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된 언어

‘오늘날’ 언어는 오염되어 있는가? 이런 질문은 마치 과거에는 언어가 순수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순수한 언어란 없으며, 모든 언어는 원래부터 오염되어 있다. 언어는 인간의 것이고(물론 인간만 언어를 쓰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속의 것이다. 세속의 언어는 세속을 움직이는 모든 것들, 이를테면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모든 관계들의 영향을 받게 된다. 세속의 관계들 속에서 만들어지고 사용되는 언어는 그 관계들을 반영한다. 가령 정치적 강자의 언어와 정치적 약자의 언어는 서로 다르다. 똑같은 단어라도 누가 사용하는가에 따라, 어느 시기에 사용되느냐에 따라 언어는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언어가 관계 속에서 달라진다면 이미 그 속에서 순수함을 찾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우리는 일단 언어가 이미 무언가에 오염되어 있으며, 우리가 그 속에서 살 수밖에 없음을 전제해야 한다.

캐나다 소설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쓴 『인간종말 리포트』(Oryx and Crake, 2003)라는 소설이 있다.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 흥미로운 사이언스 픽션에서 크레이크라는 천재 생명공학자는 오염된 세상에 혐오감을 느끼고 인간을 멸종시키려는 계획을 세운다. 크레이크가 바라보는 세상은 소수의 기업집단이 부를 독차지하고 편안히 사는 반면 다수의 대중은 무법천지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치는 그런 곳이다. 이 디스토피아적 세상은, 그러나, 온갖 ‘멋진’ 언어로 도배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가령 인간에게 이식할 장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혼종교배시켜 다양한 장기를 만들어내는 회사의 이름은 ‘헬쓰-와이저’(Helth-Wyzer)다. ‘더 현명한’(wiser)이라는 말과 ‘건강’(health)라는 단어를 합쳐 만든 회사명은 그들이 생산하는 괴물을 감춘다. 세계에 만연한 처참한 모습들은 가장 건강하고 아름다운 단어들로 가려진다. 크레이크가 인류를 절멸시키기 위해 고안한 방법 역시 같다. 그는 섹스의 쾌락을 증진시키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효과를 결합한 약 속에 치명적인 전염 바이러스를 담아 그 약에 ‘블리스플러스’(BlyssPluss), 즉 ‘갑절의 축복’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엄청난 호응 속에 전 세계로 퍼져나간 약은 인간을 멸종시킨다. 멸종된 인간에게 이 약의 이름은 거짓이었겠지만, 크레이크에게는 자신의 소망을 충족시키는 ‘갑절의 축복’이었으니 진실이었을 것이다.

애트우드의 소설이 보여주듯, 언어는 근본적으로 오염되어 있다. 언어는 숨기고, 가리고, 드러내고, 과장하고, 축소한다. 인간이 하는 일과 똑같은 일들을 언어가 한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오히려 언어가 인간을 사용한다. 언어는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 이미 그 전에 있던 언어 속에서 살아가며 그 언어를 받아들였다. 우리가 언어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며, 이미 있던 언어의 힘이 우리를 만들어낸다. 인간은 언어 세계 아래로(sub) 던져짐으로써(jet) 궁극적으로 ‘주체’(subject)가 되는데, 독립을 의미하는 ‘주체’의 원래 뜻은 ‘종속된 인간’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종속됨으로써 비로소 독립한다는 이 역설은 결국 인간과 언어의 관계를 보여주는 본질적 이미지다.

언어라는 신화

언어는 순수하지 않으며 언제나 하나의 ‘신화’로 작동한다.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라는 기호는 그 자체로가 아니라 그 위에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진 채로 사용된다. 요즘 한국인들이 자주 듣는 단어인 ‘민영화’라는 말을 보자. ‘관’(官)과 대비를 이루는 말인 ‘민’(民)은 ‘국민’을 의미한다. 즉 ‘민영’은 국가 대신 국민이 어떤 기업 혹은 기관을 직접 경영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로 ‘민영화’는 지금껏 국가가 관할했던 분야를 특정 ‘자본’에게 맡기는 것, 즉 ‘사영화’(私營化)로 구현된다. 이 새로운 의미는 ‘국영’ 혹은 ‘공영’ 기업/사업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운영을 해왔는지를 강조하는 지표들과 함께 사용됨으로써 그 정당성을 획득한다. ‘민영화’는 결국 관료화되고 비대화된 조직을 혁신하는 ‘자유’와 ‘효율성’을 뜻하는 완전히 다른 말로 변한다. 원래의 기호에 다른 의미를 덧붙여 창출된 새로운 기호, 바르트는 이를 ‘신화’라 부른다. 이 신화의 목적은 자본이 국가 혹은 공공성을 대체하는 체제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한 번 ‘민영화’라는 단어가 신화화되고 그것이 먹혀 들어가면, 이후부터는 모든 게 자연스러워진다. ‘민간참여’가 장려되고, ‘자율형 사립고’가 허가되며, ‘국제자유도시’가 만들어진다.

