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 인디씬의 발전 과정에서 최근 가장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은 2009년의 ‘두리반 투쟁’이다. 공항철도역 부근 재개발과 관련해 건물 임대인과 임차인, 시공사와 구청 등이 얽힌 이 사태는 인디 음악가들이 결합하면서 기존의 재개발투쟁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였고 마침내 적절한 보상을 받으며 ‘승리’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과정에서 ‘51+’라는 자발적인 음악 페스티벌이 개최되었고 이 경험은 이후 자립음악생산조합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때 인디 음악가들과 두리반의 결속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면 꽤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51+페스티벌과 자립음악생산조합의 탄생에 주도적으로 활약한 것은 노이즈 음악가이자 현재 헬리콥터 레코즈라는 레이블을 운영하는 박다함인데, 그는 ‘불길한 저음’이라는 노이즈 음악 밴드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음악 특성상 기존의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을 거의 하지 못하는 처지였고, 그래서 2007년 당시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홍대 지하차도에서 연주를 하곤 했다. 그런데 1996년에 완공된 이 지하차도는 10년이 조금 넘은 2007년 말에 철거되었다. 공연할 곳을 잃은 이들은 이곳저곳 눈에 띄지 않는 곳을 찾아다니다가 단골 가게인 두리반이 농성에 들어가자 그곳에 들렀다가 연습과 공연을 하는 공간으로 전유했다. 이런 맥락에서 두리반 투쟁은 홍대 앞이라는 지역적 특징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건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이 사건의 발단은 동교동 지하차도의 철거였다. 그리고 눈 좋은 독자라면 알아차렸겠지만, 도시에서 10년 조금 지난 공공시설이 사라지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것은 홍대 앞이라는 공간의 속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 이런 이유로 나는 이 지하차도의 철거로부터 홍대 앞 인디씬의 역사, 특히 1996년이란 상징적 시간을 도시개발과 장소성이란 맥락으로 되짚어 보고 싶다.  

보통 ‘홍대 앞’이라 부르는 공간은 서교동 일대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는 홍익대학교 정문 인근과 ‘피카소 거리’를 일컫는 데 불과했지만, 90년대 중반과 2000년 이후부터는 꾸준히 그 의미가 확장되며 현재는 서교동 일대를 포함해 상수동, 합정동, 동교동, 연남동으로까지 넓히고 있다. 서울에서 이처럼 문화적 공간으로 자리 잡은 곳은 대학로나 가로수길, 인사동 정도인데, 이들은 모두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가 와해되고 가치는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홍대 앞은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왜 그럴까?

