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적도의 어느 가난한 나라에서 지내고 있어. 너는 가난한 나라로 여행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지. 고생하는 게 엄두가 안 난다고. 언젠가 너와 함께 시간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나라로 여행을 와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나는 지금 차 한 잔을 주문하고서 야외 까페에 앉아 있어. 너에 대한 생각을 아무리 해도 주문한 차는 내 테이블에 오질 않고, 구름은 흘러가고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쏟아져 내리기 시작해. 이런 나라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말이야. 어이그 답답해, 하며 주먹을 쥐고 가슴을 쾅쾅 쳐야만 하는 상황이 꽤나 자주 일어나고는 해. 와이파이가 잡히는 이런 까페에 앉아 랩탑을 켜고 메일을 체크하려고 할 때. 더디게 열리는 메일함의 한 페이지가 대체 어떤 속도인지 너는 짐작도 못할 거다, 아마. 식당엘 가도, 마트에 가도,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느려서 하염없는 기다림을 겪어야만 해. 내가 얼마나 느림보인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놀림을 받는지 아주 잘 알고 있는 네가 빙그레 웃는 게 상상이 된다. 내가 답답해할 정도의 느림이라는 거, 짐작할 수 있겠니. 그런데 말이야, 이런 느림을 겪으면서 나에게 익숙했던 속도에 대해 새삼스레 나는 놀라고 말아. 내가 그동안 얼마나 빠른 나라에서 살았는지, 한국 사람은 얼마나 날쌔고 빠른지를 생각하다가 문득 우리 모두가 가련해져.

그렇게나 빠르게, 그렇게나 숨 가쁘게, 그렇게나 속도에 속도를 내는 일에 몰두하는 민족은 이 지구상에 우리 한국 사람이 최고이지 않을까. 이런 불가능한 속도를 내기 위해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려는 의지보다 통치하려는 의지를 더 굳건하게 다져왔던 걸까.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버린 국민처럼 우리는 결국 굳건한 통치를 스스로 선택한 국민이 되어버렸지. 안보의 위협에 노출된 양 공포를 조장하면 정말로 공포에 떠는 국민이 되어서.

우리나라는 지금 온통 속이 텅 빈 관념들을 우리에게 먹이처럼 던져주는 것처럼 보여. 잘 살 수 있으려나 열망을 갖는 것 자체가 사육된 희망처럼 보여. 얼핏 들으면 삶의 필수조건처럼 보이는, 행복이니 힐링이니 창조·창의, 뭐 그런 모든 말들이 다 거짓말처럼 보여. 우정을 말하면서도 내 편을 만들고 싶어 할 뿐이고, 행복을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행복추구권을 함부로 짓밟을 뿐이지. 힐링을 말할 때 상술이 빤히 보이고, 창조를 말할 때 상투성이 빤히 보이고. 대기업으로부터 수천 명이 정리해고를 당하고 수 년 간에 걸쳐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해도, 서울의 한복판에 분향소를 차려두고 있어도 조문은커녕 강제철거를 하는 국가가 내세우는 슬로건은 사실상 거짓말이나 다름이 없지. 사람의 인권을 우선하는 시각이 부재하고, 인권보다 목숨을 귀하게 여기는 시각이 부재한 채로 잘 살자고만 외치는 국정 슬로건이 듣기 싫어서 나는 언젠가부터 TV를 안 보는 사람이 돼버렸어. 우리나라는 지금 거의 모두가 삶이 나아지기를 바란다기보다는 누가 나와 같은 편이고 다른 편인지를 색출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 어떤 입장에서 처신하고 발언하느냐에 대해서만 주목하고, 한 사람의 처신과 발언에 맥락을 읽으려는 사람은 만나기가 힘들어. 마치 우리는 헐뜯기 위해 세상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 같아. 헐뜯기 위해서라면 우리는 쉽게 우리로 뭉칠 수 있지. 그럴 때 비로소 무결한 사람이 된다는 듯이. 시각에 의해 세계는 우리에게 다가오지만 이와 동시에 시각은 우리가 세계 안에서 실종될 위험이 있다는 건 존 버거의 말이지만, 우리는 세계 안에서 이미 실종됐다는 게 내 생각이야. 이 실종신고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게 문학이라고 나는 생각해.

