 처음으로 ‘공공미술’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미술이 캔버스가 아니라 도시 공간 속으로 들어간 것이 공공미술인 것이다. 장소가 가진 역사와 문화, 성격을 고려한 적절한 작품 선정과 배치가 도시에 총천연색 생명력을 불어넣는 결과를 가져와 도시민에게 아름다운 상상력을 선물하게 된다.
도시의 비극적 성장을 보완하는 효과적인 장치로서 공공미술의 중요성은 꾸준히 강조되고 있다. 공공미술의 대두는 인간의 자연 파괴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한 산업화는 거대한 도시를 만들게 되었다. 퐁피두센터를 건립한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는 현대 도시의 심각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도시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았던 적은 없었다. 1950년과 1990년 사이 전 세계의 도시 인구는 2억 명에서 20억 명으로 10배 증가했다. 결국 도시가 미래 문명을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도시는 전 세계 에너지의 3분의 2를 소비하고 적어도 4분의 3에 달하는 폐기물을 내놓는다. 대부분의 공산품이 도시에서 생산, 소비된다. 점차 도시는 자연에 기생하게 되었다. 도시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세계를 고갈시키는 무자비한 소비자이자 오염원인 셈이다.¹⁾
리처드 로저스의 지적처럼 끝없이 팽창하는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안해지면서 1960년대 말 미국과 유럽의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잃어버린 자연, 멀어진 땅을 미술의 주제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대지미술^{Land Art}, 환경미술^{Environmental Art}, 생태미술^{Ecological Art}이다.
미술가가 적극적으로 도시 환경, 도시 경관에 관심을 가지면서 공공미술도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1960년대 미국의 도시들이다. 수잔 레이시가 그의 저서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에서 밝힌 것처럼, 1960년대에 쇠퇴 및 인구 감소를 경험하던 미국 도시들이 기업의 후원을 받아 예술 작품을 공공장소로 끌어내 장식했다. 폐허가 된 공간을 예술 작품을 이용해 역동적인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시도였다. 사각의 건물들 사이에 색다른 모양의 조형물을 배치해 오래되고 낙후된 풍경을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시도는 1970년대 말, 교외로 나갔던 인구를 다시 도시로 불러들이는 효과를 낳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미술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88서울올림픽 즈음이다. 당시 세계대회를 앞두고 도시 경관을 신경 쓰면서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이 제도를 근거로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큰 건물 앞에 조각품을 세우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공공미술을 문화, 예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행정적으로 받아들인 폐단에 대한 지적이 난무했다.

거리에 미술이 넘친다. 건물마다 미술품 하나씩을 끼고 있다. 대중과 예술의 거리가 어느 때보다 가깝다. 작품과 쉽게 눈을 맞추고 대화를 나눈다. 길에서 예술품을 만나는 일이 잦아진 것이다. 생활은 그만큼 풍요로운가? 도시의 격조가 높아지고 시민들의 미의식 또한 고양되는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유는 타율의 예술에 있다. 예술이 법에 의해 강제되기 때문이다. 길에서 만나는 미술품의 대부분은 ‘1%법’이라고 일컬어지는 문화예술진흥법의 산물이다. 이 제도의 목적은 도시 생명력이다. 사각형 콘크리트 건물 숲에 예술의 신선한 공기를 주입해 활기를 불어 넣자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비 가운데 일정 비율을 예술품 장식에 썼는지 확인할 수 있을 뿐, 제도 자체의 목적인 ‘생명력’을 검증할 방법이 없다. 작품은 건축주의 이해, 브로커의 농간을 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작품으로서의 조형물은 제품으로 전락한다. 작가의 자유로운 영혼이 빚어내기보다 공기와 가격에 맞춰 마구 생산해낸다.²⁾

