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여행은 특정한 장소를 찾아간다. 일단 장소를 찾으면 장소의 유명함과 거대함이 나를 압도하여 자아는 사라지고 자아의 대용품으로 발명된 사진만 남는다. 그리고 내가 왜 그토록 그 장소를 찾아와야만 했는지에 대해 구구절절한 이유와 사연들이 만들어진다. 왜냐하면 대단하다는 장소를 갔는데 자아가 압도당하지 않고 여전히 팽팽하다면 그건 제대로 된 관광여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에펠탑 앞에 갔는데 우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한 여행이 아닌 것이 된다. 이런 식의 여행이 재미없기 때문에 카메라가 발달하고 캠코더가 발달하는 것이다. 특히 캠코더는 장소의 허망함을 채워주는 허구적인 기계이다. 일반인 여행객들이 캠코더를 든 팔을 흔들면서 아무런 시놉시스도 없이 찍은 동영상은 너무 질이 안 좋기 때문에 나중에 봐줄 수 없을 뿐이며, 그것은 내가 캠코더 덕분에 대단한 장소에 왔다는 플라세보 효과만 줄 뿐이다. 이 모든 일들이 장소의 위대함을 핑계로 이루어진다. 내가 에펠탑 꼭대기에 있는데 영상이 좀 흔들리면 어떤가 하는 식이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영상이 아니라 장소 자체에 있다. 장소가 너무 유명하고 고정돼 있으니까 우리는 그게 모든 것을 해결해줄 거라고 믿고 자아 따위는 잊어버린다. 사실 유명한 곳을 여행해보면 정작 생각만큼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파리를 제대로 즐기려면 프랑스혁명의 역사쯤은 꿰고 가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에펠탑은 그냥 빨간색의 높은 철탑이고 루브르박물관은 사람이 더럽게 많아서 모나리자 얼굴을 책으로 보는 것보다도 못한 미술 학대의 현장일 뿐이다. 그런데 기껏 큰돈을 들여서 간 여행이 그렇게 시시해선 안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의 자아는 축소시켜버리고 장소의 위대성을 추켜세운다. 아니면 스스로 장소를 만들기도 한다. “에펠탑은 시시했는데 근처에 어느 골목의 허름한 카페에서 마신 깔베 보졸레 빌라쥬가 바디감이 넘치고 힘이 좋아 질질 끄는 느낌이 없어서 좋더라”는 식이다. 대부분의 여행은 장소와 자아가 억지로 만나서 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40년을 기다렸다는 식의 눈물겨운 신파극을 만들어낸다. 여행객은 자신이 다녀온 장소를 신격화하고, 장소는 그런 신격화의 구실을 여행객에게 준다. 그렇게 해서 남는 장소의 추억은 말라버린 쭉정이처럼 빈곤하기만 하다.

그래서 완전히 다른 장소의 개념이 필요하다. 어떤 의미도 주지 않고, 사진도 남길 필요도 없으며, 남들에게 어디 갔다 왔다고 자랑할 필요도, 그럴 건덕지도 없는 장소를 가는 것이다. 그런 곳을 비장소, 영어로 넌 플레이스non place라고 부르기로 하자. 서울 주변의 안양이나 부천 같은 위성도시에는 비장소들이 많다. 도시가 개발되면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들이 비장소로 남는 것이다. 대개 그런 곳에는 잡초만이 무성히 자라는데, 풀의 종류도 설악산 같이 장소성이 강한 곳에 자라는 천남성이나 곰취 같이 귀한 것들이 아니라 양달개비나 강아지풀 같이 하찮은 것들뿐이다. 그런 곳에 가끔 동춘 서커스단이 터를 잡기도 하는데, 그들의 서커스 내용은 절대로 광화문이나 청담동 같이 장소성이 센 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며, 오로지 부천의 공터 같은 비장소에만 어울린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에 서커스는 대중문화로서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광화문이나 청담동에는 동춘 서커스단이 천막을 칠 장소도 없을 뿐더러, 보러 올 사람도 없다.