“나는 정의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나라도 사랑하고 싶습니다.” 이 알베르 까뮈의 문장을 내가 처음 네게 보여주었을 때, 너는 명쾌하게 덧붙였지. “여기에서 나라보다 정의를 좀 더 사랑하면 좌파가 되고, 정의보다 나라를 좀 더 사랑하면 우파가 되는 거네?”라며. 정의와 나라를 동시에 사랑하는 일이 이제는 불가능해졌고,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모리배가 되어 있어. 정의를 사랑하는 일도 모리배의 일이 되었고 나라를 사랑하는 일도 모리배의 일이 되었어. 모리배가 된 우리가 사용하는 말도 가난하기 짝이 없지. 둘 중 하나인 것만 밝혀야 하는 세상에서 둘 중 하나인 단어만 사용해야 오해를 사지 않으니까. 이제 세상에 많은 말들과 말과 말 사이의 틈새를 아무도 돌보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는 더 이상 아무도 정치적이지 않아. 정치적인 편향의 사람일수록 형편없이 정치적이지 않지. 단어와 단어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사물과 사물 사이의 틈새에 균열을 내어 굳건하게 안착되어 있던 정체성을 탈정체하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아. 아니, 그런 일은 누군가가 아주 조용히, 벌레처럼 어두운 곳에 숨어서 꼬물꼬물 하고 있어서 누구의 눈에도 띄질 않아. 같고 다름이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서부터 파생된 옳고 틀림이 문제가 아니라 단지 다양성의 부재가 문제라는 거,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그걸 실천하지 않아. 우리는 모리배로 살아가니까. 용기가 없고 그나마 용기도 잃었고 용기가 무엇이었는지도 이젠 기억하지 못하니까.

몇 년 전에 터키를 여행할 때였어. 몇몇 한국 여행자와 뜻이 맞아 동부 쪽으로 행선지를 옮겼지. 숙소에 짐을 풀고 우리는 와이파이가 되는 공용 공간에 모여 일제히 핸드폰을 켰어. 모두의 핸드폰에서 메시지의 도착 소리가 차곡차곡 들렸어. 외교통상부로부터 온 안내 메시지였는데, ‘여행 위험 지역이니 어서 그곳을 벗어나라’는 내용이었어.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핸드폰 하나로 추적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일행들 누구는 감시받는다는 표현을 썼고, 일행들 누구는 보호받는다는 표현을 썼지. 어쩐 일인지 우리들 중 한 사람에게는 메시지가 오지 않았어. 지금 여행 위험 지역에 도착해 있다는 사실보다 외교통상부의 감시망에서 누락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 사람은 갑자기 불안해했어. 그리고 온종일 외교통상부의 경고 메시지를 기다렸어.

그 사람이 왜 기다렸을까. 터키 동부는 분쟁지역이고 안전하지 않은 곳이지. 우리는 그때 반(Van)에 있었는데, 아름다운 소금호수가 있는 곳이야. 그 호수 한가운데에는 악다마르 교회가 그림처럼 놓여 있지. 그 교회는 세계 역사상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아르메니아 왕국의 교회야. 그 전설적인 풍광이 보고 싶지만, 치안이 안전한 곳은 아니어서, 혼자서는 못 낼 용기를 여럿이 모여 용기를 내어 그곳에 갔지. 여행자에게 위험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그가 몰랐던 것도 아니었고, 외교통상부가 그곳을 벗어나라고 주의를 줄지라도 그 말을 고분고분 들을 사람도 아니었어. 게다가 우리 손에 들린 핸드폰 하나가 우리의 위치를 외교통상부에게 보고하고 있는 이 신문명에 대해 우리가 달가워만 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 그 사람은 단지, 우리 무리들 중에서 자신만이 제외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불안해진 것 같다고 나중에야 고백했고,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다함께 그에게도 외교통상부의 경고메시지가 도착하길 기다렸지.

무리들 중에서 제외되는 일.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 중 하나지. 특히 한국 사람인 우리가 유별나게 두려워하고 있는 것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어. 단일민족으로 수천 년을 살아온, 민족이 곧 국가인 채로 한결같이 살아온 우리. 같음에 대하여 더없는 희망을 주입받았고 같음에 대하여 더없는 안도를 되새겨온, 전 지구적으로 살펴보자면 조금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국민인 우리. 무리들 중에서 스스로 이탈하여 홀로 자기 삶을 의연히 살아가는 일. 이런 말은 이제 문장으로만 그윽하게 존재할 뿐, 사실상 불가능하고 허황된 꿈에 해당된 지 오래지.