무분별한 공공미술의 행정 전시는 철학의 한계를 여러 실제적 문제로 드러냈다. 부산 사하구 을숙도 조각공원에 있는 독일 조각가 헤르베르트 브링크만 아나톨이 만든 작품 <집>은 감정가 12억 6,000만 원이나 되는 작품이었지만, 이를 설치한 뒤 관리를 잘못해 급기야 철거를 결정했다. 조형물 곳곳이 부식되어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다는 이유였다. 또한, 공공미술 작품이 공간을 공유하는 모두의 자산이란 인식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철거하는 사례들도 있었다.
2003년에는 이동기, 강영민 작가가 서울 을지로3가 지하철역에 그린 벽화가 시민들의 거부반응으로 사라져 버렸다. 2006년 서울시립미술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서울랩소디>의 영상 일부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의 홍보 동영상으로 대체돼 한바탕 소란이 일었던 적도 있었다. 2007년에는 창원시청 외벽에 설치한 미술작가 최정화의 <행복한 실뜨기>가 ‘무당집 같다’는 시민들의 항의로 철거되기도 했다. 철거 전까지 이 작품은 ‘세계적인 설치작가 최정화의 시청 건물 외벽 설치는 그간 지방도시에선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작업’이며, ‘시청사라는 도시 권위의 상징적 건물 외벽을 예술가의 창의적인 작업 공간으로 제공한 진보적인 문화예술 사례’로 소개되었다.
2010년에는 도라산역에 있던 작가 이반의 벽화가 작가에게 한 마디 통보 없이 철거되었다. 작가 이반은 통일부의 요청으로 2005~2007년까지 도라산역 통일문화광장에 벽화를 그렸다. 한용운의 생명사상을 형상화한 14점으로 구성된 이 벽화는 길이 97미터, 폭 2.8미터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이었다. 통일부는 관람객이 어둡고 난해해 이해하기 어렵고, 민중화 같다는 반응을 보이자 일방적으로 작품을 내렸다.
작품 철거로 대변되는 치명적 실패 사례는 우리나라 공공미술이 얼마나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차원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방증한다. 도시 풍경을 아름답게 하겠다는 정치 구호에 다름없는 목적을 달성시키고자 애쓴 탓에 도시 안에서 삶을 일구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고려는 뒷전이었다. 그 소홀함은 도시와 사람의 관계성을 등한시한 탓이었으며 또한, 공공미술을 미술품의 공간 점유 정도로 인식해 사업을 진행하면서 생긴 문제였다. 무엇보다 시민의 참여 없이 일방적인 관 주도로 공공미술을 시작한 탓이 크다. 작품과 작가의 유명세에 관한 집착만 있었을 뿐 작품이 놓이는 자리나 주변 환경,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도시 풍경의 주체인 사람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결정적이다.

공공미술, 또 하나의 시각
풍경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자연과 그 자연을 보는 사람 사이의 일정한 거리에서 생성되는 이미지이다. 나아가 보는 사람에 따라 자연은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질 수 있으며, 다양한 반응들은 개인의 독특한 추억이나 기억으로 남겨진다. 공공미술이 단순히 미술품의 배치나 나열로 여겨져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공공미술 안으로 사람을 끌어들여 개인의 삶 속으로 미술이 들어갈 때 공공미술의 가치는 빛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흥국금융그룹 사옥에 놓인 조나산 보로프스키의 <망치질 하는 남자^{Hammering Man}>라는 키네틱 조각 작품이나 청계천에 놓인 팝아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와 코샤 반 브루군의 공동작업인 작품 <스프링^{Spring, 샘}>보다는 서울숲에 설치된 임옥상의 <상상, 거인의 나라>, 서울시 신청사에 설치된 전수천의 <메타서사–서벌>, 충북 청원군 오송생명과학단지에 있는 샘표 발효전문연구소 우리발효연구중심이 더욱 가치 있는 공공미술이라 할 수 있다.

