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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도시의 다른 모습
통권 : 46 / 년월 : 2014년 7,8월 / 조회수 : 2284

최근 도시에 대해 사회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성찰한 작업이 많이 나와 있다. 또한 도시를 주제로 한 전시도 많이 열렸다. 그러나 도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눈을 돌리지 않은 중요한 도시적 현상 중 산을 비롯한 자연이 있다. 사람들이 도시에 대해 연구하고 주목하는 동안 자연도 도시 못지않은 변화를 겪었다. 따라서 자연의 장소도 도시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게 됐다. 그 첫째 이유는 주5일제 근무의 영향으로 아웃도어 레저의 영역이 급속도로 확대되어 도시사람들이 산으로 몰려간 것이다. 오늘날 산에서 사람을 발견하지 않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 됐다. 그것도 온갖 아웃도어 브랜드로 울긋불긋하게 꾸며 입은 사람들 말이다. 즉 산에 가서도 도시를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자연의 장소가 도시의 연장이라고 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벌어지는 개발이다. 대관령을 구불구불 올라가던 처음의 영동고속도로처럼, 과거의 자연개발은 그래도 자연의 눈치를 보는 식이었다. 그리고 개발현장을 바라볼 사람들의 시선의 눈치를 보는 식이었다. 요즘의 자연개발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환경 자체를 자본으로 보는 ‘환경자본’은 자연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변형시킨다. 전국에 들어선 수많은 골프장, 리조트들은 자연을 오로지 자본으로만 볼 뿐이다. 그런 와중에서 산은 더 이상 도시에 대비되는, 문명의 타자가 아니라 도시의 연장이 돼 버렸다. 북한산, 도봉산, 청계산 등 서울근교의 산 밑에는 케이투, 블랙야크, 노스페이스, 마무트 등 전 세계의 모든 아웃도어 브랜드의 매장들이 시내 한복판보다 더 크고 요란하게 들어서 있으며 커피숍도 아주 많다.

 

이런 움직임은 산 속의 환경에도 상당한 인위적인 영향을 미쳤다. 온갖 규칙들의 그물망이 쳐져 있는 도시공간처럼, 1980년대 중반 이후 산속에도 해서는 안 되는 규제들이 참 많아졌다. 우선, 취사야영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이 조치는 남한의 온 산과 들에 골프장이 많아지기 시작할 무렵 내려졌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지배계급의 놀이인 골프장을 위해서 산을 아예 없애는 것은 허용되어도, 서민들이 산에서 밥 좀 해 먹고 야영 좀 하는 것은 죄인 취급하는 이상한 자연의 윤리가 생겨났다. 자본이 자연을 더 광범위하게 변형하고 파괴하는 동안 산에 대한 규제는 더 심해져갔다. 1969년 지리산이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1983년 북한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전에는 없던 규제들이 생겨났다. 취사·야영 금지에다가, 비지정 탐방로 출입금지, 야간산행 금지, 최근에는 산에서 흡연 금지, 아주 최근에는 산에서 음주 금지까지, 온갖 금지조치들이 내려졌다. 최근 몇 년 전부터는 아예 국립공원의 계곡 자체가 출입금지구역으로 설정되기까지 했다. 이제 산은 온갖 금지의 그리드들이 촘촘히 배치된 주름진 공간이 되어 버렸다. 산을 탄다는 것은 그 주름을 탄다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런 금지는 그나마 산행 자체는 허용하는 선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최근의 조치들은 산행 자체를 부정하는 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지리산에 성삼재 도로가 뚫리면서 노고단에서는 줄이 쳐진 곳 이외의 장소는 한 발짝이라도 디디면 벌금을 무는 무서운 금단의 장소가 되었다. 성삼재 도로가 뚫리지 않아 필요 이상의 사람들을 산꼭대기에 쏟아놓지 않았다면 필요조차 없는 조치이다. 10여 년 전쯤에 어느 국회의원이 산악인들의 종주산행이 산을 망가트린다면서 종주를 못 하도록 종주구간을 끊어서 산행금지조치를 내려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요즘 그게 실제로 실행되고 있다. 오대산의 경우 노인봉-황병산 사이 구간, 비로봉에서 계방산 사이의 구간이 등반금지구간으로 설정돼 있다. 만일 이 구간에 발을 들여놓으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는 무서운 경고판과 함께. 설악산도 화채릉, 마등령 이북, 용아릉, 점봉산, 가리봉 등 수많은 구간들이 자연보호를 이유로, 혹은 등반의 위험을 이유로 출입이 금지돼 있다.

