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도시를 행복한 도시로 분류해야 할지 불행한 도시로 분류해야 할지 결정하는 일은 무의미합니다. 그런 식으로 도시들을 둘로 나누기보다는, 여러 해가 흐르고 변화를 거듭해도 욕망에 자신들의 형태를 부여하기를 계속하는 도시와 욕망에 지워져 버리거나 욕망을 지워버리는 도시, 이렇게 두 종류로 나누는 편이 더 의미가 있습니다.2)

지난 3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이하 DDP)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지명초청설계 방식으로 진행된 설계경기에서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설계안 <환유의 풍경>이 당선된 지 7년, 착공 5년 만이다.

UFO 혹은 우주선이라는 DDP의 별칭이 말해 주듯, 이것은 하나의 스펙터클이다. 자본으로 응축된 거대한 ‘정치적 열망’은 스펙터클이 되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기 드보르(Guy Debord)가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밝혔듯이, 현대적 생산조건들이 지배하는 사회들의 삶 전체가 스펙터클이라는 거대한 축적물로 나타난다는 차원에서 그러하고, 한때 직접적으로 삶에 속했던 모든 것이 표상(表象)으로 물러난다는 차원에서도 그러하다. 또 스펙터클이 환영과 허위의식 양자를 공통지반으로 삼는다는 점과 스펙터클이 지배적인 생산양식의 결과이자 기획이라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2006년‘디자인 서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용산 국제업무단지를 필두로 한강르네상스 사업과 기념비적 사업을 통해 서울에 랜드마크를 세우려고 했다. DDP뿐만 아니라 세빛둥둥섬,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와 서울시 새 청사 건립은 이런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들이다. 그 중에 백지화된 것도 있지만, 애초에 이 모든 게 정치적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었던 만큼, 도시의 역사․문화적 맥락보다는 ‘극적 연출을 우선시한 이미지’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시민의 요구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문제와 관련된 프로그램 개발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DDP가 기획된 배경과 과정을 살펴보면, 왜 하디드의 설계안이 낙점을 받았는지를, 그리고 왜 그것은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현대건축(contemporary architecture)―‘모던(modern)’이라는 뿌리 용어에서 점차 탈구된 의미로서의 컨템퍼러리, 그러니까 이 시대의 건축―은 그 해법을 맥락과 관련한 질문을 세부적으로 진행해 나가면서 도출한다. 이런 추세는 스케일에서, 상징언어를 사용하는 정도에서, 자본의 개입 정도에 따라, 그리고 그 시대의 조건이 관계하는 특수성에 따라 다르다. 말하자면 이들 작품에는 대단한 다양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스펙터클의 건축3)이 지향하는 바는 비교적 분명한데, 그것은 점차 세계화해 가는 문화산업 분야에서 여타의 목적을 뛰어넘는‘이미지’를 껴안는다는 점이다(독특하게 브랜드화 된,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구겐하임 빌바오나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을 떠올려 보라). 건축비평가인 젱크스(Charles Jencks)가『상징적 건물(Iconic Building)』(2005)에서 “아이콘으로서의 건물―이를테면, 엠파이어 스테이트나 크라이슬러 빌딩―이 새로운 현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런 동향은 최근에 와서 확실히 새로운 차원에 이른 듯하다”고 한 것도 바로 그런 의미에서다. 근대운동의 특징(the signature of modern movement)이나 다름없는 ‘형태적인 규제’라는 경향의 결을 거슬러, 내포적인, 심지어는 상징적인 형태의 가치를 지지하기 시작했던, 1950년대와 비교해 보더라도 이런 동향은 훨씬 더 대담해졌다.

