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개혁한다는 것은 말들이 지니고 있는 힘의 질서를 바꾼다는 뜻”─황현산

2013년 12월 10일, 한 청년이 손수 글씨를 써서 물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고려대 학생이었던 그 청년은 자신의 대자보를 정경대 후문 담벼락에 붙이고 그냥 돌아서지 않았다. 혹시 자신이 서있으면 지나는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하여 자신의 글 곁을 지켰다. 이렇게 진심으로 안부를 물은 주현우 씨는 “말하는 자유만은 스스로 만들겠다는 생각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대자보를 쓰게 된 동기를 밝혔다. 그리고 그의 진지한 바람대로 학생들과 사람들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의 대자보를 찍은 사진이 수천 회 이상 페이스북과 각종 온라인 포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퍼져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호응하는 대자보들이 불과 4~5일 만에 고려대가 뒤덮일 만큼 나붙었으며 전국 대학, 고등학교는 물론 미국, 영국, 중국, 말레이시아, 일본, 칠레, 독일 등 나라 밖으로까지 불처럼 번져갔다. 첫 대자보가 등장한지 이틀 후 게정을 마련한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역시 ‘좋아요’가 25만 건의 클릭수를 기록했다. 그리고 첫 번째 대자보는 고려대 박물관 기록 자료실에 보존하기로 했단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념적 언어와 감성적 언어 그리고 ‘말’의 태도

“우리를 하나로 묶어줄 것 같은 큰 목소리에서 우리는 소외되어 있지만,

외따로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사정으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글쓰기가 독창성과 사실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나의 '사소한' 사정을 말한다는 것이다. (...) 어디에 좋은 문화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리를 당신의 사소한 사정에 비추어 마련하고 바꾸어가는 문화일 것이다.”

처음 “안녕들 하십니까” 하고 물은 주씨는 한 매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대자보의 근본 취지에 대해 "단 하나도 안녕하기 어려운, 하나만 봐도 안녕하기 어려운 사태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며 "정말 안녕한지 아닌지에 대해 우리가 한 번 고민해봐야 하지 않겠나"하는 마음이었다고 했다. 철도 민영화 논란,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밀양 송전탑 논란 등 가장 이슈가 되는 사회•정치적 문제들을 언급하며 다음과 같이 물었다.

“……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 주현우, <안녕들 하십니까> 부분

20대, 즉 식상한 표현인 ‘88만원 세대’들을 진단하는 시각은 일반적으로 그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정치에 대해 지나치게 계몽된 냉소적 주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정치나 사회문제에 냉소적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소위 386세대를 비롯한 선배, 부모 세대들의 지배적 태도와 이념적 언어가 한몫을 했다는 분석이 많다.

다시 말해 젊은 세대 운운하는 윗세대들은 모든 불편부당한 삶의 논리를 끊임없이 전쟁 탓으로 돌렸던 자기 부모세대처럼 자신들이 겪은 삶의 경험만을 일방적이고 반복적으로 주장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이념적 프레임은 정치문제 관해 배타적이고, 실제로 좌우,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20대를 감동시키거나 영감을 주는 진정한 선배 어른의 상(像)이 부재한 실정이다. ‘미래가 없는 졸업생’이라 일컫는 젊은 세대들의 불안하고 두려운 현실감각 속에서는 진보든 보수든 ‘그 놈이 그 놈’처럼 느껴지는 게 일반적이란다. 특히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는 진보 진영이 후렴처럼 반복하는 경직된 성명서 언어는, 의미가 왜곡, 과장되기 십상인 보수 진영의 일방적이고 억압적인 언어만큼이나 믿음을 주지 못한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극도로 황폐해진 삶의 조건 속에서 모든 것이 자본에 종속되어 삶의 ‘가치’를 따지기조차 무색한 현실에서 ‘진실’이니 ‘진리’니 하는 고루하고 공허한 개념으로 잔뜩 무장한 언어란 어차피 설득력을 가질 수 없으리라.

