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LP가 붐이다. 해외 록 밴드, 국내 인디밴드, 혹은 몇몇 메이저 가수들에 국한되던 LP 발매가 최근 부쩍 늘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7월에는 비틀스와 아이유의 음반이 각각 한정판 LP로 발매된다는 소식도 들린다. 아이유의 경우엔 수록곡 7곡 외에 ‘건전가요’가 하나 수록된다는 게 특이하다. 70~80년대 가요 앨범의 컨셉트를 그대로 살리는 기획이다. 2011년부터 열리고 있는 <서울레코드페어>도 다음 주인 28일, 29일 서울 논현동 플래툰 쿤스트할레에서 열린다. 이 행사는 지난해까지 누적 관객 1만 2000명을 모았다. 전에는 유료로 진행했지만 올해는 무료로 전환하고 음반 소개와 판매에 집중한다. 3년 전만 해도 이 행사는 ‘힙스터’ 취향의 이벤트 정도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음악 팬들이 기다리는 행사로 발전했다. 한정판으로 국내 음반을 발매하기도 한다. 올해는 노브레인 1집 《청년폭도맹진가》(2000), 언니네 이발관 5집 《가장 보통의 존재》(2008), 디제이 소울스케이프의 데뷔 앨범인 《180G BEATS》(2000)와 김목인 1집 《음악가 자신의 노래》(2011), 더 콰이엇과 도끼, 빈지노가 속한 일리네어 레코즈의 최근작 《11:11》(2014)이 연달아 발매된다.

하지만 LP 붐은 그저 ‘느낌적 느낌’이 아니다. 최근의 빌보드 앨범 차트를 보면 잭 화이트의 새 앨범 《Lazaretto》가 1위를 차지했다. 발매 첫 주 판매량이 13만 8천 장이었고 이 중에서 약 4만 장이 LP 판매였다. 음원이 약 5만 6천 장이고 CD가 대략 4만 1천 장이었으므로 결코 적은 양이 아닌 것이다. 이 앨범은 닐슨 사운드스캔Nielsen SoundScan이 LP 판매량 조사를 시작한 1991년 이후 최고의 주간 LP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LP 판매량이 2007년 1백만 장 판매를 기록한 후 2009년 2백 50만 장, 2012년에는 4백 50만 장을 기록하며 무서운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런 LP 붐에 대해서는 여러 입장이 엇갈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LP가 더 좋은 소리를 낸다고 말하지만 레코딩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것은 편견이다. 처음부터 아날로그 장비로 녹음하지 않는 한 LP 특유의 소리를 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즘의 LP들은 디지털로 제작된 음원을 LP로 제작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 사실상 소리의 차이는 없다. 다만 LP에 대한 대중적 호응은 소장에 대한 욕망과 맞닿는다. CD를 사서 MP3로 변환해 듣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돈을 더 주더라도 사이즈가 크고 특별하게 보이는 LP를 구매하는 게 낫다는 태도다.