바르트가 “신화의 기능은 현실을 비워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신화화된 언어는 현실을 가상으로 대체하고, 이 가상을 다시 현실로 만들어낸다. 의지에 따라 현실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행위는 신만이 할 수 있기에, 그 행위의 이름은 ‘신화’가 된다. 신 없는 현실에서 신을 대체하는 이는 힘을 가진 이들이다. 그것이 경제적 자본이든 정치적 권력이든, 힘을 가진 이들은 신화를 만들 수 있는 풍부한 자원(언어, 지식, 언론) 역시 가졌고, 이들이 만든 신화는 다시 그들의 힘을 불리는 원천이 된다. 신화 만들기가 근본적으로 힘의 관계를 표상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신화는 지금 이 순간에도 생산되고 있다. 최근 등장한 예로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대통령의 언명이 있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권력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정상은 ‘옳은 것’, ‘기준이 되는 것’이므로, 정상에서 벗어난 것, 곧 ‘비정상’은 무조건 교정되어야만 한다. 비정상은 정상에 종속되어 있으며, 정상을 설정함으로써만 만들어진다. 당연히, ‘비정상의 정상화’는 그 누가 말해도 반박불가능한 말이다. 그러나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대표하고 있는 행정부의 수장이 이 표현을 쓰는 순간, ‘비정상’은 자신의 정책과 기준에 맞지 않는 모든 것을 포함하게 된다.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조, 국가정책에 반대하는 시민, 북한을 따른다고 매도되는 정당까지 ‘비정상’의 영역에 놓이게 될 때, 남은 것은 이들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탄압하는 일이다. 결국 ‘내’가 아닌 모든 것을 ‘비정상’으로 묶어 억압하는 일이 ‘정상화’로 둔갑하게 된다.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이미지를 가진 단어 뒤에 주관적이고 편견이 가득 찬 입장을 숨기는 일이야말로 신화 생성의 가장 전형적인 방식이다.

신화 만들기가 성공할 때, 그 신화는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사람들이 누구나 옳다고 생각하는 언명, 대다수 사람들의 ‘공통 감각’(common sense)에 거부감 없이 자리 잡은 언어, 이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상식은 결국 신화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표현을 보자.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온 나라에 울려 펴지는 이 슬로건은 사람들 다수가 옳다고 믿는 상식이다. 우파든 좌파든, 보수든 진보든 이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표현은 ‘선거’야말로 ‘민주주의’라는 토양에서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결실(‘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런가? 이 표현은 국민의 대리자를 뽑는 선거와 민주주의를 동일시하면서, 선거 없는 민주주의를 상상하지 못하게 만들고, 국민의 대리자가 종종 국민을 멋대로 지배하기도 했던 역사를 가린다. 대리자가 없으면 엄청난 무질서와 혼란이 발생한다는 반민주주의적 공포를 품고 있는 이 표현은 원래 민주주의는 무질서와 혼란을 통해 자라나고 성숙했다는 점을 감춘다. 무엇보다, 이 슬로건은 모든 민주적 의사표현을 ‘선거’라는 단 하나의 제도로 포섭한다. ‘선거혁명’이라는 자매 표현이 말해주듯, 오늘날 민주주의는 ‘선거’를 물신화함으로써 ‘혁명’에 대한 사유를 불가능하게 한다. 자연화된 신화로서, 상식은 4-5년 만에 한 번씩 마트에서 상품 고르듯 투표를 하면서 그것을 ‘참여’라고 일컫는 형식화된 정치-소비를 ‘민주주의’로 믿게 만든다. 제비뽑기로 대표자를 정할 정도로 인민의 완전한 평등을 의미했던, 지배자의 목을 단칼에 자르는 인민의 냉혹한 의지를 의미했던 민주주의는 이 상식을 통해 그 급진성을 잃는다. 그 자리에 무엇이 들어설 수 있는지는 지금 우리 모두가 목도하고 있는 중이다.