건물의 아이덴티티를 설정하는 공공미술 작품으로 흥국금융그룹 사옥에 놓인 조나산 보로프스키의 <망치질 하는 사람^{Hammering Man}>은 뉴욕에 처음 설치된 뒤 세계에서 일곱 번째,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지난 2002년 설치되었다. 높이 22미터, 무게 50톤인 이 작품의 특징은 망치를 든 오른팔이 쉼 없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한 번 왕복하는 데 약 77초가 걸리고 하루에 500번 정도 망치질을 한다고 하니, 시간에 맞춰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제스처이다. 서울시는 2008년 이 작품을 약 3미터 가량 인도 쪽으로 옮겨 근처에 시민들을 위한 휴식처를 만들어 놓았다. 이 작품은 흥국금융그룹 건물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공공 공간에 세운 공공미술 작품으로 청계천에 놓인 팝아트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와 코샤 반 브루군의 공동작업인 작품 <스프링^{Spring, 샘}>을 들 수 있다. 2006년 9월 청계천 복원 1주년을 기념해 청계천의 시작점인 청계광장에 세웠다. 높이 20미터, 폭 6미터, 무게 9톤, 제작비 34억 원의 파격적인 규모로 KT가 만들어 서울시에 기증한 이 작품은 다이내믹하고 수직적인 느낌을 연출해 청계천의 샘솟는 모양과 문화도시 서울의 발전을 상징하고 있다. 이들 두 작품의 공통점은 공간과 미술의 만남 정도의 의의를 제외하면 다른 특성을 발견할 수 없다. 처음부터 공간의 역사성, 생태성, 환경성은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거나 크게 중요하게 거론되지 않은 인상을 준다.
반면 임옥상의 어린이 무장애 놀이터 <상상, 거인의 나라> 프로젝트는 대중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고 있다. 서울숲 숲속놀이터 옆 250평 규모로 지어진 이 놀이터는 놀이터 역시 공공미술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장애와 비 장애 관계없이 모두가 함께 이용하고 즐길 수 있는 화합의 무대로 설계되었다. 놀이터 중심에 우뚝 선 거인은 땅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을 상징적인 정글짐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천적 관계인 뱀과 두꺼비를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거인의 이야기를 담아 아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마련하였다. 작가는 놀이와 예술을 접목시킨 공공미술을 지향하며 작품을 제작했다. 도시 공간에서 예술과 대중이 교감할 수 있도록 공공미술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가 담긴 작품이다. 작가는 아이들이 작품과 어우러지고 미끄럼을 타고 노는 광경을 연출해 대중과 함께 호흡하며 완성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다.

서울시 신청사에 설치된 전수천의 <메타서사–서벌>은 작은 방울들이 모여 큰 구름과 나선상으로 일어나는 바람을 만들어 내듯, 시민들의 참여와 창의가 모여 시민이 행복하고 세계가 사랑하는 서울의 새로운 서사와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작가의 메시지를 조형적으로 새겼다. 로비 공간에 설치되었다는 것이 특이한 이 작품은 길이 50미터, 높이 27.5미터의 수직 녹화벽면을 이루고 있다. 또 길이 40미터, 높이 24미터의 물 회오리 줄기가 에스컬레이터를 휘감고 있어 그 사이를 지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작품 속을 돌아다니게 하는 환상을 제공하기도 한다. 물과 생명의 순환, 그리고 신화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물이 끊임없이 대기와 지표, 해양을 순회하며 비, 구름, 수증기, 눈 등으로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서울이라는 공간이 가진 지역성, 역사성,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순환주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충북 청원군 오송생명과학단지에 있는 샘표 발효전문연구소 우리발효연구중심은 건물 자체를 공공미술 작품으로 만들었다.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활동과 감성을 고려해 연구소의 주요 회의실과 복도, 외부 공간을 작가들이 새롭게
디자인하고 작품화했다. 숲으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발효연구중심 건물은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건물 외벽은 모두 강화유리로 제작돼 건물 밖에서도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인다. 1층 정문은 메주를 띄우는 상자인 제국 틀 등 각종 미술작품이 전시돼 있으며, 다양한 색상의 방석과 의자, 카페를 연상시키는 휴게실들이 구비돼 있어 흡사 아트 갤러리를 방불
케 한다. 연구실과 사무실이 있는 2, 3층 복도 벽면에는 벽화를 그려 놓았다. 기업의 생산성을 고려한 공공미술인 만큼 연구소가 딱딱한 업무 공간에서 벗어나 일의 즐거움을 찾고 창의력을 도모할 수 있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했다.

공공미술의 진화, 마인드마크

모든 도시는 복잡한 쪽으로 어깨가 기운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복잡한 탓이다. 우리의 도시 역시 그 고단하고 치열한 삶에 자리를 마련해 주고자 어쩌면 지금껏 소란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니 도시의 복잡함은 사람과 삶을 구획하는 질서와 이해의 뒤엉킴으로 고스란히 환원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며 늘어난 인구의 대부분은 도시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바꿔 말하면 도시는 과거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팽창해나갈 것이 분명하다.³⁾ 부수고 짓고 부수고 짓고를 여러 번 반복하며, 어제의 삶을 아스팔트 아래 묻고 오늘의 삶을 그 위에 봉분으로 세우는 것이 도시에서의 삶이다. 회색빛 콘크리트와 검은색 아스팔트로 뒤덮여 있는 매일의 도시 안에서 사람들은 거의 유일하게 공공미술을 통해 아주 잠시 세상살이의 소란스러움에서 벗어나 위안을 얻게 된다.