건축가이자 펜실바니아 대학교수인 리브친스키(Witold Rybczynski)는 「빌바오 효과」4)라는 글에서, 박물관과 자치단체들이 점차 어떤 식으로 게리(Gehry), 스티븐 홀(Steven Holl), 다니엘 리베스킨드(Daniel Libeskind),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와 같은 ‘유명한 건축가들’(starchitects)5)에게 관심을 돌리고 있는지를 논의했는데, 이 글은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세계가 현대건축을 새로운 ‘문화자본’으로 주목하고, 그런 차원에서 왜 스타키텍츠의 작품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실제로 스타키텍트에 의해 생산된 문화자본은 그/그녀가 제공하는 건축물만큼이나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을 긍정적인 의미로만 보는 시각은 순진한 태도다. 왜냐하면 부르디외(P. Bourdieu)의 말처럼, 문화는 인간행위와 객관적 구조 사이에서 매개와 여과, 조절과 적응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와 동시에 (부정적으로는) 은폐와 치장의 기능도 수행하기 때문이다. 문화가 생산되고 유통, 소비되는 과정의 이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권력관계와 사회학적 근원의 그물망을 파헤치고, 이를 드러내는 작업 자체가 비판의 의미를 갖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스펙터클의 건축, 그곳은 엄밀히 말해, 권력(혹은 권력의 과시욕), 자본, 그리고 스타키텍트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지어진 DDP 역시 그 지점에 있다는 것, 즉 그런 욕망들과 기대가 어우러진 산물이라는 점이다. 아까 언급했던 리브친스키의 평가는 스타키텍트에 의해 생산된 문화자본(혹은 건물)의 순기능에 초점을 맞춘 것일 뿐, 그 이면에 작동하는 복잡한 관계라든지 문화자본의 그늘 아래 소멸되거나 방기(放棄)되는 것들―이를테면, 구체적 경험이나 기억 등등―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는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스펙터클의 건축(실현)을 낙관적으로만 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지금껏 DDP를 둘러싼 논의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대했던 만큼 생산적인 자리라고 할 만한 것도 없었다. 어찌 보면 그것이 우리 사회가 보여준 엄연한 한계라고 할 수 있을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간히 터져 나왔던 비판의 목소리에 공통적으로 담겨있는 주된 논점은, 하나같이 “동대문이 갖고 있는 맥락적 관계들을 소홀히 다루었다”는 데 있는데, 이는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물론 이런 비판은〈환유의 풍경〉이라는 하디드의 설계 개념을 똑바로 겨냥하고 있음은 두 말할 것도 없다. 겉으로 보기에 이러한 대립을 ‘문화적․사회적․지역적인 맥락을 고려한 장소성이냐’ 아니면 ‘시각적 영향력을 고려한 심미적 건축언어냐’를 두고 벌이는 갈등 정도로만 해석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각자의 입장과 주장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더라도 이런 쟁점을 둘러싼 의견 차이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데, 이는 각각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히려 우리가 파고들어야 할 문제는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 있다.

“DDP가 가지는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도시적, 사회적, 경제적 요소를 환유적으로 통합해 하나의 풍경으로 만들려고 했다.”6)

이처럼, 하디드가 제시한 DDP의 기본설계 개념인〈환유의 풍경〉은 어떤 식으로 해석해도 ‘모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 안에 몇 가지 수사적 전략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도 그럴 것이 환유의 특성들을 몇 가지만 살펴보더라도 그 말이 얼마나 허술한 수사(修辭)에 불과한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유를 뜻하는 영어 ‘메토니미metonymy’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메토니미아metonymia’라는 그리스어를 만나는데, 이 그리스어는 다름 아닌 ‘이름을 바꾸다’라는 뜻을 지닌다. 그러니까 환유란 어떤 대상이나 관념의 이름을 다른 이름으로 대치하는 수사법이다. 은유처럼 사물이나 개념을 이해하는 데 있다기보다, 사물이나 개념을 지칭하는 데 그 기능이 있다. 그런 지칭 방식은, 은유와 같이 유사성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접성에 의존한다. 환유는 대개 인간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은유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은유와 비교해 볼 때 그 경험적 토대가 훨씬 강하다. 다시 말해 환유는 물리적이고 인간적인 관계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환유로 쓰이는 대상은 인간의 구체적인 경험 혹은 일상의 경험과 깊이 연관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가령 서양의 기독교 문화권에서 비둘기는 성령을 가리키는 환유로 자주 쓰인다. 비둘기와 성령은 유사성보다는 인접성 때문에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다. 환유가, 흔히 추상적 느낌이 드는 은유와는 달리, 훨씬 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환유는 종종 한 문화를 이해하는 데 아주 중요한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이는 환유가 “어떤 사물의 속성이나 특징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딴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되, 좀 더 보편적이거나 폭넓은 뜻을 환기시키는 방식”이라는 일반적인 이해를 넘어 경험과 연관된 차원에서 쓰일 때 그 의미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환유의 이와 같은 특징들을 고려해 볼 때, 하디드의 “역사적, 문화적, 도시적, 사회적, 경제적 요소를 환유적으로 통합한다”는 말은 두 가지 질문을, 그러니까 “도대체 어떻게 통합했다는 것인가?” 그리고 “(통합했다는) 그 요소들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호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와 건축계는 (심지어 심사위원들까지도) 그 앞에서 침묵했고, 그녀의 모호한 말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상태로 남았다. 오히려 그녀가 말하는 환유는 다른 방식으로, 그러니까 전혀 엉뚱한 방식―스타키텍트의 고유한 스타일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말이다. 내가〈환유의 풍경〉이란 개념을 두고 ‘모호하다’고 한 것은 이런 점에서다. 사실 그녀의 작품에서, 전체 구성의 중심 역할을 했다는 성벽7)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경험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 문화라 이해하고 받아들일 만한 요소는 거의 없다. 무엇보다 하디드가 말하는 ‘환유’는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이번 프로젝트의 실현을 정당화하고 포장하는 교묘한 용어로 보인다. 첫 번째, 스타키텍트(starachitect)의 건축언어에 대한 일종의 변명으로써, 두 번째, 경험적 질서를 개념적 질서로 대체한 것을 감추는 장치로써 그렇다.

