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하나. 2014년 2월 6일, 한 편의 영화가 개봉되었다. 이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이상하게도 그 논란은 영화 자체를 둘러싼 것이 아니라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의 스크린 숫자가 터무니없이 작은 것에 대한 논쟁이었다. 국내 대기업의 계열사인 극장들은 이 영화에 스크린을 지나치게 인색하게 열었고, 영화관계자들은 이에 강한 불만을 표했다. 김태윤 감독의 신작 <또 하나의 약속> 이야기이다. <또 하나의 약속>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 진단을 받고 사망한 고 황유미 씨의 실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논란이 더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이제는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 된 삼성의 눈치를 보느라 대기업 계열의 극장이 스크린을 의도적으로 열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 대목이었다.

장면 둘, 2014년 1월 19일 새벽 12시 57분, 영화 <변호인>이 누적 관객수 10,000,000명을 기록했다. 2013년 12월 18일 개봉한 이래 32일 만에 세운 기록인데, 놀라운 것은 이 기록이 <아바타>보다 빠르고 <7번 방의 선물>과 같은 속도라는 점이다. 이 영화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개봉하자마자 이 영화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언론에 뜨겁게 오르내렸고 심지어 주연을 맡았던 배우 송강호에게 의도적으로 악평을 한 신문도 있었다. 물론 논쟁의 중심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미화한 영화라는 비판에서부터, 역사적 사실을 정면에서 다룬 용기 있는 영화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거의 양 극단에 이르는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

이 두 장면에 한 편의 영화를 더해 보자. 2013년 12월 11일 개봉한 <집으로 가는 길>. 배우에서 감독의 길로 완전히 접어들어, 누구보다 좋은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는 방은진의 역작이자, 지난 해 남자 배우들의 춘추전국 시대에도 꿋꿋이 여성 배우의 존재를, 그야말로 혈혈단신으로 증명한 전도연의 연기가 돋보였던 이 영화는 전국 관객 180만 명을 조금 상회하는 선에서 종영되었지만, 분명 할 말이 많은 영화이다. 무엇보다 실제 발생했던 사건을 다룬 영화라는 점 때문에 이 영화 역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 그 이야기

위에서 언급한 세 영화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세 편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 때문에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글귀와 만나야 한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허구입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적으로 창작되었습니다”라는 글귀들. 같은 의미를 다르게 표현한 글귀. 그러나 결국은 같은 내용의 반복들. 이 글귀에서 보는 것처럼 세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적으로 (재)창조되었다. 물론 여기서 방점은 실화에 찍혀야 한다. 실화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영화적 스토리에 담았기에 더욱 논쟁이 가열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만약 위의 영화들이 실화가 아니라면 이처럼 논쟁이 되었을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2003년 삼성반도체에 입사한 지 2년 만에 백혈병으로 얻어 투병하다 사망한 고 황유미 씨와 그녀의 억울함을 풀려는 아버지의 이야기, 1981년 발생한 부림사건을 계기로 속물 세법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변신한 고 노무현 대통령의 활동, 2003년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범으로 오인되어 마르티니크 섬 감옥에서 2년간 수감되었던 장미정 씨의 이야기. 어떻게 보더라도 위 세 영화의 힘은 실화의 힘에서 나온다. 그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를 창조해낸 창작력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해야 한다. 왜 지난 연말과 올 연초에 논란이 되었던 영화들은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는가? 아니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질문하면 안 될 것 같다. 각기 다른 의도로 제작된 세 편이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이 세 편의, 비슷한 시기의 개봉을 두고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고 하면 안 될 것 같다. 다만 이렇게는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흥행을 하거나 논쟁의 중심에 있다고, 그런 현상은 분명하다고. 그렇다면 왜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먼저 물어야 하고, 지금 그런 영화들이 왜 논란이 되는지 묻는 것이 순서일 듯하다.

