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표정과 몸짓으로 살아있는 존재들

우리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들은 무엇일까. 심장 박동소리부터 시작하여 숨소리, 발소리, 웃음소리, 흐느낌 소리는 우리에게 ‘아직 살아있다’는 느낌을 전해준다. 숨 쉴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체온을 지니고 있다는 것. 그로 인해 우리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하지만 생물학적인 징후 말고도,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은 생생한 느낌’을 전해주는 사물들이 있다. 심장 박동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미소와 눈물과 표정과 몸짓을 가진 사물들. 동상과 조각상들이 바로 그렇다. 여행을 떠날 때마다 가장 많이 만나는 ‘얼굴들’은 바로 실제 인물을 본뜬 수많은 동상들과 신화 속의 인물들을 빚어낸 조각상들이었다. 수많은 동상과 조각상들 앞에서 나는 ‘살아있음’의 신호는 오직 ‘얼굴’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만 있어도, 아니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체셔 고양이처럼 ‘얼굴 없는 표정’만 있어도, 존재는 살아있음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표정뿐 아니라 몸짓을 느낄 수만 있어도 사물은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 런던 피카딜리 광장 앞의 큐피드 상은 전 세계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을 설레게 한다. 그는 그 토실토실한 팔을 있는 힘껏 잡아당겨 에로스의 화살을 쏘고 있는 몸짓만으로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저 앙증맞은 큐피드가 쏘는 오지랖 넓은 화살에 자발적으로 맞고 싶다는 듯,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사랑의 화살을 쏠 태세인 큐피드를 바라보며 즐거워한다. 프라하 카를교의 조각상들은 하나하나 마치 성인의 현현처럼 느껴져, 카를교는 그저 강을 건너는 다리가 아닌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닌 신성한 존재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마치 세상만사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피난처를 찾은 듯, 조각상에 기대어 앉아 행복해 한다. 마치 어미 새의 품에 안긴 새끼 새들처럼, 사람들은 조각상의 품에 안겨 평화롭게 햇살바라기를 한다. 루브르의 니케 상, 밀로의 비너스, 에로스와 프시케 상도 ‘조각상’하면 떠오르는 정겨운 이미지들이다.

역사 속 실제 인물들의 조각상은 신화나 성경속의 인물과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피렌체 곳곳의 광장들은 그 장소 자체가 조각상의 향연이다.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 브루넬레스키 등 르네상스의 예술가나 건축가들뿐만 아니라 단테, 마키아벨리 등의 작가들의 모습을 재현한 조각상들이 거리 곳곳에 널려 있다. 역사나 책 속에서 익히 봐 왔던 인물들을 입체적인 조각상으로 만나면 마치 이제는 만날 수 없는 그들과 직접 대화하는 느낌이 든다. 베를린 거리를 걷다 보면 헤겔, 맑스, 엥겔스 등의 걸출한 사상가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으며, 파리 곳곳을 헤매다 보면 위고, 발자크, 모파상 등 수많은 작가들의 늠름한 얼굴을 볼 수 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안에서만 볼 수 있는 초상화나 조각상보다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곳에 우직하게 서서 모든 행인들의 가슴속에 아직 살아있는 이야기의 감수성을 일깨우는 동상들이 더욱 정겹다. 동상들은 비바람의 세월을 겪어 닳고, 때가 묻고, 지쳐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자신을 기억하고 되새겨주는 사람들이 있기에 인자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다.

프라하의 카프카 동상은 카프카와 별로 닮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저마다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카프카’를 개성 있게 일깨운다.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지만 얼굴이 없는 조각상 위에 목말을 타고 있는 카프카의 모습은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을 상기시킨다. 각자의 이름을 굳이 붙일 필요도 없이 그저 간단한 이니셜로만 불려도 아무런 억울함을 느끼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획일적인 현대인들의 삶. 카프카는 모두가 똑같은 정장을 입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저마다 보이지 않는 슬픔과 아픔을 껴안고 있는 현대인의 고독한 삶을 냉정하게 그려냈다. 동상은 그가 살아있었을 당시의 겉모습만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얼굴보다 자신의 작품세계를 더 닮은 카프카의 동상은 마치 위대한 작가에게 행운의 기운을 담뿍 받으려는 듯한 사람들의 애처로운 손길로 반들반들 윤이 난다.