그에 반해 “안녕들 하십니까”의 언어는 달랐다. 우선 현재 젊은 세대에겐 ‘우리’ 같은 전제적인 복수보다는 ‘나’, ‘너’ 같은 감당할 수 있는 단수가 훨씬 실체적이다. 그래서 비록 하찮고 사소할지언정 나와 너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당위적인 자기주장보다는, ‘내 상황이 이런데 넌 어떠냐?’ 는 대화를 하고 싶은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무슨 대단히 크고 중요한 이야기를 할 테니까 ‘여러분’은 들으라는 선언이 아니라, 비록 사소하지만 자신은 이런 문제를 이렇게 느끼고 있는데 ‘당신’은 어떤지 염려와 질문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안녕~” 대자보들은 각양각색의 문제 상황에 대한 각기 다른 개인들의 감성적인 ‘말(이야기)’을 손글씨에 꾸밈없이 소박하게 담아내면서 일상적 구체성과 ‘날것과 같은’ 생생한 진정성을 확보했다. 일방적인 주장과 강요가 아니라 질문과 응답이라는 상호 소통의 표현법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후 발랄한 재치와 유머, 풍자도 이념적 언어가 가진 엄숙주의를 깨면서 설득력을 높이는 데 일조하였다.

벽을 깨는 벽, Old Media의 직접성과 연결과 연대의 창,

New Media의 순발력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중에서

본래 벽보(壁報) 또는 방문(榜文)의 형식으로 정치적 입장이나 주장을 선전하는 매체가 존재했지만 ‘대자보’라는 용어는 특히 중국 문화혁명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그런 오래된 매체인 대자보가 21세기에 이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주류 매스미디어에 대항할 수 있는 여타 미디어를 갖지 못했던 1970년, 80년대 대학가와 시위 현장을 중심으로 대자보는 유인물과 더불어 가장 대표적인 선전•선동 매체였다. 그렇지만 당시 공안정국 하의 대자보는 철저한 익명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이후 인터넷이 대자보와는 또 다른 익명성으로 수많은 불신과 부정적 측면을 노출했다. 하지만 “안녕들 하십니까”의 경우는 언급한대로 현실감 있는 내용의 구체성과 수기(手記)라는 아날로그 감성에 실명을 밝힘으로써 비록 오래되었으되 신선한 선전 매체로서 필수적인 신뢰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전면적이고 새로운 미디어 생태계를 구성하는 소셜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역할이 홍보의 속도는 물론 유연성과 다양성을 보장해 주었다. 이를테면 주씨가 작성한 첫 번째 대자보는 즉시 SNS를 타고 순식간에 퍼졌고, 이것이 기존 언론매체의 뉴스 소스가 되었다. 더불어 같은 형식의 대자보가 제작, 부착되는 현장이 실시간 SNS를 통해 중계됨과 동시에 자체적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게정을 열어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유사한 실천 자료를 모으는 한편 온오프라인을 연계하는 여러 형식의 ‘운동’을 진행해나갈 수 있었다.

즉 공공영역이 신문, 잡지, 대학 등에서 TV, 인터넷, 광장(스트리트)으로 변하고, 마찬가지로 케뮤니케이션 양식도 변해왔다. 활자 미디어에 의한 문자 커뮤니케이션이 영상, 음악, 시청각미디어로 진화했고 이젠 전면적인 Wifi의 대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환경에선 폐쇄적인 물리적 환경 속에서 사람들 간의 강한 몸의 ‘연대solidarity’가 주축이었던 1980년대와 달리, 소셜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무수한 양적 ‘연결link’의 광범위한 확산과 빠른 속도가 부각된다. 따라서 조직이나 집단보다는 느슨하고 약한 개인들의 연결이 주축이 되며 이미 미디어화medial한 사람들의 행동에 자유로운 연결 공간을 허락하고, 실질적인 정치운동가와 문화적 실천자는 따로 구분되지 않으며 ‘사소한 유명인’들이 따로 전위 없는 동시다발적으로 다양한 실천을 조직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미디어 환경에서 강한 연대를 경험했던 40~50대들까지 미끄러지듯 SNS에 편입되고, ‘공간적 중심이나 장소를 따로 특정하지 않으며 시간 역시 한정하지 않는 운동의 형식, 시간의 한정성을 넘어서는 투쟁의 형식이 요구되는 단계’라고 한다. <안녕들~> 역시 사회 각계각층과 수평적이고 병렬적으로 연결되면서 자유롭고 자발적인 개인들은 ‘인증’의 형식으로 관계를 잇는다. 대자보 작성, 부착 인증샷 올리기를 비롯하여 1인 시위, 번개 모임, 집회, 토론회, ‘나는 00해서 안녕하지 않습니다’라는 “페이스북 포토서명 이벤트”, 전국의 대학과 갈등 현장을 방문하는 “암행어사 전국나들이”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가지를 친다. 나아가 기존 조직운동론의 관점에서는 미처 상상치 않은 유연한 국제연대의 가능성도 모색할 수 있다.

