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카시즘의 언어와 기만적 수사학의 남발

시인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사월(四月)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라고 외친 적이 있다. 요즘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1967)라는 시가 자꾸만 머릿속을 맴돈다. 도대체 왜 그럴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 언어들의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가 알맹이를 담지 못하고 껍데기만 있다는 것은 내용 없는 언어의, 진실이 삭제된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껍데기 언어들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한국사회의 지도층들이 껍데기 언어를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껍데기 언어의 생산자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항상 진실이라고 광고한다. 신문 방송 매체를 장악한 주류 세력은 반복적인 신문 방송 보도를 통해 거짓을 진실로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언론이 공정성과 객관성을 상실할 때 껍데기 언어는 독감 바이러스처럼 무섭게 번진다.

2013년 언어 오염의 진앙지에 자리한 것은 모든 합리적인 물음을 매카시즘의 ‘종북’과 ‘대선 불복’으로 환원시킨 극우 정치인들이다. 명백한 부정선거 개입을 개입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국정원의 기만적 수사학은 언어 오염의 또 다른 핵심 원인이다. 국정원의 기만적 수사학과 매카시즘의 종북 몰이는 상호 증폭되어 언어의 오염을 증폭시켰다. 중도의 합리적인 목소리마저 종북과 대선불복으로 낙인찍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다시 유신시대로, 전두환 군사정권의 시대로 퇴행했다. 복지를 내세우며 당선한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복지를 쓰레기통에 버렸고, 종북 몰이와 공안통치를 방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공약(公約)은 이름 그대로 공약(空約)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는 껍데기 언어의 생산을 한없이 증폭시켰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감금당한(?) 국정원 여직원의 권리 침해에 분개했던 박근혜 후보는 정작 당선이 된 이후 감금당한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침묵으로만 일관했다.

언어학자인 소쉬르는 언어를 랑그와 빠롤, 기표와 기의가 결합한 자의적 산물로 규정했다. 이 중에서 기표는 언어의 소리를, 기의는 언어의 내용을 가리킨다. 껍데기 언어는 의미하는 기표와 의미되어지는 기의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넓다. 그 결과 기표와 기의는 낯선 타인 관계가 된다.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 관계였지만 어느 정도 신뢰와 우정을 쌓았다. 하지만 껍데기 언어는 이 신뢰와 우정을 모두 해체시켰다. 말 따로, 내용 따로의 현실은 의사소통의 위기이자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조중동과 이명박 정권이 허가해준 종편방송을 통해 민의를 왜곡시켰다. 주류 언론이 생산하는 언어의 진실과 민중이 생각하는 언어의 진실 사이의 간격이 한없이 넓어진 현실은 언어에 대한 불신을, 지배층에 대한 불신을 만연시켰다. 주류 언론의 껍데기 담론에 중독된 국민들과 그렇지 않은 국민들 사이의 갈등도 증폭되어 사회적 통합에 빨간 등이 켜졌다.

2013년에 정의구현사제단이 부정 선거 규탄과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한 사건은 이 땅에 거짓된 언어의 횡행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비장한 선언이었다. 극우정권의 탄압과 주류 언론의 왜곡되거나 통제된 정보 보도 속에서 진실은 잠시 은폐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실은 결코 오랫동안 은폐될 수 없다.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한 인간의 외침은 우리 시대의 촛불 시위로 나타나고 있다. 언어를 다루는 문인들도 시국선언이나 개별적 글쓰기를 통해 저항의 불꽃을 점화했다. 알맹이 언어를 찾으려는 비판적인 문인들의 노력과 저항은 껍데기 언어의 위기이자 박근혜 정권의 위기를 말해준다. 

2. 문인들의 시국선언과 발언들 

문인들에게 언어는 일종의 공기와 같다. 언어에 민감한 문인들은 오염된 언어의 발생과 확산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껍데기 언어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합리적, 이성적, 객관적 언어들이 무력화된다. 문인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통해 오염된 언어의 정화를 시도한다. 이것은 문학에서 현실에 대한 비판적 형상화나 강열한 유토피아 욕망으로 분출된다. 문학의 형상화 작업은 일정한 시간과 미학적 형식을 요구한다. 급박한 현실 상황에서는 이것을 충분하게 하기 어렵다. 더욱이 언어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100% 전달하기 어려운 불충분한 도구이다. 문인들은 언어가 오염된 상황에서 문학적 형상화만이 아니라 당대 현실에 대한 직접적 발언인 칼럼이나 시국선언 등을 통해 문학적 형상화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한다.