2. 그림 형제의 브레멘 음악대

나는 여행지에서 기념품으로 그 고장을 상징하는 미니어처를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수집이나 정리, 정돈을 잘 못하는 내가 유일하게 애착을 가진 나만의 컬렉션이 바로 여행지 미니어처다.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서 청동으로 만든 작은 부엉이 미니어처를 발견하는 순간 나는 사랑에 빠졌다. 부엉이의 커다란 눈과 신비로운 기운은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를 떠올리게도 한다. 부엉이는 자신의 빛나는 두 눈을 등불 삼아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것만 같았다. 그 후로 나는 부엉이 미니어처만 보면 눈이 부엉이처럼 튀어나올 것 같은 반가움을 느낀다. 2013년 여름, 브레멘에서 나는 그 자체로 도시를 멋지게 상징하는 미니어처를 발견했다. 바로 ‘브레멘 음악대’의 당나귀, 수탉, 개, 고양이를 본뜬 브론즈 미니어처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브레멘을 상징하는 그림 형제의 이야기, 「브레멘 음악대」. 이야기 그 자체가 이 도시를 상징하고, 도시는 이야기의 생명력과 함께 더 짙은 호소력을 발휘하는 곳. 브레멘은 사람들이 ‘특별히 볼 것이 없다’며 고작 반나절 만에 뚝딱 지나가곤 하는 도시였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의미가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이반 일리치가 말년을 보낸 곳이기 때문이다. 브레멘 광장은 당나귀 위에 개, 개 위에 고양이, 고양이 위에 수탉이 세로로 나란히 올라간 브레멘 음악대의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자들로 붐빈다. 사람들은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 차례가 오면 어린애처럼 활짝 웃음을 지으며 포즈를 취한다. 브레멘 음악대의 대장인 당나귀의 가느다란 다리는 사람들이 하도 쓰다듬어 금빛으로 반들거린다.

「브레멘 음악대」의 여정은 당나귀의 자기 각성으로부터 시작된다. 평생 주인의 곡식자루를 방앗간으로 옮기는 힘든 일을 도맡아 해 온 당나귀가 쇠약해지자, 주인은 당나귀를 홀대하기 시작한다. 먹이조차 제대로 주지 않는 주인을 보며 당나귀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다. 당나귀는 브레멘을 향해 떠난다, 브레멘의 음악대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길을 떠나던 중 옛날 어떤 남자가 당나귀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이 당나귀는 오랜 세월 동안 곡식자루들을 지고 방앗간으로 꾸준히 날랐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당나귀는 쇠약해져 점점 쓸모없게 된다. 주인은 당나귀에게 먹을 것을 줘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생각에 빠진다. 당나귀는 자기의 운명을 눈치 챈다. 마침 브레멘 음악대장이 단원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은 당나귀는 음악단원에 지원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브레멘으로 가는 길에 당나귀는 주인에게 쫓겨난 늙은 사냥개, 쇠약해져 주인에게 미움 받는 고양이, 곧 닭고기 수프가 될 신세에 처한 암탉을 만나 ‘함께 브레멘 악대에 들어가자’고 설득한다. 새로운 동물 친구를 만날 때마다 그들은 하나같이 탄식한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당나귀는 힘차게 설득한다. 함께 가자고. 너희들은 저마다 멋진 목소리를 갖고 있다고. 닭고기 수프가 되기 전에 아직 시간이 있을 때 실컷 울어나 두려고 한다는 수탉에게, 당나귀는 말한다.

“우리랑 함께 가자. 우리는 브레멘으로 가는 중인데 여기에 가만히 앉아 죽기보다는 우리랑 같이 가는 게 더 나을 거야. 너는 좋은 목청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와 함께 연주를 하면 근사한 음악이 나올 거야.” 당나귀는 ‘나는 쓸모없어 버려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동물들에게, ‘아니야, 우리의 쓸모는 우리가 만들자’고 속삭이는 것이다. 마침내 네 마리 동물은 힘을 합쳐 큰일을 해낸다. 빈 집에 있는 도둑들을 힘을 합쳐 몰아내고 이제 더 이상 ‘주인의 말만 듣는 가축’이 아니라 ‘내 목소리를 당당히 내며 살아가는 존재’로 거듭난 것이다. 당나귀가 앞다리를 창틀에 올려놓고, 개가 당나귀 위에 올라타고, 고양이가 다시 개 위에 올라타고, 수탉도 그 위에 올라타 그들만의 괴상망측한 음악을 만들어 연주하여 도둑들을 몰아낸 것이다. 당나귀는 히이잉, 개는 멍멍, 고양이는 야옹야옹, 수탉은 꼬끼오. 네 마리의 합창을 듣고 기겁을 한 도둑들은 줄행랑치고, 그들은 이 집을 점거한 채 처음으로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식사를 하게 된다. 그들은 이제 인간의 시선에 비친 ‘쓸모없는 가축들’이 아니라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브레멘의 음악가들’이 된 것이다.

3.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

어떤 조각상은 그 어떤 살아있는 인간보다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전해준다.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진 행복한 왕자의 조각상. 왕자의 몸은 순금으로 뒤덮여 있고, 눈은 사파이어로 반짝이며, 칼에는 붉은 루비가 박혀 있다. 보는 사람마다 행복한 왕자를 찬양한다, 아름답다고, 고결하다고, 우아하다고. 하지만 왕자의 슬픔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어느 날 제비가 동상 위로 날아올라 조각상 위에 앉자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진다. 빗방울인 줄 알고 다른 곳으로 날아오르려던 제비는 누군가의 슬픈 음성을 듣는다. 물방울은 빗방울이 아니라 행복한 왕자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달빛을 받은 행복한 왕자의 슬픈 얼굴이 너무도 아름다워 제비는 차마 떠나지 못한다. 왜 울고 있냐고 물어보니 왕자의 대답이 놀랍다.

