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한 낙관주의에도 또 분별없는 절망에도 반대한다.” ㅡ한나 아렌트

‘재난과 절규의 공동체’

2001년 9. 11 이후 미국 사회가 달라졌듯이,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로 우리의 삶이 달라졌고, 또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지나친 판단일까. 정확한 숫자도 확인되지 않는 300여 명 이상의 생명이 바다 속에 수장되어 살해되고, 여전히 시신도 찾지 못한 12명의 실종자가 남아있는 참극을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봐야 하는 세월호 참사. 그날 이후 한반도 남쪽은 온갖 재앙에 가까운 재난과 어처구니없는 공권력의 폭압이 끊임없이 횡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도 앞바다에 침몰한 세월호의 비극은 도처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절규로, 끔찍한 사건들로 전 국토를 뒤덮을 만큼 확장되어 어쩌면 이제 국가 전체가 침몰한 선박의 형국인 것을 차마 부정할 수 있을까. 즉 우리의 안방이 죽음의 바닷물이 차오르는 캄캄한 선실이며, 이 사회 전체가 곧 가라앉는 세월호이자, 미셀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의 『광기의 역사』에 등장하는 ‘광인의 배’처럼 느껴지는 건 비단 별지기 개인의 생각일 뿐일까.

숱한 시인과 작가들이 글 한 줄도 써낼 수 없는 상태, 소위 양심과 양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겉으로는 평정을 되찾은 듯 지내지만 의식조차 할 수 없는 엄청난 트라우마로 항상적인 (집단적) 죄책감과 과녁이 정해지지 않은 분노와 스트레스에 짓눌리는 일상.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정상적으로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이며, 그보다 ‘정상’이란 무엇일까. 아니 정상일 수 있을까? 이처럼 기본적인 질문이 하루 24시간 내내 머리를 맴도는 와중에 미셀 푸코의 ‘오래된 신간’을 읽었다.

언어와 공간, 공간과 권력에 관한 사유

이번에 번역 출간된 『헤테로토피아』는 ‘푸코의 논쟁적이고 다성적인 에세이’들을 모은 얇은 책이다. 1966년 봄에 출간된 『말과 사물』의 엄청난 반향 덕에 그해 12월, 라디오 채널인 프랑스-퀼튀르France-Culture에서 <유토피아와 문학>이라는 주제로 한 특강 시리즈인 <헤테로토피아>와 <유토피아적인 몸>의 강연 원고, 그리고 그 다음 해 3월 파리 건축연구회의 요청으로 ‘헤테로토피아’의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발표한 「다른 공간들」이 실려 있다. 더불어 공간과 건축에 대한 1982년 폴 래비나우와의 대담 「공간, 지식, 권력」과, 헤테로토피아 관련 논의들과 수용 과정에 대한 다니엘 드페르의 해제가 담겼다.

『말과 사물』의 서문에 언어, 즉 담론 분석으로써 처음 언급한 용어인 ‘헤테로토피아’를 ‘이종적異種的’ 공간 분석의 차원에서 풀어나간 <헤테로토피아>와 그것을 논리적으로 다시 정제한 「다른 공간들」은 우리의 상식과 일상적 사유 패턴에서 간과하곤 하는 색다른 ‘공간과 장소’의 권력 관계를 들춰내어 조명했다는 점에서 관습적 인식을 확장한다. 또한 유토피아라는 개념 위에서 몸(신체)이라는 ‘장소’를 현상학적으로 서술한 「유토피아적인 몸」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언급하는 서두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싱글맨』과 거의 흡사하게 전개되는데, 문학과 예술에 대한 푸코의 열정이 특유의 사유와 조우한 무척이나 흥미로운 문학적 에세이이다. 폴 래비나우와의 대담은 푸코의 주된 학술적 키워드인 ‘통치성’과 ‘자유’라는 문제가 공간과 건축에 대한 그의 구체적이며 고유한 시각 안에 잘 어우러져 푸코의 학문적 궤적을 이해하는 데 요긴한 텍스트이다.

그러나 이 텍스트들은 발표 당시로부터 20여 년간 거의 다루어지지 않은 채 푸코가 세상을 떠난 1984년 6월 25일 직전에야 공식 출간이 허락됐고, 그 이후에야 무수한 번역과 논평이 뒤따랐다고 한다. 미셀 푸코에게 ‘헤테로토피아’란 개념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애초 임상 용어에서 나온 그 개념이, 공간과 권력의 지평에서 고민한 푸코의 논지를 넘어 어떻게 수용되어 왔는지는 책 뒷부분 다니엘 드페르의 해제에 스케치되어 있다.