그런데 비장소라고 하면 사막을 떠올릴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막은 비장소는 아니다. 미국의 데스 밸리나 몽골의 고비사막 등 사막들은 너무 유명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고, 사막에 대한 내쇼날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 등 너무나 많은 표상물들이 개발돼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사막 마라톤과 랠리 등으로 인해 너무 많이 신화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스 밸리에 가보면 그 안에도 악마의 골프 코스, 망원경 산, 화가의 팔레트 등 수많은 세부 장소들이 있다. 아마 데스 밸리를 가는 사람 중 그냥 사막의 모래 자체를 보러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유명한 데스 밸리, 그 안에서도 유명한 장소들을 찾아간다. 그러므로 사막은 비장소가 아니다.

비장소는 대개 도시와 도시 사이에 있다. 수도권에서는 안양과 광명 사이, 서울과 부천 사이 같이 아무런 특징도 없고 찾아갈 일도 없는 곳에 비장소가 있다. 비장소에 가는 방법은 딱히 없다. 유일한 방법이란 길을 잃어버리는 것 밖에 없다.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 신사동에서 부산 해운대 파라다이스 호텔에 가는 식의 여행에서는 비장소가 절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 여행을 하는 사람이 비장소에 눈길을 줄 만큼 기이한 시선의 포에틱스를 가질 리도 만무하지만. 하여튼 안양에서 광명을 가다가 길을 잘못 들면 왠지 유에프오라도 착륙할 것만 같은 황량한 장소에 이르게 된다. 강호순이 그런 비장소들만 찾아서 자신의 희생자들을 파묻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에게는 도시의 의미 있는 장소에 끼어들만한 정체성도, 그런 데에 가고 싶은 욕망이란 없었다. 자신의 희생자들을 고를 때를 빼고는.

비장소란 ‘여기가 비장소다!‘라고 선언할 수 없는 곳이다. 만일 누군가 비장소에 <비장소>라는 표지판을 세운다면 그것은 더 이상 비장소가 아니다. 비장소가 좋은 점은 장소와 연관하여 자아를 희생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내 마음대로 아무 것이나 써넣을 수 있는 빈 종이다. 에펠탑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에펠탑이 어떤 식으로든 사진의 한가운데에 나와야 한다. 그러나 비장소에서는 굳이 사진을 찍을 필요도 없으며, 정 찍고 싶으면 아무렇게나 찍으면 된다. 큰 장소에 희생된 사진의 자아는 비장소에서 다시 살아난다. 비장소에서는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한다는 규칙도 당연히 없다. 기껏 규칙이라고 해봐야 논두렁을 걷다가 진흙에 발이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이다. 발이 빠지면 또 어떤가. 발이 빠져서 더러워져서 큰일 났다는 식의 의미도 소용없는 곳인데.

도대체 비장소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금할 독자를 위해 비장소의 사례를 하나만 들기로 하자. 조심할 것은, 비장소는 영원히 비장소로 지정된 곳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도시개발이 안 된 곳일 뿐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에서 도시개발은 대단히 빠르게 이루어지므로 이 글을 읽고 비장소를 찾아갔는데 그곳이 유명한 장소로 탈바꿈해 있을 확률도 꽤 크다. 최근 가본 비장소 중 인상적인 곳은 김포공항과 부천 사이 어디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39번 국도변의 허허벌판이었다. 이곳도 당연히 김포공항 근처의 어떤 장소를 찾아가다가 길을 잃어서 간 곳이다. 그래서 내 차에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없다. 그 장치에는 장소들에 대한 정보만 빼곡하므로 그걸 믿고 달리다가는 비장소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김포공항 활주로 남쪽의 이 땅이 빈 터로 남아 있는 이유는 공항 주변이라 고도제한이 있고 비행기 소리가 시끄러워서 사람이 살기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무사도 정보사도 국방대학도 안양교도소도 이전하는 대한민국에서 김포공항이 이전한다는 얘기는 아직 못 들었으므로 이 비장소는 앞으로도 그렇게 남을 것 같다.