젱크스의 주장대로, 스타키텍트(혹은 스타-아키텍트)에 의해 생산된 아이콘으로서의 건축은 그 지역에 랜드마크로서의 성격이나 새로운 장소성을 부여한다8)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언제든 즉각 알아볼 수 있는 이들 건물은 그것들이 속해 있는 도시들뿐 아니라 그것들이 제공하는 바로 그 집단들을 광고하는 로고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때문이다. “명성과 건축(fame and architecture)"이라는 주제를 다룬 『Perspecta 37』의 편집장은 “오늘날 세계화된 사상들의 시장터에서, 소위 스타키텍트는 건축을 넘어선 더 넓은 세상에 영향을 끼치는 수단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객원편집자로서 잡지 제작에 참여한다든지, TV쇼에 출연하고, 침실의 액세서리에서부터 전략적으로 브랜드화 하는 모든 것들에 이르기까지 다국적 기업과 협력함으로써 말이다. 그로써 이들(이 생산한 아이콘으로서의) 건물이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은 바로 의도적인 마케팅 기법으로 형태와 가시성을 활용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공모해 있다는 사실이다. 브랜드, 다국적 기업, 마케팅, 자본주의 시스템 등등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이런 것들이 지닌 (화폐와 같은 고도의) 추상성은 엄밀히 말해 특정 지역(혹은 도시)의 문화적 속성이나 역사적 맥락에 한정시킬 수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와 같은 구분을 폐지하는 성격을 띠고 있다.

그렇다면 다시, 이번 DDP를 통해 선보인 (하디드의) 건축언어는 “무엇에 대한 환유인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그녀의 말마따나 그것이 역사적․문화적 요소에 대한 환유라면, ‘동대문 고유’의 무엇에 대한 환유냐는 물음말이다. 그런데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번 설계에 대한 그녀의 변(辯)을 찬찬히 뜯어보면, 역사적․문화적 요소니 하는 말들은 실상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그녀의 설계 안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않는다는 것을,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수사적인 차원에서 내뱉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동성9), 유동성과 유연성10) 그리고 풍경11)이란 키워드가 다름 아닌 동대문의 삶을, 첨단(the advanced)을 추구하는 패션의 속성을, 그렇기에 어떤 변화에도 적응성12)을 높일 수 있는 디지털기술(파라메트릭 디자인13)을,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풍경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다. 그런데 그 가운데에서 어떤 것도 동대문(지역)의 ‘흔적과 기억의 켜’를 내보이는 것은 없다. 그것은 다만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스펙터클의 건축―DDP의 탄생배경에 부합하는 건축14)―의 속성일 뿐이다.

