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공연장 상주단체로 선정된 풍물패 더늠의 <풍물로 노닐다 - 광대의 꿈> 기획공연이 열린 학산소극장의 객석은 가득 메워졌다. 이날 공연엔 풍물의 정해진 가락과 장단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고민한 연출이 특히 돋보였는데, 흥겨운 장단만을 상상하며 자리를 채운 관객들에게는 다소 의아스러울 수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금새 아랑곳하지 않고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풍물은 시끄럽다. 마이크를 굳이 대지 않아도 충분한 울림을 준다. 이런 큰 소리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 풍물공연을 찾는다. 보통 풍물공연은 공연장 밖에서 3~4장단 정도 악기를 치고 그 흐름을 공연장 안의 객석을 지나며 무대 위로 이끈다. 그런데 시작부터 풍물패 더늠의 공연은 예상을 깼다. 공연장 밖에서 악기 소리가 들려오고 이내 가까워질 줄 알았던 소리가 잠잠해진다. 그렇게 연희자들은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악기를 든 채로 무대에 오른다. 그 다음 악기를 칠 때의 동선을 따라가지만 소리는 내지 않고 무대 뒤로 사라진다. 관객들의 웅성거림이 이곳저곳에서 들렸지만 이내 잠잠해졌고 무대 위의 연희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웃지 못 할 상황으로 연결되었다.

길놀이로 한껏 분위기를 긴장시킨 후의 적막은 오묘하고도 숨죽여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로 작용했다. 또한 사물놀이 공연에서도 순간 조용해지는 연주를 했는데, 사물놀이의 가장 빠르고도 긴장된 장단을 연주하다가 별달거리 대사를 하는 부분에서 대사 대신 “쉿! 조용히 계세요!”라고 외치며 반전 아닌 반전을 구성하는 대목에서는 세월호의 안내방송을 떠올리게끔 했다. 공연에 앞서 연출자의 설명에서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표현하기는 했지만, 공연 중에 이렇게 뜬금없이 상기시킬 수 있는 요소를 절묘하게 넣었다는 데에 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이어지는 다른 분의 멘트들은 공연의 성격과 분위기에 어울리기에는 지나치다는 느낌이 강했다. 참여한 잠수부에 대한 인원수, 실종자 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시대현실을 공연에 표현할 수 있는 잠재성과 창의성을 깨버리는 멘트였다. 물론, 세월호 관련된 일을 부정하거나 실제 현황에 대해 외면하자는 의도는 아니나 공연을 하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사건과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부분들을 자신의 재능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에 안타까움이 컸다. 빠른 비트로 몰아가는 장단 속에서 흥겨움을 느끼는 사람이 물론 많겠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능력으로 죽을 듯이 연주하는 장단에 그들만의 아픔과 슬픔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직접적인 정보의 전달은 오히려 공연의 흐름을 흩어버리는 결과로 보였다.

지난 6월 14일 세월호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후 가장 큰 경제적, 사회적 타격을 받은 분야가 바로 문화예술계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부차 산업 종사자들까지 실업의 위기에 몰리기까지 했다. 간편 논리로 보면 이들의 생업은 공연을 하는 일이고 피치 못할 사고로 인해 직장을 잃은 셈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왜 사회는 이들에게 생업을 감수하라고, 급기야 공연을 하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몰아가는 것인가. 이러한 때에 공연을 올리는 일이 왜 수치스러워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사건 때문에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사람들이 과연 있을까.

우리 모두는 열심히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충분히 슬퍼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화예술계에 부는 차갑고도 매서운 시선은 슬퍼할 시간보다는 당장 생계를 이을 고민을 먼저 떠안겨 주고 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흥겨운 노래만이 공연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몸짓, 노래, 감정들이 한데 어울려 만들어내는 연주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단순하게 문화예술은 심적으로 여유 있는 자들의 사치라고 여기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더욱 얄궂게 다가온다. 축제, 공연들이 우수수 낙엽 떨어지듯 취소될 적에도 유흥가의 노래방, 주점은 음악과 술로 붐볐다. 슬픔에 대한 사회적인 시각이 어느 특정 영역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볼 시점이다.

최근 문체부는 보도를 통해 세월호 여파 피해를 입은 공연예술계에 50억을 지원하겠다며 나섰다. 대규모 축제와 공연의 취소, 연기, 축소에 따른 보상으로 관광지, 번화가, 지방문예회관에서의 소규모 야외 공연 및 중규모 연극·뮤지컬 공연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에 너무 고심한 결과로 보인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능히 그들의 연주에서 충분한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이 사회 각 분야에 자중을 의도케 하긴 했어도 슬픔과 추모의 분위기를 문화예술 활동 취소가 아닌 변주의 부분으로 제안하여 지원할 생각은 정녕 하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풍물패 더늠은 지역에서 공연뿐 아니라 많은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들은 연주의 흥 안에 기쁨뿐 아니라 시대의 슬픔도 소화하는 내용의 활동을 보여줌으로써 입장한 관객의 수만큼 확장된 시각을 자극한다. 놀랄 일은 아니지만 우리가 현재 무엇을 함께 공유하고 행동해 가야 하는지 울림에 울림을 던져 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때일수록 힘을 내어 솔직한 감정을 내뿜는 표현활동이 응원 받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