이곳 39번 국도변에는 논이 많다. 그런데 논도 비장소는 아니다. 왜냐하면 농부의 피땀이 어린 귀중한 쌀이 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제평야나 철원평야 같이 이름이 붙은 논까지 있으니 논도 만만한 곳이 아니다. 39번 국도변의 논에는 그런 장소성이 없다. 김포평야라는 것이 있긴 하지만 여기는 그런 호칭을 들을 만큼 넓지도 않다. 하여간 무슨 수를 쓰던 39번 국도를 찾는다. 북으로는 행주대교와, 남으로는 부천 시내로 뻗어 있는 길지 않은 국도이다. 이 국도변이 재미있는 것은 문명권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기이한 것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트럭들이 많이 다니는 왕복 8차선의 이 길에는 벌말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벌말이라는 지명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이 도로에 비장소라는 특성을 붙여주기 딱 알맞다. 아니다, 장소의 특성을 벗겨버려 특성을 없애버리기 딱 알맞다.

이런 비장소에 가장 알맞은 시설은 뭔가를 버리는 곳이다. 옛날에는 연탄재를 개천가 같이 동네에서 장소성이 없는 곳에 내다버리곤 했는데, 도시도 커지고 폐기물도 커진 요즘 버리는 장소도 커졌다. 그래서 이런 곳에 꼭 있는 것이 폐기물처리장이다. 아니면 하다못해 이른바 <○○산업>이라고 이름 붙은, 파지나 빈 깡통 같은 것 모으는 업체들이라도 있게 마련이다. 벌말로에는 수도권 폐기물처리장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하수종말처리장이 있고, 거기 걸맞게 지명도 ‘폐기물처리장삼거리’이다. 혹자는 그럴지도 모른다. ‘폐기물처리장삼거리’도 나름의 장소성이 강한 곳 아니냐고. 여보세요, 누가 폐기물처리장에 장소성을 부여합니까? 폐기물처리장이란 우리가 쓰고 남은 온갖 정체성 있는 물건들이 더 이상 용도가 없어져서 정체성도 사라지고 폐기물이라는 정체성만 남게 됐을 때 오는 곳인데 사실 폐기물은 정체성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사물의 영도, 빈 공간일 뿐이다. 기표 중에 가장 텅 빈 기표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폐기물처리장에는 아마추어 사진가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기 때문에 거기는 절대로 장소가 될 수 없는 곳이다.