“우리 시대의 칸트”라는 평가를 받게 한 『말과 사물』의 출간과 ‘가장 개념적이고 이론적인 저서’가 될 『지식의 고고학』의 집필 사이에 행한 여러 강의와 문학예술 비평들처럼 이 책에 실린 강연 원고들은 연구의 본류에 속하는 그의 저작들에 사이에서 “부차적인 문헌”이자 “문학적인 게임”이라고 평가(다니엘 드페르)된다. 따라서 정치한 분석과 명쾌한 논리를 보여주는 논문이라기보다는 헤테로토피아란 용어를 가지고 독자적(독창적)으로 새롭게 개념화를 ‘시도essai’하면서, 아직은 명징하게 정리, 완결되지 않은 개념의 지적 모색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 소책자에 담긴 길지 않은 에세이들을 결코 가볍게 여길 수는 없을 것 같다. 줄곧 권력의 테크놀로지와 주체의 문제, 공간과 지식의 역사에 천착했던 푸코 자신에게 ‘헤테로토피아’란 매우 중요한 사유의 축으로 여겨질 뿐만 아니라, 이후 ‘다의적이고 논쟁적인 재이식’ 과정을 거쳐 그 개념이 건축, 미술, 패션, 공연예술은 물론 사회학적 연구 등에 폭넓게 수용되었기 때문이다.

전복적 상상력, 이상적異常鄕 헤테로토피아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읽는 방법도 또한 다기多岐할 것이다. 저자의 의도를 헤아리며 텍스트 자체를 충실하게 독해할 때가 있고, 텍스트에서 다루는 내용, 주장, 개념 등을 자신의 필요, 혹은 시대적 요구에 맞춰 유연하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보는 관점에 따라 일종의 오독誤讀으로 볼 수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것이 국가인가?”, “무엇이 정상인가?”를 되물어야 하는 지금, 총체적 난국의 암흑 속에서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새로운 정의定意가 필요하다는 요청과 함께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아야 하는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별지기 역시 그런 고민을 가지고 대안을 모색하는 하나의 준거틀로서 ‘공간-장소’의 문제를 거칠게나마 상상하고 정의해 보고자 하는 입장에서 신간의 별자리를 찾았다. 그런 까닭에 당면한 문제적 상황에서 벗어나는 데 소용이 된다면 어떤 개념이든 전용轉用하고, 뒤집고, 깎고, 다듬어보자는 의욕(절실한 요구)에서 객관적 ‘읽기’보다는 해당 텍스트의 내용을 능동적으로 오독하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확장해 보고자 하였다.

유토피아Utopia는 ‘없는u- 곳topos’이고,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는 ‘다른heteros 곳topos’이다.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에 ‘없는’ 유토피아와 달리 ‘현실에 존재하는 장소이면서도 동시에 모든 장소들의 바깥에 있는 곳’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들에 대한 이의제기인 다른 공간’을 의미한다.

“유토피아는 위안을 준다. 왜냐하면 유토피아는 실재하는 장소를 갖지 못한다 해도, (…) 비록 공상을 통해 접근할 수 있을 뿐이지만, 넓은 도로가 뚫려 있는 도시, 잘 가꾼 정원, 살기 좋은 나라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헤테로토피아는 불안을 야기하는데, 이는 아마 헤테로토피아가 언어를 은밀히 전복하고, 이것과 저것에 이름 붙이기를 방해하고, 보통 명사들을 무효가 되게 하거나 뒤얽히게 하고….”

ㅡ『말과 사물』, 이규현 역, 민음사 p.11

“아마도 모든 문화와 문명에는 사회 제도 그 자체 안에 디자인되어 있는, 현실적인 장소, 실질적인 장소이면서 일종의 반(反)배치이자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인 장소들이 있다. 그 안에서 실제 배치들, 우리 문화 내부에 있는 온갖 다른 실제 배치들은 재현되는 동시에 이의제기당하고 또 전도된다. 그것은 실제로 위치를 한정할 수 있지만 모든 장소의 바깥에 있는 장소들이다. 이 장소는 그것이 말하고 또 반영하는 온갖 배치들과는 절대적으로 다르기에, 나는 그것을 유토피아에 맞서 헤테로토피아라고 부르고자 한다.”