한국영화사를 보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2013년과 2014년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거칠게만 보더라도, 2000년대 한국영화의 흐름 가운데 하나는 팩션영화였다. 허구를 뜻하는 ‘fiction’과 실화를 뜻하는 ‘fact’가 결합한 이 묘한 경향의 영화는 거대한 흥행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부언하자면, 실화를 소재로 하면서 이를 대중적으로 흥미롭게 직조한 영화가 많았다는 말이다. <살인의 추억>, <실미도>, <화려한 휴가> 등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도 존재했고, <국가대표>, <말아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처럼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포츠영화도 존재했다.

전자의 영화들은 식민과 외세, 분단과 전쟁, 독재를 겪은 한반도의 역사를 영화적으로 포장해 흥행에 성공한 경우이다. 이런 영화들의 전략은 과거 사건을 영화적으로 흥미롭게 포장해 그것을 겪은 세대에게는 회한과 추억을 곱씹게 만들고,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게는 영화를 통해 새로운 역사를 알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젊은 세대와 나이 든 세대를 모두 아우르려는 전략이라, 흥행에 성공하면 거대한 신드롬을 불러오지만 식상하게 만들면 참패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후자의 영화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스포츠를 영화적으로 포장해,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스포츠맨이 와신상담 끝에 어떻게 승리를 향해 다가가는지 극적 스펙터클과 긴장을 전시함으로써 매력을 발산한 영화들이다. 이런 종류의 영화 역시 잘 만들면 극적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전해주지만 졸작이 되면 스포츠 관람보다도 못한 경우가 되어버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영화라는 매체는 처음부터 허구적인 이야기를 그린 매체가 아니었다. 영화의 시작은 다큐였다. 처음부터 영화는 신기한 구경거리로 등장했다. 이전의 매체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현실의 구경거리. 그러나 그 구경거리가 지나치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흥행사들은 재빨리 영화에 스토리를 집어넣어 허구로 창조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영화가 지닌 매력의 원천을 무시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다큐멘터리가 때때로 흥행을 하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지만,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가 거대한 흥행을 하는 것을 보면 이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가 흥행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실화가 지닌 이야기의 매력 때문이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여기서 말하는 영화는 말 그대로 극적(劇的)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의도적으로 지어낸 허구적 이야기. 그런데 세상을 살다보면 인간이 지어낸 허구의 이야기보다 더 기막힌 실화를 종종 듣게 된다. 대중적 촉수를 지니고 있는 영화제작자들이 이런 이야기를 놓칠 리 없고, 관객들 역시 실제 일어났던 일이니 자신도 겪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동일시가 쉽게 발생한다.

‘무비 저널리즘’의 발달, 이를 보는 우리의 눈

여기서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집으로 가는 길>, <변호인>, <또 하나의 약속>의 공통점은 실화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현대사의 아픔을 스펙터클하게 그리거나 스포츠의 긴장감을 살린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세 영화들은 모두 현실을 고발하는 영화이다. 이 리스트에 조만간 개봉할 한 편의 영화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이미 촬영이 끝났고 2014년 상반기에 개봉 예정인 <소수의견>. 이 영화는 이명박 정권 때 발생한 가장 불행한 사건 가운데 하나인 용산참사를 법정 영화로 재현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현재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들의 특징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회고발적인 영화. 특정 사회의 문제점을 재현해 사회의 이슈가 되고 논쟁이 되는, 그런 영화들의 범람.