그런 비장소성에 어울리는 명소가 있으니 그 이름은 <북부수자원생태공원>. 이 이름을 쉽게 풀어쓰면 하수처리장을 공원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말이 공원이지 예쁜 잔디밭이나 피크닉 테이블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수처리장이 대중에게 공개돼 있을 뿐이다. 그 덕에 이 장소에는 우리가 장소라고 인식할 만한 특징이 거의 없다. 어떤 것도 내 자아를 압도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다. 자아는 어둠 속을 오래 응시할 때처럼 편하다. 처음에는 어둠 속에 뭐가 있을까 하고 궁금증과 불안 속에 찾아보지만 그 어둠 속에 어둠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눈과 마음이 편해지듯이 말이다. 물론 여기에 볼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거대한 하수처리시설은 나름 산업적 장관을 이룬다. 이런 산업시설 중 대중이 제한 없이 들어가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들 대중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하수처리장의 시설을 흥미롭고 아름답게 볼까. 시설의 생김새로 봐서는 분명히 무슨 보안이 있을 것 같은데 어디든 무제한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도 여기가 비장소로서 훌륭한 이유다. 혹시 이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도 여기가 비장소임을 알고 그렇게 내버려 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진짜 비장소는 여기뿐이 아니다. 벌말로는 비장소의 보고다. 북부수자원생태공원 정문 맞은편에는 SK LPG 충전소가 있는데 다른 LPG 충전소가 그러하듯 여기도 운전자들, 특히 영업용 차량 운전자들을 위한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그런데 영업용 차량들은 교통이 바쁜 곳에다 세워 놓고 오래 쉴 수가 없으므로 꼭 이런 비장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시내에서도 학교 뒷담 같은 곳에 차를 세워놓고 낮잠을 즐기시는 기사님들을 볼 수 있듯이 말이다. SK LPG 충전소는 그런 기사님들을 위한 비장소의 집합소이다. 이 충전소에는 전적으로 남성들만을 염두에 둔 시설들이 있다. 운전 중 피곤한 몸을 풀 수 있는 피트니스 클럽과 휴게실이 있는데, 여자 혼자 들어가고 싶은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다고 여기 오는 남성들이 절대로 마초는 아니다. 운전하다가 다른 차와 시비가 붙으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싸울 사람들이지만 남들 앞에서 허세를 내세워야 하는 공공 공간에서 물러나와 자신의 사적 자아의 동굴로 돌아오면 웅크러드는 그런 사람들이다. SK LPG 충전소는 딱 그런 사람들을 위한 비장소이다. 유명한 장소는 그들에게 부담스럽다. 이 충전소의 옥상에는 LPG라는 글씨간판이 크게 서 있는데 좌우가 바뀌어 있다. 즉 건물 저쪽의 누군가를 위해 크게 써 붙여 놓았는데 그쪽에는 오로지 허허벌판이 있을 뿐 이 글씨를 봐줄 사람이나 건물은 없다. 폭이 꽤 넓은 굴포천이 흐르고 있을 뿐이다. 그 너머로는 폭이 1킬로미터가 넘는 논이 있고 그 너머로 외곽순환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이 간판을 볼 사람은 그 고속도로를 지나가는 운전자뿐이다. 그러나 설사 LPG가 떨어져 가는 운전자가 이 간판을 봤다고 해도 그가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이 충전소로 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충전소는 고속도로 출구에서 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충전소는 비장소의 특성을 제대로 갖췄다. 충전소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보고 찾아가려는 사람은 절대로 찾을 수 없는 이상한 곳이다. 이곳은 흡사 비행기들이 사라진다는 버뮤다 삼각지대나 바람이 안 불어 옛날 돛단배들이 오도가도 못 한다는 살가소해역 같은 곳이다. 차들은 이곳을 찾다가 사라진다.

벌말로에는 이 충전소 말고도 비장소의 특성을 잘 갖춘 것이 또 있다. 그것은 김포공항의 그늘이다. 길이가 4.7킬로미터나 되는 김포공항에 그늘이 있을 리 없다. 여기서 말하는 그늘이란 공항이 있기 때문에 건물이 들어설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비장소가 되고 만 곳들을 말한다. 그 중 좀 이름났던 곳이 한때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열심히 사진 찍으러 다니던 오쇠동이란 마을이다. 김포공항의 활주로 서쪽 끝에 있는 이 마을은 김포공항 측에서 공항시설 확장을 위해 철거하려 했으나 일부 주민들만이 남아 썰렁한 곳이다. 그러나 공항 주변의 비장소성의 왕자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활주로 양쪽 끝단에 걸쳐 있는 활주로유도등이다. 여러 개의 등이 일렬로 늘어서서 진입하는 항공기들에게 활주로의 방향을 지시해 주는 이 등은 시계가 안 좋을 때나 야간에 켜진다. 항공기가 진입하는 방향으로 여러 개의 등들이 달리듯이 켜지기 때문에 장관이다. 그런데 이 장관은 지상에 있는 누구에게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착륙 진입하는 항공기의 조종사만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등이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 세상은 마치 지상과 하늘로 깊은 심연을 사이에 두고 갈라져 있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허허벌판에 서서 유도등을 보고 있으면 내가 제대로 비장소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지상의 누구도 이 멋진 등을 쳐다보지 않기 때문에 여기는 비장소로서 으뜸이다.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공항의 그늘 속에서 나의 자아는 전혀 손상되지 않고 허허벌판을 숨 쉰다.

그런데 2014년 1월부로 굳이 비장소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게 됐다. 전국의 모든 주소가 도로명으로 바뀌면서 내가 태어났던 안암동은 사라졌고 땅값이 비싸고 온갖 사치스런 것이 즐비하다는 청담동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장소들이 몽땅 사라졌다. 나라 전체가 비장소로 바뀌었으니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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