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파트에 거주한다. 600여 가구가 다섯 동에 모여 사는 초고층형 공공주택이다. 단지 중앙에 정원을 두고, 예의 지상 주차장은 지하로 배치하여 단지 내 외부공간은 잘 꾸며진 공원과 같다. 이곳에 입주한 지 2년째가 되어 가고 있는데 최근 겨울 칼바람이 잦아들 무렵부터 내 집 거실에서 빤히 올려다 보이는 소나무에 까치 한 쌍이 새 둥지를 짓기 시작했고 오랜 공사 끝에 지금은 완성되었다. 단지 둘레 정원에 심어놓은 소나무 무리에서 서너 개 까치집을 봐 온 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눈을 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까치집이 지어진다는 것이 무척 반가운 일이었고, 매일 매일 까치가 집 짓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어서 흥미가 배가 되었다.

건축은 거주하는 공간을 짓는 행위를 말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동물이든 다르지 않다. 까치들이 둥지를 틀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을 지금의 까치집이 들어앉은 소나무 위를 수없이 비행하고 앉아보며 들락날락했던 중간과정을 보지 않았더라면 단순한 호기심 이상은 주지 않았을는지 모른다. 까치가 둥지를 튼 이 소나무의 위치는 북서풍이 심하고 초고충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빌딩풍 영향으로 겨울철엔 특히 나무의 흔들림이 심하여 새집이 들어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해 내내 단지 안에 서식하던 까치 여러 마리가 가끔 앉았다만 갈 뿐이었다. 그래서 까치집 입주에 대한 바람은 컸으나 기대하지 않았는데 무던히도 이 소나무의 위치를 타진해 보던 까치 한 쌍이 드디어 쉽지 않았을 집 공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초봄부터 시작한 공사 중에 간간히 들이닥친 겨울 눈바람에 위태로울 법도 했는데 기어코 새로운 까치집이 아파트 단지, 내가 거주하는 4층 거실 앞 소나무 상단 가지에 새로 들어섰다.

전 국토에 중앙정부 청사 내려짓기

중앙부처와 주요 공사기관의 지방 분산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종시는 지방으로 옮겨 가는 중앙정부의 분산정책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 도시다.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되고 20년이 지나는 시점에 중앙에 집중되어 있던 권력이 분산됨을 상징한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서울과 과천에 집중되어 있던 공무원 사회가 직장의 지방 이전에 따른 거주지 대이동에 따른 잡음과 불편 불화를 개인적 차원에서 수용해야 하는 난제 앞에 뾰족한 수를 발휘하지 못하고 일렬종대로 지방행을 따라야 하는 전체성은 무언가?

개인적으로는 지금과 같은 중앙부처 및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지방자치 20년에 대한 긍정적 효과라 보지 않는다. 오히려 중앙정부의 통제가 전국 각처로 확대된 이상 국면으로 이해한다. 현재 지방으로 이전한 중앙부처나 기관들은 거대한 구조의 도시공간을 새로 구축하고 그 땅의 역사와 문화,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초인적․초사물적 건물을 앉힘으로써 그 자체로 거부할 수 없는 전지적 전율을 유도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강화된 중앙정부의 그림자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파당과 지역적 알력이 정치적으로 불안한 정국을 고조시키고 동시에 균형감을 잃은 지역 간 발전의 격차로 치달은 지난날의 과오를 공간적 치유의 전술로 전국을 중앙정부화 하는 발상은 이제 그것의 효율과 국민이 감지하는 온도 차이를 지켜보면서 판단할 일이다.

금단의 용어 토목공화국

나는 기실 ‘토목공화국’, ‘토건국가’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지 않는다. 이 용어를 부정적 의미로 사용하려 드는 이들의 배경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토목 분야가 국가 차원의 국토공간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함에 있어 기초가 될 뿐더러 그것의 공사 규모가 건축의 시선으로 들이댈 수 있는 범주를 크게 벗어나 있고, 또한 국가 발전과 동급의 지위를 갖춘 전문 분야이며, 지난 반세기에 걸쳐 국가의 근대화 과정을 견인하는 데에 이미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지점에서 용어가 갖는 의미의 가치 판단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 용어가 오늘날에 이르러 본연의 의의를 상실하고 공간과 장소성을 거부하는 막무가내 식 무소불위의 공간 권력을 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의 위기의식을 공유한다는 차원에서 새삼스럽지만,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토목에 대한 그릇된 정서를 되뇌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정부 시절에 국민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은 4대강 사업의 폐해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토목 분야가 백 년 앞을 내다보는 신중하고 치밀한 국가의 전략적 사업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임기 중 속전속결로 이뤄진 과정과 완공 선언 이전부터 불거져 나온 부실공사의 허점과 주변 농경지의 피해 등이 가세하면서 국토공간계획을 다루는 정부의 신뢰도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그런 까닭에 ‘토건국가’는 정부를 지칭하는 오명(汚名)이 되었고, ‘토목공화국’은 개발지상주의를 상징하는 정치권력의 무뇌증을 의심하는 감시의 용어가 되었다.

