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단지를 배회하는 누렁이를 본 적이 있다. 덩치가 큰 누렁이와 마주치자마자 나는 놀라서 움찔했지만 저만치 멀어져가는 개를 바라보며 이내 마음이 스산해졌다. 저 개는 이제 어떻게 될까. 누렁이를 보고 착잡한 마음이 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며칠 후 놀이터에는 누렁이의 물과 밥을 챙겨주자는 메모와 함께 밥그릇과 물그릇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누렁이를 챙기고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우면서도(남에게 미루는 마음으로) 그것이 일시적인 조치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그렇다고 누렁이를 유기견 보호소에 보내면 문제가 해결될까? 좁은 철창에 갇혀 있다가 법정보호기간 10일이 지나도록 새로운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누렁이는 순번대로 안락사되고 말 것이다. 유기견, 유기묘 보호소는 버려진 동물들로 가득 차 있고 동물보호시스템(www.animal.go.kr) 인터넷 페이지에 등록된 동물들의 사진은 또 다른 유기동물의 사진에 밀려 사라져간다. 동물들은 인간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실제로는 죽어간다.

나는 공원에 버려진 페르시안 고양이를 유기묘 보호소에 보낸 적이 있다.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고양이의 원래 주인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순진한 마음에 공원 곳곳에 전단지를 붙이고 다녔지만 보호기간이 다 지나도록 고양이는 주인도, 새 주인도 찾지 못했다. 안락사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공원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을 고양이를 보호소에 가뒀다는 죄책감에 나는 다시 보호소로 찾아갔다. 내가 입양하겠노라고. 사인까지 마쳤는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고양이를 데려가기로 한 날, 전화가 왔다. 고양이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아프다는 것이었다. 급히 고양이를 동물병원으로 옮기는 나를 보고 택시기사는 ‘돈이 많은가보다’며 비웃었다. 고양이는 ‘범백혈구감소증’이라는 치명적인 병에 걸려 있었다. 백혈구 수치가 점점 떨어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구토, 설사를 하다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병이다. 공원에서 걸린 것인지, 유기묘 보호소에서 전염된 것인지 분명치가 않았고 나는 괴로웠다. ‘도시에 버려진 동물을 위하는 방법이 고작 보호소에서 죽게 놔둘지, 길에서 죽게 놔둘지 선택하는 것밖에 없나’ 라는 생각이 몸과 마음을 짓눌렀다. 회색 페르시안 고양이는 동물병원에서 격리치료를 받다가 죽고 말았다.

현재 공공의 시스템 안에서 동물을 보호한다는 것은 이렇듯 꽤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보호가 아닌 가두는 것이 될 수 있고, 선의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저 처음부터 동물을 팔지도, 사지도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왕 동물과 관계를 맺었다면 그 동물에게 적합한 환경을 만들고 제 수명을 누리다 갈 수 있게끔 인간이 노력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동물의 운명을 인간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에 방영된 MBC <리얼스토리 눈> 80회 ‘유기견의 운명은?’에 따르면 한해 버려지는 개의 수만 한 해 6만 마리에 달한다. 새 주인을 찾는 개들은 극소수이고 버려진 개들은 저마다 쓸쓸한 죽음에 이른다. 게다가 저 수치는 유기견만을 센 것이다. 고양이나 그 밖의 동물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어마어마해진다.

유기견, 유기묘의 현실은 공론화라도 되고 있지만 마트에서 물건들과 함께 진열돼 있는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햄스터, 토끼, 새, 물고기, 이구아나, 거북이 등은 어떤가. 생명을 물건처럼 진열해 파는 것은 당연히 동물학대다. 이들은 사람들이 유리벽을 마구 두드려도 피할 곳이 없으며 관리가 안 돼 좁은 곳에 갇혀 굶어 죽기도 한다. 마트로 오기까지 그 곤충, 동물들은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애초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 차라리 어서 주인을 만나 팔리기를 바라는 모순된 마음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생명이 또 다른 생명인 인간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보다는 상품으로서 폐기처분될 잔인한 운명이 먼저 떠오른다. 그런데 그 운명, 인간이 만든 것이다.

이따금 도로에 짓이겨진 비둘기나 고양이, 강아지를 당신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도시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의 고통을 우리는 잊었을 것이다. 동물들이 쓸쓸한 죽음에 이르도록 방기한 인간 사회가 망각, 무감각과 맺는 관계. 그건 불륜이다. 사람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과 손해에는 민감하면서 눈앞에서 죽어가는 동물들의 고통에는 둔감하다. 동물들의 고통, 인간의 오만과 편견, 나아가 죄책감을 성찰하는 것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된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사람들은 그저 눈을 감음으로써 동물이 고통 받는 잔인한 광경이 안기는 죄책감에서 해방되고 싶어 한다.

현재 한국사회는 사회적 약자에게도, 또 동물에게도 무심하고 폭력적이다. 이럴수록 개개인이 고통이라는 감각에 깨어 있어야 한다. 괴롭더라도 우리는 감았던 눈을 떠야 한다. 그래야 현재 이 사회가 동물과 맺고 있는 불륜의 고리를 끊을 다음 행동을 취할 수 있다. 유리벽 안에 전시된 강아지나 고양이를 충분한 고민 없이 귀엽다는 이유로 충동구매하는 행위는 비윤리적으로 커져가는 애완동물 산업에 일조하는 것이며(대신 유기동물을 입양할 수 있다), 함께 살던 동물이 귀찮고 지겨워졌다는 이유로 동물을 위한 대안 없이 버리는 행위는 길에서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물이니까 잘 적응해서 살아갈 거라는 자기 본위적인 생각은 어리석다. 동물이니까 동물에게 맞는 환경이 필요한데 사방이 시멘트도로, 아파트,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동물이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동물의 시선으로 유리벽의 밖에서 웅성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동물의 시선에서 마주 오는 차의 헤드라이트를 상상해봤으면 한다. 그 두려움에 공감하는 능력을 인간이 회복한다면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개선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체적인 제안을 하나 하고 싶다. 반려견과 산책을 할 때는 꼭 목줄을 매자. 개를 잃어버리거나, 개가 급작스레 도로로 뛰어드는 돌발적인 상황에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줄이 개를 구속하는 것 같아 그저 자유롭게 두고 함께 걷고 있는가? 필자가 도로변에서 목줄 없이 개와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위험하니 목줄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얘는 도로에 안 뛰어들어요.’라고 대답한다. 자신과 개의 신뢰관계를 도로변에서 그렇게 과시하기보다는 개의 안전을 위해 목줄을 매어줬으면 한다.