언어-미디어의 한계와 극복

“사회 격변의 시점에서의 가장 큰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슬리는 아우성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라고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마틴 루터 킹 (부산대 대자보에서)

알다시피 미디어적인 나날은 간단없이 지속되며 우리의 모든 시공간을 지배한다. 뿐이랴.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에서는 텍스트, 음향, 영상, 신체동작, 행동사건 등의 혼합이 ‘자기’와 ‘자아’를 형성시키고 있다”고도 말한다. 따라서 빌렘 플루서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하나의 견고한 본질(하나의 동일성, 하나의 ‘자아’, 하나의 ‘정신’, 하나의 ‘영혼’)을 우리 안에 갖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는 공동의 심리적 장(場)에 나타나 잠정적인 하나의 기포처럼 등장하여 정보를 획득하고 처리하고 전달하고 그리고 다시 사라진다. (…) 우리는 주어진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경향성을 띤다. 말하자면 우리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현실화시킨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주어진 객관세계의 주체가 아니라 대안적 세계들의 기획이다.” 미디어가 곧 ‘새로운 자연(생태)’이 된 현 단계에서는 ‘인식의 방법은 유희적인 “점에서 점으로의 전환”을 연출하고, 이로써 상호의존적인 관계망이 존재하게 된다. 또한 그런 조건에서라면 커뮤니케이션의 필요가 두드러지면서 네트워크형 대화의 가능성이 부각되고 어떤 입장도 고집스럽게 고수되지 않는 ‘개인 정치’의 가능성 역시 열린다. 결론적으로 빌렘 플루서 같은 미디어철학자는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은 ‘부조리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스스로를 실현하게 된다고 한다.

이렇듯 점과 점으로서 느슨하고 ‘약한 연결’은 끊임없는 이슈의 개발, 이벤트의 기획과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실천을 통해 ‘지속성’을 확보하고 ‘강한 연대’로 업그레이드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런 연유로 단발성 일화로 흐지부지 끝나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겠지만, “더 이상 안녕함을 묻는 것만으로 끝나지도, 그저 한 철의 이벤트로 전락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정치를 해내어가는 것, 모두의 안녕을 얻기 위해

함께 목소리 내고 행동하는 것. 비록 철도노조의 파업 철회와 함께 한 해가 마무리된다 할지라도 각자의 안녕으로부터 우리 모두의 안녕을 제 손으로 만들어가는 발걸음은 멈출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이 결코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상식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 이 발걸음을 안녕하지 못한 모든 분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 올림) 과 같은 의지와, “안녕치 못함을 외치기만 했기에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한계는 실천을 통해서야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 올겨울의 깨달음”이라며 “이제 외침을 넘어 실천으로 나아가야 할 때”라는 <안녕들~>의 반성과 다짐이 나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겨울 담벼락에 나붙었던 진정한 안부인사는 무한정의 시공간에서 결코 그냥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부조리한 현실의 벽에 던진 돌직구는 수많은 ‘나’의 창을 넘나들며 그 누구라도 고된 ‘너’에게 손을 내밀라고 매일 새롭게 넘실대는 물결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