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상호작용

오랜 시간에 걸쳐 분쟁이 있었던 밀양 송전탑 건설 사업이 경찰의 강제철거를 시작으로 드디어 강행될 모양이다. 모두가 예상했던 결말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그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또한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지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해고무효를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코오롱 노동자이나, 무려 스물다섯 명의 희생자를 내며 이제 6년차를 맞이한 쌍용차 노동자들의 미래도 밀양 노인들의 미래와 크게 달라 보이진 않는다. 한 시간을 일해 한 끼니를 사 먹기도 힘든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젊은이들은 배달보증제를 지키려다 사망하고, 이미 자신의 용도를 다해 보호의 테두리에서 밀려난 노인들은 외로움 속에 고독사한다. 완강한 현실 앞에서 무기력한 그들의 삶은 이렇게 쉽게 비극으로 전화한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분노하지 않는가?”

그리고 비극이 발생할 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이런 종류의 질문은 이제는 조금 식상한 질문처럼 들린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어느 시인의 표현을 빌려, 무관심을 배제하고 공동체 구성원들의 소통과 연대를 통한 분노로 현 체제를 바꾸자는 것이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으로 나와 있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러한 질문과 답에 온전히 수긍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충분히 분노하지 않는다는 그들의 시각과 달리 세상의 분노는 이미 양적으로 포화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정파의 언어들은 상호 극단을 향해 달려가며, 익명의 힘에 기대는 소셜 네트워크와 웹 커뮤니티에는 증오에 찬 저주의 언어와 욕설들이 흘러넘친다. 분노한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서면, 무엇에 분노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사람들 또한 그 옆에 맞불을 들고 나온다. 도로를 마주하고 선 그들의 언어는 상대의 소리를 지우기 위해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증폭된다. 소통과 연대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렇게 분노에 찬 목소리들은 또 다른 분노를 만나 공명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에게 상쇄되어 체제를 변동할 수 있는 어떤 임계지점을 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세상에 가득 찬 분노들이 제각각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분노는 온 천지에 가득하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요컨대 분노를 통해 체제를 변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사람들이 왜 분노하지 않는가가 아닌 분노의 방향이 왜 일치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인 것이다.

희생양

분노가 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까닭은 오직 분노의 감정만이 체제가 제공하는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이성이 제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으로서 광기의 일종이다. 그리고 언제나 패러다임을 붕괴시키는 것은 내부의 논리가 아닌 외부의 논리이다.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모든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어낸 건 차가운 이성이 아닌 뜨거운 분노와 광기였다. 작년에 세상을 떠난 마지막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 역시 분노를 통해 모순된 체제에 저항하여 승리를 거둔 그의 체험적 진실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푸코가 지적한 바와 같이 체제를 지탱하는 이성에 의해 광기가 억압되고 격리된 것은 이러한 까닭이며, 체제에 저항하는 자들이 사람들의 분노를 원하는 이유 또한 이와 동일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분노에 담긴 이러한 진실을 간파한 것은 에셀과 그의 동지들만이 아니다. 체제 또한 자신을 위협하는 가장 커다란 적을 그냥 놓아둘 리 없었다. 분노는 체제에 의해 이미 관리되고 있었다.

체제가 행하는 분노의 관리는 인류사회의 시작부터 함께한 생각보다 오래된 전통이다. 종종 번제나 희생양 제의라 불리는 분노의 해소 방식이 그렇다. 예컨대 고대 그리스에서는 가뭄이나 홍수와 같은 당시의 사회체제가 감당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하여 폴리스 성원들의 분노를 자극하면, 파르마코스라고 불리는 자를 선정하여 모든 사람들이 돌을 던져 그들을 처형하는 의식을 치르곤 했다. 그가 악의 근원으로서 폴리스에 끔찍한 재앙을 몰고 온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조금은 원시적인 사유의 결과물로 보이는 이런 희생양 제의는 사람들의 분노를 관리하며 체제를 유지하는 데 의외로 뛰어난 효율을 보인다. 재난을 불러온 사건이나 자연현상의 원인에 대해 복잡한 설명을 제시하는 것보다 단순히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명징한 범인을 제공하는 것이 분노에 찬 사람들을 이해시키는 데 훨씬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생양으로 선정될 대상은 분명히 다른 사람과 달리 이질적이야 했다. 거대한 재앙을 불러온 자가 자신과 동일한 층위에 자리한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은 쉬이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체로 외국인이나 고아와 같은 무연고자나 장애인 등으로 구성된 이러한 사람들은 희생양으로 선택되기에 최적의 존재에 해당한다. 게다가 그들은 폴리스 내의 약자로서 처형된 후에도 복수의 우려가 적었다는 또 하나의 장점도 가지고 있었다. 자칫 희생양을 잘못 선택하여 복수가 순환이라도 된다면 폴리스는 다시 그들의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위험이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선정된 희생양들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를 통해 그동안 누적된 그들의 스트레스를 발산한다. 희생양들의 희생과 함께 재앙은 소거되며 폴리스는 다시 안정을 회복한다.

