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3월 말 이틀에 걸쳐 진행했던 인천 중구 송월동 동화마을 축제 현장에서 1인 행동을 벌인 바 있다. 이렇게 나서게 된 이유는 축제 자체와 동화마을 조성 사업에 대한 문제 제기의 일환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의 공간 또는 지역, 장소를 바라보고 접근하는 (인천시와) 중구의 사고와 방식, 태도에 대한 그간의 누적된 불만과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왜곡된 도시 재생 또는 원도심 활성화 사업

송월동 동화마을 조성 사업은 거슬러 올라가면 지난 1995년 지방자치제를 전격 시행하면서 광역과 기초 단위 자치단체들이 이른바 ‘도시경쟁력 확보’ 차원의 다각적인 수단을 마련하기 위해 해당 지역만이 지닌 남다른 역사 문화(유산), 자연 요소 등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한때 활력이 넘쳤으나 도시의 확장 또는 신도시 개발로 인해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화려했던 옛 영화를 다시 꿈꾸기 위한 도시 재생 또는 원도심 활성화 사업과도 맞물려 있다.

인천 중구는 이의 궤적을 그대로 밟아 왔다. 문제는 개념과 철학 없는 도시 및 관광 정책에 기반을 두고 오로지 경제적인 잣대만을 내세워 접근하다 보니 역사 문화적 가치와 맥락 없는 공간으로 변질시켜 왔다는 것이다. 옛 청관의 울긋불긋 벽화와 인공 시설물들, 옛 일본 조계지 건물 외벽의 나무껍데기 덧씌우기 작업, 격동의 근ㆍ현대사가 압축되어 있는 곳에 전국의 전통 공원 양식을 모아 짜깁기한 월미공원 조성사업, 난데없는 각국거리와 (인천시의) 러시아거리 조성 사업 등이 그것이다.

이런 식의 공간 및 거리 조성 사업은 무엇보다도 해당 지역이나 장소가 지닌 역사적 정체성을 탈각시키거나 왜곡시킨다. 우리가 바람직한 현재를 만들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냉철한 역사의식 속에서 바람직한 교훈을 얻어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남아 있는 ‘자산’들의 적절한 보존과 관리, 지혜로운 활용 등 공간적 구체화를 병행하여 제대로 된 접속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중구는 이러한 정신이나 태도는 보이지 않고, 과거를 뭉개버리거나 이를 활용하되 표피적인 볼거리 수준으로 격하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나아가 이런 식의 사업은 우리가 하나의 도시를 두고 다양한 시각과 관점에서 바라보고, 접근하고, 해결하고, 만들어가야 할 노력과 역할, 책무를 차단시키는 기능으로 작용한다. 해당 지역이 지닐 수 있는 여러 현안들, 이를테면 이곳도 사람 사는 동네라면 주거나 교육, 복지, 환경, 공동체 등등과 관련된 사안들이 있을 터이고, 이의 해결은 여러 주체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속에서 가능할 것이고 또한 그렇게 해야 마땅하다고 보는데, ‘바깥의’ ‘외형의’ 그럴듯한 모습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경우는 오히려 잘 나가는(?) 곳으로 보이는 착시 효과를 유발하기도 한다.

나는 도시 ‘재생’ 또는 원도심 ‘활성화’를 변덕스런 욕망과 이색적인 기호를 부추기거나 여기에 기댄 자본주의의 상품 논리-이를테면 얄팍한 관광이나 문화산업 등-를 넘어서는 대안적인 삶의 가치와 형태를 도시 공간 속에 지배 원리로 정착시키고자 하는 관점과 방향, 의지와 노력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것이야말로 도시 간의 ‘경쟁’을 통해 야기되는 온갖 낭비적, 소모적, 파괴적 행사와 사업 및 이의 악순환을 넘어 공존과 상생, 협력의 관계를 이루고, 지속 가능한 선순환 구조와 사회 또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짝퉁 거리와 장소를 만들어놓았는데 그것이 통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중구 개항장 일대는 주말이 되면 곳곳에서 찾아와 이를 소비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이러한 결과를 보고 사업 시행자인 중구는 성공했다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결국 이는 행정과 시민 내지는 우리의 관광(객) 수준이 합작하여 이루어낸 결과다. 그리고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행정은 이러한 방식의 사업을 더 확장시킬 계획을 세운다. 송월동 동화마을 조성 사업은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송월동 동화마을 및 축제의 겉과 속

