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우리’를 되찾자

그해 초여름, 나는 거리에 있었다. 서울 한복판 광화문에서 촛불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2008년 6월 초,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촛불시위가 절정으로 치달을 때, 나는 <시사IN>의 의뢰를 받고 ‘72시간 릴레이 시위’를 취재했다. 사흘 동안 내 거점은 청계천 인공수로의 물머리, 소라광장에 세워진 작은 천막이었다. 이름 하여 ‘시사IN 거리편집국’.

『시사IN』 거리편집국은 잊어서는 안 될 유래가 있다. 한국 언론 역사상 최초로 삼성이라는 거대 자본에 대항한 창의적 방식이 거리편집국이었다. 2007년 2월 『시사저널』 기자들은 편집국을 박차고 거리로 나섰다. 2006년 삼성 관련 기사가 발행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삭제되자 편집권을 문제 삼아 파업을 단행한 것이다. 기자들은 거리에 천막을 치고 언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싸웠다. 거리에서 기사를 썼고, 거리에서 시민을 만났고,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결과는 『시사IN』 창간. 기자와 시민의 승리였다.

2008년 초여름, 그 기자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광화문에 천막을 치고 거리에서 기사를 작성했다. 당시 광화문 일대 도로는 지상 최대의 거리로 변해 있었다. 세종로 10차선 도로는 촛불들이 행진하고, 걷고, 모여 앉아 토론하는 축제의 거리였다. 거리의 부활이었다. 하지만 6년이 흐른 지금, 저 거대했던 촛불을 돌아보는 심사는 착잡하다. 촛불이 다중多衆이란 사회학적 호칭을 얻고, 올드 미디어를 제압한 뉴미디어(웹 2.0)의 위력이 확인됐지만, 달라진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사이 천암함 사건, 대선 정국, NLL 관련 회의록 공개, 국가기관 댓글 사건, 야당 의원 내란음모 혐의, 현직 검찰총장 퇴출 그리고 급기야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촛불이 켜졌지만, 촛불의 ‘화력’은 크지 않았다. 촛불이 요구했던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촛불이 더 나은 미래를 견인하는 시민사회의 주체로 거듭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은 자발성을 적으로 간주한다’

도시를 인문학의 눈으로 관찰하는 자리에서 새삼 촛불을 거론하는 까닭은 멀리에 있지 않다. 거리 때문이다. 거리에 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 같은 질문은 얼핏 한가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도시에서 죽는다’는 엄연한 사실을 인정한다면, 도시적 삶에서 거리가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는 도시에서 죽는다’라는 발언은 문학적 수사나 시적 예언이 아니다. 도시 대 비도시 인구 비율이 9 대 1을 넘어선 지 오래다.

급격한 도시화는 국경을 넘어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70억 인구 중 35억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세계 전체 인구보다 전 세계 도시 인구 증가폭이 훨씬 크고 빠르다. 문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가 ‘가진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쟁, 자연 재해, 질병, 기아 등 타의에 의해 정든 땅을 등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 도시로 밀려든다.

상위 1%에 속하지 않는다면, 도시에서 살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 선택지가 거의 없다. 귀농과 같은 생태적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 수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시를 ‘자연’으로 인정해야 한다. 도시를 실존적 삶의 기반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므로 도시를 재정의하는 일은 지적 허영이 아니다. 도시에 인간의 숨결, 공동체의 체온을 불어넣는 일은 시민사회가 외면할 수 없는 가장 큰 정치적 기획 중 하나다.

그런데 왜 거리가 사라지는 것일까. 1960년대 후반, 도시에 대한 권리(도시권)를 최초로 주창한 앙리 르페브르는 “권력은 자발성을 적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도시가 거리를 축소, 왜곡하는 이유에 대한 명쾌한 분석이다. 르페브르가 말하는 권력은 국가 공권력일 뿐만 아니라 기업과 시장으로 대표되는 자본의 논리이기도 할 것이다. 공권력은 질서 유지, 즉 치안을 이유로 거리를 봉쇄하고, 사적 소유권의 주체는 거리를 쇼윈도로 전환시킨다. 공권력 앞에서 거리의 시민은 ‘불순분자’로, 자본의 욕망 앞에서 거리의 시민은 ‘생각하지 않는 소비자’로 전락한다.

거리는 ‘사건’이 일어나는 창조적 장소

거리란 무엇인가. 두말할 것도 없이 거리는 타자와 교감하는 장소다. 내가 타자의 타자로 거듭나는 장소다. 타자와 타자의 예기치 않은 사건(만남)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가 생성되는 창조적 장소다. 거리에서 시민은 저마다 좋은 의미의 배우이자 관객이다. 자신을 표현하고, 타자에 반응하면서 자신은 물론 거리의 독자적 개성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거리는 도로나 광장, 공원 못지않은 공유재다. 거리는 주민뿐 아니라 방문객, 이방인, 여행자를 배척하지 않는 우애와 환대의 장소다. 도시는 거리에서, 거리를 통해, 거리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성, 정치성, 독창성을 일궈낸다.