우리가 흔히 고음질이라고 부르는 음원은 320kbps다. 온라인 음악 사이트에서는 주로 192kbps와 320kbps를 구분해서 다운로드할 수 있게 제공하는데, 90년대 이전에 나온 음원들은 보통 192kbps로 제공된다. kbps는 초당 킬로비트(kilobits per second: 네트워크상에서의 데이터 전송 속도)다. 1초당 1,000비츠(bits)를 전송하는, 주파수 대역을 나타내는 단위인데 디지털 음악 파일에서는 음질을 표시하는 단위로 여겨지고 있다. 숫자가 높을수록 ‘음질이 좋다’고 여겨지지만 이론적으로는 192나 320kbps는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무튼 재미있는 건 디지털 시대 이전만 해도 ‘음질’에 대한 의구심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카세트테이프를 듣다가 CD를 들을 때의 문화 충격은 있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왜일까? 아무래도 디지털 시대에는 ‘kbps’처럼 음질의 수준을 단위로 ‘보여주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처럼, 그렇게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음질에 민감한 건 사용자만이 아니다. 업계에서도 음질이 점점 중요해지는 것 같다. 고가의 헤드폰이나 PC-FI 같은 하이파이 오디오 기기들도 속속 출시되고,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HD 음원이란 명칭으로 320kpbs 음원을 제공한다(보통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128Kbps 이하가 제공된다). 클래식의 경우는 FLAC 같은 무손실 음원이 제공되거나 팬들이 이쪽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많고, 블루투스 오디오 기기들은 APT-X같은 무선전송 고음질용 코덱을 채택하는 경우도 늘었다. 음악 산업에서는 고음질 경쟁이 디지털 음악의 미래를 보여주는 단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에 스트리밍 산업의 미래가 있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것은 역설적으로 21세기의 디지털 환경이 이전보다 못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여기서 디지털 환경이란 제작보다는 전송환경을 뜻한다. 하이퍼텍스트의 인터넷 환경에서는 데이터 전송이 필수적인데, 이때 음악의 효율적인 전송을 위해 ‘초당 킬로비트’가 중요해진 것이다. 지금 오디오 기기에서 고음질 음원이 중요해지는 건 그만큼 전송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음질을 따진다면 차라리 음반을 듣는 게 좋다.

그렇다면 미국의 LP 판매량이 2007년 이후 급증했다는 건 우연이 아니다. 미국 음악 산업에서 2006년과 2008년은 무척 중요하다. 2006년은 구글이 유튜브를 인수한 해이고, 2008년은 아이튠즈가 음악 산업 매출 1위를 차지한 해다. 이때부터 미국의 산업 구조가 아이튠즈, 혹은 디지털로 완전히 전환된 때라고 보는데 역설적으로 이때부터 LP 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은 음악이 영화나 다른 장르보다 더 개인과 밀접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음악을 소유하길 원한다. 내 것이길 원하는 것이다. 디지털 다운로드나 스트리밍은 청취를 더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때 중요한 건 다시, 음악적 경험이다. 이 음악이 ‘내 음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이 음악을 통해 어떤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CD는 아직까지는 보편적인 매체다. 컴퓨터 게임도, DVD나 블루레이 영화마저도 사이즈가 동일하다. 이래선 음악에 특화되었다고 할 수 없고, 그래서 소유욕을 자극하지 않는다. 그래서 LP에 대한 높은 관심은 디지털 음원 시대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의 LP 붐은 오히려 소리가 아닌 물건에 대한 관심이다. 그래서 디지털에 반하는 것이 아닌, 디지털과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산업적으로 스트리밍에 대한 수익을 기대하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면 물리적 음반을 판매하는 것(과 동시에 페스티벌에서 머천다이즈를 판매하는 것)이 음악 산업의 실제적인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에 대한 비판도 당연히 존재한다. 김두수의 음반을 재발매하면서 60~70년대 음반의 재발매를 주로 해 온 리버맨 뮤직의 오너이자 레코딩 엔지니어인 이재수 대표는 최근 제작사들이 LP 발매를 홍보할 때 흔히 사용하는 ‘최초 LP 발매’나 ‘180g 중량반’, ‘유럽 최고의 생산 라인 이용’ 등이 강조되는 경향에 대해 지적한다. 마스터 파일이 24bit/96kHz이든 16bit/44.1kHz이든 중요하지 않고, 오리지널 믹스를 이용하여 LP 커팅용 마스터링을 별도로 하였는지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때 라이센스 LP의 경우 오리지널 믹스 파일을 제공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데 본사에서 LP 커팅용 마스터 파일을 받아낸다면 모를까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요즘의 LP 붐은 오히려 음악을 사용자들로부터 더 멀어지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레코드페어에서 기획한 LP들도 커팅용 마스터파일은 CD와 동일한 음원을 쓴다. LP가 들려주는 특유의 사운드는 ‘언리미티드 와이드 다이내믹스unlimited wide dynamics’에서 시작하는데, CD에서는 이 부분이 제거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LP 포맷은 LP의 핵심을 빠뜨린 결과물인 것이다. 음질에 주목한다면 이렇게 까다롭고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복원’보다 일본에서 발매되는 Platinum SHM-CD 시리즈를 권하기도 한다. 오리지널 아날로그 마스터에 가장 가까운 CD 버전인데 2013년 가을부터 일본에서 발매되기 시작했다. 현존하는 CD 버전 중 최상(아마도 최후)의 음질을 보장하고, 두꺼운 패키지도 제공한다. CD 제작에 사용되는 ‘디지털 피크 리미팅’을 하지 않아 오리지널 마스터의 다이내믹스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물건이다. 소리의 레벨도 작게 세팅되어 있다. CD 산업이 사양화된 2000년대 초반부터 CD는 경쟁적으로 레벨을 높이면서 ‘주목을 받으려고’ 노력해 왔다. ‘라우드니스 워Loudness War’로 불린 이런 경쟁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도 영향을 미쳤는데, 최근 음악 산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국제 표준을 만들며 그동안의 과오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에 대한 논의조차 되지 않는 실정이다. Platinum SHM-CD 시리즈는 작은 레벨로 세팅되어 있고 음질은 최고의 수준을 제공한다. 요컨대 기본에 가장 충실한 CD인 셈이다.