종주산행이란 산악인들에게는 최고의 로망이다. 흡사 하늘 길을 걷듯이 능선 위를 걸으며 비와 눈을 뚫고 구름 위를 걸으며 거친 땅을 호흡하는 것이 종주산행이다.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묵묵히 걷다 보면 내가 떠나온 봉우리가 저 멀리 뒤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며 성취감을 느끼는 것이 종주산행이다. 그것은 거리의 싸움이다. 미국은 북쪽의 메인주 캐타딘 산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애틀란타의 조지아에 이르는 길이 3,500킬로미터의 애팔래치안 트레일이 유명하다. 약 5개월이 걸리는 이 종주는 시작한 사람의 20퍼센트 미만만 성공한다는 대단히 힘든 인내력의 싸움이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이런 산행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다. 현재 국내 산에서 대표적인 종주코스로는 지리산, 덕유산, 영남알프스 등이 있지만 이런 산에서의 종주도 출입금지구간을 요리조리 피해야 완성되는 서글픈 종주다. 남한의 애팔래치안 트레일이라 할 수 있는 백두대간도 곳곳이 출입금지구간으로 정해져 있어서 산악인들은 도둑질하듯이 종주를 하고 있는 형편이다.

 

산이란, 도시의 장소들 못지않게 정치적이고 권력적인 곳이다. 한국에서 산행을 한다는 것은 들뢰즈가 말한 주름진 공간과는 또 다른 의미의 주름진 공간을 타는 행위이다. 그는 공간을 두 가지로 나누는데, 하나는 매끈한 공간이고 또 하나는 주름진 공간이다. 매끈한 공간은 인간이 구획해놓지 않은 미분화된 자연의 공간이다. 사막이나 대양 같은 곳이 매끈한 공간의 예이다. 여기에는 길도 없고 번지수도 없다. 거기에 길을 내고 주거가 시작되고 주소가 주어지고 이야기와 역사가 쌓이면 주름진 공간이 된다. 한국의 산은 현대사를 거치면서 수도 없이 주름진 공간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주름진 공간이란 산을 관리하는 산림청이나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쳐놓은 주름들, 즉 행정적, 규제적 선들을 뛰어넘어 또 다른 주름들을 긋는 행위들을 말한다. 설악산에서 위험과 자연보호를 이유로 등반이 금지된 용아릉과 마등령 이북으로 여전히 등산객들이 다니고 있으며, 불법산행을 자랑스럽게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그들은 행정적 규제의 주름들 위로 자신들의 주름을 써 넣는다. 백두대간 종주의 이름 등으로.

 

사람들이 산에 가는 것은 정복욕 때문은 아니고, 건강을 챙기기 위한 헬스클럽 대용은 더더욱 아니다. 사람들은 산에서 도시의 빽빽하게 주름진 공간과 다른 공간의 질서를 찾으려 한다. 그것은 욕망을 억눌러 놓는 도시의 그리드를 벗어나 해방을 추구하려는 몸짓이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마구 확장된 남한의 도시는 산이라는 공간마저도 숨 막히는 질서로 주름을 잡아놓았다. 그래서 산은 오늘날 도시 못지않게 해방을 향한 몸짓과 억압적 실천이 충돌하는 곳이다. 산 곳곳에서 출입금지구역과 기간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설악산 미시령에서 황철봉 쪽으로 산행을 금지시키자 일련의 산꾼들이 단속의 눈을 피해 새벽 2시에 몰래 들어가려다 제보를 받고 잠복해 있던 직원들에게 단체로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미시령 입구에 센서를 달아놓아 밤에 등산객이 지나가도 잡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이제 산과 도시가 다른 점은 고슴도치가 있느냐 없느냐 정도의 문제로 구별되게 됐다. 설악산 깊은 곳에는 고슴도치가 있으나 도시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은, 정말로 그런 곳이 남아 있다고 하면 노스탤지어의 장소가 됐다. 필자는 설악산의 계곡 중 지금은 위험해서 등반이 금지된 백운동계곡을 1980년대에 등반했던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산에 거의 규제가 없어서 백담골에서 찌개도 끓여먹고 미숫가루도 풀어먹고 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내설악 골짜기가 맑았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백담골이나 구곡담은 아무래도 물색깔이 약간은 푸르스름했다. 그러나 내설악의 내설악, 혹은 내설악의 내실이라고 부르는 백운동 계곡은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계곡물이 그냥 투명 그 자체였다. 백운동계곡은 아직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설악의 참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그 신비를 감추고 있는 골짜기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백운동 중간에는 높이 40미터의 백운폭포가 있는데 이 주변의 길이 대단히 험해서 지나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백운동계곡을 한 번은 위에서 아래로, 또 한 번은 반대로 탄 적이 있는데 두 번 다 백운폭포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 덕에 백운동계곡은 때 묻지 않은 속살을 감추고 있었다.