우리는 정권을 빼앗긴 게 아니라 나라를 빼앗긴 셈이야, 라고 네가 한숨 섞여 혼잣말처럼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이렇게 저렇게 나누던 끝에 네가 했던 말. 식민지 시대가 아닌 것은 명백한데, 우리의 상태는 어쩐지 식민의 시대와 비슷한 것 같다던 너의 말이 생각이 난다.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한국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불법체류자처럼 아슬아슬한 너와 나의 삶.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로 했으니, 기꺼이 어느 정도의 불행은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지 않느냐고 내게 물었을 때에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냥 너의 서러운 눈빛만 쳐다볼 수밖에 없었어. 대답하지 않았지만 나의 서러운 눈빛을 너도 쳐다보았겠지.

오늘 안현수 선수가, 아니 빅토르 안 선수가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지. 러시아 국기를 두 손에 들고 빙판 위를 감격스레 누비는 선수를 보고서 모두가 벅찬 찬사를 보낸 하루였어. 한국 사회의 더러운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지만 그에게 보내는 벅찬 찬사 속에는 더러운 꼴을 참아가며 한국 사람을 지속해온 우리의 염증이 드러난 사건이기도 한 것 같아. 그 염증은 실은, 이미 우리는 나라의 보호를 충분히 받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유기견의 신세에 지나지 않으며 나라를 빼앗긴 국민과 다를 게 없으며 나라뿐만이 아니라 영혼도 빼앗겨가고 있다는 고백처럼 보였어. 애민해주지 않는 나라에겐 애국을 할 필요가 없다는 그의 단호함을 접하면서, 모두들 농담반 진담반으로 그를 부러워하는 듯해. 그에게 무슨 대리성취감 같은 걸 느끼는 듯해. 우리는 거대담론의 시대에 태어나서 사소한 개인을 겨우 발견하자마자 다시 껍데기만 남은 거대담론 속에 쫓겨난 듯 되돌아와서 살고 있지. 내 나라의 국적을 가진 채로 내 나라에서, 내 나라의 디아스포라로 살아가고 있다는 서러운 사실에 이제사 눈을 뜨는 시대를 살고 있지.

탈주에 대한 욕망을 지녔거나 실천했던 사람들에 대해, 어렸을 때의 나는 좀 회의적인 입장을 가졌더랬어. 그때는 지금처럼 우리가 실로 가난해질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겠지. 삶의 방식에 대해, 의견을 말하고 표현을 하는 내용에 대해, 이토록 극빈자처럼 살 거란 사실을 예감하진 못했던 것 같아. 그래서 언제나 내가 속한 곳 안에서 희미하게나마 가능성을 꿈꾸는 쪽에 기울었던 것 같아. 좀 더 진보적인 정권을 기대했고, 전복을 꿈꿨고, 내가 가진 권리를 힘껏 행사하고 내가 꾸는 꿈을 더 예민하게 간직하려고 애를 썼고 섬세하게 실천해보려고 아등바등 살았던 것 같아.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나는 차라리 무리에서 제외되는 길을 선택하고 싶어. 물론, 만날 때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궁리해주던 너와 함께라면 말이야. 명백한 입장을 가진 자들이 쏟아내는 추악한 언어가 싫고, 두려운 자들이 쏘아대는 검열의 시선이 싫고, 타자의 시선에 갇혀서 스스로 주눅이 드는 우리의 가난한 언어가 싫어. 행복하자는 말도 싫고, 잘 살자는 말도 싫어. 우리의 그냥의 삶을 그냥 경험하고 이 그냥의 사소한 결들을 어루만지고 쓰다듬을 수 있는 하루하루만을 살고 싶어. 그러기 위해서 모리배의 사회로부터 결별부터 하고 싶어. 나 자체가 자치구가 되고 싶어. 그 자치구 안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냥의 시를 쓰고 싶어. 천천히 느리게 쓰면서 살고 싶어. 명백하지 않다고 욕을 먹더라도, 위험하다고 욕을 먹더라도, 이기적이라고 비겁하다고 손가락질을 당할지라도, 내 눈빛에서 절망만을 읽어낼지라도 그렇게 하고 싶어.

네가 아직 안 읽었을 것만 같은 시를 하나 적어둘게. 이 시의 제목이 ‘비명들’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주었으면 해. 비명도 하나의 입장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 시를 통해서 새삼 알아가는 중이야. 일단 이 두 줄부터 먼저 적어줄게. 이 두 줄이 네 생각과 비슷하다면, 다른 구절들도 전부 들려줄게.

                    어떤 목소리가 노래하는 법을 배울 때 그 목소리는 위험하게 들릴 수 있다

                  어떤 목소리가 듣는 법을 배울 때 그 목소리는 절망적으로 들릴 수 있다

            -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비명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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