자유로운 공공 공간은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굳건히 지켜져야 한다. 우리는 공공 영역이 학교, 대학, 시청, 쇼핑센터와 같은 반사적 시설들을 포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하며, 이 공간은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하고 엄격한 기준을 갖고 계획되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공간을 사적으로 점유할 때에도 공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애석하게도 오늘날 우리는 자유롭고 문
명화된 도시가 아닌 분열되고 야만적인 도시를 건설하고 있다.⁴⁾

도시를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여기는 얄팍한 생각 안에는 삶의 무게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은 우리의 초라한 발자취가 화려한 빌딩 아래로 사라져도 그 순간의 진실이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끝내 믿는, 낭만적인 존재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공공미술은 이제 본격적으로 ‘랜드마크’의 차원이 아닌 ‘마인드마크’의 차원으로 진화해야 한다.
풍경은 감상의 대상을 넘어 경험을 제공하고 추억을 만들어내는 매개가 되고 있다. 이것은 풍경을 대하는 인간의 생각과 태도에서 기인한다. 사람들에게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영원히 그곳을 기억할 뿐만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언제고 다시 찾는 장소가 되는 것. 이것이 토포필리아^Topophilia이다. 토포필리아는 희랍어로 장소를 뜻하는 ‘토포^Topo’와 사랑을 의미하는 ‘필리아^Philia’를 합쳐서 만든 조어로 ‘장소애^場所愛’라고 번역할 수 있다. 중립적인 공간이 한 개인의 감정이 묶이고 사유가 머무는 장소로 변하는 순간과 계기에 대해 공공미술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공미술은 겉으로 드러나는 시각적 아름다움보다 속으로 품고 있는 내면적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 단순히 공간을 예쁘게 꾸미는 도구나 감상하는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특별한 조형물이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공공미술이 먼저 대중에게 다가가고, 대중이 공공미술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술과 사람이 서로 교감할 때, 삶이 예술이고, 삶 속에 미술이 있을 때 공공미술의 가치는 높아질 것이다. 미술이 삶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작품은 하나이지만 그 작품과 교감하는 개인에 따라 다양한 상상력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삭막한 도시가 아니라 이야기가 가득한 도시로 만드는 매개가 공공미술인 것이다.
공공미술 작품이 세워지는 곳은 도시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어야 한다. 공공미술이 랜드마크를 만들어 내는 단계를 넘어 개인의 삶 깊숙이 들어가 생활의 일부가 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마인드마크가 되었을 때, 도시 풍경은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변모할 것이며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질 또한 보장될 것이다. 그동안 공공미술은 모두의 것이었지만 누구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공공미술은 모두의 것이자 나의 것이 된다. 그것이 도시 안에서 일상성에 함몰되어 살아가는 도시인이 예술을 바람직하게 향유하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풍경의 미술인 공공미술은 거리를 예쁘게 만들기 위해서 태어났지만 그 지향점은 그곳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에 있다.

