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자가 많은 도시가 창조도시다? 전후맥락 없이 저 한 문장만 떼어놓고 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다. 성적 소수자와 도시 발전 사이에 대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창조도시 전문가들에게는 일리 있는 지적이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태도와 도시의 번영 사이에 일정한 함수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사는 지역을 한 번 둘러볼 일이다. 외국인 노동자나 결혼 이민 온 동남아 주부가 몇이나 되는지, 외국인 여행자가 민박하는 집이 있는지 등을 살펴볼 일이다. 이방인의 숫자 또한 창조도시로 가는 길의 폭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창조다. 가히 열풍이다. 창의(성)와 혼용되고 있는 창조(성)가 도시의 미래를 위한 강력한 도구로 급부상했다. 도시뿐 아니다. 교육 분야에서도 노출빈도가 가장 높은 개념 중 하나다. 창의 ‧ 인성 교육이란 복합명사가 낯설지 않다. 감성지수, 윤리지수가 지능지수를 끌어안더니, 이제는 창의성이 상상력과 공감능력을 뛰어넘고 있다. 유치원에서 대학, 기업, 지방자치단체에 이르기까지 연일 창조, 창의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는 창조경제까지 등장했다. 창조라는 접두사가 붙지 않으면 구닥다리 취급 받기 십상이다.

“인간은 누구나 창조적이다”

창조도시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창조계급을 외부에서 불러 모으거나 자체적으로 길러내 창조산업을 활성화하면 도시가 발전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창조도시의 첫 단추 창조계급은 인력, 즉 사람이다. 그것도 (초창기에는) 타 지역에서 이주하는 낯선 사람들이다. 10여 년 전, 세계적으로 창조도시론을 촉발시킨 캐나다 토론토대학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는 도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는 개방성이 필수 요건 가운데 하나라고 강조한다. 플로리다 교수는 『도시와 창조계급』(이원호 외 옮김, 푸른길, 2008)에서 관용과 함께 인재, 기술, 장소를 도시 발전 전략의 네 가지 핵심 요소로 꼽았다.

플로리다 교수는 전 세계 인구의 1/3 이상이 창조 부문에 종사하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 후반 전체 노동자의 30.1%가 창조 부문에 종사했다. 창조 부문은 제조업, 서비스업과 구분되는 영역으로 과학과 엔지니어링, 기술 기반 산업을 비롯해 음악, 미술, 디자인 등을 포함한 문화예술 분야는 물론 보건, 금융, 법률 등 지식 기반 전문직을 포괄한다.

창조도시의 가장 큰 매력은 소프트웨어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그간 도시를 재개발하거나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때, 정책 입안자들은 하드웨어에 주목했다. 건물과 도로, 에너지, 상하수도, 녹지 등 기반 시설을 갖추면 도시는 저절로 발전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창조도시는 소프트웨어, 즉 인재와 장소가 관건이라고 보았다. 창조적 역량이 탁월한 각 분야 인재들이 몰려들어 자유롭게 어우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창조도시를 위한 첫 번째 요건이라는 것이다.

플로리다 교수의 연구결과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창조 계급이란 개념이 엘리트주의적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이 그 중 대표적인 비판이었다. 플로리다는 창조 계급의 핵심 개념이 “인간은 모두 창조적”이라는 평등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지식 노동자, 하이테크 경제, 정보사회와 같은 기존의 용어보다는 “경제적 가치 창출의 실질적 원천, 즉 인간의 창조성을 규정하는 데 보다 정확하기 때문에” 창조 계급이란 용어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플로리다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창조성을 활용하는 것이 21세기의 위대한 도전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인재가 도시 발전을 위한 첫 번째라면 두 번째 요소는 관용이다. 관용은 타자(차이)에 대한 열린 마음이다. 그런데 관용이 도시 발전과 상관관계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플로리다 교수는 게리 게이츠와 함께 흥미로운 연구를 수행했다. 미국 50개 대도시 지역을 대상으로 다양성 ․ 관용 척도와 하이테크 산업 성장 사이의 연관성을 검토했다. 두 학자는 게이 지수를 통해 대도시의 창조산업 성장 추이를 밝혀냈다.

게이 지표는 전체 인구에 대비해 지역 내 게이의 집중도를 측정한 것으로, 게이 거주자가 가장 많은 상위 5개 대도시(샌프란시코, 워싱턴 DC, 오스틴, 애틀란타, 샌디에이고)는 모두 하이테크 산업 상위 15개 대도시에 포함되어 있었다. 반면 게이 지수가 낮은 도시(버펄로, 라스베이거스, 클리블랜드, 그린즈버러, 루이빌)는 하이테크 산업 하위 15개 도시에 속했다. 두 학자는 게이 외에 이민자, 보헤미안 수를 바탕으로 다양성 지수를 추출한 다음, “다양한 인재들에 대한 관용적 태도가 지역의 성장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관용은 창조도시의 핵심 요건 중 하나인 장소의 질적 수준과 직결된다. 현대 도시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제인 제이콥스는 “장소가 재미없을 때는 부자들조차도 떠나게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창조도시 옹호론자들에 따르면 창조 부문 종사자들은 기업의 유명도나 연봉의 높고 낮음보다 자신이 살게 될 지역의 입지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창조도시가 문화예술 부문과 친화력이 강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창조도시의 한계는 ‘자본의 논리’