-미셀 푸코, 『헤테로토피아』, p.47

비록 1960년대에 대한 진단이기는 하나 푸코의 언급처럼 여전히 “오늘날의 불안은 확실히 시간보다는 공간에 훨씬 더 근본적으로 관련”되며, 그 ‘공간이란 결국 모든 형태의 공동체적 삶이나 모든 권력 행사에서 근본적인 것’이다(87쪽). 한편 “가능한 질서의 수많은 조각들을 반짝거리게 만드는 무질서”인 헤테로토피아는 재구성된 공간 개념으로 기존의 관습을 거부하며 때로는 위험과 반항을 유발하는 장소이자, ‘사회를 무의식적으로 전진시키는 ‘반’공간’contre-espaces이기도 하다. 이러한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은 주체를 구성하는 훈육이나 감시의 시선과 그 배치의 구조에서 벗어나 현실과 다른 공간, 해방감과 위안을 받는 이질적인 공간으로 타자의 장소로 공식화되는1) 이종 공간이다. 여기서 푸코는 ‘권력과 지식의 미시물리학이 작동하는 근대성의 공간을 넘어서 이종적 차이의 공간으로 어떤 약속과 희망, 원초적 저항과 해방 공간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혼란스러운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사회의 거친 벼랑 끝에 위치하면서 양립 불가능한 장소들이 병존하며 불일치하는 공간, 바로 그 지점에서 사회를 무의식적으로 전진시키는 공간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이처럼 헤테로토피아에 대해서는 다소 혼란스럽게 설명하고 있지만 푸코는 공간 분석의 차원에선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구분 지었던 19세기까지의 ‘분할 개념’2)에 반하여 ‘배치 개념’을 제시한다. 불연속, 전위, 변환, 파열, 절단 등 탈 중심의 다종한 공간 경험을 헤테로토피아 공간으로 재구성하면서 ‘저항과 경계 넘기’, ‘타자성과 이질성의 공간’을 주된 특징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상상력의 특색 중 하나는 그것이 언제나 한 시대의 끝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즉 상상력은 언제나 자신을 새로운 현실에 귀속시키며 그 새로운 현실에 충직하다. 새로운 상상력이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현실이 있는 것이다." ㅡ 월레스 스티븐스Wallace Stevens

그리고 현재 우리의 공간은 극단적인 황폐함과 폭력적 처참함, 상상 이상의 참사로 점철되어 거의 파국에 직면한 듯 보인다. 여기서는 기존의 논리나 분석틀 안에서의 어떤 이성적인 설명이나 합리적인 해결 방안의 제시도 충분하거나 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아예 기존의 질서와 경험을 벗어나는 ‘바깥의 공간’, ‘다른 공간-장소’를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의무와 억압, 경쟁과 반복에서 벗어나 전이적이며 부유하는 유동적 공간’으로서의 헤테로토피아를 전향적으로 사유하며 ‘저항과 전복’을 통해 파편화된 개별 요소들이 수많은 이질적 차이 자체로도 질서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능동적 주체의 공간‘으로 재구성해보는 상상은 어떤가. 정치적으로 표현한다면, “차이와 이견이란 이질성이 인정되고, 나름의 질서를 이룬 공간으로서”3), 전이적이며 새로운 공간 개념으로 상정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맥락에서 번역자의 설명처럼 ‘××방, ××관 등 한국의 유흥 공간과 더불어 청계천과 4대강이 상징하는 도심 속 인공자연 공간, 집회가 열리는 광장, 억압적 공간이었으나 해방구가 된 두리반과 희망버스, 현대인들의 삶을 점거한 SNS 공간 등’은 물론, 권력관계의 속성과 우리 사회의 기막힌 현실을 고스란히 재현한 팽목항, 합동분향소들, 그리고 고잔동에서 그 내용과 형태를 갖추어 가고 있는 “세월호 기억저장소” 역시 대표적인 헤테로토피아로 볼 수 있겠다. 나아가 그 같은 차원을 뛰어넘어 새로운 공간(권력-관계)에 관한 의식을 제고하고 심화했으면 한다. 즉 현재 국토 자체가 침몰한 세월호와 같다면, 헤테로토피아적 공간은 개별단위 차원에서의 실현만이 아니라 ‘다르게 생각하기’의 터전으로서 전복적 상상력과 실천적 노력을 통하여 국가 공동체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공간-권력의 대안 형식으로서 숙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분리보다는 배치, 욕망보다는 분배에 가치를 두는 상상력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