수/상/소/감

이 근 욱

반 고흐의 구두 한 켤레를 빌려 신은 것처럼 낡고 헤지도록 걷고 또 걸을 터

반 고흐의 구두를 선물 받은 기분이다. 구두는 낡았다. 한 생을 걸어 온 이의 힘겨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구두가 헤지도록 걸어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삶이 어떤 것인지 생각한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걷고 난 뒤의 휴식이 함께 떠오르는 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생각해 보니, 나의 인생은 AE-1 카메라에서 시작되었다. 뷰파인더 안으로 들어오는 세상과의 조우가 마냥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햇볕을 받아 누렇게 반짝이는 갈라진 흙담과 해질녘 붉은 노을이 걸린 앙상한 미루나무에 매료되었다. 그저 아름다웠다는 이유 말고는 다른 할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사라지는 풍경을 좇아 마구 셔터를 누르고, 흩어지는 말을 견디지 못해 글을 썼다. 이른 새벽 마당을 뒤덮은 흰 눈을 보고,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그림자 긴 아이를 보고 나는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치고 반갑지 않은 게 없었다. 반가움이 커 마음에 난 문을 닫을 수도 없었다. 내 청춘은 늘 그렇게 밖으로 향한 문을 오가며 채워졌다.
세상 눈 두는 곳곳에서 아름다운 상상이 이어졌다. 나침반도 지도도 가지지 못한 내 발걸음이 어느새 그림 곁을 서성였다. 벽에 걸린 그림, 어느 방구석에 놓인 도자기, 공원을 홀로 지키는 조각품에서 저마다의 크고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게 그림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귀로 듣는 것임을. 그리고 이제 나는 그 목소리에 내 숨을 더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이다. 그림의 전기수^傳奇叟가 되어, 나만의 독법으로.
예술의 마당을 내 삶의 터전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누구나 알만한 기업의 로고가 박힌 명함 대신 무슨 일을 하는지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잡지편집인, 문화기획자, 아트디렉터의 명함을 가지고 말이다. 이번 수상으로 나는 미술평론가라는 새로운 명함을 얻게 될 터이다. 이 명함은 내 삶의 방향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해 보인, 자기 확신의 부상이다.
반 고흐는 아를의 넓은 평야를 낡은 구두를 신고 걸었다. 걸을 이유가 없었다면 무거운 화구를 짊어지고 구두 한 켤레에 몸을 의지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반 고흐의 구두를 기꺼이 빌려 신을 생각이다.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구두가 더 낡고 헤지도록 걷고 또 걸으려고,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소중한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많은 가르침을 주신 성공회대학교 문화대학원 스승님들께도 머리 숙여 인사를 올립니다. 어렵고 먼 길을 함께한 벗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또한 부모님과 가족들에게도 깊은 사랑을 보냅니다. 많이 공부하고 오래 쓰겠습니다.

미술비평상 심/의/평

‘풍경-공공미술-랜드마크-마인드마크’의 네 개 키워드로 랜드마크를 넘어 마인드마크로 진화해야

올해 제6회 플랫폼 문화비평상에 응모한 시각예술분야 아티클은 총 아홉 편이다. 주지하듯 문화비평상은 격월간 문화비평지 『플랫폼』이 침체된 문화비평계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지난 2008년부터 상을 제정한 뒤, 매년 신선한 가능성을 가진 신진비평가들을 발굴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비평상이 본격비평을 추구하는 전문 비평상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서인지 공모에 참여한 아티클이 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갖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러한 현상이 시각예술 장르만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음악, 공연, 미디어 분야 전체에 걸쳐서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평은 그것이 미술이든 음악이든, 공연, 미디어 등 그 장르가 다를지라도 비평적 글쓰기로서 문학의 한 영역을 이룬다. 예술작품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기본적인 인문 지식뿐만 아니라 문학적 글쓰기가 수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예술사, 예술학, 철학(미학), 사회학, 역사학에 관한 풍부한 인문학적 자양분을 습득하되, 그것의 통섭적 견해와 비평적 안목으로 날카로운 글쓰기를 수행하는 것이 곧 비평이기 때문이다.
아홉 편의 글들에서 통섭적 견해를 살피기는 무척 어려웠고 더군다나 비평적 안목으로 날카로운 글쓰기를 시도한 글을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대체로 필자 각자가 선택한 주제를 정리한 리포트였거나 또는 어떤 현상에 관한 문제적 리뷰, 그리고 다소 섬세한 전시리뷰가 전부였다. 비평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다큐 리포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장예술의 경우 기본적으로 다큐 리포트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이슈 리뷰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 최근 시각예술의 비평적 글쓰기는 전시리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측면에서 아홉 편의 글은 심사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원고 다수가 논점으로 치닫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회는 필자의 견해를 차분하게 밀고가면서도 논점을 놓치지 않은 「풍경의 미술, 랜드마크에서 마인드마크로」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풍경-공공미술-랜드마크-마인드마크’의 네 개 키워드가 어떻게 다르면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의 미학적 개념은 무엇이고 쟁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선명하게 부각시키지는 못했으나 랜드마크를 넘어 마인드마크로 진화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과 개념적 대안은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다. 향후, 보다 본격적인 비평 전개를 기대한다.

김종길(미술평론가, 경기문화재단 뮤지엄운영파트장),
공주형(미술평론가, 인천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