 

위에서 내려올 경우 백운동은 서북릉의 한계령 갈림길 부근에서 시작한다. 1985년의 그 길은 때 묻지 않은 신비 그 자체였다. 어디가 백운동 입구라는 아무런 표지가 없기 때문에 사전에 지도를 열심히 연구하여 어림짐작으로 내려간다. 입구부터 만병초나 으름 등 귀한 식물들이 반겨준다. 조금 내려가면 낮게 깔린 측백나무들이 반겨주는데, 코를 찌르는 향은 여기가 내설악의 신비를 품고 있는 곳임을 알려주는 듯하다. 더 내려가면 이윽고 물이 흐르기 시작하는 골짜기를 만나는데 여기에 심마니가 설치해 놓은 것으로 보이는 모덤(돌로 만든 제단)이 있고 그 옆에는 넓적한 돌로 구들을 깔아놓고 비닐로 움막을 지어 온기를 유지할 수 있게 해놓은 터가 보인다. 모덤은 약식으로 쌓은 제단인데 나뭇가지를 걸쳐 놓고 나뭇가지에는 한지를 걸쳐 놓았다. 그것은 아마 깨끗한 마음으로 신비의 산삼을 캘 수 있기를 바라는 부적이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설악산 여기저기서 이런 모덤터를 볼 수 있었으나 요즘은 통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그때 본 모덤터의 인상은 숲속에서 희귀한 동물을 본 느낌이었다. 그것은 내설악의 신비 그 자체였다.

 

백운동계곡에는 길이 거의 없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발아래의 낙엽이 한 사람이라도 밟고 지나간 것인지 살펴야 한다. 골짜기 앞에서 길이 갑자기 끊길 때는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길을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한시라도 긴장을 풀 수 없는 산행이다. 가끔 앞서 간 사람이 매달아 놓은 표지기가 도움이 될 경우가 있으나 이것도 흔치 않으므로 온 신경을 집중해서 찾아야 한다. 이윽고 넓은 골짜기가 나오면 이제야 백운동의 아름다움이 제대로 펼쳐진다. 희고 고운 암반 위로 계곡물이 미끄러지듯 흘러내리고 있으며, 고개를 들어 멀리 보면 용아장성과 공룡능선 등 설악의 힘찬 등뼈가 보인다. 그리고 계곡 좌우로도 우뚝우뚝 솟은 암봉들이 도열해 있다. 흡사 바위의 신전을 걷는 느낌이다. 이곳을 걸으면 누구나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로 그 다음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높이 40미터의 백운폭포를 돌파해야 하는데 양옆은 절벽이고, 그 위로 경사가 진 좁은 통로가 있다. 40미터의 추락이 기다리고 있는 이 아슬아슬한 통로를 지나면 덜 험한 곳이 나오고 다시 아기자기한 골짜기가 펼쳐진다. 백운동계곡은 백담사에서 봉정암으로 오르는 내설악의 대표적 산행길인 구곡담과 만나는 곳에서 끝난다. 그 전에는 구곡담 계곡길이 좁다고 느껴졌는데 인적 없는 백운동에서 헤매다 만난 구곡담길은 고속도로로 보였다. 같은 길이지만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 보이는 개안의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지금도 비법정탐방로로 지정된 백운동계곡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입장에서 보면 그 사람들은 다 법을 어긴 범법자이므로 단속의 대상이지만 관점을 바꿔 보면 다른 면이 보인다.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남들 안 가는 험한 길로만 다니고, 죽을 고생을 한 후에 또 산에 가는 사람들은 안전한 길로만 다니는 사람들과는 종이 다른 존재들이다. 호모 사피엔스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들은 산의 정기를 받아야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도시에 살지만 끊임없이 산을 꿈꾼다. 1980년대 이전에 그런 사람들은 아무런 제한이 없이 산에 다닐 수 있었다. 산이 개발되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산양 등의 동물들이 더 깊은 숲속으로 숨어 들어가듯이, 산의 도시화는 산사람들로 하여금 더 깊은 산을 찾아들어가도록 했다. 백운동계곡, 큰귀때기골, 을수골은 그런 사람들의 피난처이자 수난의 장소이다. 그런 곳을 대하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방법이 노스탤지어 밖에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저자 약력
李瑛浚 1961년 서울 생. 기계비평가. 저서로는 『기계비평』, 『기계산책자』, 『패가서스 10000마일』 등. imagecritic@hanmail.net


글쓴이 : 이영준
작성일 : 2014/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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