일단 이곳은 다른 곳보다 지리적으로 넓고 평평하다. 홍익대학교를 기준으로 동쪽으로 공항철도역이 위치한 동교동 로터리, 서쪽으로 지하철 2·6호선 환승역과 주상복합 건물인 메세나 폴리스가 있는 합정역까지, 그리고 북쪽으로는 내부순환도로가 자리한 연남동, 남쪽으로는 강변북로가 놓인 상수역까지 ‘홍대 앞’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너른 공간에 공간이 구획되는 시설물이나 교차로가 없다는 점을 중요하게 지적하고 싶다. 다른 지역에 비해 홍대 앞은 ‘덩치’가 크고, 이 덩치의 맷집으로부터 문화적 공간의 상업화에 지속적으로 맞서고 있는 셈이다. 나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1)이란 맥락에서 홍대 앞은 여전히 침투와 저항이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곳이라고 보는데, 이 운동성이야말로 마포구 서교동의 너른 면적과 홍대 앞의 지리적 위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이곳은 애초에 문화적으로 특화된 공간이기도 했다. 1961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이, 1972년 산업미술대학원이 설립되는 동안 서교동은 전형적인 주거지역이었지만, 이후 1980년대까지 미술학원, 공방, 갤러리 등이 밀집한 문화적 특성을 띠게 되었다. 1984년 지하철 2호선이 개통하며 홍대입구역과 대학 정문을 잇는 서교로 일대에 상업지구가 형성되었고 이후 와우산길을 중심으로 형성된 미술학원 거리는 ‘피카소거리(홍대 정문-극동방송국-주차장거리)’로 일컬어지며 대학가 상업지구의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홍대 앞은 90년대 중반 인디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청년 하위문화의 진원지가 될 수 있었다. 특히 2013년 기준으로 서울시 집계를 참고하면 서교동과 상수동 지역의 유통, 숙박, 요식업체 수는 2007년 2,088개에서 2013년 4,578개 업체로 크게 늘었고, 지하철 2호선 유동인구는 하루 평균 9만7,728명으로 전년에 비해 9.5%나 늘었다. 이것은 강북의 기존 상권인 명동역(5만7,811명)과 종로3가역(5만5,304명)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다시 말해 2014년 현재 홍대 앞은 음악적 공간 외에 카페, 여가, 관광 지역으로서의 가치가 교차하는 곳으로 그 의미가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때 보통 간과되는 것이 행정부와 서울시의 도시개발 정책이다. 박정희 정권 이후 지속적으로 보완된 서울시 도시설계는 1985년에 완성본이 시행되었는데 한강 이남권 개발 이후 구도심권(강북)의 재개발로 균형을 맞추는 것이 골자였다. 1984년 개통된 지하철 2호선은 대학이름이 붙은 역이 11개나 등장할 정도로 대학가를 연결하는 노선으로 완공되었고, 신촌과 이대역 상권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배경이 되었다. 이 순환선의 등장으로 대학문화 평준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몇 년 후에 신촌 지역의 대학문화 부활이라는 기치 아래 대학축제와 거리미술제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당시 서울시 도시설계 중에는 신촌 일대의 상업지역을 확대해 강북의 부도심으로 육성하고 대학문화 중심지로 성장시키겠다는 계획이 포함되었다. 이 맥락에서 합정동과 아현동은 주거지역에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되었다. 서울시 계획에 따라 마포구도 도시기본계획을 설계하는데, 서교365 골목을 가로형 공원(차도와 보도가 공존하는 형태)으로 조성한다는 계획, 이른바 ‘걷고 싶은 거리 조성안’은 이때 확립되었다. 이런 계획 아래 1985년부터 1995년까지 아현, 이대, 신촌, 홍대, 합정에 이르는 지역의 도시개발이 진행될 수 있었고, 1990년 인천공항의 건설과 공항철도 및 지하철 6호선 개발이 이 지역의 부동산 및 상업화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하지만 적어도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전까지 홍대 앞은 이 강북 재개발 벨트에서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신촌과 이대가 상업지구 확대와 대학문화 부흥의 구체적인 대상이었던 것과 달리 홍대 앞은 합정역 재개발과 강변북로와 상수역(6호선 예정지)의 연결로 인해 부상한 잉여공간에 가까웠다. 이런 구도가 재의미화된 것은 1992년의 서울시 5대 부도시권 개발과 1994년 성수대교의 붕괴다. 1992년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5대 부도심권 개발의 직접적 수혜를 받은 신촌은 일산 신도시 개발의 여파로 신촌로터리가 서울 북서부 지역의 교통과 유통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 해 10월,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이 개점하며 신촌 상권이 부상했는데, 그전까지 서울시 도심재개발은 4대문 안으로 국한되었다가 92년부터 영등포와 청량리 등으로 확대되었다.

이와 동시에 서울시는 대학가를 건전문화의 거리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경찰청과 대학본부와 협력해 신촌을 중심으로 서울 전역의 대학가 퇴폐 및 심야 불법영업유흥업소를 집중 단속했다. 이때 록카페를 향락업소로 규정하며 단속했는데, 그 결과 절반 이상이 업종을 전환하거나 신촌 일대의 록카페 일부가 홍대 앞으로 유입되며 이후 복합문화공간이란 이름으로 영업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1993년 2월, 와우산 언덕길에 문을 연 ‘라이브 카페 락월드’다. 이곳은 홍대 앞 최초의 라이브 클럽으로 여겨지는데, 애초에 신촌 지역의 락카페를 운영하다 단속을 피해 와우산에서 ‘라이브 카페’란 이름으로 문을 연 것이다(경영난으로 1997년에 문을 닫았다). 실제로 이름만 달라졌을 뿐 라이브 공연을 한다는 것은 그대로였다. 사실 당시 락카페들은 유흥업소라기보다는 법적으로 ‘유흥업소는 음주가무를 즐기는 곳’으로 규정되어 있어 그 적용을 받은 이유가 크다. 당시 제도는 락카페라는 신흥 놀이공간을 규정할 언어가 없었다고 할 수 있다.