“내가 살아서 몸 안에 인간의 심장이 뛰고 있을 때는 오히려 눈물이 뭔지 몰랐지. 나는 상수시 궁전에 살았거든. 거기는 슬픔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야. 낮이면 정원에서 친구들과 놀고, 저녁이면 큰 회관에서 앞장서 춤을 추었지. 정원은 높은 담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나는 한 번도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어. 내 주위에 모든 것이 너무나 아름다웠거든. 신하들은 나를 행복한 왕자라고 불렀어. 실제로 나는 행복했지. 그렇게 즐거운 게 행복이라면 말이야. 나는 그렇게 살다 그렇게 죽었어. 내가 죽고 나서 사람들은 나를 여기 이 높은 곳에 세워놓았어. 그러자 그때부터 이 도시의 추하고 비참한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는 거야. 지금 내 심장은 납으로 만들어져 있지만 그래도 울지 않을 수가 없어.”

-오스카 와일드, 「행복한 왕자」, 펭귄클래식 코리아, 12~13쪽.

그때부터 행복한 왕자는 곤경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눈에 박힌 사파이어와 루비를 제비를 통해 전해주게 된다. 왕자는 동상이 되어 몸이 묶여 있어 외롭고 힘들고 비참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제비는 이제 따뜻한 남쪽 나라 이집트로 가야하는 날이 한참 지났는데도, 점점 추워지는 날씨를 견디며 왕자의 소원을 들어준다. 앓고 있는 어린 아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도 주지 못하는 가난한 엄마에게, 땔감이 없어 추위에 떨며 글을 쓰고 있는 젊은 작가에게, 아버지에게 구타당하며 힘겹게 거리를 떠도는 성냥팔이 소녀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전해주는 행복한 왕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왕자를 두고, 제비는 차마 따뜻한 나라로 떠나지 못한다. 제비는 하루 종일 왕자의 어깨에 앉아 이 세상에서 본 수많은 신기한 일들을 이야기해 준다. 산전수전 다 겪은 제비의 모험담을 들으며 왕자는 이야기한다.

“너는 나한테 놀라운 것들을 이야기해 주는구나.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저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란다. 저 고통보다 더 큰 수수께끼는 없어. 내 도시 위를 날아다녀보렴, 귀여운 제비야. 그리고 거기서 본 걸 나한테 이야기해 줘.”

이제는 눈이 없는 왕자에게, 제비는 추위와 배고픔에 떨며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들의 참혹한 사연을 들은 왕자는 제비에게 유언처럼 속삭인다. “내 몸은 순금으로 덮여 있어.” “그걸 한 조각씩 떼어다 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렴. 살아있는 사람들은 금이 자기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금으로 뒤덮인 자신의 피부마저 모두 나눠 줘 버린 왕자를 보며 제비는 끝내 따뜻한 나라로 날아가지 못한다. 제비는 왕자의 눈앞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의 죽음을 느낀 왕자의 심장은 둘로 쪼개져 버린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행복한 왕자’가 아름답지 않다고 투덜대며 동상을 철거해 버린다. 이때 하느님은 한 천사에게 명령을 내린다. “이 도시에서 가장 귀한 것 두 가지를 가져오너라.” 천사는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왕자의 심장과 죽은 제비의 시체를 발견한다. 하느님은 제비의 시체와 왕자의 심장을 바라보며 흐뭇해한다. “제대로 골랐구나.” “이 귀여운 새는 내 천국의 정원에서 영원히 노래를 부르고, 행복한 왕자는 내 황금도시에서 나를 찬양하게 하라.”

이 세상 수많은 조각상과 동상들. 그들은 생명의 신호를 갖고 있지 않다. 심장 박동소리도, 체온도, 움직임도, 발소리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때로는 살아있는 사람보다도 움직이지 않는 동상에게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그들은 인간처럼 쉽게 마음을 바꾸지 않으며, 인간처럼 자주 거처를 바꾸지도 않으며, 항상 그 자리에서 같은 표정과 같은 몸짓으로 우리를 기다린다. 그들은 먼 옛날 천하를 호령하던 영웅이기도 하고, 슬프기에 더욱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끊임없이 혹독한 현실과 싸우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주는 메신저이기도 하다. 때로는 천사의 눈빛으로, 때로는 아기의 웃음으로, 때로는 성인의 인자한 손길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을 고쳐먹는 인간에게 그들은 속삭인다. 때로는 움직이는 것보다 멈추는 것이, 떠들어대는 것보다 침묵하는 것이, 표현하는 것보다 감추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고.

이미지 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