건설>주택>건축의 기이한 구도

토목 분야를 주요 업무로 수행하는 중앙부처라면 국토교통부를 지목할 수 있다. 그중 토목과 건축을 다루는 부처 내 조직도를 살펴보면 토목 상위, 건축 하위의 구도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취급하는 예산의 규모 면에서 이미 토목은 건축과 상대가 되지 않는 지위를 점하고 있다. 이는 건설과 건축 분야로 국한시켜서 보아도 다르지 않다. 건설은 토목과 동의어로 수용되며 건설기술은 곧 토목기술, 플랜트 기술 등을 함의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와 동급을 이룬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진 ‘대통령직속 건설기술·건축문화 선진화위원회’라는 단명한 위원회의 이름에도 정부 부처 내부의 조직도를 극복하지 못한 채 건설의 그림자에 드리운 건축의 위상을 살펴볼 수 있다. 애당초 건축문화 단독 위원회를 구상했다고 전하지만, 추진 과정에서 토목의 잔영인 ‘건설기술’이 전위에 배치된 것이다. 이 위원회는 다음 정부에서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로 신설되며 건축의 위상을 한껏 띄운 것 같아 보이지만 대통령 어용위원회로써의 역할에 충실한 채 국민의 건축문화에 대한 이해와 서비스를 진작하는 데는 한계를 보인 바 있다. 이번 정부에 들어서서 근 1년 넘게 식물위원회로 머물러 있다가 올해 초 제3기 위원회가 가동되었지만 그 위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 같은 정황은 지자체 내부 조직도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건설>주택>건축’의 순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은 ‘주택>건축’의 구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건축은 기술직 공무원이 전담해야 하지만 주택은 일반 행정공무원에게도 분담시킬 수 있다는 공무원 보직이동과 관련이 깊다. 그렇다 보니 용어가 지니고 있는 함수관계를 쉽게 무시하고 주택이 건축을 수렴하는 구도로 조직도가 그려져 있는 것이다.

네거티브 vs. 포지티브

나는 ‘개발=네거티브’ 등식으로 읽지 않는다. 또한 ‘보존=포지티브’로 읽지도 않는다. 개발의 순의미를 존중하고, 동시에 보존의 일방향적 긍정 구도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부지불식간 우리는 개발은 부정적 의사로, 보존은 무조건적 긍정의사로 받아들이는 폐단을 범하고 있다. 여기에는 저간의 개발논리가 자본결탁과 정치적 파워게임의 일단으로 드러난 까닭과 보존에 대한 비상식적 판단들이 난무했던 과거지사를 경계하는 의지가 담겨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최근까지 역사에 대한 인식과 표현의 차이로 말미암아 사라진 근대건축이 즐비하고, 해방공간의 혼란기와 전쟁의 화마를 겪으면서 사라진 근대한국의 상징적 공간들로 인하여 이 땅에 남아 있는 근대의 표정들일랑 수적으로도, 내용적으로도 보존의 가치를 내세울 만한 건축물들이 소수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오래된 창고 속에서 먼지를 덮어쓰고 나온 것이면 고스란히 먼지의 무게 이상으로 의미 부여를 하는 등 억지춘향 식으로 꿰맞춘 근대의 풍경에 보존의 의미를 덧칠하여 장소가 지닌 역사인식을 왜곡시키는가 하면, 공간의 존재 가치를 현시대의 자본논리로 희석하여 재화 증식의 수단으로 변용시킨 채로 원도심 활성화를 운위하는 사례들을 주변 곳곳에서 보아 온다. 보존의 방식에 대한 태도의 차이에서 불거진 사태이긴 하지만 콘텐트에 대한 치열한 검토 없이 모사된 골목이 버젓이 드러나고, 장소성에 대한 고찰 없이 벽화로 뒤범벅이 된 전국의 골목들은 또 어떤가?