이러한 문인들의 활동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현재의 불온한 움직임을 낳은 시발점은 2009년의 69작가선언이다. 192명이 참여한 이 선언문에서 현실 비판적 문인들은 이명박 정부의 독재 회귀와 민주주의 후퇴를 걱정하는 선언문을 썼다. 문인들은 “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우리의 배후는 문학이며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다.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고 말한다. 문인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명박 정권이 중도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집권했지만 정작 보여준 것은 극우적인 공안통치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은 용산 참사를 낳은 민중 탄압의 정권이기도 했다. 이 무렵에 언어의 기표와 기의 사이는 심하게 벌어졌다. 그래서 작가들은 모여서 이명박 정권이 지배하는 세계를 민주주의의, 인권의, 상상력의 아우슈비츠라고 규탄했다. 문인들의 이러한 선언은 문학이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 문학의 과장은 불길한 예언이자 다급한 신호”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비판적인 문인들은 계층, 이념, 성별, 연령을 넘어 사람을 강조하는 언어 전략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이 지닌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들이 지향하는 사람의 말은 사용가치를 지닌 알맹이의 아름답고 정의로운 말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종이와 펜이 있다. 그러니 동의하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끝내 저항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원을 갈아엎고 있는 눈먼 불도저를 향해, 머리도 영혼도 심장도 없는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 저항할 것이다.

가장 뜨거운 한 줄의 문장으로, 가장 힘센 한 문장의 모국어로 말할 것이다. 사람의 말을,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사람이니까 해야 하며 사람인 한 멈출 수 없는 그 말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모든 문학의 마지막 말, 그 말을. (2009년 6월 9일 작가선언문 중에서)

작가들의 69작가선언이 있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 임해서 현실 비판적 작가들은 또 다른 선언을 준비했다. 2012년 12월 14일 몇몇 신문에 137명의 젊은 문인들은 정권 교체를 바라는 선언문을 광고 형태로 발표했다. 18대 대선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정권 교체는 실패했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후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는 정권 교체 희망 광고가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실무를 맡은 소설가 손홍규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서울시 선관위는 정권 교체라는 표현이 특정 후보 지지로 판단될 수 있어 선거법 위반을 했다며 고발한 것이다. 이에 대해 참여한 문인들과 한국작가회의는 특정 후보를 실명으로 지지하지 않았음에도 고발한 것은 민주주의의 역행이라며 반발했다.

특히 선언 참가자들은 ｢우리는 ‘정권교체’를 희망했던 ‘이유’로 돌아가려 합니다｣(2013년 1월 18일)라는 글에서 “어떤 이들은 왜 작가들이 현실에 관여하느냐고 묻기도 합니다. 문학이 현실을 넘어선다고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넘어서는 과정’은 현실과 무관한 것이 아니라 ‘현실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참여 작가들은 실정법에 걸려 벌금형을 선고 받는다면 벌금을 내지 않고 기꺼이 감옥행을 택하겠다는 결연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서울시 선관위가 참여작가를 고발한 것은 참여작가를 감옥에 보내겠다는 것보다 차기의 선거에서 문인들의 시국선언 같은 활동을 제약하려는 선제적 공세라고 할 수 있다. 서울시 선관위로 대변되는 공권력이 문인들의 입을, 언어를 봉쇄하려는 전략은 오히려 문인들의 저항적 활동에 기름을 붓는 악수(惡手)였다.

2013년 12월에 철도 민영화를 겨냥한 코레일의 자회사 설립과 이것에 반발한 철도 노조원의 대규모 파업이 벌어졌다. 필자를 포함한 현실 비판적 작가들은 ｢두 개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다｣라는 선언문에서 부정한 권력과 자본이라는 유령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철도 파업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특히 이 선언에 동참한 작가들은 박근혜 정권이 부당한 방법으로 정권을 획득했다면서 진실이 간단하다고 말한다. 진실이 복잡한 것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기꾼의 “숱한 언어나 수사가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가들은 기만의 수사학이 껍데기 언어를 생산하는 “언어의 타락과 언어의 능멸”로 이어져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언어의 오염은 언어의 문제만이 아니라 중병에 걸린 현실의 반영이다. 언어는 당대 현실을 그대로 투영시키고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인 것이다.