그럼에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LP에 대한 붐은 음악이 아닌 포맷에 대한 유행일 가능성이 높다. 녹음장비의 한계 때문에 생긴 노이즈와 왜곡의 결과인 ‘아날로그의 따뜻한 느낌’이 중요한 게 아니고 실제로 음반을 구매한 사람들도 턴테이블에서 LP를 플레이하는 경우가 전혀 없거나 거의 드물다. 요즘에 새로 발매되는 LP들은 디지털 다운로드 코드를 별도로 제공한다. 그렇다면 LP 붐은 음반을 손으로 만질 때의 느낌과 경험에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다. 음질이 아니라 음악적 경험이 보다 중요해지는 것이다. 음악이 제공하는 경험은 두 가지다. 먼저 ‘음악의 경험’이다. 음악 그 자체가 주는 쾌락이라고 해도 좋을 텐데, 음질을 이 카테고리에 넣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음악적 경험’이다. 이것은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과 만나는 과정을 통한 쾌락이다. 어떤 음악가의 한정판 혹은 박스세트를 구하러 인터넷 쇼핑몰과 음반점을 기웃거리고, 그렇게 구한 음반의 포장을 뜯고, 부클릿을 꺼내 뒤적이고, 마침내 그걸 플레이어에 넣은 다음 버튼을 눌러 막 시작되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일련의 과정.

이것을 소홀하게 여길 수 있는 건 아니다. 언제나 음악은 경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음질의 수준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이었다. 음악에 대한 세대적 반응, 시대적 반응은 결국 이 음악이 언제, 어디서, 어떤 사람들에 의해 불리고 확산되었는가와 직결된다. 그 점에서 이 스트리밍의 시대에 음반을 듣는다는 것은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음반을 듣는 것은 몸의 기억에 새겨진다. 몸에 담긴 경험과 기억은 강렬하다.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점에서 21세기의 음반에 대한 환기는 단지 시장을 떠난 구세대의 지갑을 노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요컨대 이 귀찮음으로부터 야기되는 음악적 경험이야말로 대량복제의 디지털 시장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독특하고 차별적인 쾌락인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음질에 대한 논의는 부차적일까? 음악적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LP 포맷에 대한 관심은 일종의 가능성, 음악을 음악이 본래 있던 그 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는 가능성의 의미가 크다. 이때 음질은 다시금 중요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라면 LP는 그저 한때의 유행에 머물거나 음악 산업의 몇몇 주체들의 배를 불려주는 데 기여할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적 경험’과 ‘음악 경험’은 분리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 어떤 예술과 마찬가지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둘을 일치시키는 노력들은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수면 아래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