이렇게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보다 분노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전환하는 이 원시적인 제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동이 심한 여타의 다른 정치제도들과 달리 체제를 유지하는 매우 효과적인 전략으로 남아 시공간을 넘어 살아남는다. 이교도의 침입과 종교개혁의 여파로 자신들의 체제를 위협받던 당시 시스템의 관리자들에 의해 행해진 마녀사냥으로부터, 유럽의 전 지역에 걸쳐 오랜 시간에 거쳐 행해졌던 유대인 차별까지, 별다른 이유 없이 고난 받은 자들의 흔적은 대개 그 이름을 달리한 희생양 제의의 후신인 것이다.

분노의 분산

희생양을 선정하여 공동체 성원의 분노를 관리하는 이러한 공정은 그 탁월한 효과가 입증된 만큼 당연히 현대에도 유지된다. 다만 그 양상은 공동체 내부에서 소수의 인원을 마녀나 파르마코스로 지목하여 희생양으로 선정했던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 평등사상의 발달은 모든 사람들의 지위를 형식적으로나마 동일한 평면 위에 서게 함으로써 그들과 자신이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꾸준히 학습시켰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지성이 이제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게다가 이전까지 희생양이 등장하는 순간은 자연재해나 재난사고와 같이 일시적으로 체제를 위협하는 큰 위기가 닥쳐오는 순간에 제한되었다. 희생과 함께 위기가 잦아드는 우연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제 더 이상 효과적인 전략이 아니다. 대체로 현대의 위기란 체제의 기초가 부실하던 이전과 달리 사소한 모순들이 꾸준히 누적되면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모순들을 순식간에 해소할 수 있는 희생양이라는 놀라운 마법을 믿지 않는다. 희생양을 아무리 소환해도 위기는 쉽사리 지나가지 않는다.

변화된 상황은 전략의 변화를 수반한다. 거대한 분노를 하나의 희생양에게 돌리는 것이 아닌 아직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은 여러 개의 작은 분노를 여러 희생양에게 돌리는 새로운 전략도 그럴 것이다. 요컨대 집단에서 소수의 희생양을 분리하여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성원 전체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서로의 분노를 서로에게 발산하게 한다는 이야기다. 체제는 이제 자신을 위협하는 사소한 위기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끊임없이 희생양을 생성하며 분노의 분산을 시도한다. 예컨대 최저임금의 문제는 영세자영업자와 아르바이트생의 대립이 되며, 지역 균형발전의 문제는 지역 간의 대립으로, 성 평등의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대결이 되는 구도 등이 그 내용이다.

이렇게 체제의 문제를 구성원 상호 간의 대결로 환원하는 이러한 방식은 구조에 내재된 모순의 원인을 은폐하는 한편, 구성원들은 어느새 그물처럼 얽힌 이해관계 속에서 서로가 서로의 희생양이 되어 대결 상대에 대해 끊임없이 분노를 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분노의 절댓값은 이미 임계점을 돌파했지만 그 방향성으로 인해 분노의 총합은 언제나 제로에 수렴한다. 매운 재앙의 채찍이 내려치는 사회에 분노가 만연하더라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종말의 징후

아무리 사람들에게 분노하라고 외쳐도 체제가 꿈쩍도 하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체제는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분노를 조장한다. 방향을 잃은 새로운 분노는 이전에 생성된 분노를 상쇄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구성원 사이의 갈등과 증오를 전파함으로써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일간베스트 사이트(‘일베’)’는 흥미로운 현상으로 보인다. 보통이라면 은폐되어 있어야 할 체제의 분노 관리 시스템이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체제가 위기에 처해 있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마치 채무로 채무를 변제하는 것처럼, 비록 방향이 문제일망정 분노의 총량은 이미 체제의 수인한도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들이 공론의 장으로 등장한 것 자체가 파국의 징후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네토우요(넷우익)’이나 프랑스의 ‘국민전선’ 등이 거리로 등장하는 것도 동일한 정황이다. 만연한 분노를 상쇄하기 위해서는 더 직접적이고 강한 역방향의 분노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왜 분노하지 않는가를 묻기 전에 분노의 방향성을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진정한 원인을 직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분노의 발산은 필연적으로 구성원 사이의 충돌을 야기함으로써 오히려 체제를 굳건하게 만드는 반동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오직 공통된 분노만이 체제를 변혁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임계점을 돌파한 분노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하는 순간이 바로 체제의 종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