나는 이런 경향의 시작이자 폭발점을 <도가니>로 본다. 황동혁 감독의 <도가니>는 우리 사회에 거대한 태풍을 몰고 왔다. 기억하시는지? 이 영화가 흥행하고 있을 때 메인 뉴스에서는 거의 매일 이 영화가 낳은 이슈들을 전했고, 메인 신문에서도 하루도 빼지 않고 몇 주간 이 영화를 둘러싼 담론들을 쏟아냈다. 결국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광주인화학교는 폐교되었고, 장애인 성폭행범에게는 가중치 처벌을 내리는 일명 ‘도가니법’이 제정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영화도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아니 영화가 흥행을 했기 때문에 사회적 이슈가 지속될 수 있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때 나는 깊이 고민했다. 영화 한 편의 힘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도가니> 이후 사회를 고발하는 영화들이 자주 등장했다. <부러진 화살>, <두 개의 문>, <맥코리아>, , <남영동 1985>, <26년>, <천안함 프로젝트> 등등……. 물론 몇 영화들은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지만, 여기서 굳이 장르를 구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극영화이든 다큐멘터리이든 그 목적이 비슷해 보인다.

이명박 정권 이후 등장한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한 용어가 ‘무비 저널리즘’이다. 영화가 저널리즘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인데,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거대 언론은 정권의 편에 서서 공정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영화인들이 영화를 무기로 공정한 저널리즘의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사회의 부정과 비리, 왜곡된 구조를 영화를 통해 비판하려는 결연한 의지의 산물이자,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않으니 영화가 언론의 역할을 대신하면서 대중의 진실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시도였다. 이것은 마치 하나의 사회 운동처럼 작동했다. 해서 이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 크라우드펀딩을 하거나, 영화 개봉을 위해 다시 펀딩을 해야 했다. 어쩌면 이런 영화들은 대중적 흥행을 일차적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적 설득을 일차적 목표로 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대중적 흥행과 대중적 설득은 그리 큰 차이가 없는 말인지도 모른다. 대중적으로 설득이 되면 자연스럽게 대중적으로 흥행이 가능해지니까. 그리고 이런 영화의 흐름은 1980년대 영화운동과도 닿아있다.

영화의 발전인가, 퇴행인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변호인>, <집으로 가는 길>, <또 하나의 약속>, <소수의견> 모두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직시한다. 사회의 구조적 왜곡 때문에 올바르게 살아가려는 서민이 어떤 고난을 당하는지, 대중적 흥미를 잃지 않으면서 진솔하게 담아낸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런 일이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분노하거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실화의 힘은 여기서 작동한다.

결국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현실을 본다. 영화 속에 그려진 실화라는 소재는 극히 일부일 수밖에 없지만 영화를 본 이들에게는 전부가 실화처럼 보인다. 작가가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이 연출을 하며 배우가 연기를 하면 필연적으로 영화는 허구가 될 수밖에 없지만, 현실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그것을 잊어버린 채 현실의 잣대로 영화를 본다. 이것은 영화의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 그만큼 영화가 현실적이고 힘이 있는 매체라는 반증이고, 한편으로는 영화가 현실을 왜곡할 정도로 강한 마취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지금 우리 시대 실화를 다룬 영화들은 사회의 거대한 구조적 악에 패배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미 현실에서 패배한 사건을 영화가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가? 패배한 사건을 패배로 그려 절망감을 가중시켜야 하는가? 또는 영원히 패배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운명을 영화로 확인사살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현실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운데 어느 관객이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그런 영화를 보려 하겠는가? 여기서 영화는 타협을 한다. 현실에서는 패배했지만 영화에서는 패배하지 않게 하거나 장기적으로 승리하게 만들거나 패배하거라도 진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런데 이것은 영화의 발전일까? 사회의 퇴행일까? 적어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영화로 그리는 것보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가 사회 구조에 눈을 뜨게 하니 발전이라고 해야 하지만, 그런 영화들이 그리고 있는 현실을 보면 본질을 직시하기보다는 대중영화라는 지점을 이용해 타협하고 있어 오히려 대중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만 보여주는 것 같아 퇴행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긴 <또 하나의 약속>이 스크린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이런 쓸 데 없는 고민이나 하고 있는 나 자신이 괜히 미안해진다.

이미지 제공_㈜또 하나의 약속 제작위원회, ㈜삼거리픽처스, 워더스필름(주), CJ엔터테인먼트, (주)하리마오픽처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