오염 속에서 살기

신화화된 언어에는 묘하게 사람을 끄는 힘이 있다. 세상살이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달콤한 환상을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가령, ‘페친’이라는 말은 ‘페이스북 친구’의 줄임말일 뿐이지만, ‘친구’라는 단어로 인해 ‘페친’의 의미는 증폭된다. 오프라인에서 만난 적도 없지만, 내가 쓴 글에 따뜻한 댓글을 남기고 항상 ‘좋아요’를 눌러주는, 내 사진을 보고 자기 사진을 보여주는 이 ‘페친’은 온정이 사라진 메마른 시대에 그나마 내게 친밀감을 주는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그녀>(Her, 2014)는 고독에 지친 한 남자가 우연히 목소리로 구성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컴퓨터와 핸드폰에 깔게 되면서 시작한다. 남자는 프로그램의 목소리를 ‘여자’로 설정하는데, 이 가상의 여자는 남자의 컴퓨터 정보와 핸드폰에 비친 모습, 남자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을 인식함으로써 그의 애인 노릇을 한다. 사실 이 ‘여자’는 고도로 발달한 프로그램에 불과한데도 남자는 여자에게 빠져들고, 그녀와 사랑을 한다(고 믿는다). 영화는 ‘과연 인간과 컴퓨터의 교감이나 사랑은 가능한가?’라는 심오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 ‘컴퓨터’를 ‘페친’으로 대체한다면 어떨까? 컴퓨터와 교감하는 영화 속 ‘남자’와 컴퓨터 상에서 페친과 교감하는 우리는 과연 다를까? 가짜든 진짜든, 진리든 신화든 상관없이, 인간은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고 자신과 언어를 나누는 대상에 빠져들곤 한다.

인간의 고독과 불안은 그토록 절실하기 때문에, 이 절실한 고통을 위무하는 언어는 언제나 힘이 있다. 한물 간 듯 보였으나 여전히 위력을 떨치는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그렇다. 대중화되기 이전부터 ‘힐링’은 이미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친숙한 단어였다. 예수는 우리의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자로 표상되었고, 많은 복음성가가 ‘나 지치고 내 영혼 연약할 때 근심 속에 내 마음 무거워 주 오셔서 함께 하실 때까지 나 잠잠히 주님을 기다’린다고 노래했다(<어메이징 그레이스>). 상처받은 영혼이 갈구하는 구원자로서의 ‘힐링’ 개념은 모두가 생존경쟁 속에서 지치고 불안해진 신자유주의 사회 속에서 대중화된다. 물론 ‘치유’라는 언어가 가진 심리화된 특징, 즉 근본적이고 사회적인 변화가 아닌 개인적이고 심리적인 변화만을 지칭하는 특징은 그야말로 신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한 가상현실이 실제현실을 급격히 대체하는 상황에서 ‘힐링’처럼 가상에 가까운 언어들은 더욱 유행하게 된다. 현실의 선배를 가상의 셀레브리티가 대체하는 ‘멘토’가 그렇고, 현실의 정체성을 게임 속 아이콘이 대체하는 ‘캐릭터’라는 말이 그렇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캐릭터 간 갈등이 실제로 현실에 개입하여 현실을 바꾸는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잉투기>(2013)가 보여주듯, 시뮬라크르의 세계는 이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가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어쩔 수 없이 도래할 미래의 모습일 것이다.

이를 다시 질문하면 이렇다. 우리는 신화적이고 가상적인 언어들, 즉 오염된 언어들 없이도 살 수 있는가? 우리가 언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언어가 우리를 사용한다는, 신화화된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한다는 엄연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언어화된 가상 너머의 진실과 마주하기 위해 언어로부터 탈주하는 것. 다른 하나는 언어의 감옥에서 탈주하려는 시도의 무용성을 깨닫고 신화화된 언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전자는 매력적이지만 언어 너머의 ‘진실’이 있는지 결코 알 수는 없다는 맹점이 있고, 후자는 편안하지만 자신을 신화화된 언어의 먹이로 내어주는 무책임한 일이라는 함정이 있다. 우리는 스스로 자유롭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이 두 선택지 사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대개 둘 사이를 왕래하며 살아가다 죽는다. 우리가 죽어도 언어는 살아남는다. 우리는 언어와 싸울 수는 있지만 결코 언어를 극복할 수는 없다.

다시 『인간종말 리포트』로 돌아가보자. 인간을 절멸시킨 크레이크는 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인류에게 폭력적이고 차별적이고 이중적이며 뒤틀린 모든 단어를 제거해버린, 완벽히 순수하고 단순한 언어를 가르친다. 이 새로운 인류는 폭력과 차별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평화적인 존재들이 되었다. 그러나 순수한 언어는 이들에게서 폭력과 더불어 다른 개념들도 빼앗아 버렸다. 유머와 정치와 문학 같은 것들, 오염된 언어가 주는 최고의 선물들. 인간과 똑같이 생긴 이 새로운 인류를 보며 받는 기이한 느낌(uncanny)의 정체가 이것이다. 신화화된 언어를 비판하면서도 순수한 언어에 대한 판타지에 빠지지 않아야 하는 이유 역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오염된 언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기에 그렇다.

이미지 제공_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