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14년은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에게 한없이 아프게 기억될 해였다. 세월호 사건부터 시작하여 잇달아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의 연쇄작용은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우리 한예종인들도 처지는 마찬가지였다. 한 해 동안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둘러싸고 벌어진 수많은 사건, 사고들은 한예종인에게 안타까움, 슬픔 그리고 부끄러움이 교차하는 감정을 선사(?)하였다. 교수 임용과 관련한 상시 쇄신 기구 발족 논의, 학내 노동자 파업 그리고 존경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고故 이종호 교수님의 자살까지, 이번 한해는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다양한 방면의 사건, 사고 소식이 쉼 없이 들려오는 한해였다.

사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수학하고 있는 일원으로서 학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학생의 당연한 소임임에도 불구하고, 고백하자면 필자 자신이 그래왔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수업의 밀도와 과제 및 교과 활동의 양이 극악에 가까운 한예종에서는 정작 하루하루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기도 꽤나 버거운 일인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러한 글을 처음 청탁받았을 때도 도대체 내가 우리 학교에 대해서 무엇을 쓸 수 있을까를 꽤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결국 필자가 학교의 교수임용시스템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을 건드리는 글을 쓰기에는 주어진 정보나 다룰 만한 역량 면에서 많이 부족하며, 차라리 같은 우리 교우들이 그간 학교를 다니면서 발생했던 안타까운 사건, 사고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보는 쪽이 보다 현명하겠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이번 년도 초에 필자와 룸메이트로 살고 있는 같은 학과 선배에게 학교 캠퍼스 내에서 일어났던 폭력 사고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도 2013년 겨울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을 것이다. 나의 룸메이트는 의릉을 가운데에 두고 넓게 분리된 학교 캠퍼스 탓에 미술원 교정에서 학교 도서관까지 먼 길(?)을 향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선배는 신원을 알 수 없는 괴한에게 갑작스런 습격을 받게 되었다. 전해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괴한이 습격 이후에는 선배를 도랑에 밀어 넣은 뒤 주로 다리를 이용해 수도 없이 온 몸을 가격하였다고 했다. 이런 일을 직접 겪은 선배의 마음고생이야 오죽했겠지만, 끔찍한 소식을 전해들은 필자도 꽤 긴 시간 동안 큰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건의 피해자로서 겪어야 했던 선배의 심정을 먼저 위로해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선 수상한 사람이 학교 캠퍼스에서 활보하는데도 어떠한 제재를 가하지 않았던 학교 수위 측의 잘못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단지 한 개인의 잘못만으로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한 근무 태만에 대한 책임은 그들을 비정규직의 사각 지대에 방치하고 있는 학교 행정부에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거대한 문제는 일단 논의에서 잠깐 밀쳐두고서라도, 학교가 사후에 이를 대처하는 태도나 접근 방식에 있어서도 상당히 많은 문제점들을 노출시켰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학교는 학생의 복리나 안전, 치안 등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우선은 보험에 관한 건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이 사고가 학교 캠퍼스 내에서 일어난 사고인 이상 일정 부분은 학교에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그것이 규율 상으로 힘들다고 하더라도 사람 사는 세상의 인지상정으로라도 학교 측에서 학생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발 벗고 뛰어주는 것이 도리 차원에서라도 필요하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끊임없이 학칙을 들먹이며 보험은 오직 학교 건물 내에서 수업 중에 벌어졌을 시에만 적용가능하다며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였다. 학교는 자신의 관료적 행정 시스템에 매몰된 나머지 학생들의 복리와 후생에 봉사한다는 본연의 목적은 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사건 당시 주변의 목격자를 찾기가 어려웠고 그래서 법적으로 더욱 복잡해진 사건은 꽤나 긴 시간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가해자에 해당하는 그 괴한은 아주 철면피한 인간이었으며, 오히려 적반하장 식으로 끊임없이 선배를 위협하면서 본인이 피해자인 선배를 고소하는 등의 파렴치한 행동을 취하였다. 때문에 선배는 본인이 무고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변호사도 없이 스스로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곳저곳을 뛰며 사건 이후에도 그 가해자에게 지속적으로 피해를 받아온 사람들의 진술서를 분주하게 모으고 법원과 검찰청을 끊임없이 왕래하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학교 측에서는 학생에게 어떤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하는 모습과 태도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학과 조교실에 전화하여 사건의 현황 및 진행 상황을 파악하여 사건을 크게 부풀리지 않는 일에만 급급하였다. 심지어 선배는 이후에도 속출할 수 있는 피해자의 발생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교내 CCTV의 설치를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 측에서는 신속하게 학생의 의견을 수용하고 실행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무관심하고 태만한 자세로 대응을 일관하였다. 여전히 CCTV 설치 안건은 안타깝게도 미제로 남아있는 실정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다양한 예술인재들이 모여 자유로운 학풍 속에서 자신들의 예술적, 창조적 역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드문 보금자리이다. 그런 점에서 그동안 한예종은 한국 사회에 훌륭하게 기여할 수 있는 예술인재를 양성해내고 제공하는 긍정적이고 특수한 기능을 수행해왔다. 그런 한예종이 앞으로도 더욱더 훌륭한 예술가 및 예술 이론가들을 양성, 배출하기 위해서는 교내 안전의 확충으로 학생들이 그들의 작업 및 학업에만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학교 측은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복지 및 후생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사건, 사고의 위험을 최대한도로 줄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하여야 한다. 학생이 교내 캠퍼스에서 괴한에게 폭력을 당하고, 그 뒤에 홀로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고 있던 상황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는커녕 자신의 과실을 숨기고 방어하기에만 급급했던 학교 행정 측의 태도를 고발한다. 앞으로는 한국 예술계의 산실인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부단한 노력으로 이런 무고한 희생자가 더 이상 속출하지 않도록 안전한 환경을 제공하고, 안타깝게도 사건이 발발한다면 사후에도 학생이 최선의 도움과 수혜를 받을 수 있는 학교로 변모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