21세기와 함께 불어 닥친 창조도시 붐은 국내로도 이어졌다. 서울과 부산과 같은 대도시는 물론 지역 중소도시에서도 창조도시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런데 창조도시가 과연 우리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미국과 유럽에서 창조도시의 성취는 분명하다. 우리가 보기에, 창조도시의 가장 큰 미덕은 도시에 대한 관점을 전환시켰다는 것이다. 도시를 변화시키는 주체는 정책 입안자들이 아니라 창의적 시민이라는 것, 또 시민사회의 개방성과 도시가 갖고 있는 장소성(지역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도시 발전 전략에 대한 관점을 바꿔놓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내포하고 있다. 창조도시의 본질적 한계는 사람과 장소에 주목하면서도 기존의 경제 논리에서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현식 한국근대문학관 관장은 자신의 저서 『성찰적 창조도시와 지역문화』(글누림, 2012)에서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시키고 거기에 종사하는 고급 인력을 끌어들이는 일은 자본의 논리와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창조도시가 자본의 논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지속가능성은 실현하기 어려워 보인다. 산업 문명과 쌍둥이인 자본주의는 한정된 지구 자원이 무한하다고 여전히 오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도시가 과도기적 모델일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한 미래는 창조도시 너머에 있다. 그렇다면 창조도시 이후에 있는 미래 도시는 어떻게 갈 수 있는가. 미래의 문을 여는 것은 이론이기보다는 상상력일 때가 더 많다. 그것도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상상력일 때. 경제논리에 길들여진 창조계급이 아니라,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꾸는 창조적 시민사회가 함께 상상할 수 있다면 미래 도시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물론 산이 많다.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듯이 우리의 폐쇄성부터 넘어서야 한다. 한국 사회는 타자에 대해 너무 높은 진입장벽을 쌓아 놓았다. 예컨대 피부색만으로 ‘지위’를 부여하고 그에 즉각 대응한다. 백인은 무조건 환대하고, 유색인은 무조건 무시하려 든다. 이보다 더 큰 장애물이 있다. 배타적 경쟁 심리와 이를 부추기는 경제 논리다. 일등만 살아남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돈이 전부’라는 맹신을 극복하지 않는 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는 불가능하다.

이현식 관장은 위 책에서 기왕의 도시공학과 경제학으로는 인간을 위한 창조도시는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인문학적 접근을 제안한다. “무엇이 인간다운 도시를 만드는 일일 것인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것”이 창조도시에 대한 논의의 출발이자 귀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인문학이야말로 ‘장기적이고 포괄적이고 심층적’인 문제의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적 성찰이 여전히 인간중심주의에 머문다면 지속가능한 미래는 앞으로도 계속 유예될 것이다. 인문학이 생태학과 더 많이, 더 자주, 더 깊게 결합할 때, 인간다운 도시를 위한 상상력이 활발해질 것이다.

창조도시, 녹색가치와 만나야 한다

창조도시를 보다 큰 틀에서 성찰해야 한다. 창조도시가 인문학적 상상력과 만날 때, 창조도시가 자신을 재발견하게 될 것이다. 최근의 인문학이 타자와 윤리, 삶의 정치를 강조하거니와 인문학이 지역사회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한다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합의와 실천이 일어날 수 있다. 이웃과 더불어 각성된 시민이라면 인간과 인간으로 이뤄지는 ‘작은 사회’를 넘어 ‘더 큰 사회’를 바라볼 것이다. 이것을 생태학적 전환이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부터 시민사회는 인간과 자연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지구사회를 꿈꿀 것이다.

인문학과 만나는 녹색(생태) 가치는 멀리에 있지 않다. 낯설지도 않다. 창조도시가 필요로 하는 다양성, 관용을 비롯해 상호 연관성, 우애와 환대, 협동사회가 다 녹색세상의 핵심가치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험은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다(생태 ․ 환경운동은 여기서 생략하자). 그 중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공공미술이다. 도심의 재래시장이나 도시 변두리로 들어가 지역 주민과 함께 삶의 방식에 변화를 주고자 하는 새로운 예술운동이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다. 현재는 단기적 지원 사업 수준에서 머물고 있지만,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예술의 공공성을 확대하는 것이 미래를 여는 또 하나의 문이 될 수 있다.

이현식 관장의 ‘성찰적 창조도시’가 강조한 것처럼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역 대학이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는 기획 ․ 운영자를 양성해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특히 도시 인구의 폭발적 증가와 풀뿌리 민주주의의 퇴보를 염두에 둔다면 단기 대책도 병행해야 한다. 공공미술에서 보았듯이, 예술가들에게 공적 역할을 줘야 한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가 도시(마을) 만들기의 또 다른 주역으로 참여해야 한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본의 논리를 뛰어넘는 생태적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있을 것이다. 지역사회의 꿈이 예술가의 상상력과 만나는 역동적인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자.

동성애자가 많은 도시? 우리가 보기에 창조도시는 환승역이다. 우리는 예술가와 함께, 이주자와 이방인이 많은 도시를 지나 숲과 땅, 벌레와 물고기, 짐승과 새 또한 많은 도시로 달려가고자 한다. 우리가 올라타려는 ‘녹색열차’의 엔진은 두말할 것도 없이 시민, 시민의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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