장소성은 대개 타고난 지형 위에 역사문화의 키가 뿌리내려 문화 및 지역적 특색과 어우러져 형성된다. 그렇다 보니 장소성을 염두에 둘 경우 맥락적 요소와 관계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을 취하게 되는데, 그러한 맥락이야말로 삶의 경험적 질서를 내포하고 있고, 그것이 곧 장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고의 바탕에는 ‘집단적 기억으로서의 장소’라는 관념이 깔려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에드워드 렐프(Edward Relph)가 『장소와 장소상실(Place and placelessness)』(1976)에서, “도시의 맥락적인 관계를 소홀히 한다면 장소는 형성되지 않으며, 이때 건축물은 조형으로 전락한다”고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하디드의 이번 설계는 도시의 (특히 동대문의) 맥락적 관계를 충실히 다루었다고 할 수 없다. 동대문이라는 고정된 장소가 갖고 있는 경험적 질서15)는 빠져나가고 없기 때문이다. 이는 과거 근대건축이 그랬던 것처럼, 스타키텍트가 ‘브랜드화 한 스타일’은 일정 부분 유목적(nomadic)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데서 오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럴 경우 경험적 질서보다 개념적 질서가 앞선다는 것은 자명하다. 또 이런 건축은 대체적으로 도시 구조 내에서 유기적인 통합보다는 개별적인 형태로 존재한다. 따라서 스펙터클의 건축이 내재하고 있는 위험요소는 무엇보다 전체적인 도시경관이나 역사적․문화적 지속(가능)성을 도외시한 채 ‘차별’만을 목적으로 하는 파편화된 콘텐츠로 머물 가능성이 있고, 마치 박람회장의 쇼케이스처럼 유기적 조직체로서의 도시적 특성을 잃고 단편화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DDP디자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건물과 랜드스케이프의 통합’16)을 꾀했다는 점이다. 이런 전략은 “외부와 내부의 공간을 관통하고 지면과 지상 그리고 지하의 도시적 문맥을 끌어오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랜드스케이프를 만드는 것”이라는 하디드 측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랜드스케이프 자체가 오브제와 공간을 포함하여 그것을 통과하는 동적인 과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사건이 발생하고 진화하는 행위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리차드 세넷(Richard Sennett)은 「자본주의와 도시」17)라는 글에서, 열린계로서의 도시속성을 네 가지―① 통과의 영역, ② 평등한 공간, ③ 불완전한 형태, ④ 확정적이지 않은 서사―로 꼽았는데, 그 의도의 바탕에는 20세기 모더니즘의 경제논리와 결정적 공간개념에 대한 반감이 깔려 있다. 또 이런 반감은 비결정적인, 그러면서도 변화의 과정을 내포하는 ‘-되기’를 추구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이를 공간․사회적 용어로 말하자면, 잠재적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일 뿐 아니라 공적인 영역에서의 우연성과 사교적인 접촉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제공하는 셈이 된다. 이는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가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18)을 통해 제시한 ‘가로 위 삶의 구조(Social structure of sidewalk life)'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는 지역사회의 정체성과 상호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건축적인 장치에 대한 고민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 실현된 DDP는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안전, 구조, 그리고 시공 상의 문제로 건물의 상부까지 공원으로 확장하지 못했고, 그로써 풍경이 ’거대한 오브제’로 남게 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이런 실패가 어쩌면 DDP를 더 한층 UFO니 우주선이니 하는 조롱과 함께 ‘스펙터클의 건축’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건축물의 ‘이질성’만을 두고 비난할 것은 못 된다. 알도 로시(Aldo Rossi)는 로쿠스19)를 도시적 형성물의 개별성과 함께 이야기했는데, 이때 로쿠스는 공간과 시간, 오래되거나 새로운 사건들의 현존성, 그리고 기억 등에 의해 결정된 개별적 형성물로 연결시키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얘기는 결국 지나치게 ‘역사’라는 말이 주는 관성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건’도 도시의 역사를 형성하는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즉 “내가 속한 환경을 다른 것을 향하여, 그리고 차이를 향하여 열어준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다면 도시는 ‘항상성’이란 훈장(?)을 달 수는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 죽은 것일 테니 말이다.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이 건물을 두고 ‘일종의 폭력’이라며 꽤 강도 높게 비난한 글을 보았다. 부르디외의 표현을 빌려서 이를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문화 재생산을 통한 ‘상징폭력’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일정한 조건 아래서 같은 비용라면 상징폭력이 정치폭력이나 물리력보다도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 까닭에 상징적 지배는 영향력의 행사보다 훨씬 강력하고 또 지속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에서 더 교활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스펙터클의 건축이 도시 거주자들의 삶에 실질적이고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지지 못했을 때, 직면할 수밖에 없는 비난의 일부다. 그렇지만 모든 형태의 ‘상징적 지배(symbolic domination)'는 외적 압력에의 수동적인 복종도, 지배적인 가치의 자발적 선택도 아닌 일종의 공모(共謀)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처럼 DDP의 부정적인 측면을 보는 시각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 누군가는 DDP를 보면서, 건축과 스펙터클의 완벽한 혼합을 보여준, 요른 웃존(Jørn Utzon)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와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뮤지엄을 떠올리며, 그 성공 신화에 기대어 환상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20)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런 성공의 바탕에는 철저한 프로그램 검토와 건물의 활용에 대한 준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안타깝게도 DDP의 경우는 좀 다르다. 아니, 중대한 문제를 빠뜨리고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이 글의 머리 부분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천박하고 야비한’ 정치적 의도가 너무나 강하게 개입되었던 탓에 프로그램까지는 미처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21) 그 동안의 성공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건축물의 정확한 목적과 그에 맞는 분명한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어 있었고, 건축물 외형이 주는 이질성이 오히려 강력한 랜드마크로 작동할 수 있는 이접지역, 즉 경계부에 위치해 있었다는 공통점을 들 수 있다. 스펙터클한 문화에 건축이 갖는 중심적인 역할을 잘 수행하는 건물들은 대부분 이미지(스펙터클)와 쓰임(프로그램)을 가장 적절하게 통합했던 건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요소(the wow factor)가 방문자들과 저널리스트들을 자극할 수 있을지라도, 그것이 반드시 좋은 건축이 되는 요건은 아니다. 좋은 건축은 우리에게 ‘나 좀 봐(Look at me!)' 하기보다 우리에게 뭔가를 더 많이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건축은 결코 단순히 건물에 관한 물음에만 머물렀던 적이 없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