92년 10월부터 93년 1월까지 이대 앞, 신촌로터리, 연대 앞의 341개 업소와 방배동 카페촌을 집중 단속해 450여 개의 업소가 영업정지를 받으며 신촌 일대의 1일 평균 3~5만 명에 달했던 야간유동인구가 5천~1만 명 수준으로 격감시킨 이런 단속이 강북 지역을 강타하고 있었다면, 강남에서는 1990년대 압구정이 신흥 상권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 등장한 오렌지족과 신세대론의 결합으로 압구정동이 젊은 세대의 소비 공간으로 떠올랐다. 성수대교는 이런 압구정동과 강북 지역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통로였지만, 94년 붕괴 이후 2년여 간 공사가 진행되면서 강북의 소비자층이 소외되는 결과를 야기했다. 당시 ‘오렌지족’이라 불리던 부유층 자녀들은 성수대교의 붕괴로 대략 두 방향으로 유흥, 소비 활동을 이어갔는데 하나가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쇼핑 지역으로 활용했다면, 다른 하나는 홍대 앞을 주요 소비 공간으로 활용했다. 요컨대 관세 혜택을 받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미, 유럽권의 세련된 문화를 소비하거나 예술적 기운이 감도는 홍대 앞에서 문화자본을 향유하기, 이 모든 우연적 사건들이 신촌, 특히 홍대 앞을 필연적으로 신흥 유흥가로 부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당연히 ‘홍익대학교’라는 특수성이 존재한다. 홍대 앞이 신흥 상권으로 부상했음에도 그 안에 문화적 기운이 넘실대는 대안적 공간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었던 것은 홍익대학교가 한국 최초의 종합예술대학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이르러 대학입학 정원이 늘어나고 미대 진학생이 급증했지만, 당시 일반고에서는 미술실기 수업이 없어서 사설학원에서 실기를 배울 수밖에 없는 구조였으므로 미술대학이 개설된 홍익대학교 부근에 미술학원들이 밀집될 수밖에 없었다(흥미롭게도 같은 시기에 강남 압구정동 주변에도 미술학원 거리가 형성되었다). 이런 배경에서 홍익대학교 부근은 80년대 초반부터 말까지 젊은 예술가들과 입시생들이 공존하는 공간이 될 수 있었는데, 1987년, 처음으로 예술학과가 설립되며 종합예술대학으로 특화되는 기틀이 마련되었고, 90년대 초반 이후 홍대 주변으로 예술가들 외에 미술사나 미학, 인문학을 전공한 젊은 기획자와 비평가들이 모이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가 시행되며 이후 ‘신세대’와 ‘오렌지족’의 등장에 영향을 줬고, 이들은 90년대 내내 대학가를 중심으로 상업문화와 대학문화의 대립에 기여했다. 이 갈등구조는 홍대 앞에 어떤 특정한 문화를 만들어내도록 작동하기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거리미술제’다. 1993년 10월에 열린 1회 ‘거리미술제’는 마포구청이 후원하고 홍대 미술대학 학생회가 주최한 행사로 당시 홍대 앞으로 진입한 ‘오렌지족’의 향락 문화에 대항하는 문화행사로 기획되었다. 학생회와 구청의 합작이 가능했던 것은 앞서 언급한 대로 서울시의 대학문화 활성화 정책 때문이다.

한편 1996년은 국민소득 1만 달러로 진입한 시기였다. IMF를 앞두고 버블경제가 최고점에 이르던 때, 홍대 앞 노상 주차장에서 ‘스트리트 펑크 쇼’로 명명된 행사가 열렸다. 5월 25일에는 홍대 앞에서, 26일에는 명동에서 열린 이 행사는 홍대 앞 인디씬의 본격적인 시작점이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6월에는 대중음악 사전심의제 폐지를 위한 ‘자유’ 콘서트가 3일간 열리기도 했다. 이어서 7월에는 홍대입구역 주변이 근린상업지역으로 용도 변경되어 고층건물의 건립과 상업시설 및 금융권 진입이 가능해졌다. 홍대 앞 부근의 현재 모습은 이때를 기점으로 ‘완성’된 것이다. 8월에는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활동하던 밴드들이 신촌 라이브극장 <벗>에서 합동 공연을 열었고 9월에는 드럭의 앨범 《아워네이션》 1집이 발매되었다. 10월에는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인디 밴드로만 구성된 ‘소란’ 페스티벌이 열리며 1996년은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해로 기록된다.

이제까지 홍대 앞 인디 씬에 대한 기술은 주로 1996년을 기점으로 현재까지의 흐름을 정리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이때 1996년의 ‘폭발’이 가능했던 기반은 보통 대학문화와 상업문화의 대립, 혹은 신세대의 등장 정도로 압축되어 설명되던 것이 한계였다. 하지만 실제로 가장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것은 ‘홍대 앞’이라는 공간의 변화다. 그리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정부와 서울시의 국토개발계획 및 도시계획과 밀접하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홍대 앞에서 진행되는 여러 정책들이 인디 문화와 어떻게 결합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00년 이후 홍대 앞의 음악 씬은 본격적으로 분화되었다고 보는 게 적절할 텐데, 그렇다면 이 글은 여러 외부적 요인들이 실제로 홍대 앞의 음악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그로 인한 산업적, 문화적 갈등과 융화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었는지를 살피는 데 필요한 기초자료 역할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홍대 앞은 장소성이란 맥락에서 현재진행형의 모델이고, 따라서 지속적인 관찰과 이해를 요구하는 문화적 장(field)이다.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지속적으로 보완, 정리해 나갈 생각이다.

이미지 제공_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