물론 거리가 언제나 안전하고 개방적인 것은 아니다. 거리에서 시민이 정치적 주체로 탄생할 때 거리는 기존의 질서를 뒤흔드는 ‘혼돈의 공간’으로 돌변한다. 다시 르페브르에 귀기울여보자. 르페브르는 거리를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라고 명명한다. 헤테로토피아란 “지배적 공간과는 이질성을 보이는 차이의 공간”으로 사회적 역공간逆空間이라고 불린다. 르페브르는 이 역공간이 ‘새로운 꿈’이 태어나는 자궁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역공간은 시민의 자기-정치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2008년 촛불시위가 일어난 광화문 일대, 월드컵 거리응원이 펼쳐진 전국의 도시가 사회적 역공간이다. 1980년 5월, 시민들에 의해 일시적 해방구로 떠올랐던 광주 또한 극적인 헤테로토피아였다.

시민의 파토스가 일시적으로 폭발해 거리의 성격을 전복시키는 경우 말고도 사회적 역공간은 일상에서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다. 바로 거리다. 거리는 르페브르가 지적한 것처럼 도로와 건물 사이에서 도로와 건물이 갖는 지배적인 성격과 구별되는 이질성을 발생시킨다. 그런데 공공 공간과 사적 공간 사이를 연결하는 거리, 즉 공유 공간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상업공간으로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거의 매일 경험하듯이, 도심의 지하철역에서 잠깐 한눈을 팔다가는 백화점이나 서점으로 빨려 들어간다. 오랜만에 기차를 타는 여행자는 역 건물이 달라진 것을 보고 당혹스러워 한다. 도심지의 역은 대형쇼핑몰의 한 귀퉁이로 밀려나 있다. 열차를 자주 이용하는 승객이 아니라면 매표소나 개찰구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거리가 도로와 건물의 중성적인 경유지로 전락했다고 해서 시민들이 거리를 잊은 것은 아니다. 사회적 존재인 시민의 몸에 거리에 대한 욕구가 각인되어 있다. 시민은 지역 사회의 구성원이란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시민-개인은 타자의 타자로서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곳곳에서 거리가 경제논리에 포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처에서 거리가 헤테로토피아-역공간적 성격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여름이면 편의점 앞은 파라솔을 펼쳐놓은 작은 노천카페로 변한다. 이면도로에 자리한 생맥주집도 해가 지고나면 야외주점으로 거듭난다. 주말이면 자동차를 통제하는 보행자 천국도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이질적 거리’다. 돌이켜보면, 5일 장이나 시골집 앞마당도 하나의 거리였다.

거리는 또 있다. 가장 작은 단위의 거리인 골목. 신도시 개발은 물론 재개발, 재건축이 아파트 단지 건설과 동일시되면서, 도시인구의 절반 이상이 공동주택에 거주하면서 전통적 의미의 골목은 사라졌지만, 골목에 대한 기억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래된 복도식 서민 아파트에서 복도는 골목 구실을 톡톡히 해낸다. 아이들이 세발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노인들이 모여 앉아 젊은이들 흉을 보기도 한다. 골목 어귀에 의자 몇 개, 나무 아래 작은 평상 하나만 내다놔도 이웃을 위한 장소가 태어난다. 이처럼 거리에 대한 욕구, 다시 말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는 욕구는 뿌리가 깊다.

공공재를 공유재로, 공유재를 지역의 창조물로

거리는 도로, 광장, 공원 못지않은 공유재다. 르페브르의 도시권 개념을 심화, 확대하고 있는 데이비드 하비가 말했듯이, 공유재는 공공재와 구별된다. 공공재가 국가가 사회를 위해 제공하는 기반시설이라면, 공유재는 지역사회에 의해 그 성격이 달라지는 ‘살아있는 인프라’다. 하비에 따르면, 특정 도시의 매력적 분위기는 그 도시에 거주하는 시민의 집단적 산물이다. 서울의 북촌이나 인천의 배다리를 보라. 북촌이나 배다리의 독특한 문화는 오랜 시간, 그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다. 문제는 특정 지역의 독창적 역사와 문화가 경제논리에 의해 상업화된다는 것이다. 서울 홍대앞이 독립 예술가들의 거리에서 서울을 대표하는 유흥-관광명소로 뒤바뀐 사례를 보라.

거리는 여러 겹의 의미를 갖고 있다. 시민이 타자와 더불어 자기 삶을 실현하는 정치적 장소이자, 공공재를 공유재로 거듭나게 하는 집단 지성의 산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치적 장소와 공유재를 산출하는 장소는 동떨어져 있지 않다. 시민의 정치화는 그 지역의 문화적 재탄생과 긴밀한 상호 연관성을 갖는다. 시민이 자기 정치의 주체로서 풀뿌리 민주주의의 당당한 주체로 성장하지 않는 한, 지역의 문화적 독자성을 창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민이 공공재를 확보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 공공재를 지역의 창의적 공유재로 승화시키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지역을 ‘작품’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나마 남아 있는 공공재와 공유재는 발빠른 경제논리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거리를 민감하게 느끼는 감수성, 즉 거리의 상상력이 절실하다. 거리를 빼앗기는 것은 도시를 빼앗기는 것이다. 도시를 포기한다는 것은 시민 개개인이 자기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시민이 자기 삶을 상실한다는 것은 사회가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실내와 실외 사이,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 사이, 개인과 공동체 사이, 도로와 건물 사이에서 거리의 상상력을 회복해야 한다.

시장과 권력 사이, 경제와 정치 사이, 즉 거리가 우리의 구체적, 실존적 삶의 현장이다. 그런데 거리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거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거리에서 우리는 과연 누구이고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