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에 종이 있고 각각의 종들은 저마다 다른 생존방식과 스타일이 있듯이, 장소들도 각각의 특성과 생존전략이 있다. 드러나 있는 장소가 있고 은밀한 장소가 있다. 대하기 편안한 사람이 있고 까칠한 사람이 있듯이, 장소도 푸근한 곳이 있고 불편한 곳이 있다. 우리 주변의 장소들 중 가장 은밀하고 비밀스럽고 살기까지 느껴지는 곳이 공항과 항만이다. 이곳들은 출입이 극도로 제한돼 있으며, 설사 그 안에 들어가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친절하지 않다. 그곳들은 우리가 가서는 안 되는 블랙홀 같은 곳이다. 이 세계의 공간들은 균질하지 않다. 우리가 사는 이웃에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전혀 다른 종류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가듯, 이 세상의 장소들은 수많은 이질적인 질서들이 지배하는 모자이크 같은 형상으로 묶여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공항과 항만이다.

기계비평가의 호기심은 그런 곳을 가 보는 것이다. 왜 그런 곳을 가 보고 싶어질까? 사람들이 케이티엑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면 모두들 내려서 역을 빠져나와 각자 갈 길을 간다. 아무도 케이티엑스가 그 다음에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기계비평가는 그 다음이 궁금하다. 서울역에 사람을 내린 케이티엑스는 어디로 가는가? 고양 행신 차량기지로 간다. 거기서 검수를 받고 다음 운행을 준비한다. 기계비평가는 그런 기계의 속 구조에 관심 있다. 표면에서는 알 수 없는 속 모습의 구조와 원리를 보고 싶은 것이다. 기계비평가는 장소에 대해서도 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공항이나 항만에는 어떤 사물들이 있고 그것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공항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철저하게 제한돼 있고, 항만은 아예 출입 자체가 금지돼 있다. 두 곳 다 국가중요안보시설로 분류돼 있어서 보안이 아주 까다로운 곳이다.

이 장소들의 특성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스케일을 훨씬 초과한 거대한 기계들이 움직이는 곳이라는 점이다. 대형 여객기의 최대 이륙 중량은 400톤, 그것들이 이륙하기 위해 시속 2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활주로를 달린다. 활주로의 끝에는 이륙 아니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공항이 넓은 이유는 항공기가 크고 무겁고 빨라서 움직이는 데 많은 공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한번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가 되는 항공사고의 특성상, 공간은 항상 여유가 있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인천공항에 들어가는 길은 터미널의 출입구밖에 없는데, 이곳을 통해서 듣고 보는 것은 기계의 체험은 아니다. 그들은 항공기를 타지만 기계로서 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한 통로의 하나로서 탈 뿐이다. 그들에게 항공기를 타는 경험은 엘리베이터나 전철을 타는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들 모두 우리에게 기계로 다가오지 않고 그저 편의에 따라 절차를 밟으면 통과할 수 있는 어떤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공항의 시설은 어떤 것도 항공기의 살벌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직원들은 친절하고 설비들은 인간적 스케일로 돼 있다.

그러나 인천공항의 뒤쪽 화물 터미널을 통해 들어가 본 공항은 완전히 다른 장소이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보안요원의 눈빛에서는 살기가 돌고, 그들의 온몸에는 긴장이 팽팽하게 차 있다. 어떤 테러리스트건 내 손으로 잡아내겠다는 결의가 가득 차 있는 표정이다. 검색대를 통과할 때 그들의 말투는 논산훈련소에서 신병을 대하는 조교 같았다. 그들은 모든 출입자들을 적대적으로 취급하는 것이 습관화돼 있는 것 같았다. 이 출구를 통과하면 바로 눈앞에 유도로가 펼쳐진다. 항공기가 활주로로 진입하기 위해 느린 속도로 다니는 길이다. 바로 눈앞에서 보잉747 화물기 한 대가 굉음을 울리며 지나간다. 일반 승객은 절대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외국의 공항에서는 항공기를 바싹 볼 수 있는 곳도 많고 유도로나 활주로가 보이는 곳도 많지만 인천공항에서는 그런 시설을 절대로 볼 수 없다. 유도로와 활주로가 무슨 대단한 터부라도 되는 양, 인천공항의 대합실에서는 오로지 면세점에 쌓인 양주와 화장품밖에 보이지 않는다. 유도로의 보잉747을 핸드폰으로 찍으려는 찰나 마침 보안요원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그들은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사진 찍으면 안 된다고 외친다. 도대체 인터넷에도 수없이 퍼져 있는 보잉747을 사진 찍으면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아마 나는 몰랐지만 이 보잉747은 핵무기를 탑재한 첨단 폭격기를 위장해 놓은 것인가 보다. 인천공항 전체가 사실상 사진촬영 금지구역이다. 나는 사진평론가지만 아직도 여러 장소들에서 사진을 못 찍게 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