개발의 아름다운 이름은 보존으로 치환되어 있고, 보존의 아름다운 이름은 또한 개발이 뒤집어쓰고 있다. 요즘 추세는 개발과 보존이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고, 그것의 경계가 모호함을 띠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황이 이와 같으므로 나는 네거티브/포지티브로 개발과 보존의 의의를 재단하기보다 각각의 대상들이 지닌 존재가치를 보다 넒은 스펙트럼으로 읽어내는 방법론에 대하여 궁구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건축은 없다?

우리 도시와 건축이 안고 있는 거대담론에의 무저항적 수용 태도는 더 이상 새로운 화제가 아니다. 너무 일반화되어 저항이란 용어 자체가 되레 섬뜩하고, 그것이 지역성과 무슨 상관성이 있는 것인가 하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도시의 곳곳을 걷다가 보면 소위 지역주의 건축이 이미 오래 전에 한물 간 건축의 경향성으로 글로벌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애써 외면하려 드는, 정작은 그런 생각조차 사치스런 건축가들의 생존형 현장과 어렵지 않게 대면하게 된다.

건축가 없는 건축, 그것은 장소성에 기반을 둔 풍토적 건축의 이상적 사례를 지칭하는 의미로운 용어라는 기원이 있음에도 이 땅에서는 종종 치석(齒石)과 같은 존재의 건축업자들이 토설한 건물들을 지칭하는 나쁜 의미로 활용된다. 아마도 토건국가라는 오명의 출발은 국토를 유린해 온 정치세력과 대형건설사들의 공모에 의한 것이 큰 이유가 되겠지만 건축가의 손을 필요로 하지 않고 무작위로 생산된 크고 작은 건물들로 혼란스런 대도시와 중소도시의 살풍경이 또 다른 이유가 되었을 법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최근 몇 년 사이 서울을 중심으로 스스로 동네건축가를 표방하는 청장년 건축가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그들 대부분 국내외 유명 대학에서 건축수업을 받고, 실무에 뛰어든 지 5∼20년 사이에 걸쳐 있는 건축가들로서, 거대담론보다는 이 땅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중간(규모의) 건축에 대한 건축가의 손길이 시급하다는 판단 하에 그 같은 간판을 앞세우고 있다. 익명성의 건물에 이름을 부여한다는 작지만 야심찬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작은 기획 vs. 큰 기획

저들 일군의 건축가들이 주도하는 작은 기획이 성공한다면 토목공화국에 반하여 붙일 수 있는 이름으로 ‘건축공화국’이 되지 않을까? ‘○○공화국’이란 이름이 여전히 정치색이 강하고, 개발 본위의 촌스러움 면에서 진일보한 것이라 여겨지지 않지만, 저간의 토목공화국을 가능케 했던 큰 기획으로서의 국토공간에 대한 대구(對句)로서 기대치를 지니고 있다는 면에서 일단은 그렇게 명명해보자.

그러나 작은 기획이라고 해서 조건 없이 수용해야 한다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철학적 토대 위에서 우리가 잊고 있었거나 잃어버린 건축을 찾아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건축이 존재의 기억으로 환원되고, 장소의 회복이 곧 시간에 누적된 가치를 공유하는 행위라는 사회적 합의가 자연스럽게 결구된다면 위험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건축의 역사를 우리 손으로 쓸 수 있는 날이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작은 기획이든 큰 기획이든 결국 사람의 의지에서 출발한다. 작다고 무조건 좋지도, 크다고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건축이나 토목이 공간과 장소에 담긴 인간의 시간을 기억하고 새로이 새기는 작업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둘 다 한번 손을 대고 나면 짧게는 2∼30년, 길게는 100년 이상을 공동체 안에서 존재하는 대상이기에 그러하다.

모두(冒頭)에 적었지만 인간에 비하여 미물에 불과한 까치들도 나뭇가지에 둥지를 틀기 위해 수개월의 시간을 수없이 오가며, 있을 수 있는 여러 방향의 문제점들을 꼼꼼하게 챙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결단이 선 이후부터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나무 위를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하며 집을 짓는 데에 집중하여 사력을 다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스스로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 모두는 최초의 의지가 곧장 결행의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작은 교훈을 새겨야 할 것이다. 충분하게 중간 과정을 겪은 연후에 결행해야 한다는 단순한 지혜를 까치집에서 배울 것을 권한다. 동물의 건축학이 어찌 인간 사회의 건축학, 공간학보다 나을 수 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