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발(發) 『플랫폼』의 여정이 벌써 마흔다섯 번째를 맞이하고 있다. 평범한 대학생인 나는 지난겨울 한국근대문학관에서 잠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플랫폼』전 권의 목차를 정리하는 일이 주어졌다. 창간호부터 44호까지 모두 읽어 본 독자로서 부족한 글 솜씨지만 이 책이 나에게 준 많은 깨달음에 대한 고마움의 답례로 글을 써 보기로 하였다. 이 글이 나와 문화비평지의 공식적인 소통의 첫 단추를 끼운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르기도 하다.

『플랫폼』을 읽으며 처음으로 든 생각은 40회가 넘게 발간되며 ‘아시아·문화·지역’이라는 다양한 키워드를 가지고 있어서 항상 신선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특히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다양한 아시아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나도 모르게 글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간단한 읽을거리 정도에만 익숙하던 나에게 아시아 문화비평지는 지역과 사회 그리고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에 대한 진지한 궁금함을 가지게 해 주었다. 창간호부터 쉴 새 없이 달려온 플랫폼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어느덧 문화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문화를 비교적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보고 싶은 영화는 개봉 당일 바로 보아야 하고, 대학로에 가서는 상연 중인 연극을 보며 웃고 운다. 음악 감상 또한 내 일상의 한 부분이며, 지역축제에 가서 이런저런 것을 체험해 보기도 한다. 이렇게 내 나름대로 문화를 많이 즐기고 있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것은 나의 자만이었음을 깨달은 건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서였다. 『플랫폼』을 읽으면서 문화의 폭넓은 범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고, 문화를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각이 존재함을 인식할 수 있었다. 거기에 실린 문화인들과의 인터뷰는 문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상상 이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미술과 관련된 비평은 관련 지식이 부족하여 읽기 어려웠기는 해도 역설적으로 나에게 예술을 보는 시각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한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나에게 예술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제공해 준 것과는 별도로 다소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야겠다. 다름 아닌 표지와 내지의 디자인 문제다. 글의 내용과는 별개로 디자인 또한 눈에 들어왔다. 『플랫폼』의 디자인은 표지에서부터 시작한다. 책의 표지는 독자에게 첫인상으로 다가와 그것을 읽고 싶다는 기대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플랫폼』의 디자인은 그러한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다소 모자란 점이 있어 보였다. 예를 들어 지난 35호의 표지는 집 모양이 연속된 그림이다. 이 표지만 봐서는 해당 호의 내용과 특징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이 쉽게 잡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배려를 표지디자인에도 적용했으면 한다.

지난 해 혁신준비호와 혁신호를 마주하며 디자인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그만큼 혁신적이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플랫폼』이 추구하는 정갈한 디자인은 글을 돋보이게 할 수 있지만 나름 포함한 젊은 독자들은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한다. 『플랫폼』의 독자층이 일반 대학생 수준인 것으로 감안한다면 보다 트랜드에 민감한 디자인 성향에도 맞출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는 자유로운 문화비평지의 이미지를 대변할 수 있는 참신한 디자인을 도입할 거라고 기대한다. 디자인은 개인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나는 『플랫폼』만의 개성 있는 디자인을 바란다. 요즘은 버스도 트랜드에 맞추어 변하는 시대가 아닌가? ‘타요버스’가 서울 시내를 누비고 다닐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버스의 작은 변화가 어린아이들에게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듯이 책의 디자인에도 좀 더 신경을 써주었으면 한다.

‘플랫폼 문화비평상’은 신진비평가를 배출한다는 점에서 『플랫폼』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5회를 거치는 동안 당선작의 참신한 소재와 개성 있는 글 솜씨, 관련 분야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플랫폼』은 제한된 필진으로 인해 중복된 필자가 많다고 느껴졌는데, 플랫폼 문화비평상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신선한 대안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플랫폼』이 좋은 신진 비평가를 발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면 한다.

문화비평지는 독자가 미처 체험하지 못한 전시, 뮤지컬, 연극, 오페라, 영화 등을 간접적으로 마주할 수 있게 하는데, 특히 그것을 다룬 리뷰를 읽다 보면 생생한 현장감으로 인하여 직접 대면하고 싶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 물론 비평문이기 때문에 단점을 미리 알고, 그에 대한 선입견이 생기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보다 많은 지식이 밑바탕에 깔린 감상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천 출신으로서 『플랫폼』과 같은 훌륭한 문화비평지가 내 고장에 있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인천에서 만드는 문화비평지라는 점 때문에 좀 더 친숙하게 공감할 수 있는 것 같다. 또한 독자층인 대학생들이 전공과 무관하게 비교적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비평지라고 생각한다. 대학생층에 대한 홍보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대학생들이 목말라 하는 인문학적 사고를 『플랫폼』의 여러 비평문이나 ‘인문학살롱’과 같은 읽을거리를 통해 채울 수 있다고 본다.

‘아시아’라는 개념은 『플랫폼』 제작 초기에 핵심적인 위치를 점한다고 보인다. 내가 중국과 대만과의 양안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의 ‘아시아문화비평’을 통해서였다. 이렇듯 아시아의 문화뿐만 아니라 정치·경제·사회·국제관계, 그리고 한·중·일의 문학을 비교하는 등의 다양한 시도는 나에게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그러나 38호 이후부터 ‘아시아’ 개념을 배제하여 그러한 경험의 폭을 더 이상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본격적으로 국내의 문화현상에 집중하는 요즘의 『플랫폼』이 독자들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해서는 보다 수준 높은 주제 선정과 함께 그에 부합하는 글을 제공할 것이라 기대한다.

『플랫폼』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글 중 하나는 동일본대지진에 관한 글이었다. 대지진이라는 미증유의 사건과 그 후 1년이 지난 시점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 피난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끝나지 않은 고통과 꺾이지 않은 희망과 극복의지를 엿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글은 나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었다.

인천이라는 지역을 다루는 방식도 흥미롭다. 그 중 인천의 배다리를 다룬 몇 편의 글들이 눈길을 끌었는데, 그러한 글을 읽고 난 뒤 중학교 졸업 이후 정말 오랜만에 배다리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 시절에는 배다리라는 지역이 오직 헌책방거리가 있는 곳이라는 인식뿐이었지만, 책에서 본 옛 양조장을 리모델링하여 사용하고 있는 대안공간 ‘스페이스 빔’에 가봄으로써 좀 더 다양한 문화와 색다른 공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배다리 지역이 산업도로 건설을 둘러싼 내홍을 겪는 모습을 접하면서 자본 혹은 관이 경제적 이익에 우선하여 지역주민들과 그들의 삶의 역사를 이해해 주는 태도를 갖는다면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배다리와 함께 『플랫폼』에서 자주 다루었던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도 올해에는 꼭 가 보리라 다짐해 본다.

‘플랫폼’이란 낢과 듦이 만나는 소통의 장소이다. 실크로드에서 다양한 문화가 혼합되어 크게 융성하였듯이 『플랫폼』에서 문화가 소통하여 커다란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자들도 글 한편, 한편에 공감과 비판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진정한 비평이란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독자들도 『플랫폼』의 방향에 대해 보다 많은 생각을 공유하였으면 한다. 『플랫폼』과 독자가 함께 만들어 나갈 때 지금보다 더 풍성한 문화비평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유로운 문화비평지에 잔소리로 부담을 주는 나쁜 독자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애정을 가지다 보니 바라는 점도 많아지는 것 같다. 문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해 주는 고마운 친구, 『플랫폼』과 앞으로도 오래도록 문화가 가진 참 의미를 공유하고 싶다.

이미지 제공_인천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