송월동 동화마을은 기존의 사업 방식이 그대로 이어진다. 그 나름의 역사와 문화적 특성, 삶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을 곳임에도 불구하고 한 마을을 동화 속 이미지들로 덮어버렸다. 당연히 그 이미지 이면의 마을이 지닌 이모저모, 즉 속살들은 감추어져 버렸다. 물론 시행 과정 속에서 일부 주민들의 여러 불만과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려오고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 목소리에 묻혀 버렸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과 방식의 사업을 당연시하고 이를 다양한 형태로 계속 확대 재생산해 나가고자 하는 취지에서 축제까지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나에게는 이러한 축제가 더 이상 돌이키기 힘든 상황으로 밀어붙이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축제는 예상대로 동화 일색이었고 동화 속 주인공들이 주인이었다. ‘송월동’이라는 마을에서 개최했지만 송월동은 없었다. 어린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을 포함하여 엄청난 인파가 송월동에 몰려들었지만 온 거리와 주택, 골목을 도배하다시피 한 동화 관련 이미지 외에는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보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따금씩 주택 앞이나 골목 어귀에 이곳에 사는 것으로 짐작되는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지만 방문객들의 관심과 시선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 그리고 축제의 주인이어야 할 마을 주민 분들은 행사장 뒤 언덕배기에 마련한 먹을거리 장터에 모여 앉아 있었다.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날 나는 ‘이상한 동화나라의 토끼’라는 개념으로 분장을 하여 현장에 나가 축제의 자발적 참가자가 됨과 동시에, ‘송월동을 찾습니다’라는 글귀의 어깨띠를 두르고 행사 주최자는 물론 주민들, 이곳을 찾아온 방문객들이 지닌 최소한의 상식적인 판단과 수준에 기대를 걸고 질문을 던짐으로써 나를 그곳으로부터 이탈시켰다. 애초의 기대는 이렇다 할 생각 없이 축제를 마련하고 준비하고 방문한 이들의 시선과 기억 속에 잠깐이지만 무언가 멈칫할 수 있는 이미지를 남기는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적지 않은 반응을 확인함으로써 성공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자그마한 행위가 축제 이면에 감추어져 있었던 존재와 모습까지 접하게 될 줄이야.

현장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는데, 며칠 후 나의 1인 행동이 모 언론을 통해 송월동 동화마을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의 인터뷰 기사와 더불어 소개가 되자 이를 접한 송월동 동화마을 조성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주민 분들이 항의 방문을 하러 몰려왔다. 그들의 주장인 즉, 이런 식으로 낙후된 지역을 살려 우리도 좀 잘 살아보겠다는데 이곳에 살지도 않는 사람이 웬 간섭이냐는 것이었다. 나름 그 이유를 설명하려 했으나 자신들의 입장이나 생각과 다른 어떠한 이야기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결국 합리적인 토론을 통한 또 다른 방법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들에게 나는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사업을 막는 방해꾼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을 겪으며 중구만이 문제의 당사자이고 주민들은 이러한 사업에 대해 호불호의 입장에만 놓여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과 나와의 생각의 차이와 간극은 쉽게 좁히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는, 나를 포함하여 바람직한 도시 공동체를 꿈꾸며 노력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하는 상징적인 과제로 설정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방식이 성공으로 포장되고 그렇게 회자된다면 우리가 더 이상 머리를 싸매고 무언가 해야 할 일은 없어지기 때문이다.

멈출 줄 모르는 중구의 분칠하기 행태

그런데 인천시 중구는 이런 식의 사업을 여기에서 끝내지 않으려 하고 있다. 축제 개막일 ‘저층주거지 관리사업 기공식’을 하면서 이러한 동화마을을 송월동 외곽으로 확산시키는 2단계 사업을 시작하였고, 그 외 북성동 새우젓 골목 또는 뱀골과 인천역 주변, 신포동 일대 또한 이런 저런 이름으로 분칠하기 작업을 계획 중에 있다. 우리는 이렇듯 ‘못 말리는’ 중구의 행태를 과연 어떻게 막고, 인문적인 관점에서 도시에 대해 같이 고민하는 파트너로 불러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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