사실 교통기관이 들어오고 떠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인천공항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이나 서울역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른 곳은 아니다. 사람과 화물이 밀도 있게 모여 있는 계류장과, 그곳을 떠나면 하늘이건 고속도로건 마음껏 날거나 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으로는 비슷한 곳이다. 다른 점이라면 강남고속버스터미널과 서울역을 오가는 버스나 철도 같은 교통기관에 비해 항공기는 초월적인 기계라는 점이다. 버스나 열차는 절대로 지상의 평면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인간의 숙명인 대지에 단단히 붙어 있다. 반면 항공기는 그 운명을 거스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초월의 비상을 한다. 운명을 거스르기 때문에 더 큰 위험이 내재해 있다. 길이 4000미터, 폭 85미터의 인천공항 활주로는 그래서 묘한 기운이 감도는 곳이다. 그것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항공기가 땅과 이별하고 하늘과 만나는 접점이자 통로이다. 활주로의 길이는 한정돼 있지만 무한의 하늘로 이어지는 곳이므로 무한의 길이기도 하다. 최대 이륙 중량 400톤(보잉747 기준)이라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서도 강력한 엔진 힘 덕분에 매일매일 초월의 비상을 하는 항공기와 달리, 자신의 물리적 존재성을 초월할 능력도 의지도 없는 인간들은 그래서 활주로에 들어서서는 안 되는 것 같다. 초월은커녕 애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효과를 주려는 비열한 테러리스트도 물론 활주로에 들어서서는 안 되겠다.

부산 신항만은 다른 의미의 초월성의 공간이다. 이곳에는 지구상에서 움직이는 것으로는 가장 큰 물건인 선박들이 들어온다. 오늘날 선박은 점점 커져 가고 있는데, 부산 시내에 있는 신선대와 자성대 등의 부두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가덕도에 신항만을 지어서 큰 배들은 다 신항만으로 들어온다. 그나마 일반인에게 공개돼 있는 인천공항과는 달리, 부산 신항만은 일반인에게 철저히 차단돼 있는 비밀의 장소다. 부산 시내에서 신항만까지는 차로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그곳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블랙홀 같은 곳이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길래 이토록 무서운 보안이 지켜져 있는 것일까? 이곳은 전 세계의 컨테이너들이 배에 실려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다. 한국에서 단일 장소로는 가장 큰 물류의 이동이 있는 곳이다. 부산항은 2013년 컨테이너 처리 개수 140만 개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항구이다. 이곳에는 배가 대는 자리인 선석(船席; berth)이 몇 킬로미터를 이어져 있고, 선석에는 세계에서 제일 큰 컨테이너선들이 정박해 있으며, 배에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갠트린 크레인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뒤에는 하적을 기다리는 수십만 개의 컨테이너들이 쌓여 있다. 이 모든 것들은 도시의 일상에서 보는 아파트, 자동차, 도로 등과는 차원이 다른 것들이다. 항만에 있는 시설들은 크기, 작동, 위험성 등에서 일상의 사물들과는 완전히 다른, 또 다른 의미의 초월성의 기계들이다. 그래서인지 이 모든 것들은 일반인이 봐서는 안 되는 국가주요 보안시설로 분류돼 있다. 그래서 출입이 까다롭고 사진촬영은 무조건 금지다.

이곳은 우리의 삶의 근간이 되는 물질들이 대량으로 움직이는 곳이다. 신체로 치면 피를 돌게 하는 심장 같은 곳이다. 컨테이너는 몸 구석구석을 다니며 산소를 공급하는 적혈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심장이 밖으로 노출되면 위험하니까 신체의 가장 깊은 곳에 꽁꽁 숨겨져 있다. 부산 신항만도 그래서 가덕도 깊은 산 속에 꼭꼭 숨겨 놓은 것 같다. 기계비평가가 이곳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바로 생활과 산업의 심장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다 몇 만 톤 단위인 이곳의 심장고동은 비밀스럽게 감춰져 있기 때문에 더 신비스러운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산 신항만의 신비로운 존재에 대해 이 글에 밝힌 정도로만 만족해야 할 것 같다. 가까이 가면 다치는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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