박근혜 정권은 정권을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했다. 진실은 의외로 간단하다. 진실이 복잡하고 어렵게 보이는 것은 그것을 가리려는 숱한 언어나 수사들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기만의 수사는 골목길이든 내밀한 사생활이든 구름 속이든 가리지 않고 범람하고 있다. 문학은 그것을 언어의 타락, 혹은 언어의 능멸이라고 부른다. (2013년 12월 23일 작가행동 99+n 선언문 중에서)

2012년 대선은 국정원 등 권력 기관이 개입한 명백한 부정선거였다. 이러한 진실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서는 안 된다. 당선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국민에 대한 사과를 했다면 논란은 있었겠지만 박근혜 정권은 나름대로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것을 외면했고, 부정선거를 한 인사들은 철저한 반성 대신 또 다른 거짓말을 생산했다. 2014년 1월 6일에 경찰 수사은폐·축소의혹 혐의를 받고 있는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판결은 권력에 대한 사법부의 굴종과 당연한 판결이라는 상반된 반응으로 나타났다. ‘종박무죄 반박유죄’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다수 국민의 판단과 배치되는 법원의 판결은 기표와 기의 사이를 넓히며 껍데기 언어의 생산을 더욱 부채질한다. 국민들이 보기에 이 판결은 짜고 치는 고스톱의 완결판이라 볼 수 있다. 진실은 과연 어디에 있을까? 다수의 국민들은 알고 있는데 박근혜 정권과 판결을 내린 판사는 정작 모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그들은 짐짓 알면서도 또 하나의 기만적 수사학을 생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진실과 실상을 찾는 불온한 언어

문학은 꿈이다. 그래서 문학은 이상적인 세계를 동경한다. 이것은 문인이 현실과 고통스럽게 직면하고 있어 발생한 현상이다. 문인들은 누구보다도 현실 언어에 민감하기에 껍데기 언어의 유행 속에 현실에 대한 결핍과 불만이 더욱 증가된다. 이런 상황에서 문인들은 현실의 결핍이 충족된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낭만주의자가 된다. 낭만주의의 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당대 현실과 치열하게 접촉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문학은 치열한 현실이다. 결국 문학은 현실이자 꿈이다.

언론인 고영재는 ｢‘여론조사 정치’의 함정｣(2014년 1월 24일)이라는 『한겨레』신문의 칼럼을 통해, 집권한 이후 여론 조사에서 50% 넘는 지지율을 보이는 박근혜 지지율의 함정을 지적했다. 박근혜 지지율의 통계는 표본 1,000명에 응답율이 불과 17%에 불과하여 대표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응답률이 30% 미만인 것은 통계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발표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응답률이 17%에 불과한 표본 결함의 통계임에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발표하고 있다. 응답하지 않은 83%의 사람들은 왜 응답하지 않았을까? 일상에 바빠서이기도 하겠지만 정치 불신 속에 여론 응답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통계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통계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비이성적인 맹목이다. 통계가 오히려 진실을 왜곡시켜 착시 현상을 낳을 수 있다. 우리는 껍데기 언어의 번성과 통계의 허상에 취해 허상을 실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시인 김수영은 ｢푸른 하늘을｣이라는 시에서 “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이라고 노래한 바 있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는 저절로 시민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시민의 정당한 권리는 지배권력과의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서만 확보된다. 껍데기 언어가 주인 행세를 하고, 알맹이 언어가 노예인 세상은 부조리한 세계이다. 비판적 문인들은 이러한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언어로 투쟁한다. 시국선언문은 투쟁의 시작일 뿐 투쟁의 종결점이 아니다. 문인들도 일회성의 선언문만으로 만족해서는 곤란하다. 그들의 무기이자 일터인 문학에서도 불온한 전위성을 표출하면서 시민들과 소통하는 문학을 만들어내야 한다. 과연 오늘의 문학이 당대 현실을 얼마만큼 제대로 반영해서 당대 독자들과 소통에 성공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엘리트주의의 나르시시즘과 현학적 미학에 빠져 시민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봐야 한다. 성찰 없는 투쟁은 일회성의 소영웅주의나 자기 기만적 위안의 합리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암울한 시대는 알맹이 언어를 꿈꾸는 불온한 언어를 생산시킨다. 오늘도 현실 비판적 문인들은 껍데기 언어와 껍데기 세계와 투쟁하기 위해 불온한 언어를 힘껏 토해낸다. 불온한 언어는 알맹이 언어를 낳는 전위적 자궁이다. 불온한 언어는 박근혜 정권의 기만적인 불통정치를 균열시키는 날카로운 송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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